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미있게 산다는 것
알렉스 파타코스 지음, 노혜숙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05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어렸을 때 나는 회의주의자(?)였다. 내 친구들은 주어진 환경에서 열심히 공부하느라 여념이 없었는데 난 도무지 열심히 공부할 마음도 없었고 그 어떤 것에도 뚜렷하게 흥미를 보이지 않았다. 늘 이것을 하면 뭐하는데? 그것의 의미는 뭐지? 하며 살았던 것. 커서는 그래도 조금은 내멋에 취해서 살기도 했으니 어렸을 때보다 조금은 나은 것 같지만 그래도 그런 회의적 사고방식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내멋에 취해서 사는 것이 취하지 않고 사는 것 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무엇이든 간에 말이다. 이 사회가 허락한 범위 안에서는. 

대학시절부터 전공은 뒤로 하고 심리학에 심취해 틈나는 대로 책을 읽고 있었는데, 우연한 기회에 접하게 된게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였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이 책은, 인간은 어떠한 극한 상황에서도 자신의 태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이 주요 골자이다.

프랭클은 정신과 의사였고 유대인으로서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 갔었고, 거기서 여러 많은 인간군상을 보았고 본인 스스로도 체험했던 것을 토대로  후에 '의미에의 의지' 즉 '로고 데라피'라는 새로운 상담기법을  완성한다. 그때 내가 그의 이론에 매료되 공공연히 나는 실존주의자라고 떠들고 다니기도 했다.

하지만 그때로부터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나 자신의 선택을 믿으며 자유를 구가하며 살아왔을까? 얼마전 나름대로 그럭저럭 잘 굴러가 주리라 믿었던 나의 일들이 뜻대로 되지 않아 답보상태에 있다. 아마도 조만간 내 나름의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 같은데 결정을 내리려 하다보니 지금까지 내가 어떤 일이나 문제를 대하는 태도가 어땠는가를 알아 보기위해 이 책을 붙들었다.

이 책을 붙들었을 때 나는 그동안 잊고 있었던 빅터 프랭클의 저 유명한 '의미에의 의지'를 다시 접할 수 있었고, 저자가 빅터 프랭클의 이론을 참 잘 계승하였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저자는 빅터 프랭클의 신봉자로서 그가 써놓은 말들은 단순히 자기계발을 어떻게 하라는 단순한 방법을 제시보단 아폴리즘에 가까운 구절들이 많이 나온다.

사실 우리나라와 같이 고용이 불안정하고 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이때에 어떻게 하면 안정되게 잘 살 수 있을 것이냐에 온통 촛점이 맞추어지고 있다. 그래서 재테크에 그토록 열을 올리고 어떻게 하면 편안한 노후를 맞이할 것이냐에만 관심이 집중되고 있는데 이것은 인간에겐 안전에 대한 욕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안전의 욕구가 채워졌다고 해서 생을 만족되게 사는 것은 아닌 것 같다. 그 다음 뭔가의 욕구가 채워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우울해 하거나 좌절을 느끼게 된다. 이처럼 사람은 자꾸만 의미를 찾게되어있는 존재임에 틀림없는 것 같다.

가끔 주위에서도 보면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만족을 못하거나 자신을 뛰어넘지 못해 좌절하는 사람을 많이 본다. 그리고 이것은 어려우니 차선을 최선에 놓는 사람도 보는데 그러고도 만족한 삶을 누리며 살지 의문이다.

