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은 생활, 작은 철학, 낮은 공부
김영민 지음 / 늘봄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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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이던가? SF(공상과학) 모 문예지가 창간하면서 그 속에 함께 실린 김영민 교수의 글을 처음 읽어 보았다. 너무 재밌게 읽어서 언제 한 번 이 양반의 책을 읽어 봐야지 했다. 그러다 이 책이 눈에 띄었다.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 있게 이 책을 선택했는데 웬걸, 이름은 같은데 그 사람이 이 사람이 아니다. 동명이인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서 말했던 김영민 교수가 언젠가 공부에 관한 책을 냈는데, 이 책도 공부에 관한 책이다. 연장선상에서 책을 냈는가 보다 했다. 그러다 한마디로 찍-쌌다. 왜 의심하지 않았을까? 적어도 인터넷 서점을 들어가 비교해 보면 알 수 있었던 것을. 의심하지 않았던 것도 동명이인이 존재할 거라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역시 총기가 떨어지고 있고, 저자에겐 미안한 일이 됐다.  


그래도 이왕 어떤 이유에서건 내 손에 들어왔으니 읽어는 봐야 한다. 저자는 철학자 겸 시인이다. 한마디로 이 책은 저자가 공부하면서 느꼈던 바들을 써 놓은 일종의 단상집이다. 


솔직히 우리는 공부하면서 공부하는 방법을 잊어버렸다. 아니 어쩌면 한 가지 방법으로만 공부했기 때문에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학교는 원죄가 있다. 그나마 그것도 학교 공부를 마치면 더 이상 공부할게 없다고 손을 놔버리기도 하지 않는가. 이게 참 불행하고 아이러니란 생각이 든다. 


더 안타까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의 학습 능력은 다른 나라 학생과 비교할 때 결코 뒤지지 않는다.  수학 올림피아드 뭐 이런 거 하면 거의 탑이다. 심지어는 우리나라 중고등학교의 교과 과정을 동경하는 나라도 있다고 들었다. 그런데도 학업을 비관해서 학교 옥상에서, 아파트 꼭대기에서 몸을 던지는 아이들이 왜 그렇게 많은 것인지. 아무리 뛰어난 학습능력을 가졌다고 해도 10년, 20년 후에도 여전히 탑을 유지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공부란 무엇인가에 대한 지성인들의 고찰을 담은 글들은 계속 나와 독자의 자칫 무뎌질 수 있는 지적 욕구와 감수성을 자극해 줘야 한다.


그런 말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한다.' 인간만이 사고하고, 공부한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건 그것이다. 그러므로 이 앎에 대한 욕망과 촉수를 매일 벼리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이 책, 제목도 좋고 의도도 좋긴 한데 너무 어렵다. 한 꼭지 안에 들어가는 글자 수가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닌데 어렵다. 이런 책은 뭔가 깊이 음미하며 읽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공부에 대한 단상을 적는데 이렇게 어려울 필요가 있을까? 공연히 심술이 났다. 어려운 공부 한다고 은근 자랑하는 건가? 나 같이 얄팍한 학식을 가진 사람은 어쩌라고 이렇게 어렵게 썼나 짜증도 났다. 


원래 공부란 어렵게 해야 하는 것도 사실이다. 쉽게 쉽게 하는 게 어디 공부인가? 어렵지만 부딪쳐 보고 그다음 단계로 나가고 거기서 모종의 성취감도 누리고 하는 것이 공부다. 엄밀히 말해 공부는 스스로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그것이 말마따나 독학이 됐건 어떤 전문지식을 위해 학교나 학원을 가던 스스로가 길을 찾고, 방법을 찾고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누가 일일이 가르쳐 줘야 하고, 떠먹여줘야 하는 건 공부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옛 선생님들이 한 우물을 파 보라는 말은 맞는 말인지도 모르겠다. 누구는 한 우물만 파면 외골수가 되기 쉽다고 하는데, 모든 사람이 다방면에서 뛰어날 수는 없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긴 하지만 지금은 한 우물이라도 제대로 파보고 싶다. 하지만 한 우물을 파서 외골수가 된다면 그건 아직도 덜 팠다는 얘기도 된다. 누구는 그랬다. 그렇게 우물을 팠더니 모든 것이 다 연결되어 있더라고. 공부란 그런 것인지도 모른다. 한 가지만을 아는 사람은 기실 깊이 아는 것이 아닐 것이다. 아는 척할 뿐이지. 알면 알수록 입을 다물게 된다고 하지 않던가. 더 모르기 때문에 또 알고 싶어서. 아마도 그래서 저자는 이렇게 짧고 간단하게 글을 썼을지도 모른다.    


어찌 보면 저자는 그다지 독자들을 사로잡거나 설득하려고 애쓴 것 같지 않아 보인다. 그냥 자신이 깨달은 건 이런 거라고 툭 던져보는 식인 것도 같다. 뭐 그래서 동의하면 끄덕여 보시던가 그런 식. 그동안 책 쓰기를 위한 책들은 얼마나 독자들을 공략하라고 외치고 부르짖었던가. 물론 글 써서 돈을 벌 사람들에겐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이긴 하겠지만 책은 꼭 그런 방식으로만 쓰거나 통용되지는 않는다. 그래서일까? 저자의 말 중에 이런 말이 나오긴 한다.



