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가수다, 그리고 장혜진
그렇지 않아도 근질근질 거리던 차에 소이진님이 어제 나관수의 관전평을 올렸다. 근데 그게 나랑 너무나 달랐다. 다르니까 또 재밌다. 내친김에 나도 생각나는 대로 관전평을 써 볼까 한다.
1. 어제는 특별히 장혜진의 마지막 무대였다. 아무래도 가장 관심을 모았던 건, 그녀가 탈락 하느냐 명예졸업을 하느냐였는데 아쉽게도 그녀는 명예졸업을 하지 못하고 탈락으로 마무리를 짓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매 라운드마다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면서 여기까지 왔다. 조관우와 함께 나가수에 입성을 해서 조관우 보다 일찍 탈락을 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조관우가 좀 더 일찍 탈락의 고배를 마신 셈이다.
사실 조관우가 탈락의 고배를 마셨던 그 무대는 내가 봐도 조금 불안하긴 했다. 그것은 조관우 본인도 인정했던 바다. 가수가 무대에서 집중하기란 역시 쉽지 않은가 보다. 그것을 방증한 또 하나의 가수가 있었으니, JK김동욱이다. 그는 무대에서 가사를 잊어버려 아예 자진 탈퇴를 해 버렸다. 솔직히 본인의 실수를 인정하고 정중히 사과했어도 적어도 탈퇴할 때까지 버텨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모습일 수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부담도 됐거니와 자신의 실수가 쉽게 용납이 안 되었나 보다.
다시 장혜진으로 돌아가서, 난 솔직히 그녀의 창법이나 음색이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누구는 숨소리조차 음악이었다고 극찬을 했는데, 난 바로 그것이 여간 귀에 거슬렸던 것이 아니다. 저 숨소리만 어떻게 좀 했어도... 내내 그러면서 봤다. 누구는 감정이고 표현력이라고 할지 모르지만, 청승 떠는 것도 좀 그렇고. 그래도 언젠가 그녀가 가장 높은 등위를 차지했던 그 노래(뭔지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와 어제 무대는 본 중 가장 괜찮은 무대였다고 생각했다. 이왕 이렇게 끌고 온 것 나는 별로지만 그래도 기왕이면 다홍치마라고 명예졸업을 빌었다. 이건 YB도 같은 운명이었는데, 그는 자신의 라디오 프로에서 푸념이나 늘어놓을 수 있는 배짱이라도 가졌지. 장혜진은 그럴 줄도 모르지 않는가. 끝까지 우아하기를 포기하지 않으니. 암튼 아쉬웠다.
2. 앞으로 명예졸업이 유력시 될 가수는 김경호와 인순이는 아닐까 한다.
김경호는 매 라운드에서 자기 능력 이상의 것들을 그것도 폭발적으로 쏟아낸다. 이러다 병나는 건 아닐까 싶기도 한데, 그래도 노래할 때 외엔 얌전하고 조신해서 그것은 곧 자기안의 기를 노래 외엔 다른 곳에 허투로 쓰지 않겠다는 것처럼 보여 믿음이 간다. 자기 조절을 가장 잘 해 나가는 가수는 아닐까 싶다. 그는 아직 지치지 않았다. 샤우팅 창법으로 무대에서 그렇게 보여준다는 건 보통 힘든 게 아닐텐데, 그는 노래할 때가 가장 멋있는 것 같다.
사실 이즈음 인순이가 지쳐 보인다는 생각이 들기는 한다.
그래도 연륜이 주는 내공 무시 못하는데, 나이를 타서일까? 앞으로 높은 순위는 못할 것 같지만 중간을 잘 유지해서 명예졸업을 하지 않을까 바래본다.
3. 자우림은 좋아하는 건 사실이지만 이즈음 그들의 행보가 묘하다는 느낌이 든다. 뭔가 새로운 시도를 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게 청중에게 먹힐지 안 먹힐지를 늘 재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다 보니 갈수록 매력이 떨어진다. 마치 청중을 상대로 실험을 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나가수 무대가 출연하는 가수들에겐 여러가지 시사하는 바가 클 텐데 매번 최선을 다하는 무대를 보여줘야지 실험한다는 인상을 줘서 좋을 건 뭐가 있을까? 어제의 무대도 나로선 별로 탐탁치 않는 느낌이었다.
4. 매력적이기는 바비킴이다. 그는 확실히 제 2의 김범수가 될 소지가 많은데 김범수처럼 소신있게 밀고 나가는 힘이 아직은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 약간 우왕좌왕 하는 면이 없지 않다. 난 그를 보면 왠지 즐거운데 그렇게 해서 청중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는 쪽이라면 계속 그쪽으로 밀고 나갔으면 한다. 무대에서 흥을 주는 가수가 되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가.
5. 개인적으로 아직도 가장 마음에 와닿지 않는 가수는 윤민수다. 난 도무지 이 가수가 뭐가 좋은지 모르겠다. 포효하는 듯한 노래를 부르기는 하는데, 임재범은 먹히는데 왜 윤민수는 안 먹히는지 볼 때마다 의아해 하고 있는 중이다. 이번 라운드에서 가장 탈락이 유력시 된 가순데 장혜진 때문에 살았다. 앞으로 그가 얼마를 더 버텨낼지 궁금하긴 하다.
6. 거미란 가수를 잘 모르다 첫회 때 이런 가수도 있었구나 새삼 놀랐다. 잘 부르기는 한데 첫회 때 2등이란 기염은 좀 의외였다. 아무래도 청중이 잘 모르다 보니 그 가능성을 보고 후한 점수를 준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인순이의 노래를 부른다는 건 확실히 그녀로선 모험이었을 것이다. 테크닉은 어느 정도 좋았던 것 같은데 배에 힘이 너무 없다는 생각을 했다. 인순이의 그 노래는 배에 힘을 줘가면서 불렀어야 했는데 달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7. 솔직히 <나가수>는 중독성이 있다. 그것은 마치 고대 로마 시대 때 원형 경기장에서 검투사의 사투를 보고 열광하는 관중들과 똑같은 승자독식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것에 대해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이렇게 뮤즈의 후예들이 보여주는 온갖 현란스런 퍼포먼스에 무장해제 되어 정신을 못차리는 꼴이나 다름없어 보인다. 그 옛날 원형 경기장에 있던 로마의 관중들도 그랬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