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신이 읽는 젊은 작가들
박범신 엮음 / 문학동네 / 2007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올해는 박범신이란 작가가 나를 사로잡고 있다.  <은교>로부터 시작된 그의 책과의 인연은 이제 3권째를 읽고 있다. 물론 생각 같아서는 그의 일련의 작품집을 독파해 보고 싶긴한데, 가늘게 오래 갈수는 있어도, 짧고 굵게는 못하는 성격적 단점을 가졌기에 아무래도 그의 책은 틈나는대로 오래도록 읽게 될 것 같다.   

사실 이 책은 박범신 작가가 썼다고 볼 수는 없다. 그저 2007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한 '금요일의 문학이야기'에서 박범신 작가는 사회를 맡고, 9주 동안 우리나라의 젊은 작가 12명과 독자와의 대담을 엮은 책이다.   

내가 이 책을 뒤늦게 나마 읽을 생각을 했던, 박범신이라는 '브랜드 네임(?)' 때문이기도 하지만, 얼마 전, 모출판사에서 젊은 작가상 수상 작품집을 읽는데 실패한 탓에도 있다. 어쩌면 그리도 안 읽혀지던지...! 그런데 그것을 예전엔 작가 탓으로 돌리거나, 나와는 안 맞는 책이라고 덮어버리면 그만이었지만, 지금은 웬지모를 위기의식 같은 게 느껴진 것이다. 이를테면 아, 나도 이제 정말 기성세대에 편입되는 걸까? 하는, 더 이상 젊지 않다는 자괴감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그나마 조금 위로가 됐던 건, 그 상의 심사를 맡았던 누구라면 알만한 대작가께서도 요즘 젊은 작가의 작품을 읽어내기가 힘들었다는 말씀을 남기셨단다. 그분이 그렇게 말씀하시니 내가 오히려 위로 받는 느낌이 드는 것이다. 그런데 비슷한 말을 하신 분이 또 있으니 그분은 바로, 박범신 작가다. 박범신 작가 역시 앞서 말한 그분과 같은 세대를 사시는 분이라고 할 수 있는데, 나로선 두 번 위로를 받는 다고나 할까?  아무튼 그러면서 이 책을 읽으면 요즘 작가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싶어 읽었다. 

읽고나서의 느낌을 얘기하자면, 초대된 12명의 작가들의 하나 같은 공통점은, 1명을 제외하고 모두 70년 이후에 태어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그나마 가장 마지막에 소개된 박성원이란 작가는 69년 생으로 70년대 생에 가깝다고나 할까?)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우선, 새마을 세대고 그래서일까? 소위 말하는 크게 '있는 집 자식'들은 아니어도 생활 하는데 크게 불편함이 없는 가정에서 나고 자랐다는 것이다. 그러니 '절대 가난'을 체험해 보지 않았고, 책도 원하느만큼 읽을 수 있는 환경에서 자랐다는 것이다.  문학을 하게된 동기는 저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하나 같이 안정된 분위기에서 글을 쓰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자족'하는 분위기에서 글을 쓴다고나 할까?  

사실 우리나라에서 작가로 살아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나 이 책의 어느 작가의 말처럼 다소의 불편을 감수하며 글 쓰는데만 집중하면 크게 불편할 것도 없다고 한다.  그러니 나는 왜 작가가 됐을까? 앞으로 글 써서 밥 벌어먹고 살 수 있을까? 하는 정체감에서 오는 갈등 같은 것은 거의 없어 보인다.  

그런데, 그게 과연 어떤 의밀까?  물론 안정적이고, 한번 정한 길을 흔들림 없이 갈 수 있다는 것도 되겠지만, 결핍을 모르고, 갈등하지 않으며, 자신이 생각하고 판단하는 세계가 전부인 양 살아 간다는 것도 되지 않는가? 또 그런 생각 속에 사는 건 금방 권태로워지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가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거의 읽어낼 수 없었던 건, 내가 아는 작가들은 자기 체험이나 현실사회와 나를 연결시켜 글을 썼지만(대표적으로 참여문학), 젊은 작가들은  다분히 관념적이고 자기 상상에 매어 있다는 것이다.  물론 관념과 상상이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코드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이다. 기존의 기성 작가는 피 같은 글을 썼지만, 상상력이 부재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한때 나는 우리나라 작가들이 왜 이리도 상상력이 없냐고 불평한 적도 있다. 그런데 이제 그런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들이 나오기 시작하자 나는 그들의 코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기성 작가들은 나는 이런 삶을 살았다고 독자들에게 펼쳐 보이고 설득하려고 한다면, 요즘의 작가들은 새로움을 끊임없이 추구하며, 독자더러 "따라 올 테면 따라와 봐." 하며 다소 거만하면서도 유혹의 손짓을 한다. 물론 그것에 동조하고 기꺼이 따라가 주는 독자도 있겠지만, 나는 도무지 그들의 불친절함이 마뜩치 않다. 

