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예술 - 소음으로 가득한 세상에서 침묵을 배우다
알랭 코르뱅 지음, 문신원 옮김 / 북라이프 / 2017년 4월
평점 :
절판


침묵의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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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어렵다. 장르 불문, 2017년 상반기 읽은 모든 책 중에서 <침묵의 예술> 읽기가 가장 어려웠다. 속된 말로, 딸렸다. 이해력과 배경지식뿐 아니라 '느림'을 다른 차원으로 승화시킬 수 있는 시간감각의 면에서 다 딸렸다. 첫 페이지부터 다시 읽기를 수 차례. 읽을 때마다 문장 문장이 처음 만나듯 새롭다니 '무식함'을 자학하며 읽었다. 프랑스 역사가, 특히 미시사(micro-history)의 대가 알랭 코르뱅의 고도로 세련된 문체는 암호같다 못해 몽환적인 느낌까지 준다. 프루스트, 릴케, 위고, 졸라, 발자크 등의 문학가부터 마그리트나 루소, 반 고흐 등 화가와 파스칼을 위시한 철학자와 엘리아스 등 역사학자 등 언급하는 인물만도 수십 명이다. '침묵'이라는 절대 화두 아래 양과 질에서 압도적인 자료를 샅샅이 뒤져 찾고 수 놓아 문학작품처럼 엮어내다니, 80대 노학자의 높은 경지가 느껴진다.

<침묵의 예술>에서의 '침묵'은, 층간 소음과 대비되는 개념으로서의 가벼운 범주가 아니다. 사막이나 바다, 건축물과 연관되는 공간적 침묵,  유사성 면에서 침묵과 닮았다는 아이들처럼 존재의 침묵, 인간관계로부터의 침묵, 성스러움을 희구하는 이들의 신과의 침묵소통, 체화된 예의로서의 몸의 침묵 (강연 중에 방귀를 뀐다든지 트름 한다든지를 삼가게 하는 몸단속), 죽음이라는 생의 마지막 순간에서의 고요 등 범주가 넓고도 깊다.

*

프랑스 역사가가 생의 성숙기에서 이처럼 깊고 넓게 침묵을 성찰한 이유는 무엇일까? 알랭 코르뱅은 "이 책에서 과거의 침묵을 환기하는 이유는 침묵의 탐색, 밀도, 준수, 전략, 풍요로움과 더불어 말의 힘에 있는 양상이 침묵하는 방법, 즉 나 자신이 되는 방법을 다시 배울 수 있게 해주기 때문 (9)"이라고 직접 알려준다. 알랭 코르뱅은 "끊이지 않는 접속으로 개개인을 현혹해 침묵을 두렵게 하는 하이퍼미디어(9)" 를 현대인이 침묵을 두려워하거나 과소평가하게 된 요인으로 보는 것 같다. 위 문장을 읽는데 갑자기, 18대 박근혜 정부는 사이버컬처를 타겟 산업으로 권장하면서 정작 '종이책 안 읽는 대통령과 정부였다'는 평이 겹쳐 떠올랐다. 야단스러운 속도감은 되려 침묵의 느림과 밀도가 갖는 힘에 밀리기도 한다. 20170420_185938_resized.jpg

 
미시사 중에서도, 시간, 공간, 소리, 냄새 등 감각적인 주제를 다루는 데 탁월하여 '감각과 감수성 역사 연구의 선구자'로 불린다는 알랭 코르뱅은 역사가답게 르네상스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묵의 의미와 그 변화 양상을 살핀다. 개인적으로 "침묵에도 전략이 필요하다"는 소제목의 6장이 가장 흥미로웠다. 침묵보다 말이 위험하다는 현대적 확신의 뿌리를 저자는 궁정 사회의 모델에서 찾는데 엘리아스(Norbert Elias)를 빌어왔다. 풍습의 문명화가 "규범의 내면화와 관련된 침묵 명령의 무게가 늘어(103)"가는 모습으로 표현된다는 것이다. 즉, 교양있는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는 말의 침묵뿐아니라 '기관들의 침묵(103)'으로 압축되는 정숙한 몸가짐(성적 쾌락의 소리를 삼감, 트림과 방귀를 삼감)이 점차 요구되어 왔다는 것이다. 어디까지나 유럽의 맥락일 테인데, 그렇다면 우리 사회에서의 침묵의 의미 변화와 현재는 어떠할까? 한국에서는 어떤 학자가 이 주제를 다뤄왔을까? 갑자기 궁금해졌다.
*
세대나 성별, 연령 등 여러 변수에 따라 다르겠지만, 2017년 한국 사회에서는 즉각적인 반응, 즉각적인 소통이 현대적 매너로 여겨지는 듯 하다. 단체 카톡방에서 '묵묵부답 = 예의 없음'으로,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 점유를 '스스로 왕따 만들기' 테크닉으로 생각하는 이들이 많으니. 느리게 반응하고 때로는 반응으로서의 말을 삼가고, 혼자만의 공간과 시간을 갖는 이들을 유별난 존재 취급하기도 한다. 침묵을 통해 개인으로서의 내가 성장하고, 타자와 더 깊이 관계 맺는 그 힘을 <침묵의 예술>을 읽으며 꿈꿔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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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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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공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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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커피가 안 받나 보다. 고작 두 잔 마셨는데, 새벽 5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김훈의 아홉번째 장편 소설, 나에게는 처음 읽은 김훈의 소설인 <공터에서>를 스탠드 하나 켜놓고 다 읽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김훈 작가의 문장 그 진지한 흡인력에 '아, 소설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겠구나. 한국 문학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리뷰를 뒤져보니, 김훈 작가님 못지 않은 문장력을 뽐내는 리뷰들이 많았다. 그 작가에 그 팬심이라할까. 고수들끼리 통하는 '소설과와 독자'의 핑퐁 같아서 흐뭇했다.

