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망하지만 자신 신고, 고백합니다! 키스 해링, 예술계의 악동으로 유명한 그의 이름을 Kiss Haring으로 스펠하는 줄 알았네요. 하물며, 그가 어떤 외모의 아티스트인지 어찌 알았겠어요?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그의 작품이 성황리에 전시 중이라기에 궁금해서 웹서핑하다가 방금 알았어요. 키스 해링은 Keith Haring이라고 적고, 그는 딱 봐도 자유로운 기질의 예술가처럼 옷 입고 헤어스타일 꾸민다는 것을요. '예술의 폐쇄성'에 회의적이었던지라,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예술'을 부수고 거리로, 사람들에게로 가져왔다는 그 행적과 어울리는 이미지의 외모입니다.


사진출처: ticket.interpark.com



이왕 무식을 고백한 김에 더 나아가 보겠습니다. 저는 "키스 해링 탄생 60주년 기념 전시"라기에 그가 여전히 활동 중인 아티스트일 거라고 추측했는데, 아니었습니다. 그는 이미 20세기 말 타계했네요. 그러니 이 무식을 보충하고 실제 키스 해링의 아이콘을 비롯 작품을 직접 보기 위해서라도 꼭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 다녀와야겠습니다! 3월 17일까지라지만 이왕이면 1월 중, 평일 관람객 적을 타이밍을 노려서! 키스 해링과 친해지고 오기!



사진출처: ticket.interpark.com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고양이 손님
히라이데 다카시 지음, 양윤옥 옮김 / 박하 / 2018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하이쿠 (haiku)"를 검색해봅니다. 원했던 답만큼 시원스러운 답변은 아니어서, 여전히 궁금합니다. "하이쿠 소설"이 뭔지. 히라이데 다카시가 쓴 『고양이 손님』이란 소설을 다 읽었는데도 분위기 파악이 안 되는 겁니다. 평론가들과 번역가가 쏟아낸 말의 향연 중에 "이 작품은 일종의 하이쿠 소설이다!"라는 표현이 있어서 찾아본 게지요. 다 보여주지 않고, 절제된 언어와 표현으로 계속 몸체를 감추려 하면서 유혹하는 소설이라고 제 식대로 정리해버렸습니다.

제목보고 짐작은 했는데, 『고양이 손님』에는 고양이를 제 자식처럼 예뻐하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네, 실은 그 주인공 부부에게는 자식이 없습니다. 게다가 그 이뻐하다 못해, 별명까지 '딸랑이'로 붙여준 고양이 '치비'는 그들의 고양이도 아닙니다. 같이 세 사는 처지의 가족에게 입양된 하얀 고양이이거든요. 그래서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고양이 손님』일 것입니다. 제목이. 손님으로서의 '치비'는 도도하게, 애교 부리는 법도 없이 부부의 집을 들락이면서 마련해 준 잠자리에서 잠도 자고 갑니다. 부부는 '치비'더러 '미인'이라고 하며, 유난히 아름다움에 감탄하면서도 그 도도함이 못내 서운하지요. 그래서 고양이는 오로지 자기 주인 앞에서만 그 모습을 다 드러내는 법이라며, 주인 아니라 옆집 사는 이웃임을 자위하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 줄거리만 놓고 보면, 특별할 게 없는 내용 - 세 들어 살게 된 집에서 다른 세입자가 키우는 고양이가 제 집에 드나들다 보니 정이 옴팍 들었다가, 고양이가 죽었다 해서 많이 슬퍼한 내용- 인데도, 읽고 나면 가슴 한 수석에 아련한 감동이 남습니다. 왜 그럴까..... 곰곰 생각해보니, 지칭하는 단어가 고양이일 뿐이지 소설에 등장하는 부부는 고양이 '치비'를, "운명"이라는 단어를 번복해 쓰면서 하늘에서 보내준 자기 아이들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처럼 대하거든요.

