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분
필립 로스 지음, 정영목 옮김 / 문학동네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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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읽고나니, 그물망에 갖힌 작은 새 한 마리가 연상이 된다. 그 새는 할 수만 있으면 높이 날아야 했다. 하지만 어떤 운명이 날지 못 하도록 그물망을 덧씌우고, 결국 그 그물에 갇혀 끝내 죽음을 맞이하는 마커스는, 한 마리 새다. 그래서 읽고나면 웬지 우울하다. 

이야기 구도는 의외로 간단하다. 매사에 참견이 심하고, 자신에 대해 지나치게 걱정이 많은 아버지를 떠나 집에서 떨어진 대학 기숙사에 들어가지만, 그곳에서 만난 친구들은 그다지  자신의 마음과 잘 맞지 않으며, 사귀게된 여자친구도 알고 봤더니 정신병력이 있는 불행한 아이다. 공부하는 건 좋지만, 종교적 규율을 거부하며 신앙 좋은 학과장 역시 마커스에겐 그다지 좋은 사람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어머니도 아버지와의 결혼생활이 행복하지 못해 아들을 붙잡고 징징거리기나 한다. 그런 마커스에게도 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우등으로 졸업해 졸업식 때 연단에서 졸업 연사를 읽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모든 상황들은 마커스에게 혼란을 야기할 뿐이고, 결국 원치 않는 한국전쟁 파병 행렬에 동참하게 되고, 부상을 입고 병원으로 이송 중 사망하게 된다는 것이 이야기의 전부다. 

하지만 필립 로스는 확실히 재담꾼이다. 이야기를 직조해내는 능력만큼이 정말 탁월하다. 이를테면 1장에 해당하는 '모르핀을 맞고'는 2장의 '벗어나'에서 마커스가 생명 유지를 위해 모르핀을 맞으며 병원으로 이송되는 과정에서 서술되어지는 마커스 자신의 1인칭 시점이고, 그런 마커스가 2장에서는 3인칭이 되어 전지적 시점에서 그의 생이 마무리 된다. 또한 어찌보면 반복되는 듯한 저 이야기의 구도가 점층적이면서도 유머와 위트를 잃지 않고 있어, 읽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고 오히려 주인공에게 감정이 이입이되며 연민을 갖도록 만든다. 그러면서 읽는 내내 인생에서 한번뿐인, 이 죽일 놈의 '청춘'을 뭐라고 정의했으면 좋을런지 몰라 가슴이 먹먹해지기도 했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인생을 하루 24시간에 비유한다면 20대는 아침 7시대에 해당하는 시간을 사는 것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20대를 살면서  인생이 너무 빨리 간다고 너무 조바심 내지 말라고 타이르는 것이다. 듣고 보니 위로가 될 법도 하다. 하지만 그래서 여유와 관조적 태도로 20대를 살든, 인생에 있어 분산시켜야할 에너지의 총량 중 3분의 1을 20대에 집중시켜 살든, 청춘은 만져지지 않고 음미되지도 않으며 생각보다 빨리 지나간다.    

누구는 청춘은 아름답다고 했는데, 과연 정말로 청춘이 아름다웠을까? 누구는 청춘을 푸르름에 비유하고, 꽃에도 비유하고, 달콤 쌉싸름한 맛에도 비유하지만, 과연 그렇기만 했을까? 물어보고 싶어진다. 솔직히, 청춘을 지나오면 꼭 그렇게만도 비유될 수 없는 것이 청춘임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누구에게는 맹물 같은 것일수도 있고, 누구에게는 쓴 독약에 비유될 수도 있으며, 누구에게는 시큼 털터름함에 비유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나에게 있어 청춘은 무엇에 비유될 수 있을까? 다시 한 번 묻게 되는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책을 읽다보면, 꼭 주인공 같지는 않아도, 주인공에 동조하고, 감정이입을하고 싶어지는 지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부모 곁을 떠나고 싶어하는 자식의 마음이다. 인생의 어느 시기가 되면 더 이상 나를 돌봐주셨던 부모님의 그늘에 있는 것이 부담스러워진다.  마커스는 그래서 대학을 간다는 명목으로 집을 떠나는 것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각자의 청춘에게는 그것이 다양한 양상으로 나타날 수도 있을 것이다. 누구는 결혼으로 지금까지의 둥지를 박차고 나가기도 하고, 누구는 유학이나 이민으로, 누구는 일부러 직장을 집과 멀리 떨어진 곳에 잡기도 한다. 아무튼 이렇게 부모의 감시와 통제를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이것은 자유에 대한 열망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과연 그런다고 자유가 보장되는 것일까? 적어도 그것이 자유가 아니라면 다른 의미로 '속박 당하지 않겠다'는 것이기도 한데, 그것을 향한 마커스의 부침이 제법 만만치가 않다. 그는 자유를 위해 홀로 있을 것을 선택하고,  구속 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에 종교적 규율조차 거부했다. 그리고 낭만적 사랑과 명예로워지는 것만이 자신의 자유를 증명해 주는 것이라 생각했지만, 그가 택한 사랑은 너무나 건강하지 못하며, 명예를 지켜나가지도 못했다. 더구나 자신을 지지해 줄 것만 같았던 어머니조차 그에겐 힘이 되지 못했다. 그렇다면 그가 그리도 지키고 싶어했던 자유란 무엇이었을까? 그것이 뭔지는 몰라도 그 모양은  불안하고 불온하기 짝이 없으며, 이것인가 싶으면 저것도 아닌 혼란의 연속일 뿐이었다.  특히 사랑이라고 생각했던 사랑이 알고 보면 뭐 밟은 것 같은 참담함이 되었을 때 되돌릴 수 없고, 그러나 되돌려야만 하는 것이 측은하고 불쌍하기까지 하다.  우리도 비슷하지 않은가? 자유롭고 싶어선택한 결혼, 그래서 선택한 직장, 유학이나 이민이 더 나를 얽어매고 나를 속박한다. 하다못해 아무 것에도 매이고 싶지 않아 선택한 독신도 고독이 속박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자유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어찌보면 우리에겐 애초부터 자유란 허락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나의 태어남 조차도 내 자유의지가 아닌데 어디서 자유를 찾겠다는 말인가? 단지 우리에게 허락된 건 주어진 환경과 여건 속에서 자족을 배우고, 인격의 성숙을 지향하고, 인류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도모하기 위해 우리의 씨를 계속해서 퍼뜨리고 그것을 지켜 나가는 것 밖엔 없는지도 모른다.  즉, 자유란 없음을 인정하는 것에서 오히려 자유가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확실히 역설이다.   