난, 아주 우울할 때 <공터에서>를 읽어서, 감상도 핑퐁처럼 가벼울 수 없다. 정신적 피로감으로 기운이 쪽 빠져서 문장을 다듬기도 어렵다.

*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공터에서>의 표지 한 쪽에 그려진 말이 눈에 들어왔다. 김훈의 의도대로라면 늘씬하고 힘 넘치는 경마장 말이 아니라 비루한 말이어야 했다. 김훈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라는 배에 태운 주인공들은 '마 馬' 씨였다. 1910년, 1948년 생의 아버지 마동수와 그 차남인 마차세를 위시하여 장남 마장세 외 여러 인물이 스냅사진을 어지러이 걸어놓은 벽장식 처럼 얽혀서 등장한다. 2017년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김훈 작가가 한 말을 살펴보니,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3520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3520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리뷰를 쓰는 지금, <공터에서>가 옆에 없다. 기억에 의존하는 글쓰기.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라는 해냄 출판사측의 홍보문구처럼 주인공들은 수레바퀴가 굴러갈까봐 두려워하는데 이미 자신이 그 수레에 타고 있음은 늘 예감한다. 장남 마장세는 외모까지 꼭 빼 닮은 아버지와 운명이 겹칠까봐 한국땅을 '거기에서'라고 타지화하고, 마차세 역시 부인이 임신 소식을 알리는 그 순간 아버지의 혼령이 고등어 한 손 들고 서 있는 환영을 본다. 마차세의 부인 박상희는 <공터에서>를 통털어 가장 해바라기 같은 존재인데, 마차세와 결혼하던 날 아주버님과 대면하고 '마 馬'씨 가문의 핵심으로 한 발에 들어가버린 듯한 느낌을 갖는다. 얼핏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치매 걸린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베트남전에서 살아돌아온 자가 자신이 사살한 전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개개인의 관계나 운명이라기보다는 반성도 사과도 성찰도 없이 관성처럼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
일제 시대, 순경에서 끌려가  피터지게 매 맞고 나와 먹던 선지 해장국을
남산 경찰서에 끌려간 터지고 나온 이가 또 먹는다.
*
남과 북, 정치적 이념으로 양분되어 총을 겨누던 전쟁이
다른 형태로 지속된다.
*
김훈 작가가 참 큰 일을 하신 것 같다. 일흔에 이른 본인도 체력이 예전과 달라 힘드셨겠지만, 이렇게 중요한 정리를 소설을 통해 해주었으니 스스로 떳떳하고 홀가분할 것 같다.
*
영웅이 아닌 비루한 사람들에게 연민과 애정.
가루처럼 흩어질 듯한 낱낱의 비루함이 모여서 실체로서의 덩어리가 된다. 힘이 된다.
*
박상희라는 인물에 가장 공감이 가는
그녀는 해바라기가 아닌 태양. 그녀의 온기와 열기로 마차세가 따뜻해진다.
작가에게 박상희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공터에서>를 다 읽고, 그 많던 마 馬씨들보다도 박상희의 다음 날이 가장 궁금해진다. 이유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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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벌레가 꿈틀꿈틀 우리는 모두 특별해 1
바바라 에샴 지음, 마이크 고든.칼 고든 그림, 설윤성 옮김 / 아주좋은날 / 201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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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벌레가 꿈틀꿈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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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기심 벌레가 꿈틀꿈틀  (원제: Mrs. Gorski, I Think I Have the Wiggle Fidgets)>을 읽는데, 갑자기 중학교 동창이 생각 났습니다. 여름 캠핑에서 친구들 바닷가 모래밭에서 뛰어 놀 때, 혼자서 불가사리들을 끓는 물에 왕창 삶았다지요? 불가사리 다리가 다시 "재생 (regeneration)"되나 궁금했다던 그 친구는 훗날 과기고를 2년 만에 졸업하고 과기대에 진학했어요. 처음엔 꾸중하시려던 선생님께서도 중1 짜리의 진지한 설명에 입을 다무셨던 기억이 나요. 흠, 그 친구의 호기심 벌레도 남달랐던가 봅니다. <호기심 벌레가 꿈틀꿈틀>의 데이빗만큼은 아니지만요.