아쉽게도 난,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의 책중 유일하게 읽은 작가는 심윤경의 <달의 제단>이었다. 다른 작가와 그들의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고, 읽을 시간도 없으며, 앞으로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사실 심윤경의 <달의 제단>은 나 역시도 약간은 아쉽기도 했지만, 소재주의라고 비판을 받았다는 건 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우리 문학은 한동안 사회를 비판하느라 주제는 있으나 소재는 거의 전무하지 않았나? 그래서 문학의 사대주의에 빠졌던 것도 사실이다. 모르긴 해도 몇몇 작가들을 빼놓고 자기 문학에서 사회를 비판하는 주제의 소설을 쓰는 작가는 이제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소재주의로 가야하지 않을까? 일본이나 미국 같은 나라는 얼마나 다양한 소재를 가지고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많은가? 하긴, 그맘도 이 책은 4년 전의 책이다. 이젠 소재주의를 비판할 사람도 없을 것 같다. 소재주의 비판한다면 그건 게으름을 은폐하는 것에 지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리고 그만큼 세월이 흘렀으니 이 책에 등장하는 작가들은 이제 30대 후반에서 40을 갓넘을 작가들이 되었다. 그들은 또 요즘 젊은 작가들을 뭐라고 얘기할까?         

이들 중엔 실제로 모출판사나, 신문사에서 주는 일명 '젊은 작가상'을 수상한 작가들도 다수 있었던 것으로 안다. 갑자기 그들이 부러워졌다. 그것은 그야말로 젊은 작가에게만 수여하는 상이다. 우리나라에 기라성 같은 영화상에서 '신인상'은 아무나 받을 수 없는 상처럼 그 상도 그런 것이다. 그러니 늦게 데뷔한 작가가 있다면 그런 상을 받아 보기야 하겠는가? 하기야, 엊그제 '무릎팍도사'에 나왔던 배우 김남길은 데뷔 7년차에 백상 예술상 '신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나이의 많고 적음, 활동의 연수와 상관없이 영화의 '신인상'에 해당하는 '젊은 작가상'도 소위 말하는 '유망주'에게 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이 책을 읽으니 또 하나 드는 생각은, 고백하건데 내가 20대 때, 나는 박완서 작가의 작품을 다 이해하지 못했다. 지금은 노년을 다루지만 당시는 중년을 다룬 작품이 많았다. 그런데 그의 작품이 이제야 이해가 가고, 정말 좋은 작품이란 생각을 새록새록 하는 것이다. 하긴, 20대 때 중년을 어찌 이해할 수 있었겠는가?  지금 나에게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읽는 건 꼭 그런 느낌이다. 분명 나도 젊은 날을 살아왔는데도 말이다. 문학은 그렇게 인간의 삶과 함께 발효의 과정을 거치며, 10년 20년 후에도 말할 수 있는 가치있는 작품이어야 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과연 이들의 작품도 그럴 수 있을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다.             

 이 책은 앞서도 언급했지만 해당 작가의 작품을 읽지 않으면 이해하기가 어려울 수 있다는 단점을 가졌다. 그러나 또 달리 말하면 그래서도 다이제스트로 읽을 수 있다는 장점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거기엔 사회를 맡은 박범신 작가의 유려한 말솜씨가 한몫했다고 할 수 있는데, 어느 대담 프로그램이고 사회자는 딱 물어볼 것만을 물어봐야 한다는 고정관념 같은 것이 있는데, 선생은 그런 것을 깨고 특별히 사회 본다는 느낌없이 자연스럽게 그 시간을 이끌어 갔다. 아마 모르긴 해도 초대 작가들은 편하게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았을까 싶다. 

언젠가 박범신 작가는 그런 얘기를 했다. 자기 안에는 늙지 않은 짐승이 살고 있다고. 상당히 인상적인 말이라 한동안 잊혀지지 않을 것 같다. 바라기는 여기 등장한 12명의 작가도 자기안에 그런 짐승 한마리씩 키웠으면 좋겠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여러 분야에서 총체적인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문학계만큼은 늙지 않고, 마르지 않는 샘으로 남아줬으면 좋겠다.  