책에서 이 말이 좋다. 한평생 아버지과 함께 코셔 정육점에서 일해왔던 어머니. 그 어머니에 대해 주인공 마커스가 이렇게 말한다. 정육점을 하려면 근육이 필요하다. 어머니에게는 근육이 있었다. 어머니가 우는 나를 품어 안아주었을 때 나는 그 근육을 느꼈다.(166p) 어찌보면 자유를 위한 날개에도 근육이 필요한 줄도 모르겠다.  하지만 젊은 날에 젊음을 모른다고, 이것을 다 깨닫기엔 마커스의 젊음은 미처 다 피지도 못했다. 그런 젊음이 있는 것이다. 멋진 첫 비행을 위해 힘껏 날개짓을 쳐야하지만 날개짓을 제대로 쳐 보기도 전에 추락하는 새처럼. 이 이야기는 바로 그렇게 미쳐 다 피워보지 못한 젊음에 바치는 장송곡 같기도 하다. 그래서 다 읽고나면 우울하다.  너무 우울해 작가에게 따져 묻고도 싶어진다. "당신은 어쩌면 그리도 청춘에 대해 이런 우울한 이야기를 쓸 생각을 했소?"라고 말이다. 하지만 나는 작가가 가감없이 인생의 한 단면을 이야기 했다는 것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이 책에 쏟아지는 찬사에 동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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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나무꾼 2011-02-20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저도 이 책 읽었어요.
필립로스에 혹해서가 아니라,역자 정영목 님에 혹해서긴 하지만요~

다 피워보지도 못한 젊음에 바치는 장송곡이란 표현 넘 적절한걸요~^^

stella.K 2011-02-21 11:13   좋아요 0 | URL
뭐 정영목이야 워낙 유명한 번역가시잖아요.
원저자가 좋아선지 아니면 번역이 좋아선지
아무튼 글이 참 유려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근데 필립 로스는 확실히 우울해요.ㅋ

blanca 2011-02-20 23: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안 그래도 이 책 장바구니에 있었는데 주인공이 죽는 거라는 스포일러를^^;; 알려주셨군요. 스텔라님이 쓰신 청춘에 대한 느낌 동감합니다. 어떻게 살아도 결국 못 잡고 알지 못하고 휙 보내버리고 마는 것 같아요. 자유에 대한 대목도 그렇구요. 필립 로스는 어떻게근 삶이란 참 서글픈 거라고 얘기하는 것 같군요. 다음 책에 대한 기대를 한껏 더 부풀게 해 주셨어요^^

stella.K 2011-02-21 11:19   좋아요 0 | URL
솔직히 뒷부분 읽을 때까지 1인칭 소설인 줄 알았어요.
근데 뒷부분에서 벙쪘죠.ㅎㅎ
청춘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는 그때는 몰라요. 그죠?
더 나이들어 보면 알죠. 그땐 이미 청춘은 가고...흐흑!

필립 로스는 우울하긴 한데 더 읽고 싶게는 만들어요.
인생의 단면을 치장하지 않으면서 가차없이 쓰는 태도가
맘에 들었다고나 할까?

블랑카님의 댓글을 받고 보니 내가 확실히 리뷰를 못 쓰진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드네요. 고마워요.^^

cyrus 2011-02-21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이 책 읽으면서 주인공의 죽음이 안타깝더라구요. 내용은 짧았지만
주인공이 겪어야했던 고민과 불안 그리고 죽음으로 마무리짓게 된 결말이
인상 깊었어요.

stella.K 2011-02-21 11:21   좋아요 0 | URL
그렇죠? 내용은 안타까운데, 글은 참 멋지다는 생각을 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