데이빗은 담임 선생님이 자기를 별로 좋아하시지 않는다고, 자기 때문에 자주 화나신다고 생각해요.  종종 '데이빗 전용 목소리'로 무섭게 말씀하시거든요. "수업 시간엔 무조건 집중을 해야 한단다! 집중!"하고 말이에요. 데이빗은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니래요. 집중해야한다는 걸 잘 알지만, 갑자기 멋진 생각이 떠오르면 수업 중이라는 걸 까맣게 잊는대요. 그 멋진 생각을 바로 행동으로 옮기게 되거든요. 예를 들면, 소방 대피 훈련받으며 한 줄 서기 했을 때, '한 발로 서서 두 눈 감고 양손 어깨 올리기 자세로 얼마나 버틸까?'가 궁금하길래 바로 실행했어요. 덕분에 반 친구들이 도미노처럼 와르를 무너졌고요. 식당에서는 더 심각했어요. 푸딩 포장 비닐이 얼마나 잘 버티나 궁금해서 푸딩을 세게 눌렀는데 하필이면 선생님이 바로 뒤에 서계시다 초코푸딩비를 맞으셨지 뭐예요. 이러니 "부모님 학교에 모시고 와!" 소리를 안 들을 수 없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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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님께서는 데이빗의 엉뚱함 혹은 산만함을 의외로 잘 이해하고 계셨어요. 우연히 엿들었는데, "데이빗 몸에 호기심 벌레가 산다"고 아빠가 엄마께 말씀하겼거든요. 게다가 그 벌레는 유전인지, 어린시절의 아빠께도 있었대요. 야호! 드디어 데이빗에게 출구가 보였어요. 호기심 벌레를 물리칠 방법을 찾으면 수업 시간에 집중 할 수 있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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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다운 기발함과 사랑스러움이 넘치는 방법들을 데이빗을 여러 개나 생각해냈어요. 주말 내내 엄청 고민한 끝에요. 결과는? 대 성공이었어요. 엄마아빠는 물론 선생님까지도 데이빗의 해법에 귀를 기울여주시고 칭찬까지 주셨지요. 선생님께서도 '데이빗 전용 목소리'가 아닌 부드러운 목소리와 부드러운 미소로 말씀해주셨어요. "흘륭한 위인 중에도 몸속에 호기심 벌레가 살았던 분들이 아주 많았다"에 덧붙여 선생님 어렸을 때도 호기심 벌레가 선생님 몸 속에 살았다는 비밀도 알려주셨고요. 환하게 웃는 데이빗, 데이빗 엄마아빠, 그리고 선생님 모두 흰 색 티셔츠를 입고 활짝 웃고 있네요. 데이빗의 독특함을 인정하고 응원해주시겠다는 의미로 보였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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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기심 벌레가 꿈틀꿈틀>은 산만함을 ADHD라는 장애로, 치료의 대상으로 한정짓는 시각을 재고하게 합니다. 그 산만함은 억누르고, 부끄러워하거나 제거해야할 적이 아니라 어쩌면 창조적 정신의 한 발현일지도 모른다고. 긍정적인 방향으로 길들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던져주네요. ADHD로 진단, 치료 받는 초등학생들 비율이 한국보다 훨씬 높은 미국 사회에서는 더욱 큰 반향을 일으켰을 것 같아요.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어린이의 ADHD나 산만함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해보는 데 큰 도움을 줄 그림책으로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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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책임지는 책 - 모두 교양 있게 자라서 어른이 되자 채인선 작가의 책임지는 책 시리즈 3
채인선 지음, 윤진현 그림 / 토토북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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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책임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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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브랜드가 된 '채인선.' 채. 인. 선. 그 이름 석자가 적힌 책이라면 믿고 집어 듭니다.  제목이 다소 딱딱했지만 채인선 작가가 썼다기에 <교양을 책임지는 책>을 믿고 펼쳤습니다. 아, 역시나! 채인선 작가의 교양미와 인품이 종이를 타고 독자에게 전달됩니다. 작가는 교양 있는 어린이는 나를 사랑하고주변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자라납니다이 책이 부모와 아이들에게 교양의 중요성을 살피는 계기가 되길 바랍니다.”라며 집필 동기를 밝혔어요. 사실 2017년 한국 사회에서의 교양이란 '타인의 시선 의식해서 타인의 눈밖에 나지 않게 행동하기'와 동의어로 좁혀지는 것 같아 아쉽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교양'이란, 단지 남 눈치 보느라 조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탱해줄 뿐 아니라 주변을 환하게 밝혀주는 따뜻한 기둥인데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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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교양이란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부터 시작합니다. 단순히 숙제 잘하기나 부모님께 칭찬받는 이상의 그 무언가가 우리가 추구하는 교양이겠지요? <교양을 책임지는 책>을 읽다보면 교양이 단순히 행동거지뿐 아니라 마음가짐의 총합, 즉 인격과 동의어임을 절로 깨닫게 됩니다. 저는 채인선 작가가 "인사"라는 화두로 교양 이야기를 시작해서 참 좋았어요. 불행히도 마을을 오가며 만나는 많은 아이들 중에 인사라는 기본을 도통 모르는 친구들이 많더라고요. 어른 먼저 모범을 보이면 변하겠지 싶어 십수번 인사를 하다가 결국은 그 부모까지 궁금해지게 만드는 목 뻣뻣한 꼬마들도 여럿 있었어요. 인사야말로 교양의 첫걸음인데 말이에요. 독자는 "자신의 교양점수"를 제시된 교양항목 자가 체크할 수 있어요. 이 과정을 통해 평소 자신의 인사습관, 나아가 교양을 돌아보게 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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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양을 책임지는 책>은 윤진현 작가의 정감가는 일러스트레이션과 플랩북 형식의 구성 덕분에 더욱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답니다. 효도 이야기를 전하면서 "청개구리" 이야기를, 친구에의 배려를 이야기하면서 "여우와 황새"이야기를 배치했어요.

