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만나는 스무살 철학 - 혼돈과 불안의 길목을 지나는 20대를 위한 철학 카운슬링
김보일 지음 / 예담 / 201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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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새삼 느끼는 것은, 오늘날의 20대는 나의 20대와는 정말 많이 다르구나 하는 것이었다.  

나의 20대는, 요즘의 20대 보다 훨씬 단순했던 것 같다. 그땐 기계가 요즘에 비해 많이 발달이 되지 않았고, 소위 말하는 아날로그 시대였다. 아직도 손편지를 썼던 세대였고, 지금은 인터넷 라디오가 있어 실시간으로 듣고 싶은 곡을 신청할 수 있지만, 그때는 라디오에 신청곡을 보내려면 일주일이나 열흘의 시간을 둬야했고 사서함으로 보내야 했던 시대였다. 지금은 구세대에 속하는 10대를 일컫는 'X세대'란 말도, 나 10대 땐 없던 말로 10대를 벗어난 사람들이 비로소 10대를 객관적으로 보고 말했던, 대중적 학술 용어는 아닐까 싶다.  

하지만 요즘의 20대는 어떤가? 디지탈 시대에 맞게 10대와 더불어 얼리어댑터족의 주종을 이루는 세대고, 공부면 공부, 연애면 연애, 운동이면 운동 뭐 하나 빠지는 것없이 없다. 말하자면 결핍을 모르는 세대라고나 할까?  

작가면서 대학에서 후학들을 가르치는 박범신 선생은, 요즘의 대학생이 신기하다고, 그의 산문집에 밝히기도 했는데 그것은, 요즘 대학생들은 '연애'를 해도 성적이 떨어지지 않는다고 했다. 신기한 것은 하나가 더 있는데, 모범생들은 모든 교과목에서 균일하게 상위권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게 뭐가 이상한가 할 수도 있겠지만, 박밤신 선생이 가르치 분야는 문예창작이다. 그런데 같은 문예창작이라고 해도, 이 분야는 기복이 심해서 자기가 잘하는 분야는 따로 있다고 생각하는데, 이를테면 시, 소설, 희곡 등 모든 분야에서 편차가 없다는 말이다. 이쯤되면 나도, 그들이 사람인가? 싶기도 하다. 어떻게 모든 분야에서 고르게 잘할 수 있단 말인가? 아무리 크게 뭉뚱그려 문학이라고는 해도 그중에서 또 자신이 좋아하는 분야는 또 갈라지는 법인데 어떻게 모든 분야에서 다 잘할 수 있단 말인가? 

하긴, 이것은 비단 박범신 선생이 말하는 문학 분야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세계적인 바이올린니스트 장한나를 보라. 그녀는 음악만 잘하지 않는다. 그녀는 여전히 첼로를 연주하면서 대학에선 철학을 공부했고, 지금은 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뿐인가? 피겨스케이터 김연아를 비롯해 20대 운동선수들 보면 박범신 선생이 말한 문학도들과 별반 달라보이지 않는다.  그들은 20대에 뭔가의 위업을 달성했고 별로 흔들림이 없어 보인다.  

그러나 박범신 선생은 말한다. 분명 그들이 부러운 것은 사실이지만 돌아앉아 그들의 뒤꼭지에 대고 이따금 묻는다고, '그런데 쟤네들, 연애를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 문학은 진짜로 하기는 하는가?'라고. (박범신 산문집, '산다는 것은.'에서)

오늘날의 20대는 부모님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자라난 세대다. 지원만 있는가? 지도편달까지 받는다. 그런데 우리네 부모들은 아이들이 잘하는 것에 무작정 지원하지는 않는다. 너무도 안전지향적으로만 키우기 때문에 연애도, 공부도 그들이 할 수 있는 여러 많은 것들 중의 하나일 뿐 사실은 그 어느 것에도 나 자신을 올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나의 20대는 그렇지 않았다. 사랑하나면 학업도 포기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죽기를 각오한 사람이 있었다. 공부도 그것 밖엔 달리 길이 없어서 그것에 목숨을 건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모든 것은 뒷받침이 안 되니까 포기하거나 먼 미래의 것으로 알고 가슴에 묻어 두기도 했다. 그런 한쪽의 결핍을 다른 한쪽이 채우는 이런 불안한 세대를 살았던 것이다. 또 그들 세대가 지금은 부모 세대가 되어서 그렇게 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더라 해서 아이들을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이 키우다 그런 안정지향주의형 20대를 양산해낸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모든 것이 무엇하나 빠지는 것 없는 20대를 산다고, 정말 고민없이 살까? 나의 20대와 그들의 20대는 분명 질적으로 다른 고민을 할 것이다. 배부른 돼지 보다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낫다고, 나 역시 매사에 부족함이 없이 해 맑게 웃는 젊은이 보다, 고민하는 찌질이에게 더 애정이 간다.  그들이 고민을 한다면 보다 디테일하게 고민을 할 것 같다. 예전에 우리는 '사느냐, 죽느냐' 그런 단순한 고민을 했다면, 요즘의 젊은이들은 살긴 사는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렇게 사는 것이 과연 맞는 것인지를 고민한다면 그것이 좀 더 근사하고 잘 나 보인다는 것이다. 그래서 애정이 가고, 그들은 우리 보다 더 가능성이 있다. 

부모 잘만 난 덕에 부족함이 없이 응석받이로 자란 20대는 나도 싫다. 그게 어디 20대뿐이겠는가? 부족함을 모르는 4,50대 기성인들도 난 싫다. '내가 누구인지 말할 수 있는 자는 누구인가?' 이것을 수시로 묻는 사춘기 아이들과, 20대들, 4,50대 기성인들이 나는 좋다. 

