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자와 장자에 기대어 - 최진석의 자전적 철학 이야기
최진석 지음 / 북루덴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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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자가 대중의 주목을 받았던 때가 있었을까?

없지는 않았다. 지금도 백수를 누리고 있는 김형석 교수나 고인이 된 안병욱 교수가 1980년 대 거의 혜성같이 나타나 독서계를 주름잡은 적이 있다. 하지만 엄밀히 말해 그분들은 철학의 대중화보단 그냥 잔잔한 수필을 썼던 분으로 더 각인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본격적인 철학의 대중화는 강신주란 걸출한 철학자가 한 10년 전쯤 나오면서부터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물론 그전이라고 그런 노력들이 없었겠냐만 우리나라 사람이 딱히 독서를 좋아하는 민족은 아니지 않는가. 독서를 좋아하지 않는데 철학이라고 좋아할 리도 없고. 그저 미미한 꿈틀거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도 그런 노력들이 꾸준히 있어왔기에 이만큼이라도 철학의 대중화를 이룰 수 있지 않았나 생각해 본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니 예나 지금이나 철학은 정말 별 볼 일없구나 싶다. 어쩌면 그리도 안 바뀌는지. 저자가 대학을 들어갔던 80년 대 초, 아버지가 철학은 해 뭐 하냐며 전공을 바꾸라는 걸 듣지 않았다고 한다. 그렇다고 저자가 열심히 철학을 공부했느냐면 그렇지도 않았다. 휴학과 복학을 반복하며 겨우 대학을 졸업했다. 


그런 걸 보면 핍박이 좀 심해서 그렇지 예나 지금이나 왠지 철학은 그래도 될 것 같다는 느낌적 느낌이 든다. 현실에 발을 딛고는 결코 못할 일이 그거 아닌가. 사실은 현실에 발을 딛고 해야 하는 일이 그것인데 철학과 현실은 아직도 괴리가 있어 보인다. 그나마 요즘은 인문학이 인기가 많다지만 편차는 있다고 본다. 이를테면 나이 먹고 은퇴하고 하는 거지 사느라 바쁜 젊음에겐 언감생심인 것 같다. 더구나 동양철학을.


저자의 이력이 좀 흥미롭다. 원래 저자는 서양철학을 전공했다고 한다. 그것도 그 어렵다던 독일철학을 미간을 찌푸리고 신경을 곤두세우며 공부를 했다고 한다. 바로 이 지점이 우리가 철학을 멀리하는 이유일 것이다. 전공자도 이렇게 힘들어하는 걸 안 그래도 미간 찌푸릴 일 많은데 공부까지? 어림도 없는 일이다. 공부가 축복이 돼야지 고난이 되면 안 되는 거 아닌가. 


그러다 저자는 장자를 읽다가 그 재미에 푹 빠졌다고 한다. 사람이 공부를 하던 일을 하던 그렇게 해야 한다.  재밌어서 하는 것. 옛날이야 먹고 사느라 내가 원하고 좋아하는 게 뭔지도 모르고 살아왔지만 지금은 21세기 아닌가. 아무튼 난 그렇게 많은 기대를 가지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자전이나 평전류를 좋아하고 동양 철학을 곁들인 에세이 냈다고 하니 흥미로웠다. 무엇보다 250쪽 내외니 마음만 먹으면 금방 읽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아, 근데 그게 아니었다. 책이란 얇다고 해서 금방 읽고, 두껍다고 해서 늦게까지 읽으라는 법은 없다. 얇아도 한참 붙들고 읽는 책이 있고, 두꺼워도 금방 읽는 의외의 책이 있다. 이 책은 바로 전자에 해당하는 책이다. 언제나 그렇듯 철학은 어떤 형식으로 풀어내도 가독성이 좋은 책은 아닌 성싶다.


