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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운을 벗은 의사들 - 우리가 모르는 곳까지 날아갔던 새들이 있었다
박종호 지음 / 풍월당 / 2022년 4월
평점 :
알겠지만, 저자의 전직은 의사다.
그야말로 어느 날 가운을 벗고 클래식 전문가가 되어 '풍월당'이란 클래식 전문 음반숍의 주인장이 되었다. 그것은 확실히 놀라운 행보고, 한때 인구에 회자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지금도 고민 많은 의학도들로부터 심심찮게 상담을 받는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내가 TV를 봐도 너무 많이 봤다는 생각이 든다. 가끔 의학 드라마나 영화들을 보면 의사들은 하나같이 잘 생기고 진지하지 않는가. 그래서 은연중에 의학도들은 그 어려운 공부를 선택한 만큼 선택에 후회가 없는 줄 알았다. 하지만 적지 않은 의대 청춘들이 자신의 선택을 고민하고 있었다. 하긴 그게 온전한 자신의 선택이겠는가. 대부분 부모의 권유나 강요가 더 많지 않을까. 어쨌거나 그들은 청춘이다. 흔들리니까 청춘이다.
저자도 고민이긴 할 것이다. 본인은 과감하게 의사의 길을 포기하고 자신이 원하는 일 하지만 남에게까지 그렇게 하라고 하긴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한다고 다 성공하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래도 후회는 남지 않겠지.) 안 그래도 저자는 오래전부터 의학도를 자녀로 둔 학부모들로부터 공공의 적이 되어왔는지도 모른다. 괜히 어렵게 의대 들어가서 공부 잘하고 있는 아이에게 쓸데없는 바람만 넣는다고 하지 않을까.
그런데 저자는 정말 그런 것에 아랑곳 않는 걸까? 그냥 저자가 선택한 길도 만만치 않다며 하던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해도 부족할 판에, 오히려 역사적 인물 중 의사 가운을 벗고 자신의 길을 간 사람을 찾아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물론 저자가 그러는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만 좋게 말하면 대범하고, 어찌보면 다소 선동적이란 느낌도 든다.
아쉽다면, 의학의 길에서 잠시 방황하다 뭔가의 경험이 오히려 그 길로 더욱 정진해 나간 사람 한두 사람쯤은 다뤄준다면 형평에 맞지 않을까. 마치 의사는 전혀 할 일이 못된다는 듯 하나같이 그 길에 등을 돌린 사람만을 다뤘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런 사람이 전혀 없진 않다. 저자가 다룬 슈바이처는 평생 가운을 벗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의사 말고도 여러 일을 함께 해서 솔직히 지구인 같아 보이진 않는다. 존경은 할 수 있지만 저자의 카테고리에선 참고가 될만한 사람은 아닌 성싶다.
게다가 인물들이 너무 행적 위주로만 다루고 그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떠나온 의사의 길을 훗날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는 다루고 있지 않다. 한마디로 이 책은 의학도면서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썼다기보단, 오히려 자녀에게 의사만이 길이라고 하는 부모가 읽으면 좋지 않을까 싶다. 하지만 단점은 있다. 그렇다면 여기 나온 사람만큼이나 성공할 자신 있다면 그렇게 하라고 강요할 수도 있지 않을까. 중요한 건 무엇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자체가 되는 것 아닌가.
아니면 나 같이 의학은 쥐뿔도 모르는 일반인들이 읽으면 좋을 듯하다. 솔직히 나는 읽으면서 새롭게 알거나 막연히 알았던 걸 구체적으로 알게 된 이야기도 많았으니까.
이 책을 보면, 의사 가운을 벗고 가장 많이 선택한 직업은 작가였다. 안톤 체호프를 비롯해 서머싯 몸, 모리 오가이, 미하일 불가코프, 아서 코난 도일은 소설가로, 정신과 의사였던 슈니츨러와 신경과 의사인 올리버 색스나 조너선 밀러는 저술가가 됐다.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이기도 한다. 그건 그 어떤 직업과도 겸해서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하다.
그밖에 대통령 되거나 혁명가의 길을 간 사람이 있고, 음악이나 교육자가 된 사람도 있다. 이렇게 저자가 다룬 사람들은 우리가 알만한 위인들이다. 한국인으로 딱 한 사람 서재필을 다룬 건 이례적이란 느낌마저 든다. 글이 너무나 평이해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책은 아닐까 싶다. (결코 폄하할 생각은 없는데) 위인 전기를 읽는 느낌이고, 조금은 단조롭다는 느낌이다. 저자의 책을 많이 읽어 본 건 아니지만 이제까지의 문체나 결이 좀 다르다는 느낌도 든다.
읽으면서 내내 든 생각은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일 나에게도 어느 의학도가 진로를 상담해 온다면 뭐라고 했을까를 생각했다. 더구나 나는 의학적 지식도 없는 사람 아닌가. 앞서도 말했지만, 차마 적성에 안 맞으면 그만두란 말을 하지 못할 것 같다. 사실 마음으론 너 하고 싶은 대로 하란 말을 굴뚝같이 하고 싶지만 말이다. 괜히 그랬다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인생이란 게 그렇게 모 아니면 도로 두부 자르듯 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그냥 적당히 두루뭉술하게 요즘 흔히 하는 말로 본캐니 부캐니 하면서, 요즘은 옛날과 달리 자기 전공도 살리면서 다른 일도 취미 삼아 하는 경우도 많으니 정 원하면 그렇게 하라고 하는 정도가 되지 않을까. 그리고 한마디 덧붙인다면, 결국 무엇을 선택해도 네가 하는 거고 그에 대한 책임도 네가 지는 거라며 적당히 마무리하겠지.
그래도 그 사람이 태어나 처음으로 진지한 고민과 선택을 하는 것이라면 난 당연 응원해 주고 싶다. 의사가 되는 것만이 길은 아니니까. 그런데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에게 도움이 될만한 책을 추천해 달라고 한다면 나는 이 책과 함께 A. J 크로닌이나 이국종 교수의 책도 읽어 보라고 권할 것 같다. 의사가 되는 것만이 길은 아니지만 의사도 분명 길은 길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