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감독: 정재은
출연: 나카야마 미호, 김재욱 외
나비잠이 뭔가했더니
아기가 팔을 활짝 펴고 자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이 단어는 실제로 국어사전에 나온 말이다. 혹시 이 영화도 원작이 있나 싶어 검색을 해
보았더니 같은 이름의 책은 몇 권 발견이 되지만 원작으로 보이는 책은 없는 것 같다.
이 영화는
소설가이면서 대학 강사인 료코(나카야마 미호 분)와 일본 문학을 좋아해 일본에 유학해 공부하는 그녀의 제자인 찬해(김재욱 분)와의 사랑을 그린
영화다. 찬해가 료코의 잃어버린 만년필을 찾아주면서 가까워지고 료코가 팔이 아파 구술로 소설을 불러주고 찬해는 그것을 타이핑 해 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둘은 가까워 진다. 물론 이때만해도 둘은 스승과 제자,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일뿐 그리 깊은 사이는 아니다. 이들이
결정적으로 가까워진 건 알츠하이머를 앓게된 료코가 불안한 심리를 보일 때 그런 그녀를 찬해가 달래 주면서부터다.
어느 날 찬해
옆에서 어린 아이처럼 곤하게 자는 료코가 양손을 베게 위에 벌리면서 자자 찬해가 그것을 한국말로는 '나비잠'이라고 또박 또박 가르쳐 준다.
그러니까 이 영화는 얼마 후면 잊혀지고 헤어질 두 남녀의 안타까운 사랑을 일본 특유의 영화적 감성으로 스크린에 담았다. 모르고 보면 이게 일본
영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주인공이 '오겡끼데스까'로 유명한 영화 <러브 레터>의 나카야마 미호고, 배경도
일본이며 조연으로 나오는 사람도 일본 배우들이다. 하나 다른 것이 있다면 얼마 전에 종영한 드라마 <손>에서 퇴마 신부 역을
맡은 김재욱만이 한국 배우다. 그나마 그가 맡은 역할도 일본 유학생 역이다.
하지만 이 영화
감독은 우리나라 사람이다. 일본, 한국 합작 영화로 나오는데 보통은 감독이 한국 사람이라면 한국 상황에 맞게 연출했을텐데 제작을 일본에서 했던
걸까? 모든 것을 일본에 맞췄다.
영화가 어찌보면 불행하고 안타깝고, 칙칙할 것 같지만 의외로 그렇지 않다. 예정된 그때가 오더라도 사랑하는 이 순간만큼은 서로에게
그리고 자신에게 최선을 다하는 의지도 보인다. 그러나 역시 그것에도 한계는 있어 보인다. 하지만 그것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고 (약간의
오해가 있긴 했지만)각자의 길을 간다.
꽤 지적인 인상을 풍기면서 푸르고 밝은 이미지다. 특히 인상적인 건 일본의 집이 그렇듯 료코의 집 맨위층 다락이면서 그녀의 서재다. 거기에
적지 않은 책들이 빼곡히 꽂혀 있는데 어느 날 찬해에게 책을 색깔별로 맞혀 달라고 부탁한다. 그건 아마도 그녀의 병과도 관련이 있는 부탁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하다. 그렇게 색깔별로 책장이 정리하니 그도 꽤 볼만하다. 그리고 그녀의 집은 나중에 동네에 기증되어 동네 도서관이 되는데
그도 꽤 괜찮겠다 싶다. 도서관이 꼭 크고 거창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요즘 동네 책방이 뜨고 있는데 동네 도서관 역시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책 좋아하는 사람이 보면 좋아할만한 영화다.
사람이 무엇이든 자기 전문분야가 있으면 나이들어서도 꽤 있어 보인다. 그것이 문학이나 의학이면 더 그래 보인다. 물론 이것은 순전히 나만의
생각이다.
간혹, 병든 사람을 돌보다 연인관계가 되는 영화가 있다. 얼핏 줄리아 로버츠가 나왔던 우리나라 제목으론 '사랑을
위하여'란 영화가 생각난다. 나카야마 미호는 20년 전의 풋풋함은 없지만 그 나름대로 곱게 나이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크게 기대하지 않고 보면
또 나름의 잔잔한 감동을 느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한 번 더 봐야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