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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풍의 언덕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86
에밀리 브론테 지음, 김정아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2월
평점 :
이렇게도 낮설면서도 익숙한 이야기가 또 있을 수 있을까?
어렸을 때 이 책을 어린이 문고본으로 읽은 것 같기도 하다. 워낙 오래된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아마도 그때 이 책을 완독하지 못했었나 보다. 이렇게 낮선 걸 보면 말이다. 단지 기억나는 건, 히스클리프가 입양되어 와서 머리 빗는 걸 가지고 밀고 당기고를 했던 것 하나가 생각이 난다. 난 왜 이것을 잊지 않고 있었던 걸까? 그리고 나름 캐서린과 히스클리프가 꽤 다정한 사이였던 것으로 아는데 다시 읽어보니 참 낮선 방법으로 사랑했던 것은 아닌가 한다. 어쩌면 그리도 미워하면서 사랑을 할 수 있었던 걸까?
보통 사랑을 한다면 따뜻하고 밝은 느낌 또는 불 같은 사랑의 이미지를 생각하지만, 미움에서 사랑을 발견하고 확인할 수 있다는 게 참 흔치 않는 이야기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사랑과 미움을 교차하며 발전시켜 나가는 작가의 상상력은 가히 천재적이란 느낌이 든다. 또한 영국 특유의 안개에 쌓인듯 암울하고 스산한 사실적 묘사가 운치를 더한다.
이야기의 시작이요 얼개는 사실 간단한지도 모르겠다. 어느 날 아버지가 여행에서 돌아오면서 한 남자 아이를 데려와 양아들로 삼는다. 아버지는 양아들을 편애해 아들의 미움을 사고, 여동생은 그를 사랑한다. 하지만 캐서린은 히스클리프를 사랑하지만 다른 사람과 결혼한다. 뭐 대충 이런 얼개는 그동안 드라마나 여타의 애증을 소재로한 영화나 소설에서 보암직한 내용들이다. 하지만 이 작품을 보면서 또 그런 얘기네 하면 그건 실상 잘못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은 이 작품에서부터 그런 이야기가 파생됐을지 모르겠다. 중요한 건 작가마다 그런 얼개를 어떻게 요리하고 이야기 가능한 이야기로 만들 것이냐는 작가의 역량일지도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작가는 탁월한 이야기 솜씨를 구사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참 사촌끼리도 결혼이 가능한 옛 유럽의 결혼방식이 좀 특이하긴 하다. 어떤이는 바로 이점이 하나의 유럽 공동체를 만든는 원동력이 됐을 거라고 하기도 하는데 읽으면서 정말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 이야기는 2대에 걸친 사랑과 증오의 가족사를 꼼꼼하게 그려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한 세대가 그렇게 삐뚤어진 사랑을 하고 그로인해 불행한 가족사를 그렸다고 한다면, 그 다음 세대는 그것을 어떻게든 바로잡으려고 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이다. 또 그런 것을 반복하며 가족은 대를 이어갈지도 모를 일이다.
특이한 건 이 이야기가 각자 개체의 이야기가 아닌 누가 누구에게 고백하는 고백체에서 이야기로 들어가는 액자 소설격 형식을 띠고 있는데 이런 모든 것들이 아름답고도 스산한 명작을 탄생시켰다는 것이 놀랍다.
하지만 역시 그 어둡고 스산함 때문인지는 몰라도 흡입력이 있다고는 볼 수 없을 것 같고 읽는데 조금은 고전했다. 하긴 고전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고전할 것을 마음 먹는다면 한번쯤 도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