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생긴 배우는
연기를 못한다는 선입견이 있어 온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잘 생긴 사람이 워낙에 많은 세상이고 그에 따라 잘 생기고 연기도 잘하는 배우들도 많은
세상이 되었다. 그래도 조인성이 그 존재감을 알리기 시작할 때만해도 그도 그 선입견에서 자유롭지 못하던 때가 있었다. 그래도 이럭저럭 그도 연기
인생 20년을 바라보지 않을까? 그러는 동안 나름 안정감 있는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아무리 못하는 거라도 만 시간만 들이면 전문가가 된다는데
이 만 시간의 법칙이 그도 비껴가지 않는 것 같다. 물론 연기에서의 만 시간은 그냥 상징적인 숫자에 불과하다. 20년을 바라보면서 연기가 늘지
않는다면 연기 인생을 접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이 자신의 전성기인 양 좋은 연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 영화에서의
조인성은 자신이 맡은 역을 나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고 생각한다. 사실 전쟁 영화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높은 평점에도 불구하고 조금
보다가 여차하면 보는 것을 그만 두려고 했다. 게다가 내가 늘 문제를 제기해 왔던 감독 각본 영화다. 물론 나 하나 감독 각본 영화에 목소리를
높인다고 변할 우리나라 영화계가 아니라는 것쯤 모르는 바는 아니나 그래도 관객으로 그런 소리 하나 못 내서야 관객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더구나
요즘 연거푸 그런 영화를 봐 왔던터러 불평조라도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나쁘지 않았다. 이미 많은 리뷰어들이 전쟁씬을 칭찬하던데 그도 나쁘지 않았다. 그래도 지나친 CG 티는 이젠 뭐라고 할 수도
없겠지? 슬로모션 등 여러 기법 등을 사용해서 나름 우아하면서도 잔인하게 잘 보여줬다.
<안시성>의 한 장면
하지만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던 건 양만춘으로 분한 조인성의 검게 그을린 피부다. 평소 남자치고 하얀 피부를 자랑하는 조인성이 일부러 까맣게 태웠을 리는 없고
분장의 덕을 본 것 같다. 스틸컷이 없어서 그런데 거의 엔딩에 다다르면 양만춘이 힘겹게 신궁을 이세민을 향해 조준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에서 까맣게 그을리다 못해 온통 얼굴을 뒤덮은 주근깨(?)가 보이는데 참 인상적이다. 화살은 이미 다 떨어졌고, 양만춘도 하도 화살을 쏴
손바닥 피부가 다 까져 피가 나올 정도다. 게다가 팔도 아플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1차 조준을 하려다 멈춘다. 그도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았겠지. 가장 믿거라 하는 부하를 잃었고, 여동생도 죽었다. 더구나 수세는 열세다. 자신이 잘못하면 안시성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그래도
고구려의 신이 자신을 버리지 않으면 신궁으로 이세민을 죽일 수 있을 거라 믿고 다시 한번 활시위를 장전한다. 그리고 그건 정확히 이세민의 눈을
맞췄다.
양만춘이 장군으로
열세의 군대를 이끌고 2만의 당나라 군대를 이길 수 있었던 건 힘이 좋아서만도 아니다. 전략을 잘 세웠을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으로부터 신망을
얻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양만춘에 의해 한쪽 눈을 잃은 이세민은 그에게 이길 수 없었고, 3년 뒤 죽으면서도 고구려 군대와는 싸우지 말라는
유언을 남기고 죽었다니 새삼 놀라웠다. 우리나라는 옛날 고리짝 때부터 이웃 나라 눈치를 보며 사느라 피곤하게 살아 온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짓밟혀 나라로서의 형체도 없을 것만 같은데 꼭 이렇게 죽을 듯 죽을 듯하면서도 죽지 않는다. 그게 오늘 날까지도 이른다. 참 희안한 나라다.
그게 조선 시대도 아닌 무려 고구려 시대 때에도 보여진다.
조연들의 연기가
나름 좋다. 조금 더 양만춘의 싸움 전략을 자세히 보여주면 좋을 것 같은데 그냥 아쉬운데로 만족하기로 했다. 조인성이 영화든 TV든 자주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마음 속으로나마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