철학의 기본은 살아가는 방법 보다 '생각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것'에 있다. 이 책은 바로 그런 책이다. 철학은 자기만의 상아탑에 갇혀서 일반인에겐 좀처럼 자리를 내주지 않다가 철학의 대중화를 꾀하고자 그 포문을 열었던 것이 '철학에세이'가 아니었나 싶다. 하지만 난 그 젊은 시절 그 책이 너무 어려워 읽기를 포기했었다. 그로부터 2,30년이 흐르는 동안 눈높이 철학은 끊임없이 시도되었다.  

이 책은 정말 편하게 읽힌다. '너 부모 잘 만나 부족함이 없이 잘 살아 온 거 아는데 그래도 이러 이러한 거 좀 생각해 보고 살아야 하지 않겠니?'라고 말하는 것 같다. 물질적인 풍요가 세상의 전부는 아니니까.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젊은 날 읽었던 '철학에세이'와는 사뭇 다르다. 하긴, 세월이 얼만데... 

나에겐 20대를 살기 시작한 조카 녀석이 둘이나 있다. 나는 그들에게 그다지 좋은 이모가 되지 못한다. 그렇게 책을 많이(?) 읽었으면 멘토는 못되어도 머리 큰 녀석들과 인생에 대해 논할 줄도 알아야 하지 않는가? 나도 10대 때, 20대 때 뭔가 이런 부분에서 대화가 통할 수 있는 사람이 있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만났다고 해도 오래 곁에 두고 만나지도 못했고. 

너무 편하게 읽혀 마치 내가 20대로 돌아간다면 저자 같은 삼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물큰 들었다. 그것도 작은 아버지나 숙부로 불릴 수도 있는 친삼촌 말고 외삼촌. 원래 친척은 친가쪽 보다 외가쪽이 정신적으로 가까운 법이니까. 그래서 그 삼촌이 "너 이 생각은 해 봤니? 그렇담 그 생각 중에서 이렇게도 생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또 저렇게 생각해 보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렇게 생각의 "꺼리"를 조근조근 하게 말씀해 주시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삼촌이 있는 20대가 있다면 그 젊은이의 10년 20년 후는 정말 멋질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삼촌이 없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멋없으란 법도 없다. 이 책이 대신해 줄 수도 있으니까. 그리고 꼭 20대를 사는 젊은이들만 읽으란 법도 없다. 어쨌든 20대도 60대도 같은 2010년을 살고 있지 않은가? 20대는 신세대고 60대는 늙은 세대라고 치부하는 건 옳지 못하다. 생각의 공유는 세대 구분이 없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기성인들도 이런 책 한번쯤은 읽어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특히 이 책은 예문이 풍부하다. 과연 저자가 예로든 책들을 다 읽고 발췌해서 썼을까? 싶은 정도로 그동안 저자가 읽었던 책들이 짤막짤막하게 소개되고 있어 좋다. 왜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남의 집에 가면 그집 책장을 구경하게 되는데, 저 사람 책장엔 무슨 책들이 꽂혀 있나 궁금한 것을 알아내는 것처럼 말이다. 게다가 저자는 책에서만 발췌하지 않는다. 저자가 본 영화에서도 장면이나 줄거리를 따 오기도 한다. 영화 얘기라면 남녀노소 불문하고 쉽게 접할 수 있는 매체이기도 하다. 과연 부지런한 저자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저자는 오랜 세월 학생들을 가르쳐 온 교사답게 어떻게 하면 젊은이들과 대화할 수 있을까를 아는 분 같았다. 그러니 저런 삼촌 한 분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들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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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10-08-07 17:4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믓진 삼촌이네요!!!

stella.K 2010-08-07 20:06   좋아요 0 | URL
아니, 이 시간에 댓글을 달아주시다니...?
후애님 만나러 안 나가셨나요? 믓진 마기님?^^

비로그인 2010-08-08 00:16   좋아요 0 | URL
너무 나가고 싶었는데, 울신랑이가 약속을...ㅠ

후애(厚愛) 2010-08-08 22:4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다음에 또 만남 이벤트하면 꼭! 나오셔야 합니다.^^
더위 조심하세요~

stella.K 2010-08-09 10:42   좋아요 0 | URL
아, 후애님, 친히 댓글 달아주시고.
감사하네요. 고국에서의 일정이 얼마나 남으셨는지 모르겠지만
모쪼록 남은 시간도 좋은 시간 되시길 바라겠습니다.^^

Tomek 2010-08-09 08:4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철학의 역할, 멋진 삼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도 꼰대들이 너무 많아요. 철학을 배우는 많은 사람들이 멋진 삼촌들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D

stella.K 2010-08-09 10:43   좋아요 0 | URL
ㅎㅎ 꼰대들! 그런가요? 어떤 꼰대들을 말씀하시는지
알려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암튼 삼촌에 동감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2010-08-10 08:54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10 10: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마녀고양이 2010-08-10 19: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쩜 좋을까.. 저는 스텔라님이 20대 후반에서 기껏해야 30대 초반이라 생각했어요. 처음 느낌이 그랬나봐여, 활기차고 밝고 소녀같구.. 그런데 이후 글을 읽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는거여염. 20대에서 이런 깊이 있는 글이 나올수 있나? 하고... ^^

혹시라도 제가 주제넘은 댓글 단게 있다면, 잊어주셔염.. 아하하.

stella.K 2010-08-10 21:21   좋아요 0 | URL
저 칭찬하신 거 맞죠?ㅎㅎ
그럴리가요. 마고님과 댓글 주고 받으면 젊어지는 느낌이어서 저는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