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요것이 어떻게 된 셈판이냐." 시골에서 올라온 형님이 말씀하셨다. "방송법이나 신문법 내용이 뭔지 나는 잘 모른다만, 좌우간 헌법재판소 판결은 투표 관정이야 '개판'이지만 그 결과인 방송법은 살아 있다 그 말이라는데, 허어, 적삼 벗고 은가락지 끼는 미친 것들도 더러 있는 세상이라지만, 나는 대체 이게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축구로 치면 오프사이드 해서 골을 넣었다고 해봐라. 그 골이 골이냐 노골이냐." 기침하는 형님에게 튕겨내는 침방울이 자꾸 내 앞으로 날아와 한 발 슬쩍 비켜서면서 내가 추임새를 넣는다. "그게 아니구요, 형님. 헌재의 판결은 말하자면 과정이 잘못됐으니깐 국회에서 다시 검토해 뒷말나지 않게 처리하라, 뭐 그런 뜻이겟지요." "아이구, 얘가 명색이 작가라면서 여드레 삶은 호박에 송곳도 안 들어갈 소리 하고 자빠졌네." 형님의 침방울이 한 자쯤 더 뻗어 나온다. "다시 모여 선(先)은 이렇고 후(後)는 이렇고 하니 이리 처결하자 할 국회면, 그 문제가 헌재까지 갔겠냐, 국회가 그러지 않을 거라는 것은 헌재도 알고 온 백성도 알고 우리 집 똥 강아지도 안다. 그러니까 헌재가 책임에서 쑥 빠지자 하면 일테면 구렁이 담 넘어갔다는 것인데, 앗다, 돼지 우리에 주석자물쇠도 유분수지, 내겐 니 핵석이 더 아리송하다.. 야." 

형님은 실눈을 뜨고 창 너무 노란 은행님이 무더기로무더기로 떨어져 내리는 것을 잠시 보다가, 다시 암팡진 눈빛이 되더니 "한편"하신다. 화제를 전환할 때 "한편"하고 변사 같은 목소리로 포석을 놓는 것은 형님의 평생 버릇이다.  

  "한편, 세종시 말인데, 세종시 하면 여야가 숙의한 끝에 이리저리 하기로 법까지 만들어 통과시킨 것 아니냐. 뭐 우리 같은 사람도 나라에서 그렇게 한다니까 진즉에 다 동의했던 것이구. 한데 이제와서 계획대로 안 하겠다고 하면, 내 밥 먹은 개가 발뒤축 무는 격 아니고 무엇이냐." 형님은 세종시 때문에 농토를 팔고 다른 대토를 아직 마련하지 못하고 있는 분이다. 

  "참 형님도.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계획을 바꿔 하겠다는 거지요." 

  "헛, 너까지 시골 사람이라고 나를 눙치려는 수작인 모양이다만 그럼 못쓴다. 모진 놈 옆에 있다가 벼락 맞는 수가 있어., 야, 배운 것 없으나 내게 자부심 하나 있다면 평생 곤바닥 뒤집듯이 말 바꾼 적 없고 말과 행동을 따로 나눈 적이 없었다는 거야. 자고로, 말의 선후가 딱 맞아떨어져 일관성이 있게 해야 백성이 믿고 소금 섬을 물로 끌라고 해도 끄는 법이다!" 형님의 결연한 눈 속에 여전히 은행잎들이 지고 있다. 나는 말없이 형님의 빈 잔에 막걸리를 따른다. 

  "폐일언하고"라고 한참 만에 형님이 덧붙인다. 

  "폐일언하고, 방송법은 과정이야 불법이라 할만정 법이 통과됐으니, 선후 재론할 것없이 그 '결과'를 우직하게 밀고 나가 시행해야 하겠고, 세종시 문제는 이러저러하니 그 '결과'를 뒤집어야겠다 하는데, 자가당착이라, 이를 어찌받아들여야겠냐, 일구이언(一口二言)은 이부지자(二父之子)라 했거늘, 나는 도무지 어찌 된 셈판인지 모르겠다. 나야 뭐 이를 어떻게 처결해야 나라에 보탬이 되는지 딱 부러지게 말할 만한 식견은 없다마는, 혼자 누워 있으면 괜히 잘난 지도자님들이 나 같은 백성 갖고 노는 것 같아서 기분이 영 찜찜하더라. 너는 최소한도로다가 한 입으로 두말하며 살지 마라. 너야 글장이니 당(黨)을 바꿔 타고 말고 할 일은 없겠지만, 언젠가 글만 쓰겠다면서 대학 선생을 관두더니 몇 년 지나고 다시 기어 들어간 일 있어 당부를 해두는 것이야, 응." 

  형님의 말씀이 여기에 이르자 "아이고요, 형님!" 하고 나는 고개를 숙이고 만다. 기어코 신종플루 의심환자인 형님의 침방울이 그놈의 '지도자님들' 때문에 난데없이 내 정수리로 날아오고 만 것이다. 정수리가 송곳에 찔린 듯 아프다. 

                                  형님 말씀, 이게 어찌 된 셈판인가- 박범신의 <산다는 것은.>중에서

  

참, 촌철살인의 기막힌 산문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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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anca 2010-06-10 12:5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글이 산문인가요? 마치 재미있는 소설 한 자락 같아요. 정말 너무 구수하고 날카롭고...작가의 형님도 범상치 않군요. 읽다 절로 웃음이 나옵니다.

stella.K 2010-06-10 13:03   좋아요 0 | URL
네. 재밌죠? 박범신에 매료되다 보니 그만...ㅋㅋ

무해한모리군 2010-06-10 1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참 구구절절 맞는 말씀이네요.

stella.K 2010-06-10 15:09   좋아요 0 | URL
그렇죠? 이렇게 평생 초야에 묻혀 살았을 어르신도 이런 말씀을 하는데
그 잘난 지도자님들은 뭘 하시는 건지...ㅠ

카스피 2010-06-11 08: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구구절절 마음에 와 닿는 말이네요^^

비로그인 2010-06-11 09: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흑~~
쫙쫙 감기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