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을 읽고 리뷰 작성 후 본 페이퍼에 먼 댓글을 보내주세요
-
-
미셸 투르니에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시간 -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간절히 필요한 순간, 두뇌에 신선한 자극을 주는 지적 유희
미셸 투르니에 지음, 김정란 옮김 / 예담 / 2011년 11월
평점 :
절판
저자에 대한 명성은 익히 알려진지라 새삼 말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나 같은 경우 오래 전, 우연히 모 문예지를 사 본적이 있었는데 거기에 나온 저자의 단편을 보고 거의 탄성을 지를 뻔했던 적이 있다. 동화적이고, 환상적인 이미지의 그 소설은 정말 좋았다. 말하자면 그건 이책 75p에 나오는 '피에로와 아를르캥'의 소설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소설은 대충, 밤새도록 빵을 굽고 아침에 자는 피에로가 어느 날 콜롱빈을 사랑하게 되었는데, 콜롱빈은 세탁소에서 일하는 여자다. 일의 성격상 그녀는 해가 있을 때 빨래를 널어 살균도 해야하고 바짝 말리기도 해야하기 때문에 당연 그녀는 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 생활을 한다. 그러니 피에로는 늘 그녀를 창문으로만 바라봐야 했고, 그것은 결국 짝사랑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어버렸다. 설상가상으로 이들 사이에 제3의 남자가 끼어들어 콜롱빈을 낚아채가고 피에로의 사랑은 쓸쓸하게 끝이나고 말았다는 내용이다.라고 나는 기억하고 있다(워낙에 오래 전에 읽었던 소설이라 이 기억이 확실한지 나로서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원래 사람이란 기억하고 싶은 것만을 기억하는 오류의 존재가 아닌던가).
원래 그 소설의 제목은 <피에로와 밤의 비밀>이라고 하는데 번역의 과정에서 피에로를 탈락시키고 그냥 '밤의 비밀'이라고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 나는 소설에 감탄한 것도 감탄한 거지만, 밤과 낮의 이 상반된 개념을 이토록이나 아름답고 절묘하게 묘파한 글이 또 있을까 놀라웠다. 바로 이책은 그렇게 서로 다른 개념들에 대해 함께 봄으로해서 좀 더 그것들의 개념을 확장시키는, 말하자면 미셸 투르니에식 분석과 통찰은 아닌가 싶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것들에 대한 개념 정의가 단 한 두 페이지로 간단명료하게 끝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이책은 소설이 아니고 에세이이기 때문에 화려한 수사가 생략된 다소는 건조한 문장으로 이루어져 있긴 하지만, 때로 긴 설명이 필요할지도 모르는 상반된 개념들에 대해 이토록까지 간단명료할 수 있을까? 신기할 정도다. 원래 대가냐 아니냐를 결정하는 기준이 어려운 개념을 얼마나 쉽게 설명하느냐에 있기도 한데 그런 점에서 저자 미셸 투르니에는 이책에서 대가다운 면모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생각의 여지는 엄청 많이 준다. 한마디로, 문장은 짧고 생각은 긴 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또 생각해 본다. 왜 이책이 이 싯점에 필요한 것일까? 내가 세상을 살아보니, 세상은 살면 살수록 복잡하게 얼키고 설킨 것들이 너무 많고 지식 역시 복잡한 게 너무 많다. 이런 세상일수록 정리가 필요하다. 혹자는 저자를 두고 프랑스의 애정남(애매한 것을 정리해 주는 남자)이라고 하던데, 막상 그가 들으면 좋아할지는 모르겠지만 그건 확실히 그에게 어울리는 별명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그렇게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나 역시 어원이나 개념을 정리한 글을 좋아하지만, 읽으면서 무슨 책이 이리 어려운가 한숨을 쉬며 읽기도 했다. 그렇지만 또 어느 부분은 그래 맞아!하며 손바닥을 마주칠만한 대목도 솔찮이 만나기도 했다. 특히 제일 처음에 나오는 '남자와 여자' 부분은 정말 엄지 손가락을 높이 들어줘도 될 만한 글은 아닌가 싶었다.
요는, 과거만 해도 남자가 여자 위에 군림할 수 있었을지 모르지만 앞으로의 세기는 쉽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여자는 남자 없이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는 존재며 앞으로는 모계사회의 도래도 점쳐볼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남자는 쾌락의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으며, 여성이 주도권을 장악하면 여성 스스로가 인간의 개체수를 줄여 나가는 주도권을 갖는 존재가 될 거라는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여자들은 이미 임신중절을 통해 그것을 실천해 나가고 있지 않은가?
이 이야기는 구세대를 살아오신 우리 엄마가 들으면 역정까지는 아니어도 당장 비아냥거릴 말이다. 우리 엄마만 해도 여전히 남자는 여자의 머리라고 보는 경향이 농후하니까. 가끔 TV 같은데서 여자가 남자 보다 우위를 차지하는 걸 보면 좀 못 견뎌하는 쪽이니까. 그러나 그것을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저자의 전망은 틀리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왜 그는 그런 말을 했던 것일까? 그는 그글 끝에 이런 말을 했다. 인간 종의 영속을 보장해주는 것은 남자들이 아니라 여자들이라고. 요는 남자들이 여자들한테 잘하라는 말이겠지. 그런데 요즘엔 한술 더 떠 남자들이 여자를 두려워 하던가 쳐다 보질 않는다. 공존을 해야하는데 여자는 여자대로 저좋은데로 살려고 하고, 남자 역시 그렇다. 과연 앞으로 인간의 영속이 가능한지 모르겠다.
이렇게 그는 서로 상반된 개념을 통해 지난 시기 동안 잘못된 개념들에 대해 중요한 도전을 던지기도 한다. 그리고 또 어찌보면 그렇게 상반된 개념을 같이 바라보는 것을 통해 사실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라 자웅동체 같은 통찰까지도 가능하게 만들어 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책은 좀 어렵다는 인상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나의 상상력의 자극에 이책이 얼마나 도움이 될런지는 조금 더 두고 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