'왔다, 돌아갔다'라고 했던 말투도 어느새 '돌아왔다, 가버렸다'라는 말로 바뀌었다. 둘이 함께 외출했던 날에는 집에 돌아와 현관문을 열면 어두침침한 현관 앞 작은방에 앞발을 가지런히 맞추고 부모 기다리던 아이처럼 맞아주는 일도 있었다

- 우리 고양이지.

라고 말하는 아내는 우리 고양이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한층 더 자신에게 보내준, 아주 먼 곳에서의 선물이라고 굳게 믿는 기색이었다

『고양이 선물』 85쪽 본문

소설 속 화자인 '나'보다도, 그의 '아내'가 고양이 '치비'에게 보이는 감정의 복잡한 선들은 분명 아기 키우는 엄마의 그것입니다. "나는 공연히 껴안으려 하지 않아. 치비를 자유롭게 놀다 가게 해줄 거야."(48쪽)면서 치비가 놀고 쉬고 먹을 수 있는 온갖 편의를 제공하며 예뻐합니다. 심지어는 밥상 앞에서 '갯가재'의 살을 발라 입에 넣어주기까지 합니다. 그녀가 입에 '갯가재' 넣어주는 속도에 발끈한 고양이가 본능적으로 자신의 손을 물자 "이제 절교야!"하면서 화를 내는 모양새가, 꼭 '중2병' 아이 키우는 엄마의 모습을 닮았습니다. 하루는 그 '아내'가 '치비'를 위해 전갱이를 구워 놨는데 치비가 먹고 가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차에 치여 죽었다더군요. 그들은 원래 '치비'의 주인이었던 이웃을 찾아가 조문하고, 꽃을 공양하겠다고 성묘를 부탁합니다. 하지만 이웃집은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데요. 다시금 '치비'를 자식으로 생각하는 그 부부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집 부인의 입장에서 보면, 내 자식이나 다름없는 아이를 잃고 슬픔에 잠겨 있는 참에 알지도 못했던 그 아이의 또 다른 반쪽의 삶을 갑작스럽게 코앞에 들이댄 것이다. 성묘랍시고 내 집 정원에 불러들여 또 한 명의 '엄마'가 울기 시작하는 모습은 차마 지켜볼 수 없다

『고양이 손님』 126쪽

이제서야 어렴풋이 이해됩니다. 소설의 말미에서 주인공 부부는 치비가 죽은 지 10년이 지나도록, 치비가 죽은 날짜를 기억하고 슬퍼하는데 갑자기 3월 11일이 아니라, 3월 10일에 치비가 죽었다는 계산을 하더니 그에 집착하거든요. 3월 10일 밤 10시부터 11일 밤 11시까지, 죽기 전 치비가 "마지막 하루를 평소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보냈"을 텐데 그 하루가 어땠는지 궁금해합니다. 그러면서 소설이 끝납니다. 허무했어요. 처음엔. 그러나 다시 곱씹어 보니, '치비'를 "하늘이 보내준 선물" 혹은 "운명," 다시 말해 자신들의 자식으로 생각했던 부부에게는 고양이가 죽기 전 하루 동안 무엇을 했는지 10년이 지났어도 궁금해질 터이겠지요. 『고양이 손님』은 그래서 부제를 '아이 없는 부부가 자식처럼 사랑한 고양이'로 지어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댓글(2)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cyrus 2019-01-01 14: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

2019-01-01 22:19   URL
비밀 댓글입니다.
 

1943년, 세상에 나온 이후 전 세계 너무도 많은 이들이 사랑하는 "어린 왕자 Little Prince." 그 숱한 이들이 공유할지라도 왠지 내게만 특별한, 하나뿐인 그 이름, 어린 왕자. "어린왕자"를 애니메이션으로 옮겼건, 미술 작품의 소재 삼었건 어린왕자는 도도할 만큼 원형의 모습을 간직합니다. 적어도 어떤 이에게는.



