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기 쉽게 풀어쓴 현대어판 : 나사의 회전 미래와사람 시카고플랜 시리즈 6
헨리 제임스 지음, 민지현 옮김 / 미래와사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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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을 현대어로 풀어 썼다는 '시카고플랜'이란 기획 시리즈 중 하나다.  

시카고플랜이란 1929년 시카고 대학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로버트 호킨스가 ‘철학 고전을 비롯한 세계의 위대한 고전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시키지 않는다’는 취지에 ‘존 스튜어트 밀’식의 독서법을 적용한 고전 철학 독서교육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이걸 처음 들었을 때 가히 악마적이란 생각이 들었다. 단 한 권의 고전도 제대로 읽기 어려운데 100권을 달달 외울 정도로 읽으라니. 미친 독서법 아닌가. 그런데 문득 존 스튜어트 밀식 독서법이라는 게 뭔지 궁금해졌다. 그건 첫째, 쉽게 쓰인 책을 읽는다. 둘째, 고전을 통독한다. 셋째, 고전을 정독한다. 넷째, 정독하며 필사한다는 것이란다. (오늘날엔 필사에 대한 의견이 좀 분분하다.) 즉 이 독서법을 로버트 호킨스는 자신의 대학교 학생들에게 적용해서 삼류대학에 지나지 않던 대학을 지금의 최다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는 명문 대학으로 만들었고, 그것을 일명 '시카고 플랜'으로 부른다는 것.    


그러니 솔직히 작품보다는 이 시리즈 자체에 관심이 갔던 것도 사실이다. 어느 때고 고전이 즐겁게 읽힌 적은 거의 없다. 배에 힘을 똭 주고 읽어도 고전을 면치 못하는 게 고전이다. 평소 쉬운 말로 나온 고전은 없는 걸까 불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실력 없는 목수가 연장 탓한다지만, 영원한 고전이라던 성경도 다양한 버전이 있는데, 고전이라고 그러면 안 된다는 법이 어디 있는가. 그 마음을 알아주듯 이렇게 풀어쓴 고전이 나와주니 반갑다. 


이번에 읽은 헨리 제임스의 <나사의 회전>은 평소 읽고 싶었다기보다 이 시리즈를 알고 싶어 읽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잘 나와 있고 이미 이 책을 읽은 사람들이 리뷰에서 자세히 다뤘기 때문에 따로 언급하지는 않겠다. 다만 헨리 제임스는 19세기 리얼리즘 소설의 대가이자, 20세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작가라는 정도는 알아 둘 필요는 있을 것 같다. 무엇보다 현대 심리 소설을 그중에도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했다는 정도는 알고 있어야 할 것 같다.  