통상 공부를 결심한 이가 제일 먼저 손대는 게 책이다. 그러나 이게 병통이다. 그래서, 레비 스트로스의 지적처럼 '정신의 성숙과 생각의 복잡을 혼동하는 일이 생겨난다. 어떤 공부에서든 (좋은) 책 읽기를 생략할 수 없지만, 책 읽기는 반편의 진실을 보여줄 뿐이다. 


(81p)  


저런 얘기 하면 책 관련 종사자들이 화를 낼지도 모르겠다. 

한때는 공부를 하려면 관련된 책들을 쌓아놓고, 연구실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스스로를 상아탑 안에 가둬야 한다고 생각한 적도 있다. (물론 난 그러고 결코 살지 못했지만. ㅠ) 어쩌면 책을 읽고, 글을 쓰며 평생 노동을 해 온 우리가 알만한 사람들이 진짜 학업자인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고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해당사항이 없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노동은 반드시 땅 파고, 건설하는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집에서 가정 건사하고 직장 다니는 사람도 노동자다. 그러면서 책도 읽고 글도 쓰면 그 사람 그 역시 학업자 아닌가.


공부는 어렵다. 그 어려운 공부를 어떻게든 쉽게 해 보려고 발버둥 치는 건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그저 공부하는데 위로가 되고 벗으로 삼을 것들이 있어야 쉬 지치지 않고 끝까지 해낼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저자는 다석 가지 반려가 있다고 했다. 첫째는 산책이고, 둘째는 적바림하는 버릇이고, 셋째는 차(茶), 넷째는 낮잠. 저자는 기이하다고 하면서 오후에 10~15분 잠깐 잠을 잔단다. (그렇지 않아도 의사들도 건강을 위해 낮잠을 권하기도 하는데 그게 30분 이내라고 했다. 저자의 잠은 너무 짧고 나는 잠을 사랑한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는 설명이 어렵다며 설명하지 않겠단다. 그런 것으로 봐 그 반려에 관해서는 너무 깊이 가르쳐 주는 것 같아 언급을 회피하지 않았을까 싶다. 즉 다섯째는 독자 스스로 가져 보라고 남겨 둔 것도 같다. 그렇다면 난 어떤 걸 해 볼까? TV 시청이다. 물론 과하지 않는. 볼만한 드라마나 영화, 다큐나 강연 프로는 얼마나 많은가. 



책이 다 어려운 것은 아니다. 간간이 웃자고 하는 말도 더러는 섞여 있다. 예를 들면 '수컷들의 꿈' 같은 거. 

수컷 일반이 잘 배우지 안(못하)는 원인은...... 테스토스테론과 같은 남성 호르몬의 효과 속에서 집약적으로 살펴볼 수 있으며, 동물행동학의 맥락 속에서는 순위제를 둘러싼 사회적 형태가 이를 단적으로 알려준다. 특히 한국-남자들이 공부하지 안(못하)는 원인은 물론 이들 중 열에 아홉은 그 작업이나 나이와 무관하게 '건달'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성공의 꿈은 건달의 길과 매섭게 나뉘지 않는데, 그 길은 아무래도 공부 길이 아닌 것. (139p)


어찌 보면 어려운 말 같기도 한데 위트가 있다. 즉 공부하지 않는 것을 건달에 빗대고, 그러면서도 사회적 성공을 바라거나 성공했다면 그 사회는 얼마나 불안한가를 지적한다. 더구나 한국 남자들은 질문을 잘 하지 않는다고 하지 않던가. 이건 뭐 남자에게만 해당되는 말은 아닌 것 같다. 단지 여성은 상대적으로 묻는 것에 대해 거부감을 갖지 않으며, 묻지 않으면 알 수 없다. 앎은 질문에서 시작이 된다고 하지 않던가. 배우려고 하지 않아 건달이 되는 사회는 위험하다.


요즘 5, 60대의 학업성취도도 예전보다 월등히 높아졌다. 그런데도 나이 들면 들수록 배움엔 여러모로 용기가 필요하다. 부끄러운 얘기지만 생각해 봤더니 나는 벌써 꽤 오랫동안 공부하기 위해 어딘가를 정기적으로 다니는 곳이 없다. 공부도 젊을 때 하는 거라고 하지만 그렇다고 녹슬게 방치해 두면 안 된다. 건달이 되는 거보다 더 무서운 건 무뎌지고 녹슬어 쇠해지는 거 아닌가. 공부는 죽을 때까지 하는 거다. 저 다섯 가지 반려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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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3-02-25 19:4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우리나라처럼 입시위주의 경쟁적인 교육제 아래에서는 수학 올림피아드는 가능하지만
앞으로도 노벨문학상은 나오기 힘들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저는 대학 졸업하고 방송대
들어갔을때 비로소 공부하는 재미를 알았거든요. 독서 재미는 더 늦게 알았고요.^^

stella.K 2023-02-25 18:35   좋아요 3 | URL
맞아요. 중요한 건 공부하는 즐거움을 알게하는 건데 울나라는 그게 참 없어요. 방통대가 재미있군요. 하긴 저도 대학 다닐 땐 죽지못해 다녔고 모 여대 평생교육원에서 심리 상담 참 재밌게 공부한 기억이나요. 공부가 이렇게 재미있다니 감탄하면서.ㅋ
다시 공부한다면 국문학을하고 싶어요.^^