압구정 K현대미술관에서, 야심 차게 미디어아트를 통로 삼아 "어린왕자"에게 다가가는 길을 열었다고 하네요. 이미 많은 관람객들이 인스타그램에 화려하고 예쁜 사진들을 올렸기에, 가보기 전부터 머릿속에 그림은 그려집니다. 어떤 분위기의 전시일지. 초대권 2장에 더해, 네이버로 1장 더 예매하여 방문했습니다. 20% 할인 혜택을 받았습니다.


입장은 폐장 1시간 전인 오후 6시까지 가능합니다. 건물 1층, 엘레베이터에 이르는 짧은 동선에서도 "나의 어린 왕자에게" 전시회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습니다. 엘레베이터를 타고 5층 버튼을 누릅니다. 5층에서 시작해서, 4층에서 관람이 끝나는 구조라고 합니다.



5층 전시에 소개된 미디어 아트 작품들은 "본질"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고 팸플렛에 써 있네요. 프랑스 출신 케빈 브레이(Kevin Bray), 마찬가지로 프랑스 Pierre Pauze, 중국 Yuehao Jiang, 한국 한상임, 정운식, 구지은, 콜롬비아 Carlos Gomez, 영국 AJ Lass의 작품을 만날 수 있습니다.


사실, "인생샷 건져왔어요," "인생샷 찍으로 고~!" 식 블로그 리뷰를 이미 읽은지라 짐작은 했지만, 전시회장 들어서자마자 의자며 전시장 바닥에 십수벌 굴러다니는 패당과 코트에 깜짝 놀랐습니다. '관람객들이 벗어 놓은 것일까. 아니면 이 자체가 설치미술일까?'하는 어리석은 궁금증이 3~4분은 계속 피어오를만큼 벗어놓은 잠바들은 마치 허물벗은 뱀껍질같이 놓여 있었지요. 이내, 궁금증은 "외투를 치워주세요. 바닥에 두시면 안 됩니다!"라고 고음으로 안내하는 "K현대미술관"측 직원 덕분에 해소되었지만요. 그렇다면 왜 관람객들은 죄다 외투를 바닥 혹은 의자 위에 놓아두고 가뿐한 몸으로 관람을 하는가? 짐작하시겠지만, 바로 그것입니다. 사진! 인생샷!

저 역시, '그래도 여기까지 와서 사진은 찍고 가야지'의 마음으로 담느라 바빴습니다. 작품 설명은 읽는다고 빼놓지 않고 열심히 읽었는데, 아무래도 현학적이고 추상적인 언어가 어려워서 기억에는 남지 않네요. "Shadow of Chandelier"의 작품 설명은 아래 사진에 맡기겠습니다.




5층 작품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것은 풍선껌 오브제를 선택한 구지은의 작품입니다. 씹고 버린 볼품없이 제각각인 분홍색 풍선껌을 모아 샹들리에를 만들었더니 멀리서 보면 꽤 화려합니다. 가까이 들여다보면, 씹다버린 껌들의 집합인데 말이죠. 작가는 이를 '과대자기(Grandiose Self)'라는 정신분석용어로 설명합니다. 보톡스, 필러로 부풀어 팽팽한 뺨처럼 부푸는 과시적 자기애 말입니다.




"나의 어린 왕자에게" 전시에 왔다면, 이 스팟에서는 꼭 사진을 찍어가나 봅니다. 기다리다가 다른 이들이 계속 사진 찍으러 교대해 "어린왕자" 옆을 채우기에 저는 정작 사진 못찍고 지나쳤습니다. 정운식 작가 작품이었습니다. 볼트와 너트를 이용해 금속판을 겹겹 쌓아 입체적으로 사물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어린왕자, 여우, 선인장 등을 만들어 세웠습니다.


마찬가지로, 꼭 사진 찍고 지나가야 하는 4대 Spot(4군데에서 사진 다 찍어 인스타에 올리면 goods받아가는 이벤트 진행중인지라, 다들 여기서 찍으시네요) 중 하나로, Yaloo의 네온 존(neon zone)도 놓칠 수 없겠네요.