분명한 건, 기존에 나와있는 이 작품의 번역본이 어떤지 나로선 비교불가이긴 한데, 이 책 자체로는 막힘없이 잘 읽히긴 했다. 그러니 존 스튜어트 밀 독서법이 추구하는 첫 번째 쉽게 쓰인 책을 읽는다는 것엔 부합하는 것 같다. 그렇게 첫 번째 단추가 꿰어지면 나머지도 어렵지 않게 따라올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 하나로만 보자면 재미는 별로 없다. 그게 추리나 심리 스릴러를 잘 즐기지 못하는 나의 한계일 수도 있겠지만 작가의 탓도 없진 않아 보인다. 이미 후대의 작가, 영화감독, 드라마 연출가에게 직간접으로 영향을 줬으니 그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을 즐기다 새삼 그것의 원조격인 작품을 읽고 감동하기란 쉽지 않을 수 있다. 솔직히 고전 대부분은 지루하지 않은가. 물론 그 지루함을 넘어서야 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고전 100권을 달달 외워야 졸업하는 대학이 있다는 것도 놀랍긴 하지만 또 달리 생각해 보면, 내가 언제 한 번 책을 그렇게 해지고, 뚫어지고, 달달 외워본 적이 있었던가. 그 졸린 성경도 지금까지 20번이나 채 읽었을까 싶다. (내가 그쯤 읽었다고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이 지구상엔 수십, 수백 번 읽은 사람도 많으니.) 지금도 여전히 읽고 앞으로도 계속 읽을 거긴 하지만 솔직히 좋아서 읽는 건 아니다. 물론 그렇게 읽다 보면 특별히 눈에 들어오는 구절이 있긴 한데 그런 걸 발견할 때마다 왜 이 구절이 지난번엔 눈에 안 들어왔을까 싶은 때도 많다. 이렇게 영원한 고전이라는 성경 한 권도 아무리 읽어도 달달 안 외워지던데 과연 졸업할 때까지 100권을 읽는다는 게 과연 가능할까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성공하든 못하든) 그렇게라도 해서 고전을 독파한다면 그것도 의미 있는 일이긴 하겠다. 고전을 읽으라는데 일부러 읽기는 쉽지 않다. 공부도 한때라고 이왕 해야 하는 거라면 가급적 한 살이라도 젊을 때 하는 게 좋겠지. 성경 구절을 외우는 것이 좋다고 해서 사춘기 시절 그나마 몇 구절 외운 적이 있다. 그건 정말 잊고 있다가도 생각나기도 한다. 하지만 성인이 돼서는 굳이 뭔가를 외우고 살 필요가 없다 보니 외우는 뇌는 점점 퇴화되었다. 더구나 들고 다니는 컴퓨터라는 스마트폰이 생기고부터는 외울 필요성을 더 못 느끼고 있다. 힘들이지 않고 열심히 하지 않는 건 공부가 아니다. 그건 금방 잊힌다. 봐라. 옛날 초등학교 때 전과 보고 베낀 숙제 치고 기억에 남는 거 하나 있나. 언제 적 얘기를 하고 있냐고 할지 모르지만, 우리가 초등학교를 졸업한 지 몇 년이 되었건 가장 빨리 교과 과정을 잊었다는 것에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지금까지 니의 공부와 독서를 반성해 본다. 어떤 작가는 까뮈의 <이방인>이 좋아 지금까지 몇십 번을 거듭해 읽었고, 각 번역본을 다 가지고 있다고 자랑하듯 말했다. 내가 어느 때 한번 그런 적이 있는가. 좋은 책인 줄 알면서도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손에 꼽을 정도다. 처음엔 어떻게 시카고 플랜처럼 읽을 수 있어했는데 공부엔 왕도가 없다. 성경이든, 고전이든, 자신이 좋아하는 작가 그 누구든 거듭해서 읽고 또 읽고 그야말로 책이 구멍이 나도록 읽는 것밖엔 다른 방법이 없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난 시카고 플랜을 지지하고 응원한다. 또 그런 의미라면 이 시리즈는 별 다섯 개를 주는 것이 맞는 것 같긴 하다. 하지만 내용은 지루할 수 있으니 읽을 사람은 신중하라는 의미에서 별 하나를 감한다. 계속 좋은 책들이 많이 나와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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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아 2022-12-08 16:15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시카고 플랜‘이라니 필사의 힘이 대단하긴 한가 봅니다. 생각해보면
영화에서 영미권 대학을 배경으로 한 장면을 보면 역사의 주요 사건들을 년도,날짜까지 줄줄이 외우는거 대단해 보이더군요. 그런데도 재독보다는 늘 새로움에 눈길이 가는 저는 아직 멀었나봐요ㅎㅎ 스텔라님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stella.K 2022-12-09 09:56   좋아요 2 | URL
필사에 대한 긍정과 부정론이 있는데 존도 그렇고
호킨스도 그렇고 옛날 사람이니 긍정하겠죠. 근데 동서양을 막론하고 거듭해서 읽어야 한다는 것엔 동의하는 것 같습니다. 저도 그래요. 새로운 책이 자꾸 나오니 눈이 그리로 돌아가요. 그래도 노력해 보려구요. ㅋ
잘 지내죠, 미미님?^^

