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 시집 - 오감도와 날개 그리고 권태 윤동주가 사랑한 시인
이상 지음 / 스타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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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부터였을까? 시를 잊고 살았다. 꽤 오래된 것 같다.

앞으로도 시를 잊지 않고 살겠다고 그 누구한테도 심지어 나 자신에게도 약속할 수가 없다. 나란 인간은 원래 그렇게 생겨 먹은 인간이니까.

 

그래도 잊을 수 없는 세 시인이 있다. 백석과 이상과 윤동주.

왜 그들을 가슴속에서 잊지 못해하는 것일까? 그들 이전에도 시인은 있었을 것이다. 그들 이후에도 시인은 있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들 세 명의 트로이카를 잊지 못하고 머리를 조아리길 주저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들이 단명했다는 것과 고독을 숙명처럼 안고 그것을 노래했기 때문은 아닐까? 백석은 몰라도 이상과 윤동주는 그랬다.

 

이상의 시를 언제 한 번 읽었던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것을 기억한들 뭣하겠는가? 너무 난해해 단 한 줄도 기억하지도 못하는 것을.

 

하긴 남의 시를 이해하려 한다는 건 기실 언어도단인지도 모른다. 이상의 시들은 여간해서 곁을 내어주지 않는다. 예전 같으면 나도 그런 작가의 글은 독자로서 읽어줄 수 없노라고 작파했을 것이다. 지금도 누구라도 겉멋 든 작가가 있으면 누구기에 독자에게 수작질이냐? 독자를 무엇으로 보느냐? 결국 독자로서 할 수 있는 복수라는 건 그 작가의 작품을 읽어주지 않는 것이 고작이다. 이상의 시절에도 그랬을까?

 

지금이야 칭송을 받지만 한 자도 읽을 수 없고, 이해할 수 없는 글에 초야에 묻힌 독자는 침을 뱉었을지 모를 일이다. 더구나 그 시대의 문맹률을 생각한다면 이상은 더 고독했을지도 모른다. 누구 하나 공감 해줄 사람 없이 아픈 폐를 부여잡고 그냥 자기 멋대로 글을 쓰지 않았을까?

 

또 모를 일이다. 문맹률이 낮았으니 진짜 시를 읽을 줄 아는 사람만이 이상을 읽었을지도 모른다. 그럴 가능성은 충분하다. 그가 글을 쓰면 당대의 문단과 문학잡지가 들썩했다. 독자는 그런 존재인지도 모른다. 앞에서는 욕을 할지 몰라도 결국 작가에게 무릎 꿇고 마는 존재. 다는 아닐지언정 누군가는 그 앞에 무릎 꿇기를 마다하지 않는다.

 

나 역시 이상에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말았다. 특히 그의 소설 <날개>. 시는 너무 어려웠지만 이 교묘한 소설은 그렇지가 않았다.

 

이 소설을 다시 읽다니! 처음 읽었을 때는 20대 중반 무렵이었던 것 같다. 도무지 뭐라 표현할 수가 없다. 마치 뽕이라도 한 대 맞고 쓴 소설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지 않고 서야 어떻게 현실에 발을 내리길 한사코 거부하고 처음부터 끝까지 쓸 수 있단 말인가. 다시 읽은 지금 그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는 왜 아내를 전혀 의심하지 않는가? 왜 저항하지 않고, 화 내지 않으며,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지 않는가? 그래서 주인공이고, 이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무 평범해지는 것 아닌가? 필시 이 작품의 작중화자 는 이상 자신이었을 것 같다. 그가 한때 기생과 동거를 했다지 않은가? 그때를 회상하며 에피소드를 만들어 쓰지 않았을까? 그러리만큼 문체와 묘사의 생경함과 생생함이란...

 

지금도 의문인건, 그리도 똑똑했던 그가 왜 한낱 기생과 동거를 했느냐는 거다. 그리도 나긋나긋했을 금홍이 좋았더란 말인가? 아니면 자신이 얼마 못 살 거라는 걸 알고 누구한테라도 자신을 던져버릴 생각을 했을까? 아니면 예술가의 치기 같은 거였을까? 금홍은 어떤 여자였을까? 비록 몸은 팔아도 그 누구에게도 마음 주지 않는 콧대 높은 기생이었을까? 그랬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다 이상을 만나고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건 너무 뻔한 스토리 아닌가? 그런데 이 소설을 보면 왠지 금홍은 흔하디흔한 작부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 그녀가 폐병쟁이 이상을 만난 건 행운인 동시에 불행이었을 것이다. 이상은 건강했다면 금홍을 사랑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그녀는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래도 당대 최고의 시인과 살았다면 훗날 뭐 하나라도 남지 않을까?

