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기자 아손, 100년전 한국을 걷다 - 을사조약 전야 대한제국 여행기
아손 그렙스트 지음, 김상열 옮김 / 책과함께 / 2005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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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드라마의 영향 때문일까? 드라마를 그닥 즐겨보는 편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주말이면 '서울1945'란 드라마 만큼은 챙겨보고 있다. 그 드라마를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해방 전후를 배경으로 당시 걸출한 독립운동가들의 이름이 자주 거론되고 있는 이른바 팩션 드라마다.   

사실 그 드라마를 보고 있노라면 이 이이야기가 얼마나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는가 궁금해지기도 하는데, 특별히 그 시대 건축이나 사람들의 의상. 또는 물건 하나 하나가 그 시대와 얼마나 부합되게 그렸을까가 나에겐 스토리만큼이나 궁금증을 자아낸다. 그래도 드라마니 철저한 고증 보다는 디자인에도 신경을 썼을 것이다. 이를테면 세트를 그 시대의 것을 고증하되 보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촌티나지 않게 하려는 의도가 다분히 숨어있겠지 싶다. 그러니 세트는 퓨전이라고 해야하지 않을까?

내가 왜 이 책에 대한 리뷰를 바로 쓰지 않고 저런 허접한 말을 구구하게 늘어놓느냐면, 결국 나는 그런 것에 관심을 두다보니 그 시대의 문화가 궁금해졌다란 말을 하고 싶어서이기도 하고,  그런 관심이 없었더라면 오래전에 이 책을 받아 놓고도 언제 완독을 하게될럴지 모르는 일이 앞당겨졌더란 말을 하기 위함이다. 그러고 보면 TV의 위력은 대단다. 

아, 그렇다고 이 책의 배경이 앞서말한 해방전후의 문화사를 다룬 것은 아니다. 오히려 구한말, 그것도 을사조약 즈음을 다루고 있고 그 시대의 사람들, 풍속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이제 막 (어느 시대를 막론하고)문화사쪽에 관심을 폴폴 피우기 시작한 나의 관심을 충족시키기에 충분했다.

막상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솔직히 좀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좀 더 일찍 읽어주지 못한 것에 대한 미안한 마음이다. 책을 많이 읽으면 일단 무지을 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상대적으로 내가 모르는 분야엔 좀체로 관심을 갖지 못하니 역시 무지을 피할 길이 없다.

사실 19세기 말이나 20세기 초의 우리나라를 연구할 때 고증이 필요할텐데 거기에 못지않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사람들은 역시 선교사일 것이다. 파란 눈의 외국인 선교사들 눈에 비쳤을 당시의 한국은 어땠을까? 하지만 혹자는 그들이 보는 우리나라에 대한 인상이 객관적이지마는 않을거라고 비판의 소리를 가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다분히 선교의 관점에서 우리나라를 보고 있기 때문이라고. 그럴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 시대의 선교사들이 객관적인 시야가 결여된 것은 아니리라.

나도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선교사가 썼을 막연한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웬걸, 다시 자세히 보니 '기자'라고 하지 않는가. 기자라고 하면 같은 서양 사람이라고 해도 선교사의 관점 보단 좀 더 객관적이리라. 그렇다면 스웨덴 기자 아손은 누구인가? 1904년 러일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영국인 무역상으로 위장하고 우리나라에 밀입국 했다고 한다. 사실 그는 처음부터 우리나라에 들어 올 생각이 없었나 보다. 그것도 모국의 어느 한 장교의 권유를 받고 이곳에 올 생각을 했다니 말이다.  당연 그 장교의 말은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악취와 페스트가 창궐하고, 미신과 남존여비와 보수적인 미풍양속이 팽만해 있었음에도 그는 통역을 맡은 윤산갈을 앞세워 우리나라 곳곳을 능청스럽게 잘도 헤집고 다녔다. 사실 내가 앞서 말한 기자가 선교사 보다 객관적일 수 있다는 것은 책 어느 곳인가를 펼치면(몇 페이지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우리나라 기생을 취재한 부분이 나온다. 당시 윤산갈이란 영어를 만만하게 잘하는(아손이 윤산갈의 영어실력을 높이 사지는 않았던 것 같다) 통역을 앞세워 기생을 취재하려고 했으나 윤산갈은 기독교인이었으므로 그 보수성 때문에 기생을 취재하지 못할뻔한 사건이 나온다. 만약 아손이 선교사였다면 이 부분은 당연 언급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호기심이 많은 기자다. 통역을 맡은 윤산갈에 의해 기생을 취재하려는 그의 의지는 쉽게 꺽이지 않았다. 그의 취재의 공력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우리가 우리의 역사를 바라 볼 때 자국인이 역사를 평가하는 것도 좋긴 하겠지만 가끔은 제3의 눈이 필요하다. 그것은 자국민이 자국의 역사를 평가할 때 편향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제 3 세계인이 우리나라를 보는 것 역시 다 옳은 것마는 아니다. 그 사람도 그가 의식하든 안하든 자기 나라의 사고 방식과 틀이 있기 때문에 당연 그 잣대로 남의 나라를 판단할 수 밖에 없다.  하물며 이 책은 여행기가 아닌가.  

이를테면 저자는 이 책에서 우리나라의 한의학을 폄훼하는 부분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건 저자가 우리나라의 의약 부분을 몰라서인 것 같다. 그리고 몇몇 아손 기자가 잘못 오인한 부분도 나오는데 그런 부분은 이 책을 옮긴 역자가 꼼꼼하게 주석을 달아 놓았으니 읽는데 특별히 문제될 것은 없다.

옮긴이는 아손이 곤경에 처할 때마다 아주 능청스럽고 임시변통에 능하며 체험욕이 강하다고 했다. 그래서 일까? 책은 참 흥미롭게 잘 썼다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사람에게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이 사람이 아니었으면 100년 후 역사에 문외한인 내가 이만큼 흥미롭게 읽어냈을까? 냄새나고 질퍽거렸을 100년 전 이 나라에 흥미와 애정을 갖기란 쉽지 않았을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꼼꼼히 써 주니 어찌 감사하지 않을 수 있으랴. 

책 중간중간에 저자가 한컷 한컷 귀하게 찍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이 책은 참 소장가치가 충분하다는 생각을 해 본다.  그의 원고를 읽고 당장 번역에 착수했다던 번역자에게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  

이 책을 덮는 순간 역사를 알고 싶다는 생각이 더 강하게 든다. 나도 나이를 먹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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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6-04-26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웨덴이 러시아와 영토싸움을 했으니 스웨덴으로서는 중요한 전쟁이었을 겁니다. 이 책은 안읽었지만 다른 책에서 이 사람의 쓴걸 언급한걸 봤지요..저도 요즘 근대관련책들 열심히 읽고 있어요.

stella.K 2006-04-26 10: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그래요. 기회되면 한번 꼭 읽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