서곡 2022-12-08 16:41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피씨서재로 들어오니 빨간 크리스마스시즌 스킨이 근사합니다!

stella.K 2022-12-09 10:01   좋아요 1 | URL
아, 맞아요. 알라디너들 PC로 잘 안들어 오시죠? 전 스맛폰과 놋북을 같이 쓰고 있어서 가끔 벽지를 바꿔 줍니다. 빨간 성탄벽지는 저도 첨 써 보는데 분위기가 나쁘지 않네요. 서곡님은 크리스마스 장식 안 하시나요?^^

서곡 2022-12-09 10:17   좋아요 1 | URL
네 저도 작성할 때는 피씨로 합니다 / 스킨 바꿨습니다 덕택에 업되어 ㅎ 연말 잘 보내시길요!

Falstaff 2022-12-08 20:2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헨리 제임스 좀 읽었다 하고 생각하고 ˝있었던˝ 인간인데요, 읽은 제임스 가운데 가장 짧은 분량이지만 가장 이해하기 힘든 작품이 <나사의 회전>이었습니다.
제임스의 원작도 그러하거니와 이걸 오페라로 만든 벤자민 브리튼을 감상하면서도.... 뇌가 완전히 뒤집히는 줄 알았습지요. 근데 이걸 막힘 없이 잘 읽으셨다니 부럽기 그지없습니다.
시카고 프로젝트는 벌써 90년 전 이야기니까 뭐 그리.... ^^;;

stella.K 2022-12-09 10:56   좋아요 1 | URL
그렇다는 말이 있긴하더라구요. 근데 이 책은 비교적 무난하게 잘 읽혀요. 하지만 재미를 추구하는 독서라면 비추에요. 추리 보단 스릴러라고 보는데 뭔가 있을것 같은데 결국 김 빠지게 끝나니까 재미가 없더라구요. 그럴바엔 히치콕 영화를 보는게 낫죠.
아, 이 시카고플랜이 90년된 거군요. 그럼 울나라엔 너무 늦은거네요. 그래도 기대는됩니다. 저는 고전울렁증이 있어서요.
근데 뇌가 뒤집히는군요. 😆

기억의집 2022-12-09 07:5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읽을 게 많고 볼 게 많아서 한번 이상은 잘 안 읽거든요. 과학책 빼고. 소설은 재독이 별로 없는데 우리 애들은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그래요. 그래서 나름 전문성을 발휘 하더라고요. 몇년 전에 핸리 제임스 책 읽을 때 나사의 회전 읽었어요. 나름 괜찮게 읽긴 했는데… 그렇다고 인상적이지 않었어요. 이 외 한 두편 더 읽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고전을 아예 안 읽기로 해서. ㅎㅎㅎ

stella.K 2022-12-09 10:57   좋아요 0 | URL
오, 영특한 자제를 두셨군요. 전 재독, 삼독하는 사람들 보면 부럽더라구요. 과학책이면 어떻습니까? 전 과학책 좋아하시는 기억님 부럽습니다.
맞아요. 고전은 고전하게 만드는 구석이 있죠.ㅠ

페크pek0501 2022-12-13 18:1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서재가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풍겨 아주 좋습니다. 눈에도 확 뜨이고...
탁상 달력, 저도 두 개 챙겨 놓았지요. 새 달력을 받을 땐 설렘이 있는 것 같아요.
내년에 또 어떤 일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모두에게 좋은 일만 가득하길 빕니다.
스텔라 님께도...

stella.K 2022-12-13 18:22   좋아요 0 | URL
ㅎㅎ 그렇죠? 전. 빨간색은 강해서 안 썼는데 써 보니까 괜찮네요.
빨간 거 좋아하면 나이들었다고 하는데…ㅋㅋ

그러게요. 전 올해 무탈한 편이었는데 과연 그러고 안도해도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무탈하면 행복한 거라고 하더군요.
언니도 한해 마무리 잘 하시고요, 평안하고 복된 새해 맞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