이제 4층으로 내려갑니다. 내려가기 전에 다들 이 대형 벽화 앞에서 샷 찍으시더군요. 어린왕자가 금발이었던가? 달을 바라보는 어린왕자의 뒷모습에 갑자기 엉뚱한 궁금증이 생깁니다.

4층에서는 어린왕자의 행성 여행 루트를 따라가도록 미디어아트 작품을 전시했습니다. 김재욱이 만든 환상적 공간에서 그림자 놀이를 하다보면, 잠시 시계가 멈춘 기분이 듭니다. "혼자 부유하며 자기 자신을 되짚어 볼" 수 있게 유도하는 공간이랍니다.



큰 실수를 했군요. 전시회 안내 팸플릿을 받고도, 군중심리에 이끌려서 전시 동선을 따르지 않고 "Rose room"으로 직행했습니다. 전시장에서 나와서 보니 Adem Elahel, Golgotha, Raphael, 홍유영의 작품을 아예 보지 못했습니다. 대신 Rose room에서 참 오래도 머물렀다지요. 왜 이 영하, 한파 날씨에 외투를 5층에 벗어 놓고 관람하는지 알겠습니다. 인생샷 때문이지요. 이 리뷰에 계속 등장하네요. 그 단어, 인생샷!


Moon Room도 인기였어요. 계속 기다려도 차례가 쉽게 안 나서, 다른 관람객 실루엣이 등장하지 않도록 Rose Room과 반씩 걸쳐서 한 장 찍었습니다. 이런 느낌입니다.



윤여준은 백남준처럼 브라운관을 이용해서 "어린왕자"의 보아뱀 이미지를 펼쳐보였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Simpson도 나오고, 프랑스 친구 Baba Papa네 가족과, Tin tin(땡땡? 팅팅?틴틴?), 플레이보이 모델이 보아뱀 모자 속에서 나오네요.



댓글(5)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ransient-guest 2018-12-31 06: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서울엔 공연도 전시도 많아서 좋겠어요. SF엔 고갱전시회가 한창이고 3월이면 모네가 온다고 하니 둘 다 꼭 가볼 생각입니다.

얄라알라 2019-01-01 08:34   좋아요 0 | URL
고갱과 모네라니!
전 미디어아트 전시보다는 고전적 작품들 옛 스타일 전시에서 더 감흥이 큰지라 듣기만 해도 멋지네요^^ SF 날씨는 어떤가요?^^

transient-guest 2019-01-01 10:36   좋아요 0 | URL
영도 위의 날씨지만 춥습니다 저도 솔직히 모던아트는 잘 이해하지 못해서 고전이 더 좋습니다

AgalmA 2019-01-02 00:4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굿즈들 너무 탐나네요♥0♥
얄라알라북사랑님 공연전시 글 특히 즐겁게 보고 있답니다. 올해도 변함없이 즐기시겠지요^^?
저는 점점 움직이기 귀찮아서 게으름을 부리고 있는데 님의 이런 점 존경스럽습니다/

2019-01-02 01:48   URL
비밀 댓글입니다.
 
코르셋과 고래뼈 - 이집트로부터 유럽을 거쳐 미국에서 끝나는 옷 이야기 푸른들녘 인문교양 21
이민정 지음 / 푸른들녘 / 2018년 3월
평점 :
품절


500번대, 그중에서도 590번대라면 도서관에서 좀체 기웃거리지 않는 서가 쪽 책일 텐데 제목에 혹해서 『고래뼈와 코르셋』을 뽑아들었습니다. '득템!'하며 재밌게 읽고, 기억이 가물거릴만해지자 6개월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저자 이민정은 독특하게도 "의류직물" 분야 박사 학위 소지자입니다. 2014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선정 청소년 권장도서인 『옷장에서 나온 인문학』의 저자이면서 고등 국어 교과서 집필에도 참여했다지요. 전문용어가 숨을 못 쉬게 하는 논문 스타일 글쓰기가 아니라, 초중고생뿐 아니라 어른들도 빠져들게 만드는 문체는 그가 패션잡지 에디터로 활약했다는 경력과 연결 짓게 합니다.