 

이 작품에서 내가 인상적으로 기억하는 건 아내를 연구했다는 것과 종잇장만 하게 그의 방에 들어선 햇빛이다. 왜 아내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고 하지 않고 연구했다고 했을까? 종잇장만 하게 자신의 방을 비춘 햇빛은 아픈 에게 희망 보다는 가망 없는 현실을 대변하는 것 같아 쓸쓸하다. 차라리 아픈 사람에게 외로움이나 불안 같은 건 느끼지 않았으면 하는 감정인지도 모른다. 그렇게 뭔지도 모르는 삶을 하릴없는 연구나 하며, 남들은 뻔히 아는 것을 자신은 모르며 삶을 추적하다 어느 날 날개가 돋아나 이 세상에서 날아가 버리면 그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어쩌면 이상은 다음 생에선 새가 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나는 그렇다. 다음 생이 있다면 난 절대로 사람으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새로 태어나면 좋겠다고 몇 번을 생각했다. 마음만 먹으면 어디든지 날아갈 수 있는. 죽을 때가되면 스스로 행방불명이 돼서 자기만 아는 곳에서 생을 마치는. 그러기 위해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보자꾸나.

 

문체 자체로만은 얼마나 좋은가. 얼마나 희망적인가.

현실은 언제나 작품속의 처럼 모호하고, 모든 것이 혼재되어 있다. 그런 세상을 날아가 보는 것. 누구나 한 번쯤 꿈꿔 보지 않았을까?

 

어찌 보면 문학은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 수학이나 화학처럼 뭐하나 딱 떨어지는 것이 없으며, 이것 같으면 저것 같고 저것 같으면 이것인 것 같은 그 모호함. 알 수 없음. 그 알 수 없음의 자유를 유영하는 뭐 그런 어떤 것.

 

문학이 희망을 말한다는 건 거짓인지도 모른다. 문학은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어쨌든 살라고, 살아 보라고 말하는 뭔가의 알 수 없는 코드로 된 텍스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생겨 먹은 문학을 사랑하고, 그렇게 생겨 먹은 작가를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고독한 이상을 사랑하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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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7-12-14 18: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감도, 날개, 권태. 다 한 번은 읽었을 것들이네요. 이 밖에도 많이 실렸겠지요.
권태를 읽으며 신선하게 느꼈던 게 생각나네요.

새로 태어나고 싶다니요. 저는 사람으로 그것도 여자로 태어나고 싶은데... ㅋ

stella.K 2017-12-14 18:54   좋아요 0 | URL
ㅎㅎ또 여자로요?
언니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저도 언니를 형이라고 부를 수 있게 해 주세요. 네?ㅋㅋㅋㅋㅋㅋㅋ

hnine 2017-12-14 19:1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윤동주는 예전부터 좋아하던 시인이었지만 이상과 백석은 최근 들어 좋아하게 된 두 사람이랍니다. 이상의 날개를 다시 읽고 왜 그를 천재라고 하는지 이제서야 와닿게 되었어요. 백석의 시집은 최근에 구입해서 읽어보고 있는데 심지어 혼자 소리내어 낭독하여 스마트폰에 녹음까지 해보는, 안하던 짓까지 하게 만든 시인이지요 ^^
문학이 희망을 말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도 회의적이어요. 수학이나 화학처럼 딱떨어지지 않기 때문에 자유로운 유영을 가능케 한다는 (이 말씀 멋있습니다!) 말씀엔 공감!

stella.K 2017-12-14 19:22   좋아요 0 | URL
와, 백석에 푹 빠지셨군요.
그리도 좋으셨습니까? 저도 얼른 읽어야겠는데요.ㅋㅋ

고맙습니다. 공감해주셔서!^^

승주나무 2017-12-15 06: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 보니 유정 생각이 나네요. 유정과 이상이 절친이었다고 하는데, 하루는 유정이 너무 힘들어서 이상한테 같이 죽자고 했다고 하네요. 그날 서로 끌어안고 서러움에 펑펑 울었다는 일화가. 시는 백석, 소설은 김유정인데 이상은 둘 사이를 가른 것 같아요~

stella.K 2017-12-15 14:12   좋아요 0 | URL
오, 그런 일화가 있었구나.
알려줘서 고맙다.

근데 드디어 따끈따끈한 너의 책이 나왔나 봐.
대문 사진 너 옆에 계신 분 어머니 맞지?
암튼 수고했고 대박나라! 홧팅!!^^

cyrus 2017-12-15 22:5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제 알라딘 중고서점에 가서 김윤식 교수의 《이상 연구》를 샀어요. 워낙 귀한 절판본인데다가 중고서점에 좀처럼 보기 어려운 이상 연구서라 안 살 수가 없어요. 그래서 오랜만에 이상 전집을 읽어보려고 해요. ^^

stella.K 2017-12-16 17:59   좋아요 0 | URL
와우, 대박! 그런 책이 있었구나.
나도 어제 중고샵에 갔었는데. 그런 건 안 보이더군.
감기만 살짝 들려서 왔어.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