그래도 첫 부분에서 다룬 저자의 자전은 흥미롭고 재미있게 읽힌다. 저자가 윤동주 시인을 좋아하는지 시를 인용하면서 글의 격을 높인다. 또한 전라도 사투리를 구사하므로 철학자의 글쓰기를 새롭게 하는데 좋은 예를 보여주기도 한다. 왠지 철학자는 말마따나 미간을 찌푸리며 묵직한 표준어만을 사용할 것 같지 않은가. 한마디로 저자의 글발이 좋다. 기라성 같은 글발 좋은 저자들이 수두룩 빽빽인데 (처음 읽어 본 나로선) 결코 기죽지 않은 저자만의 탁월한 시선이 느껴진다. 


하지만 그 글 속엔 죽음에 대한 의식, 무의식적 두려움이 깔려있다. 

어렸을 때 백혈병으로 죽은 큰 누나와 삶의 마지막 순간 곡기를 끊고 그런 지 8일 만에 돌아간 아버지를 생각하며 저자는 적잖이 삶과 죽음을 사유했겠구나 싶다. 개인적으로 삶의 마지막 순간에 곡기를 끊는 것이 제대로 된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곡기를 끊었기 때문에 죽는 것인지 아니면 죽으려고 곡기를 끊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그게 소위 말하는 자연사가 아닌가. 하지만 우리 주위엔 사고로, 병으로, 자살로 심지어는 타살로 생을 마무리하는 죽음이 얼마나 많은가. 자연사는 확실히 복된 죽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누군들 죽음이 두렵지 않을까. 하지만 우린 할 수만 있으면 죽음을 얘기하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발버둥 친다. 큰 누나가 어린 나이에 죽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로 큰 누나에 대해서는 아무도 얘기하는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그건 비단 저자만 그런 건 아니다. 우리 중 누구도 죽음에 대해 의식, 무의식적으로 죽음에 대해 말하길 삼간다. 사람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삶에 대해서도 말할 수 있다.      


아쉬운 건, 전체가 저자의 자전 에세이인 줄 알았더니 앞부분에서만 다루었고, 그 뒤로 또 다른 주제의 에세이가 이어진다. 갈수록 말랑말랑하고 내 스타일에 맞는 책만 읽으려고 하는 경향이 있는데 모처럼 뭔가 도끼로 두껍게 얼어붙은 강바닥을 깨는 느낌이다. 정신나는 문장들이 많아 얼마나 많이 줄을 쳐 가면서 읽었는지 모른다. 


특히 지식 수입국이라는 우리나라 지식 생태와 정치 지도자들에게 던지는 쓴소리는 좀 음미해 볼 필요가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의 권문세도가들이 어떤 우를 범하고, 왜 그런 우를 범할 수밖에 없었는가에 대한 저자 특유의 사유가 돋보인다. 그리고 그건 갈수록 이성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나라 정치 지도자들을 향해 있음을 굳이 숨기지 않는다. 철학 없는 정치, 경제, 사회, 문화가 가능할까. 당연 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우린 지금 철학을 공부해야 한다.  


중간중간에 그림이 들어가 있던데 따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것으로 보아 저자 자신의 작품인듯하다. 필치도 프로의 경지다.


책은 대체로 좋다. 나중에라도 다시 한번 읽고 보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책의 3분의 2 정도가 지나면 뭔 말을 하는 것인지 그 주제와 촛점이 좀 흐릿해지는 느낌을 받는다. 뭐 어려운 동양철학을 이만큼 썼다면 용서해 줄 마음도 없진 않지만, 이건 우리나라 저자들이 주로 많이 하는 실수는 아닌가 지적하고 싶다. 


그건 그만큼 뒷심 좋은 작가들이 그리 많지 않음을 반증하는 것도 같고, 아니면 반대로 집중력과 지구력이 다소 떨어지는 독자 탓일 수도 있다. 하지만 독자는 절대로 후자로 자신을 자책하지 않는다. 저자들은 어려운 걸 쉽게 풀어쓸 의무와 책임이 있다. 최후의 한 장까지 잘 쓰고 마무리하는 작가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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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는나무 2022-12-29 16:10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저도 내년에는 철학관련 책들을 읽어볼 계획을 잡고 있어요^^
막상 읽어보려고 도서관 쪽이나 서점을 기웃거려 보아도 이쪽 계통에 워낙 문외한이라 그런지? 쉽게 읽을 만한 책들이 눈에 띄지 않더라구요. 그래서 요즘 유튭 철학책 소개 코너도 보고, 일단 제일 눈에 익은 강신주 작가의 책이랑 도서관에서 빌려왔어요. 지금 읽고 있는 책 다 읽음 읽으려구요^^
뭐든 잡고 읽다보면 이 책, 저 책 확장되어가겠거니~~겁 먹고 미루던 분야의 책을 이제 시작해 볼 생각인데...이 책도 눈에 띄네요. 일단 담아가겠습니다^^
작가님이 눈에 익네요?
사유? 관련 다른 책도 내신 것 같은 기억이 떠오르네요?^^

