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를 주인공으로 한 두 편의 영화 

 

 

아주 가끔 울고 싶을 때가 있다. 그렇다고 특별히 울만한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럴 땐 슬퍼서 우는 것이 아니라 카타르시스라는 감정의 여과를 거치고 싶을 뿐이다. 그러려면 슬픈 영화를 보는 것도 한 방법이긴 하다. 그것도 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보는 것은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 할 수 있겠다. 


어찌하다 보니 개를 주인공으로 한 영화를 두 편 연속으로 보게 되었다. 두 작품 모두 좀 오래된 일본 영화다.

 

<우리 개 이야기>는 알고 봤더니 몇 년 전에 본 영화다. 다시 보니 여전히 재미있긴 하다. 몇 개의 에피소드를 연작으로 엮었는데 웃기기도 하고, 잔잔한 감동도 있지만 다소 산만한 느낌도 없지 않다. 그래도 볼만하다. 하지만 마지막 에피소드는 보지 않았다. 어느 집 반려견이 태어나서 죽기까지의 과정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는데 영화를 처음 봤을 땐 끝까지 다 봤다. 하지만 이번에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 땐 우리 집 다롱이(요크셔 테리어종 수컷)가 건강하고 아직 젊었을 때다. 하지만 지금 다롱이는 많이 늙어서 어느 때 죽어도 이상할 것이 없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괜히 다롱이 생각하고 감정이입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물론 다롱이는 아직 그럭저럭 잘 지내는 편이다. 게다가 저 <퀼>을 먼저 본 지라 견생의 마지막을 두 번씩 연이어 보고 싶지 않았다. 

 

<퀼>은 어떻게 찍었을까 싶게 정말 잘 찍은 영화다. 감독이 재일교포다. 이 영화는 흔히 맹인 안내견으로 키워지는 골든 레트리버 종의 일대기를 다뤘다. 알다시피 골든 레트리버 종이라고 다 안내견이 될 수 있는 건 아니다. 여느 개와 다른 양상을 보여야 안내견으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는다. 이를테면 주인이 불렀다고 해서 우르르 쫓아가면 오히려 탈락이다. 멀뚱멀뚱 뭐야, 왜 그러는데? 해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퀼은 일생동안 세 가정을 거친다. 태어난 집에선 5마리 중 하나로 태어났는데 특이하게도 옆구리 쪽에 새의 날개 모양을 한 얼룩이 있어서 그런 이름을 얻었다. 주인이 퀼의 이 멀뚱 거리는 특성 때문에 맹인 인내견으로 키워야겠다고 해서 훈련소로 보낸다. 그곳 규정에 따라 퀼은 파피 워커 즉 대리 가정에서 남은 1년을 보내고 첫 생일 날 다시 훈련소로 보내져 훈련을 받는다. 그 후 본격적인 임무 수행을 위해 어느 시각장애자의 가정으로 보내진다. 바로 이 만나고 헤어지는 과정이 슬프다. 그건 퀼뿐만 아니라 모든 개에겐 안 좋은 것 같다.


퀼은 임무수행을 위한 이 세 번째 가정에서 생을 마쳐야 한다. 그런데 그럴 수가 없다. 오히려 퀼이 주인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야 하는 입장에 놓인다. 이쯤 되면 서서히 눈물이 비어져 나오지 않을 수 없다. 그래도 퀼이 착하게 살아온 보상인지 퇴역 후 다시 떠나 온 두 번째 가정으로 보내져 거기서 무지개다리를 건넌다. 보기에 따라선 눈물샘이 제대로 폭발해 주최하기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언제 어느 때 볼 것인지 선택을 잘해야 한다. 울고 싶지 않다면 보지 않는 쪽이 나을 수도 있다. 어찌나 슬프던지 본지 며칠 지났는데도 그 잔상이 남아 지금도 생각하면 울컥한다.  


그걸 보면서 오래 전 지금의 집으로 이사 올 때 차마 데리고 오지 못한 마당에서 키우던 개가 생각이 났다. 그 개는 정말 동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잡종견이었다. 딱히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우리 집에 처음 왔을 때도 이미 한 번의 파양을 겪고 온 터라 여간해서 마음을 열지 않았다. 사람과는 눈도 안 마주치고 어디든 구석으로만 숨고 싶어 했다. 그래도 마음을 열 때까지 마냥 기다렸다. 그러고 보면 잡종견이라고 우습게 볼 일이 아니구나 싶었다. 잘 기억은 안 나지만 못해도 한 달은 족히 넘었던 것 같다. 일단 주인이 믿을만하다고 생각했는지 완전히 마음의 문을 열 고부턴 주인의 기척만 났다 싶으면 방방 뛰고 한바탕 난리를 피웄다. 딱히 예쁘게 생긴 것도 아니어서 정을 많이 주지도 않았다. 그런 걸 6, 7년쯤 키웠던 것 같다. 