바람돌이 2023-02-25 19:39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공부는 목표가 아니라 과정이어야지요. 그런데 학교에서는 언제나 공부가 목표가 되니 온갖 비극이 일어나는거죠. 저도 공부가 재미있어진건 대학 졸업 이후예요. 그 전까지는 공부는 어쩌지 못해 하는 노동이요.

stella.K 2023-02-25 19:46   좋아요 3 | URL
ㅎㅎ 우리의 공부는 거의 이런 식인 것 같아요. 대학 때 전공 좋아하는 사람 거의 못 봤어요. 말씀마따나 과정을 즐길 줄 알아야 하는데 목표가 돼버리니 어떻게든 맞혀서 대학을 가는 형편이니 참...

니르바나 2023-02-26 13:0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스텔라님,

공부에 관한 책 중에 이런 책이 있습니다.
공부도둑- 공부의 즐거움- 공부이야기로 개정된 책입니다.
물리학자인데 한때 유행했던 통섭적인 학문을 하신 장회익 교수님인데
재미있게 <공부의 즐거움>을 읽었던 기억이 있습니다.
공부를 중국어로 쿵후(쿵푸)라고 하지요.
공부도 따지고 보면 몸의 수련인 셈입니다.
우리 주위에는 책을 못 읽는 분들이 정말 아주 많이 있죠.
그 이유는 책읽는 수련이 전혀 안되어 있어 독서를 못하는거죠.
그런 의미에서 스텔라님은 독서 마스터, 공부 따거이십니다. ㅎㅎ


stella.K 2023-02-27 16:58   좋아요 1 | URL
아, 그러고 보니 몇년 전에 김열규 교수가 쓴 공부에 관한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우연히 중고샵에서 발견하고
재밌게 읽었던 기억이 납니다.
정말 독서도 수련이란 생각 많이 듭니다.
이게 조금만 딴생각을 하거나 시간을 딴곳에 쓰면 독서는 물건너 갈 때가 많죠.
저는 책이 좋은 거지 독서는 정말 수행이구나 하는 생각을 참 많이해요. ㅠ
따거는 무슨…ㅋㅋ

페크pek0501 2023-02-27 11:58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공부하기 위해 어딘가를 다닌 적이 없으시다니... 그래도 이 정도로 글을 쓰시다니 훌륭하십니다.
저는 문창과 졸업이 아니라는 이 단점을 보완하기 위해 문창과 학생들이 들을 법한 강좌는 다 들어야지, 하면서 다니던 시절이 있었어요. 생각보다 큰 효과는 없었을 거예요. 왕복 두 시간을 들여 가고 겨우 두 시간 강의를 듣고 오는 게 다 였으니...하루가 날아가는 거죠. 상품으로 말하면 가성비가 낮았던 거죠.
지금은 무료의 온라인 강좌와 유튜브 강좌가 많은지라 굳이 강의를 들으러 다니지 않아도 되는 게 편리한 것 같아요. 눈 안구건조증이 느껴질 땐 오디오로 듣는 책으로 보완할 수 있고요. 이 시대가 주는 혜택입니다...^^

stella.K 2023-02-27 17:07   좋아요 1 | URL
다 좋은 글을 쓰고자하는 열망 때문 아니겠습니까? ㅋㅋㅋ
예쁘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맞아요. 오고가고 시간 넘 많이 뺏깁니다. 요즘엔 정말 시대가 좋아졌죠?
그래도 어떤 강의는 직접가서 듣는 것도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시나리오 강의 들었을 때 끝나고 뒤풀이 할 때가 정말 좋아던 것 같아요.
앞의 두 시간은 이론 강의고 술잔 부딪혀 가며 수다 떠는 게 진짜 강의죠.
누구는 술판 벌어지는 게 무슨 공부냐고 할지 모르지만. ㅋㅋ

yamoo 2023-03-12 15: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김영민 저자의 책을 몇권 봤는데 저는 그리 좋은 줄은 모르겠더라구요. 그래도 책은 꾸준히 내고 퀄러티도 어느정도 있어서 간혹 들춰는 보는 작가인데 제겐 별로 임팩트가 없는 작가에요~

stella.K 2023-03-12 18:37   좋아요 1 | URL
동명이인이예요.
아마 야무님이 말씀하시는 김명민은 이 책의 김영민이 아닌 것 같습니다.
맞다면 저는 그 김영민이 관심이 가더라구요.
근데 이 책의 저자는 넘 어려웠어요.
이 저자를 좋아하는 독자도 나름 있는 것 같긴하더라구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