stella.K 2022-12-29 20:06   좋아요 1 | URL
역시 부지런한 책나무님!
철학 좋죠. 이 책 괜찮은 책이라고 생각합니다.
뒤가 좀 어려워서 그렇지 뭔가 쨍하는 느낌이 있어요.
강신주만큼은 아니어고 좀 유명하긴 하죠.
내년에도 파이팅!!

호우 2022-12-29 16:2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저자들은 어려운 걸 쉽게 풀어 쓸 책임과 의무가 있습니다(강력히 동의합니다) 제대로 알면 더 싑게 설명 할 수도 있는 거 아닐까요? 😐

stella.K 2022-12-29 20:09   좋아요 1 | URL
ㅎㅎ 그러니까요. 글쓰기 강사는 쉽게 쓰라고 해 놓고
어떤 저자 어렵게 쓰면 모순이잖아요.
글을 어렵게 쓴다는 건 그만큼 설명이 안 되있다는 거잖아요.
뭐 이 책이 그렇다는 건 아니구요.
나름 잘 썼어요.^^

꼬마요정 2022-12-29 17:20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분도 책을 참 쉽게 쓰신 걸로 기억해요. 최진석님 책은 <탁월한 사유의 시선> 일부를 읽었는데요, 저도 철학 수입국이라고, ‘높은 수준의 생각‘은 수입해서 내면화 하면서 자기 것이라고 착각한다고 하신 말씀 공감했어요. 멋진 분이세요. 다만, 책은 재밌게 쓰시고 분명 쉽게 쓰시는 것 같은데 저는 잘 모른다는 게...ㅠㅠ
강신주님 너무 좋아요. 요즘 건강은 괜찮으신지 모르겠네요. 한 때 이 분 안 나오는 교양 프로그램 없었던 것 같아요. ㅋㅋㅋ

stella.K 2022-12-29 20:15   좋아요 2 | URL
맞아요. 재밌게 쓰시고 분명 쉽게 쓰시는 것 같은데 저는 잘 모르겠더라구요.
그 표현이 딱! ㅋㅋㅋ
그래서 읽으면서 별 다섯 개다 했는데 나중에 하나 빼게되더라구요.
그래도 뭐 어려운 동양철학을 이만큼 쓰면 잘 쓰는 거죠.
요즘 정치인들이 읽었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
요즘 정치인들 정상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말이죠.

yamoo 2023-01-02 18:5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최진석의 신간인가 봅니다. 다른 분 리뷰에서도 봤는데요...이거 조만간 한 번 훑어나 봐야 겠어요. 최진석의 책을 보고 실망하지 않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에요. 책은 매우 쉽고 가독성도 좋지만 철학 에세이 또는 시론이면 최소한 탄탄한 논증은 기본인데...좀 탁석산 책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철저히 보면 책의 단점이 더 도드라져 보일 거 같아 걍 빠르게 일독하곤 했는데, 이 책은 어떤지 저도 좀 봐야겠다는 생각이에요. 스텔라 님이 어렵다고 느낀 후반부만 좀 볼까 합니다..ㅎㅎ

stella.K 2023-01-02 19:04   좋아요 0 | URL
아유, 그럼 비추여요. 야무님 또 실망하실라. 이 분에 대해선 호불호 가 있는 것 같긴하더라구요. 에세이가 뭐 특별히 논리가 필요한가요? 자기 느끼는대로 쓰는거죠. 근데 정말 잘 가다가 뒤로 갈수록 뭔말을 하는건지 모르겠더군요. 아쉬웠습니다.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