『고래뼈와 코르셋』은 여러 면에서 설혜심 교수의 『소비의 역사』를 연상시킵니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 혹은 소비 대상 이면의 역사를 흥미로운 에피소드로 양념 쳐서 쉽게 풀어냈다는 점에서 비슷하거든요. 설혜심 교수가 역사학 중에서도 비교적 최근에 뜨고 있는 소비史 분야의 전문지식을 강의 PPT 수준 비주얼 자료로 일반에 공개했다면, 이민정은 옷, 옷감과 얽힌 정복과 착취의 역사, 구별짓기와 개인 집단의 정체성 등을 풍부한 곁가지 에피소드로 프릴 달아 내어놓았습니다. 재밌고, 유익합니다. 역사 공부, 요렇게도 하는구나 싶어서 어린 학생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옷에 관한 한 '멀티플레이어'를 자부한다는 저자 소개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질 만큼, 이민정은 옷과 패션에 관한한 "박학다식" 그 자체인데요. 예를 들어, 유럽 정복과 함께 사라졌던 원주민들의 생활양식과 물질문명을 언급하면서 단순히 아메리카 원주민들의 브리치클로스뿐 아니라 버펄로 사냥으로 쌓아올린 뼈 무덤 사진을 소개합니다. 또한 옷감 중에 '목화'가 단연 최고라면서, 목화가 일상으로 들어오기까지 피와 땀을 착취당한 흑인 노예들의 삶을 소설 『뿌리』나,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여우조연상을 받은 흑인 배우 헤티 맫내이얼의 슬픈 사연으로 살을 붙여 설명합니다. 재밌죠. 이렇게 자료를 모으고 다룰 수 있기까지 이민정 저자의 노고에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아울러, 이민정 저자 덕분에 이렇게 뒤늦게야 '고래뼈 코르셋'이 뼈로 만든 것이 아님을 알았는데요. 저는 이제까지 뼈에 탄성이 있어서 코르셋 소재로 쓴 줄 알았더랬죠. 알고 보니 뼈가 아닌, 고래수염(baleen)으로 코르셋을 만들었는데 이를 착각한 이들이 whalebone으로 번역하면서 오해가 생겼다고 합니다.

어렸을 때, 세계명작 동화를 읽으면서 공주님 드레스의 소매가 왜 그리 쳐져 있을까 궁금했는데, 오호! 바로 블리오였군요. 에드먼드 레이튼이 그린 여성들이 입은 드레스가 그것이랍니다. 길게 설명하지 않아도 상상이 되네요. 번쩍이는 북두칠성 별 박아 네일아트한 여성에게 김장 배추 절이자고 할 수 없겠듯, 소매를 길게 늘인 드레스를 입은 여성에게 물 길어오라 못했겠네요. 이민정 저자가 소개한 "시도서" 속 농기구를 들은 여성의 치마 길이가 짧고 소매가 간소한 것과 대비됩니다.





『고래뼈와 코르셋』 본문 129쪽에 소개된 사진

마지막으로, 위 사진 속 빨간 양말은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요? 저는 어렸을 때 읽은 "일곱 마리 까마귀"란 동화 삽화에서 까마귀들이 신고 잤던 양말과 너무 똑같아서 유심히 보고 기억했는데요, 놀랍게도 이 양말은 4세기 경 제작되었답니다!!!!! 1700년 전 양말이란 말이지요.

