한없이 사랑스러웠다...미술관옆 동물원

 

   

 

미소와 간지러움의 미덕

 

털털한 옷차림이 어울리고, 화장끼 없는 얼굴이 아름답고, 음식만 보면 좋아서 정신을 못차리며

괴상한 소리를 질러대는 그녀는 귀엽고 사랑스러운 결혼 비디오 촬영기사, 춘희다.

춘희가 짝사랑하는 남자는 국회의원 보좌관이란 엉뚱한 직업을 가진 중년냄새 폴폴한 그런 남자.

그것은 중후함이라는 표현과 맞물려 있기도 하다.

그녀가 결혼식 비디오를 기사가 아니었다면 그런 짝사랑의 대상은 손에 닿기가 쉽지는 않다.

생각해보라! 선생님을 흠모하던 그시절, 우리들의 교복패션은 얼마나 그와 나를 멀게하는

외형적 탄압 이었던가. 안될 사랑에 연연하며 그렇게 사랑하던 때가 모두에게 있었다.

다만 그녀는 아직도 그런 사랑을 소중하게 가슴속에 담아두는 성향의 여자라는걸 알 수있다.

 

  

 

괴팍하기도 하고 뻔뻔스럽고 무례하지만 일상적인 이름의 현역군인, 철수는

여자와의 사랑에 섹스 어쩌구 저쩌구 하는 감정을 넣어야 속이 시원한 이시대의 가장 평범한 남자다.

그래서 아무렇게나 걸쳐 입은 남방셔츠나 후둘후둘한 바지가 썩 잘 어울린다.

하지만 말투나 생긴것 답지 않게 세심하고 깔끔하다.

동물원의 동물들처럼 사랑은 자유롭고 솔직한 감정이라고 믿지만 사실 동물원에 갇혀있는 동물이

어디 제값을 할수나 있는가. 그도 역시 어떤 면에서는 우리에 갇힌 동물처럼 한여자로부터

자유롭게 벗어나지 못하는 남자.

 

<미술관 옆 동물원>이라니.....이 생뚱맞은 제목의 영화는 시종일관 간지럽고 사색적인 대사로

온몸을 파고든다. 별, 달, 해를 논하고 음악과 사랑을 단정짓고, 뒤집고...

하지만 훌쩍 큰 우리 성인들도 오랜동안 잊고 지낸 사랑의 감정에 대해 절묘한 방법으로

돌아보게 하는 영화다. 어리지 않은 여성감독의 섬세한 사랑의 리드에 어김없이 붙잡히고 마는 것.

사랑을 두려워하는 춘희는 막상 너무 가까운 곳에 와있는 사랑에는 이를 박박 간다.

 

선생님을 짝사랑 하듯 근과거에 사랑했던 그대상에 관해 집중탐구를 시도하며,

사랑하려는 자들의 현실을 스케치 하듯, 시를 쓰듯 말해주는 동화같은 일상 이야기다.

 

   

 

그들이 처음 만나 합숙을 하는 사연은 너무나 황당하다 싶을만큼 만화적이다.

그러나 눈 깜짝 할사이 그들의 아웅다웅하는 말다툼에 무릎을 꿇고 만다.

사랑영화를 보면서 이렇게 보이쉬한 여주인공이 매력적으로 느껴진 경우는 드물었다.

언제나 여주인공은 우아했고 남주인공은 잘생겼었고 매너 좋은 남자가 태반이었다.

그러나 철수는 철수처럼 뻔뻔스럽고 봄의 여자, 춘희는 이빨을 안닦고 생수를 병째 먹지만

그 생수만큼이나 맑고 순수하기 이를데 없다.

그런 그들이 둘째, 셋째날을 공유하면서 시작된 시나리오 쓰기는 누가 훔쳐 봐도 괜찮은

일기같고, 내게 이런 사랑이 왔으면 하는 소망이 부른 공동 작업처럼 더없이 다정하다.

 

좁은 공간에서 배개와 침대를 나눠 쓰지만 요상한 분위기는 절대 생기지 않는 남녀가

어떻게 있을 수 있냐고,  그 설득력 없는 공감은 어디에서 오는 거냐고 의심했지만 곧이어 정답을 찾았다.

그들은 각각 동물원과 미술관이라는 공간을 믿고 있고 사자가 미술관을 쳐들어오거나 떨어진 액자의

파편이 동물원 사자의 콧털을 건드리는 일은 결코 없다고 굳게 믿는 고집스런 사람들 이었던 거다.

 

    

 

분명 울고 불고 매달리고 애쓰고 유치하게 굴었었으면서 막상 조금만 그자리를 벗어나면

정신을 발딱 차리고 지나간 사랑은 아니었다고 자신있게 잊어버리는게 사실은 사랑이다.

 

그자리를 다른 사랑으로 메꾸어 버리는게 우주를 움직이는 사랑의 방법이며 그래서 사랑은

똘똘한 사람들을 정말 유치한 바보로 만들어 버리기도 하고,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필요한 의식주의 범주를 훌쩍 뛰어넘는 마법과 같은 힘이기도 한 것이다.

 

다이어트 때문에 밥을 굶기는 어렵지만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랑의 실패 때문에

입맛, 밥맛을 잃고 사랑을 곱씹으며 몇날며칠을 괴로워들 한다.

사랑은 수만가지로 표현 될수있는 신기루 같은 것이기도 하다. 난 이영화가 너무 좋았다.

 

영화<미술관 옆 동물원>은 내가 기억하는 사랑스런 영화중, 으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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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최근 사랑다운 사랑영화에 목말라 있습니다

극으로 치닫는 사랑의 아픔보다는 담백하고 깨끗하고 기분이 좋아지는

영화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이지요... 몇년전 <미술관옆 동물원>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액자영화'라는 독특한 형식의 새로움으로 다가왔습니다

춘희라는 촌스런 이름 마저도 어울리는 심은하가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보여준

영화였기에 더욱더 간절한지도 모릅니다

 

이 영화는 치열하지도 않고 한사람이 병으로 죽거나 배다른 형제, 출생의 비밀,

주인공의 일탈...등등의 자극 없이도 두시간을 즐거움에 미소짓게 했던 영화입니다

저는 가끔 지나간 영화를 돌아보기도 합니다

그것은 오래된 수첩을 펼쳤을 때 만나는 아스라한 기쁨과도 같기 때문입니다

 

저는 오늘, 하루가 그랬습니다

풀릴듯 말듯 힘겹고 아슬아슬하게 진행되는 일들의 결론없음이 답답하여

당시에 제마음을 사로잡았던 <미술관옆 동물원>을 떠올려봅니다

 

심은하 같은 여배우가 하나만 더 있었더라면,

심은하가 지금이라도 돌아온다면

한국영화는 분명하게 달라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서..... 

 

출처: 정승혜의 사자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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