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수요일 모처럼 아는 지인을 강남역에서 만났다. 지인을 만난 것도 오랜만이고, 강남역 자체를 나간 것도 오랜만이다. 강남역에 나가면 무엇이 있는가? 내 마음의 성지(?) 중고샵이 있다.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간다고 강남역 나가면 거의 빼놓지 않고 가는 곳이다. 그런데 정말 참새가 방앗간 못 지나갈 것 같지? 지나간다. 자랑은 아니지만 생각해 보니 지난 코로나 기간 동안 중고샵을 들렸던 기억이 없다. 한 번 있었나?
역시 엔데믹은 위대하긴 하다. 사실 코로나 중에도 갈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근데 가면 또 책을 살 텐데 자제하느라 핑계대고 안 갔던게지. 그런데 이번엔 좀 이유가 있긴 하다.
요즘 작가 천명관이 부커상을 받느냐 안 받느냐가 초미의 관심사인데 그래서일까? 오래 전에 이 책을 사 놓고 안 읽고 있다가 분위기에 편승해서 얼마 전부터 읽고 있다. 근데 이 작가 한마디로 美친 작가다.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요즘 다른 책은 거의 읽지도 않고 이 책에 빠져있다. 그러다 보니 뭐 전작을 할 건 아니고 그래도 주요작은 읽어야지 하는데 마침 <유쾌한 하녀 마리사>가 중고샵에 있다는 걸 알고 그걸 사기 위해 간 것이다. <고래>가 있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건 그리 급한 건 아니니 꿩 대신 닭이다.
오랜만에 들린 중고샵은 좀 바뀌어 있었다. 예전엔 입구에 들어서면 카운터 맞은편에 큰 테이블이 있었는데 그걸 치우고 매대를 늘려서 더 많은 책을 비치해 놓았다. 테이블은 어디 갔나 했더니 저~어쪽 구석에 있다. 테이블은 없어진 걸까 했더니 그렇게라도 있으니 다행이다 싶다. 서점에 앉을 자리 하나 없다면 그건 빵점짜리 서점이다.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긴 하지만) 중고샵이라고는 하지만 진짜 중고책은 거의 없고 빤닥빤닥한 철 지난 새책이 중고책으로 놓여져 있다. 언제나 그렇지만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다. 분명 책을 정가 보다 싸게 살 수 있는 건 좋긴 하지만 이런 새책을 중고책이라 할 수 있을까? 결국 밀리고 밀려서 여길 온 건 아닌가. 묘하게 마음이 쓰린 느낌이 든다.
그런 와중 이 책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 봄, 드라마를 재밌게 보고 원작은 어떨까 궁금해 적어도 1권은 사 봐야지 했는데 마침 중고샵에 나왔다. 물론 중고샵엔 전권이 다 나와있다. 그런데 마주하는 순간 책이 제법 위용있게 생겼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사 봐야지 했는데 실물을 보니 앞으로 더워질 텐데 내가 이런 책을 붙들고 있을 수 있을까 갑자기 회의가 밀려와 결국 눈에만 담고 사지는 못했다.
그 책을 보면서 새삼 세상엔 책을 열심히 쓰는 작가가 정말 많구나 싶었다. 이 책의 작가도 이런 두꺼운 책을 한 권도 아니고 5권이나 냈으니 얼마나 열심히 썼겠는가. 그렇게 생각하니 조만간 언제고 사 봐야겠다는 생각이 다시 든다. 1권만이라도. 예를 표하는 의미에서. ㅋ
이민진 작가의 책도 눈에 띄었다. 그 유명한 <파친코>도 있었지만 어찌된 일인지 1권만 있어 사 볼까 하다 결국 구매력이 떨어져 사지 않았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은 두 권 다 있었는데 어떨지 몰라 덥석 사기는 뭐했다.
지인과의 만남 시간이 다가와 오래 있지는 못했는데 나오기 전에 청소년 세계 문학전집이 꽂혀 있는 게 보였는데 책이 제법 예뻐 보였다. 이 나이에 청소년 문학 전집을 읽을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혹시 '키다리 아저씨'가 있다면 한 번 사 볼까 했는데 아쉽게도 그 책은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왠지 그렇게 보고만 있는 것만으로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들었다. 내가 만일 다시 사춘기로 돌아갔다면 이 책을 좋아라하고 샀을 것 같다.
분명 같은 문학이어도 어린이를 위한, 청소년을 위한 눈높이의 문학이 있어야 하니 그 과정에서 작품은 얼마나 달라질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문학을 원문 그대로 읽는 것이 가능할까? 또 그래야할 필요가 있는 걸까? 의문스럽기도 하고.
아무튼 오랜만에 서점 나들이는 좋았다. 책은 온라인에서 클릭해 사지 말고 발품 팔아 사라던데 나도 그 말에 기본적으로 동의 하지만 얼마나 나의 발이 움직여줄지 장담할 수 없다. 이미 싸놓은 책들도 많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