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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잃어버린 것 - 창작집단 독 희곡집 ㅣ 제철소 옆 문학관 1
유희경 외 지음, 창작집단 독 엮음 / 제철소 / 2015년 11월
평점 :
배우 조재현은 배우나 관객이 아닌 순수한 독자로서 희곡을 읽은 게 얼마만인가라며 이 책의 추천사에서 자신의 소회를 밝혔다. 배우 조재현이 이렇게 밝힐 정도라면 벽안의 독자인 나는 어떻겠는가?
잘 쓰지는 못했지만 한때 나도 연극 대본을 썼더랬다. 하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독자로서 희곡을 선뜻 뽑아 읽기에는 주저되는 게 많았다. 다른 읽어야할 책도 수두록 빽빽한데 희곡집은 워낙에 알려진 게 없으니 어떤 걸 읽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는 것이다. 우리나라가 세계 10위 안에 드는 출판대국이라고 하지만 아직도 출판의 편중화는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당장 책을 고르라고 하면 소설이나 에세이, 인문 관련 책들이 선택된다. 리뷰를 읽어 봐도 이 범주의 리뷰들이 워낙 많으니 아무래도 따라서 읽어줘야만 할 것 같지 희곡을 읽는다는 건 감히 상상할 수 없고 생뚱맞기까지 하다. 그도 그럴 것이, 연극을 보지 왜 읽는단 말인가? 그러려면 공연장까지 가야한다는 번거로움이 있기는 하지만 연극은 종합예술인만큼 모든 그것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는 걸 선택하는 건 당연해 보인다. 더구나 나는 예전 같은 시력이 아니다 보니 이제 눈으로 읽는 독서 행위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어 보인다. 그러니 희곡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왜 이렇게 희곡이 푸대접을 받아야 하는 건지 모르겠다. 모르긴 해도 희곡은 시와 함께 가장 오래된 문학 형태였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 희곡의 권위를 인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왜 이렇게 되어버린 것일까? 정말 스스로 나에게 묻고 싶다. 희곡도 소설이나 에세이 아니면 다른 인문 도서처럼 조명을 받게 된다면 그래도 안 읽을 거냐고. 그건 명백히 아닐 것이다. 희곡도 마케팅이든, 입소문이든 나 좀 봐달라고 난리굿을 한다면 나는 못해도 일년에 한 두 권을 읽을 것 같다.
그렇다면 감히 말하고 싶다. 독자로서 희곡을 읽지 않는 것이 독자 자신의 문젠가 아니면 그렇게 난리굿 한 번이라도 제대로 할 생각을 못하는 출판 관계자 및 각 언론사 출판 담당 기자의 책임인가? 왜 희곡은 소설이나 에세이 읽는 것만큼이나 독자들이 친근하게 읽지 않으면 안 되는 걸까? 언제 한 번 희곡이 자기 경쟁력을 가졌던 때가 있었나?
연극 작품을 활자로만 읽으면 그건 다 본 것이 아니다. 3분의 1정도까지만 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희곡도 문학의 한 장르인만큼 읽는 행위 하나로만 볼 때 소설이나 에세이 보다 더 간결하고 더 의미 깊게 읽을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 이런 인식의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이 책은 바로 이것을 선언하고 나온 것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이 책을 읽으니 우리가 연극 보는 또는 책을 읽는 인식이 달라져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솔직히 연극이 우리나라에서 공연되는 것은 극히 제한적이다. 일년에 몇 백 편의 희곡이 쏟아져 나오겠지만 그것이 실제로 공연되는 것은 몇 십편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나마 그것도 관객의 눈에 띄고 실적을 낼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더구나 우리나라 공연계는 웬만한 큰 기획사에서 이름있는 배우들을 내세워 주관하는 뮤지컬이 독식을 하다시피 한다. 그러니 쏟아지는 희곡을 공연이 소화하기란 애초에 불가능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극작가들의 숨통을 조인다는 게 말이나 되겠는가?
모르긴 해도 그들도 푸른 꿈이 있었을 것이다. 또 때로는 소설의 유혹도 있었을 것이다. 극작가로서 자신의 입지를 다져나가며 밥 먹고 살 수 있을까? 거의 불가능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소설을 쓰는 웬만한 전업작가도 글만 써서 벌어먹고 살기가 힘들다는데 하물며 극작가가 그럴 수 있을 거라곤 감히 상상이 가질 않는다.
나야말로 얼마만에 희곡을 읽어 본 것일까? 지면상 26편의 단편 희곡을 일일이 다 평할 수는 없지만 정말 어떤 작품은 번뜩이는 재기가 느껴지는 작품들이 꽤 있었다. 물론 또 개중엔 단편이라 그 어떤 것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고 마무리된 작품도 있다.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은 9명의 작가들은 정말 열심히 치열하게 썼겠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희곡이 시나 소설을 읽는 것만큼이나 독자에게 읽히려면 몇 가지 선결되어야 할 과제가 있어 보인다. 우선 작가 스스로가 더 재밌고, 즐겁고, 의미 있는 작품을 기죽지 말고 써야 한다. 이땅엔 만화나 그래픽노블 매니아가 있는 것처럼 희곡 매니아도 분명 어디엔가 존재할 것이다. 요즘엔 장르와 장르 간의 교류가 워낙에 빈번해, 소설이 영화화 되고. 만화가 드라마 되기도 하고, 드라마가 뮤지컬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희곡도 그러지 말라는 법이 어디있겠는가? 희곡은 꼭 연극으로만 만들어질 수 있다고 누가 그러던가?
또한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책이 좀 멋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물론 뚝빼기 보다 장맛이라고는 하지만 책표지가 마음에 안 들면 독자는 다른 샤방한 책에 눈이 간다. 그런 점에서 이책은 표지가 그다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니었다. 솔직히 난 그런 취지와 여기 실린 작가와 작품을 응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가급적 책으로 나온 희곡은 공연으로도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내용을 보니 제작비를 최소화하며 꼭 공연장이 아니어도 어디에서든 공연이 가능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마도 이런 작품들이 앞으로도 많이 나오지 않을까? 북콘서트 개념으로도 얼마든지 할용 가능할 수도 있겠다 싶다. 지금까지는 일정 정도 공연으로 성공해야 출판을 생각했을 것이다. 그런데 독자가 먼저 희곡을 접하고 공연으로 볼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러려면 희곡을 먼저 띄우는 적극적인 마케팅이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야 작가들도 글 쓸 의욕이 생길 것이다. 그런 취지에서도 이 책이 나왔을 것이고.
나는 최근 시나리오를 써야할 사람들이 소설을 쓰겠다고 했다가 이도저도 아닌 경우를 종종 본다. 시나리오로 밥 벌어 먹기가 어려우니까 소설을 써 보겠다고 하다 그런 것 같은데 그도 이해 못하는 건 아니지만 민폐 아닌가? 소설도 시나리오 쓰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건데 만만이 보는 저자세가 있는 것 같아 독자로서 좀 씁쓸했다. 무엇보다 그 작가가 자기 전공의 글을 잘 쓸 수 있도록 지원책을 마련하는 것이 좋겠는데 과연 기대해도 좋을지 모르겠다. 그래야 독자의 혼란도 줄어들고. 선택의 폭도 넓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이런 프로젝트가 계속 나올 모양인데 일단은 환영하고 기대를 해 본다. 잘 됐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