그 사이 IMF 때문에 가세가 기울어 집을 팔아야 했다. 이사를 가면 이 녀석을 데리고 갈 수 있을지 장담할 수가 없었다. 그러려면 단독주택을 구해야 하는데 시골로 가면 모를까 수중에 쥔 돈 가지곤 서울에서 그런 집을 구한다는 건 꿈같은 일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우리 집을 산 사람이 집을 새로 지을 목적으로 사긴 했지만 당장은 그럴 생각이 없으니 전세 기간 2년을 더 살아도 좋다고 해서 더 살았다. 녀석에겐 천운 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적어도 2년 동안은 녀석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우리로서도 잘된 일이었다. 


하지만 인간은 참 무책임한 동물이다. 닥치면 어떻게 되겠지 싶었는데 그게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사 날은 하루하루 다가오는데 녀석을 어떻게 해야 할지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도 궁하면 통한다고 고맙게도 인천에 사는 막내 이모네가 마당이 있으니 데려가 키우기로 했다. 개를 보내기로 한 날 이모와 이모부가 아침 일찍 우리 집에 왔다. 끌려가는 녀석을 차마 볼 수가 없어 나는 내다보지도 않았다. 그저 좋은 주인 만나 가는 것에 위안을 삼으려 했지만 그거야 내 생각일 뿐 녀석은 또 파양 당하는 것으로 알 테니 그 배신감이 어땠을지 인간이 참 죄가 많다 싶었다.


녀석이 없는 마당을 보며 잘 있겠거니, 잘 살겠거니 했다. 그런데 녀석의 운이 그것 밖엔 안 되었던 걸까, 그렇게 이모네로 간지 하룬가 이틀 만에 이모가 아침 일찍 전화가 왔다. 개가 집을 나갔다는 것이다. 엄마는 그 즉시로 이모네를 갔고 녀석이 옛 주인의 목소리를 듣고 혹시 어디 숨어 있다 나오지 않을까 싶어서 하루 종일 머플러를 흔들어 가면서 찾았다고 한다. 옛 주인의 냄새를 좀 더 널리 퍼뜨리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그렇게 미친 듯이 찾았지만 그땐 개장수가 아직 거리를 활보하고 다니던 때라 모르긴 해도 그들에 의해 붙잡혔을 거란 추측만 했다. 이모는 준비도 없이 개부터 데려 오는 게 아니었다고 자책했다. 뒤늦게 이제 목줄을 사다가 해 줘야지 했단다. 그런데 지하에 세 들어 사는 사람이 음식 배달을 시키는 과정에서 부주의로 대문이 살짝 열린 틈을 타고 탈출했다는 것이다. 녀석은 어떻게든 이 집만 탈출하면 우리를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 얘기를 들으니 마음이 더욱 아팠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신이 가장 잘한 일이 있다면 그건 인간을 위해 개를 만드신 거라고 생각한다. 물론 한쪽에선 개의 조상은 늑대고 오랜 세월 녹대를 길들여 온 사람이 개를 만들었다고 주장할 것이다. 어떤 게 맞든 그 모두는 어쨌든 개는 사람을 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 인간은 개를 어떻게 대해 왔을까 생각하면 할 말이 없다. 본의 아니게 책임질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기도 하니 말이다. 개를 끝까지 책임질 수 없다면 키우지 않는 것이 맞다. 인간이 쳐해진 운명에 따라 개의 운명도 달라져야 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이다. 마땅한 주인을 만나지 못해 버려지고 안락사당하는 개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떻게 해야 개와 사람이 공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근데 이 글을 쓰다 보니 우리나라가 어느샌가 모르게 반려견을 키운다는 명목하게 외래종에 점령당했다는 걸 알았다. 예전에 우리 잡종견은 너무 흔히 볼 수 있는 개였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사라졌다. 시골은 좀 남아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많던 잡종견은 어디로 사라졌을까. 아무래도 서울은 점점 마당이 사라지고 있으니 그것과도 연관이 있어 보이기도 한다. 혹시 본 사람이 있다면 제보 바란다.      