 이미 아는 사실이지만 고도화된 사회일수록 자살, 우울증과 같은 정신병, 충동적인 범죄로는 사회문제로 대두된지 오래고 그 문제는 아직도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것을 상담학자나 정신병리학자들은 삶의 의미를 찾지 못해 생기는 병이라고 진단하기도 한다. 어떻게 하면 의미를 찾을 수 있을까?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내내 영화<타이타닉>을 생각했다. 거기서 보면 배가 침몰직전 보여주는 인간군상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어떤 사람은 구명보트에 자기 한몸 더 실어보겠다고 안간힘을 쓰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자신은 죽어도 좋으니 그것을 도와주는 사람이 있었고, 어떤 사람은 어차피 죽는 것 고상하게 죽고 싶다하여 이층 침대에서 조용히 잠을 청하는가 하면, 실내악단 연주가들은 잔잔한 음악을 연주해 줌으로 자신의 임무를 죽는 순간까지 다하려 하는 사람도 있었다. 이렇게 죽음을 맞이하는 순간이 사람마다 다른 것은 무엇 때문일까? 삶의 의미와 가치가 사람 저마다 다르기 때문은 아니었을까?

대다수의 많은 사람들이 안전에의 욕구를 들어 돈을 모으려고 한다. 돈을 모으면 그 다음엔 무엇을 할 것인가? 여행하며 살고 싶다고 한다. 여행을 하고 살면 어떻게 살건데 하고 물으면, 편안한 노후를 위해 살지. 편안한 노후를 위해 살면 어떻게 살건데...? 이렇게 질문에 꼬리에 꼬리를 달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 건지에 대한 답이 그리 만족하지마는 않는 것 같다. 그냥 웬만치 좋은 직장에, 괜찮은 배우자와 결혼하고, 토끼 같은 자녀 낳고 한 세상 사는 것도 나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이 책 129p를 보면 추도사란이 나온다.

우리는 오늘 ________에게 작별을 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세상은 ______과 같은 사람을 절실히 필요로 했고 ________은 바로 그 자리를 채워주었습니다. ... ...

로 시작도는 추도사다. 저기 빈칸에 자신의 이름을 채워넣어 보라. 조금은 나의 삶을 되돌아 보게 되고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통계에 의하면 아기를 양육하고 산 사람이 그렇지 않고 독신으로 사는 사람 보다 정신병에 걸리지 않을 확률이 더 높다고 한다. 그것은 주는 삶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독신으로 사는 사람들은 오직 나에게만 모든 촛점을 맞쳐있기 때문에 우울증이나 편집증에 걸릴 확률이 높다고 한다.

결국 이것이 말하는 것은 독신과 기혼을 가르려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주는 삶이 그렇지 않는 삶 보다 복되고 만족스러우냐를 얘기하려는 것일 것이다. 독신이라고 해서 반드시 나에게만 관심이 쏠려있는 것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오히려 기혼의 삶이 주는 삶을 방해 한다고 하여서 일부러 독신을 선택하는 경우도 있으니까. 이를테면 카톨릭 신부가 그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이 책에 의하면 빅터 프랭클은 97세의 일기로 타계했다고 한다. 그 수 많은 고난을 이기고 '로고 테라피'를 창안하여 많은 사람들의 삶을 치료하는데 그의 남은 생애가 씌여졌을 거라고 볼 때 그의 삶은 얼마나 보람되었을까? 결국 그의 장수의 비결도 그것 때문은 아니었을까?

이 책은 자기계발을 목적으로 해서 쓰여지긴 했지만 이해 하는데 그리 쉽지 많은 않아 보인다. 그것은 이 책이 어려워서가 아니라 그만큼 삶의 의미를 탐구 한다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도 의미있는 일이기에 그 의미를 찾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빅터 프랭클은 말한다.

성공을 목표로 하지 마라 성공을 목표로 겨냥할수록 빗나갈 가능성이 커진다.

성공은 행복과 마찬가지로 억지로 되는 일이 아니다.

행복은 우리 자신보다 더 큰 대의에 헌신할 때나 우리 자신이 아닌 다른 사람을 위해 희생할 때 뜻밖의 부산물로 따라오는 것이다.

행복은 저절로 오고 성공도 마찬가지다. 성공에 매달리지 말고 저절로 따라오게 해야한다.

그렇다면 나의 답보상태에 있다는 문제도 어느만치는 해답을 얻은 것 같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마늘빵 2006-05-15 12: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추천 한방 누르고 갑니다.

stella.K 2006-05-15 12: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ㅋㅋ.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