또한 정말 바라기는, 이들이 문학의 중흥의 주역이 되기위해 아낌없는 지원을 좀 해줬으면 좋겠다. 작가는 언제까지 가난한 직업이어야 하는가?             


댓글(16)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후애(厚愛) 2010-07-26 05: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놀러 왔어요~ ㅋㅋㅋ
<캡쳐 이벤트> 끝까지 참여해 주세요~
행복한 한주 되시길 바랍니다.^^

stella.K 2010-07-26 10:45   좋아요 0 | URL
제가 그다지 빠르지가 못해서 될 것 같지는 않겠지만
수시로 가보긴 하겠슴다.^^

gimssim 2010-07-26 16:3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예전에 소설을 참 많이 읽었어요.
그랬는데 언제부턴가 소설을 읽지 않게 되었는데 저도 stella09님이 말씀하신 그런 이유인 것 같아요.
박범신은 한겨레신문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는데 재미있게 읽혀요.
옛날에는 여성취향의 연애소설을 많이 쓰셨는데 나이가 들면서 더 성공한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stella.K 2010-07-26 10:42   좋아요 0 | URL
그러게요. 나이 먹어서 성공하는 작가가 참 보기 좋더라구요.^^

hnine 2010-07-26 11: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의 목차를 살펴보니 과연 요즘 소위 우리 나라의 잘 나가는 젊은 작가들이네요.
어느 분야에서 웬만큼 탄탄한 기반을 이루었다는 것이 그 분야 새로운 경향에 대해 무감해지게 하는 원인이 되지 않으려면 감각을 잃지 않기 위한 본인의 노력도 필요하고 겸허한 마음 자세도 필요하고 그럴 것 같아요.

stella.K 2010-07-26 10:44   좋아요 0 | URL
이들은 나름 치열하게 노력할 거예요.
똑똑한 사람들이니까. 단지 저와 이들의 갭이 갈수록 날거라는 것이
왠지 모르게 서글퍼져요. 어쩔 수 없겠지만요.ㅠ

Tomek 2010-07-26 11: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세상에 의미 없는 존재는 없듯이, 다들 의미 있는 작가들일 것입니다. 다만, 그 글을 읽는 내가 그의 예술을 지지하느냐, 지지하지 않느냐로 갈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요즘 고민하는 것과 stella09 님의 글에 대한 생각이 섞이니 댓글이 걷잡을 수 없어지네요... ㅠㅠ

stella.K 2010-07-26 12:09   좋아요 0 | URL
그럴 땐 조용히 추천만 하는 거예요.ㅋㅋ

순오기 2010-07-26 13: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박범신 책을 읽지 않아서 조용히 추천만 하고 가요.
혹시 '메롱'에 삐지신 거 아니죠?^^

stella.K 2010-07-26 13:49   좋아요 0 | URL
설마요. 귀여우셨는 걸요.ㅎㅎ
추천 감사합니다. 순오기님.^^

마녀고양이 2010-07-26 15: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좋은 리뷰세여.. 그런데 저 역시 국내 소설을 많이 읽지 않아서
이 책은 무리가 있겠어요.. ㅠㅠ

stella.K 2010-07-26 16:14   좋아요 0 | URL
저 역시 그랬어요. 하지만 밝혔다시피 저는 박범신 작가가 좋아서
읽은 거랍니다.흐흐

2010-07-26 18: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7-26 1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blanca 2010-07-26 21:4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공감합니다. 요새 재기발랄한 통통 튀는 작가. 김애란 정도를 읽어 봤나 봐요. 저는 크게 와닿지 않더라구요. 그리고 박완서 작가도 너도 최근에 완전 몰입했었거든요. 정말 늙어 간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가난한 작가. 저도 제발 부자 작가들좀 많은 세상이 왔으면 좋겠어요...저번에 윤대녕이 인터뷰한 거 보고 깜짝 놀랐어요. 몇 년을 소설을 위해 수입없이 살다 사만 부 정도 팔아 사천 만원 번다고 했던 것 같은데...요새는 사만 부도 많이 팔리는 거라고 하고...가슴이 아프더라구요. 너무 척박한 것 같아요.

stella.K 2010-07-27 10:21   좋아요 0 | URL
그러니까요. 왜 작가들 중엔 럭셔리한 사람이 나오면 안 되느거냐구요.
그런 사람 혹 있으면 안 좋게 보잖아요. 구라같다고.
작가는 좀비 같은데가 있어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암튼 우리나라 문예정책이 좀 달라졌으면 좋겠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