두 영화 모두 개가 정말 애잔하고 사무칠 정도로 사랑스럽다. 울고 싶은 날 있으면 이 영화를 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댓글(1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scott 2020-12-11 2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는 영화 드라마 소설로 눈물을 흘리지 않은데 강쥐나 멍멍이가 주인공이면 심장이 뒤흔들려요. 키웠던 개를 두번 하늘나라로 보낸이후 두번다시 품속에 강쥐를 안아주질 못합니다. 잡종견 지능 엄청 높은데 ㅋㅋ 외래견이 늘어난건 펫샵 오너들이 프리미엄을 더 받을수 있어서라고 ,,토종이 좋은데 ^ㅎ^

stella.K 2020-12-11 20:56   좋아요 0 | URL
아, 그 이유도 있겠네요. 프리미엄. 거기다 서울은 마당이 점점
없어진 이유도 있다고 끝까지 우기고 싶은.ㅋㅋ

많은 사람이 스콧님과 같은 이유에서 다시 안 키운다고 하죠.
하지만 이제 개의 수명도 많이 늘었고,
쓰진 않았지만 저도 다롱이 이전에 말티즈를 15년 가까이 키우고
천국 보내줬는데 키우는 동안은 정말 행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슬픔 때문에 행복을 포기하지 않으셨으면 하는데 좀 심하신가 봐요. 아웅~
개는 키워 본 사람만이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반려 가정을 찾지 못해 버려지는 개를 생각하면 말이죠.
저는 능력만 되면 다롱이 이후에 더 키워보고 싶긴한데
지금으로선 장담할 수가 없네요.

아, 정말 토종 잡종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어요.ㅠㅠ


hnine 2020-12-11 21:44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개는 정말, 사람이 주지 못하는 것을 주는 생명체 같아요.
어릴 때 위에 말씀하신 잡종견과 십년 이상 한집에 살다보니 그야말로 한 식구였어요. 그 개가 명을 다하고 죽자 아버지께서 산에다 갖다묻어주시고 가끔 묻은 곳에 가보기도 하셨지요.
주인 없는 개 안락사 시키는 문제는 정말 아니라고 봐요. 인간이 무슨 권리로 살아있는 동물을 맘대로 죽일수 있는걸까요.

stella.K 2020-12-12 19:49   좋아요 1 | URL
그런 일이 있으셨군요.
저의 아버지도 살아생전에 개를 참 좋아하셨어요.
그런데 그때는 반려견이란 인식이 없던 시절이라
h님 아버님처럼은 못하셨습니다.

진짜 안락사 문제는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어요.
안락사를 안 시키면 폭증하는 개를 감당할 수가 없다고도 하니.
끝까지 책임지는 의식이 좀 더 필요한 것 같아요.

cyrus 2020-12-12 08:0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도시보다 시골에 잡종견이 많이 있을 거예요. 그런데 문제는 시골 개들은 보신탕 재료가 될 가능성이 높아요.

stella.K 2020-12-12 20:50   좋아요 0 | URL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근데 어느 때가 되면 씨가 말라서 보호하고 복원해야 한다고
할 날이 올 것 같아. 참 우리나라는...ㅠ

페크pek0501 2020-12-12 19:18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렇게 슬픈 글을 쓰시다니... 안 그래도 코로나19로, 연말로 마음이 편치 않은 때인데요...

그리고 스텔라 님이 서재의 달인에 선정되지 않은 게 이상하네요. 이번 해에 글을 적게 올리셨나요?

stella.K 2020-12-12 19:57   좋아요 2 | URL
ㅎㅎ 미안해요. 저 영화 정말 보지 마세요.ㅠ

전 안 될 줄 알았어요. 갈수록 게을러져서 쓴 게 몇편 되지도 않아요.
선물이 좋으면 열심히 썼을 것 같은데 딱히 꼭 받아야겠다는 의지도 없고.ㅋ

희선 2020-12-13 02:1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죽은 사람을 기다리는 개 《하치 이야기》도 무척 슬퍼요 그런 개가 많은가 봐요 어쩌다 헤어졌는지 모르겠지만, 아주 먼 곳에서 살던 집을 찾아간 개도 있다고 하지요 개는 사람한테 마음을 다 주는데 사람은 그러지 못하죠

이 글 보는 것만으로도 슬프네요 함께 살던 개를 떠나 보내는 사람 마음도 무척 아프겠습니다


희선

stella.K 2020-12-13 11:49   좋아요 2 | URL
맞아요. <히치 이야기>도 있었죠.
저도 본 것 같긴한데 내용이 기억이 안 나네요.
보면 기억이 날 것 같은데...ㅠ

정말 마음이 아파요. 그래서 계속 돌봐주고 싶은데
저희는 다롱이가 우리가 돌봐줄 수 있는 마지막으로 반려견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저의 어머니도 이미 노령이시고, 저도 개를 전적으로 돌볼만큼
아주 건강한 편은 아니라 앞으로 다른 개를 맡아 키울거란
장담을 못하겠어요. 개는 정말 돌봄이 필요한데...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