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테레사
존 차 지음, 문형렬 옮김 / 문학세계사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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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느끼는 거지만, 사람이 태어나기도 잘 태어나야겠지만 죽기도 참 잘 죽어야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아무리 의학의 발달로 백세시대를 얘기하지만 누구나 자신의 연수를 다 채우고 사는 것은 아니다. 그 살아가는 동안 무슨 일로 어떻게 죽을지 알 수 없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얼핏 강간 살해 피해자의 가족과 피의자간의 법정 싸움을 그린 작품처럼도 보인다. 물론 그렇기도 하지만 더 깊이 들어가 보면, 피해자의 유가족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 책이 나올 즈음 다 아는 일이지만, 강남역에서 20대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무참히 살해당했다. 그에 꼬리의 꼬리를 물고 터져 나왔던 일련의 사건들은 차마 입에 떠올리기도 싫다. 물론 일어나지 말아야할 사건이 일어나 공분을 샀지만,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그들의 살아남은 가족은 어떤 심정일까, 어떤 고통을 당하고 있을까를 생각해 볼 필요도 있다고 생각한다.

 

법 없이도 살 사람들은 선량해서만도 아니다. 누구든 나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다면 내가 당한만큼 복수하며 살고 싶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이기도 한 것이다. 법이 없다면 말이다. 그러나 문명국 특히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나라일수록 예외 없이 법치국가이기도 하니 총이나 칼이 있기 전에 먼저 법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그러니 피해자의 가족들은 어찌 보면 고통을 가중하는 일이 될지도 모른다. 다행히도 재판에서 만족한 결과가 나온다면 그나마 법의 위로를 받는 것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때 당하는 정신적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도 최근 배심원 제도라는 게 있긴 하지만, 미국은 그 보다 훨씬 앞서 이 제도를 시행해 오고 있는 줄 알고 있다. 어쩌다 미국의 법정 드라마를 보면 배심원이 근엄하게 그려지곤 하는데 책을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아 보인다. 더구나 그 배심원 제도라는 게 다수결의 원칙 같은 것이 아니라 평결의 원칙 그러니까 만장일치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한 사람이라도 다른 의견이 있다면 상대가 유리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가족들은 만장일치의 평결을 얻어 피의자인 산자를 구형 받도록 하는데 승리하지만 나중에 항소해 다시 법정에 서는 이중의 고통을 당하기도 한다. 물론 그 재판에서도 승소해 결국 산자를 최소 25년에서 무기징역을 받을 수 있고 아마도 살아선 교도소 밖을 나오는 일이 없게 만들었다. 불행 중 다행이다.

 

이 책을 읽고 있으려니 우리나라 법은 과연 어떨까 싶기도 하다. 대체로 우리나라 법은 무르다는 평을 받고 있다. 연이은 여성 대상 범죄에 우리나라 법정은 어떤 형을 내릴지 모르겠다.

 

얼마 전, 혼자 사는 중년의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남성에게 이유 없는 괴롭힘을 당하자 경찰에 신고를 했더니 증거불충분으로 보호해 줄 수 없다고 했단다.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단 말인가? 법은 어떤 경우에도 약자를 보호해 줘야하는 것인데 증거불충분이라니. 여성이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는데, 피의자에게 정신병이니 심신미약이니 온갖 이유로 그들을 보호해 주려고 하고 있다.

 

이 책이 범죄에 취약한 여성을 얼마나 대변해 주는 책인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의도로 쓰인 것인지 아니면 미국 내 촉망 받는 우리나라 젊은 예술가의 비참한 죽음을 알리기 위한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나라로선 공교롭게도 시의가 그렇게 맞아 떨어졌다. 그런데 제발 부탁이다. 이런 작품을 통해서라도 우리나라에 여성을 상대로 한 범죄가 줄어들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을 생각해서라도 엄한 법의 구형을 적용해 이런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물론 피의자의 가족도 못지않은 고통을 당한다는 건 알지만 그래서도 엄한 법적용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저자가 우리나라엔 잘 안 알려져서 그렇지 실력 있는 소설가다. 그러니만큼 문체가 유려하기도 하다. 하나의 문학작품으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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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yrus 2016-06-18 17:5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여성이 폭행이나 성범죄를 당하면 누군가 나서서 도와줘야 하는데, 도와준 사람이 가해자가 되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어요. 그래서 보고도 그냥 지나가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일단 나부터 살자는 마음인거죠.

stella.K 2016-06-19 14:01   좋아요 0 | URL
그런데 웃긴건, 또 다른 여자도 그 비슷한 일을 당했는데
얼마만에 한번씩 그집 아들이 왔다 가는 것을 알고 그 다음부턴
그런 일이 없어졌다는 거야.
여자는 남자에 의해 공격을 당하고 남자에 의해 보호도 받고,
그런 걸 보면 아무래도 여자는 유도라도 배워둬야 하려나 봐.
남자들 그러다 나중에 죄 받지.
선량하게 사는 남자들 조차 어떤 피해가 갈지 몰라.ㅠ

페크pek0501 2016-06-18 23: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누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하면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이 그의 가족은 앞으로 어떻게 사나, 하는 것이에요. 피해자도 그렇지만 가족의 고통을 생각할 때 남의 일 같지 않아요.

stella.K 2016-06-19 14:03   좋아요 0 | URL
그러게 말이요.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죽은 거야 아쉽긴 하지만
고통은 온전히 살아 있는 가족의 몫이잖아요.
그런 일이 나한테도 일어나지 말라는 보장도 없고.
두루 세상 살기가 무섭네요.ㅠ

낭만인생 2016-06-22 02: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피해자의 유가족 즉 살아남은 자의 슬픔을 절절히 토로하고 있는 작품`에 눈이 가네요. 글을 참 잘 쓰십니다. 좋은 책 꼭 읽고 싶네요.

stella.K 2016-06-22 14:01   좋아요 0 | URL
저는글 잘 쓰려면 아직도 멀었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그저 감사할다름입니다.
이 책 좋더군요. 시간 나시면 읽어보시라고 감히 추천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