6개월 시간 차를 두었더라도 그래도 두 번이나 읽은 책 제목을 『고래뼈와 코르셋』이라고 바꿔 기억하니 부끄럽지만, 『코르셋과 고래뼈』는 일상의 옷과 옷감, 나아가 역사에 천장 없는 호기심의 풍선을 올려보게 하는 좋은 책이라 강력 추천합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7)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상을 바꾼 우주 - 우주과학의 역사가 세상의 모습을 바꿨다! 세상을 바꾼 과학
원정현 지음 / 리베르스쿨 / 2018년 10월
평점 :
구판절판




과학사라면, 졸업 필수 교양 영역 3학점 때문에 울며 겨자 먹기로 들은 강의로 접한 게 전부입니다. 존함도 기억나지 않는 강사에게는 죄송하지만, 족히 200여 수강생을 욱여넣은 대형 강의실에서 매주 150분이 어찌나 지루했던지 배배 몸을 꼬다 못해 영화 월간지를 뒤적이며 시간을 때웠던 기억이 나네요. 그런 게으른 무관심에 상응하는 학점을 받았기에 인과응보이긴 합니다만....... 과학사를 강의하고, 고등학교 과학사 교과서를 집필한 원정현 저자는 기존 출간된 과학사 책들에서 안타까움을 느꼈답니다. 그녀에 따르면 기존 출간물은 크게 두 종류, 즉 연대기 순 아니면 과학자라는 인물 중심으로 과학사를 서술하는 방식 중 하나를 따랐다고 합니다. 저자는 이 두 방식으로는 시대가 요구하는 과학사를 기술하기에 부족하다고 보았습니다.

저는 출간되어 있는 과학사 책들을 보고 새로운 책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과학사가 도구로써 이용되는 기존 도서의 한계를 넘고, 과학사와 과학적 개념이 서로를 보충하며 유기적으로 연결되는 책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독자들이 과학사를 통해 좀 더 재미있고 쉽게 과학 개념들에 접근하기를 바랐습니다.

『세상을 바꾼 우주』, 6쪽 '저자의 말'



먼저, 과학사 공부 시작하면서 주의할 점을 과학사학자로서 친절히 안내해줍니다. 1) 과거의 과학은 현대의 관점으로 접근해서는 아니 되며, 2) 용어와 호칭의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하고, 3) 마지막으로 유럽 중심의 과학에 함몰되지 말고 시야를 넓혀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 이뤄진 과학 활동에도 관심을 기울이라고 합니다.

총 5장으로 구성된 『세상을 바꾸는 우주』, 첫 장에는 프톨레마이오스가 등장하지요. 이어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돌고 있다!"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당연히 코페르니쿠스가 등장합니다. 이어 3장 "천문학 혁명, 150년 동안 진행되다"에서는 튀코와 그의 제자였다는 케플러가, 4장 "망원경, 우주의 비밀을 보여주다"에서는 갈릴레오가 마지막 5장 "판 구조론"에서는 베게너가 등장합니다.


비딱하게 틈새 비집기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제가 『세상을 바꾼 우주』 덕분에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갈릴레오가 자신의 전문 지식을 적극적으로 정치인에게 어필하려 들었다는 부분입니다. 원정현 저자는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처음에 갈릴레오는 망원경이 군사적 목적으로 쓰기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의 망원경을 당시에 파도바를 통치하던 베네치아 총독과 의원들에게 보여 주었다. 하지만 망원경을 총독에게 바치는 대가로 연구 후원을 받고자 했던 갈릴레오의 요청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세상을 바꾼 우주』, 131쪽

하긴, 오늘날에도 각종 장학금과 연구지원비가 없다면 과학사에서 멋진 성취들 이뤄내는 속도가 더뎌지겠지요? 다만, 그 바쁜 갈릴레오가 정치인들을 일부러 만나면서 자신의 연구성과를 어필하여 후원을 확보하려 적극적으로 노력했다는 점은 의외여서 기억하게 됩니다. 원정현 저자는 연구하랴, 후학 양성하랴, 박사 논문 집필하랴 바쁜 와중에 『세상을 바꾼 물리』, 『세상을 바꾼 화학』, 『세상을 바꾼 생물』까지 펴내주었네요. 이 "세상을 바꾼" 시리즈 4권을 완독하면 과연 '과학이 세상을 바꾸었는지'를 좀 더 깊이 있게 알게 되겠네요. 차근차근 읽기에, 도전해보겠습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