영화관에서 교양 없이 행동하는 관객 찾기도 무척 재미있답니다. 페이지를 펼쳐 놓으면 아이들이 조잘조잘. "발냄새 나겠다. 앞 자리 사람 불쌍하다," "어, 얘는 막 전화하면서 영활르 보네." "팝콘 막 떨어뜨리고 먹잖아." "누가 제일 엉망으로 행동해요?" 아이들이 조잘조잘하면서, 자신의 평소 행동을 떠올립니다. <교양을 책임지는 책>라는 제목에 살짝 수식어 하나 더하자면, <교양을 책임지는 재미있는 책>이라 해야겠어요. 정말 재미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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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른 말, 고운 말' 교양은 기본, 공동체 생활, 특히 아파트 생활에서의 이웃에 대한 배려, 가상 공간에서의 매너, 도서관 등 공공 도서관에서의 행동규범, 동물사랑의 마음, 취미와 꿈 찾고 키우기 등 다양한 주제를 어린이 시선에서 참 설득력 있게 전달합니다. 5월에 주위 꼬마들에게 선물할 일이 많은데 <교양을 책임지는 책>을 선물 리스트의 꼭대기에 올리고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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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어버린 아이 푸른숲 새싹 도서관 4
안네게르트 푹스후버 지음, 전은경 옮김 / 푸른숲주니어 / 201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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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 잃어버린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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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 마음이란 게 참 이중적이기도 해요. 가을 단풍 풍경을 보고 "요정님이 내려와서 알록달록 물감 칠하고 가셨다"라며 세상을 낭만적으로 이야기하는 부모를 보면 '왜 아이에게 세상을 무지개색으로만 보게 하느냐. 현실을 외면하느냐.'하면서도 막상 자기 아이에게 현실의 어두운 면을 애써 보여주려하지는 않으니까요. <집을 잃어버린 아이>에도 난민, 아동 인권, 어른들의 집단 이기주의, 차별 등 무거운 주제가 계속 등장해요. 그런데도 신기한 건 아이들 스스로에게 소화 능력이 있어서 메시지를 자기 수준에서 잘 받아 넘긴답니다. 사실 걱정했거든요. <집을 잃어버린 아이>들의 주제가 꼬마들에게 너무 무거운 것은 아닌가. 그런데 왠걸요. 아이들은 이 책을 참 좋아하고도 잘 이해한답니다. 어쩌면 자기들처럼 어린 친구가 주인공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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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린이라는 친구에요. 분홍색 잠옷같은 옷을 입었지만 외투는 누군가 버리고 간 듯, 낡고 커다란 양복자켓이에요. 머리는 헝클어지다 못해 새집처럼 떡이 졌어요. 앙당물고 앞을 응시하는 표정도 범상치 않아요. 게다가 맨발이에요. 밴발로 검붉은 불줄기가 쏟아지는 마을을 떠나 들판을 내달려요. 무서운 상황에서 벗어나려고요. 보호해주는 어른도 없고, 따뜻한 손길로 없어요. 카를린은 배가 무척 고팠어요. 평화로운 마을에서 만난 사람들에게 물 한 모금, 빵 한 조각을 구걸해봅니다. 돌아오는 것은 차가운 반응뿐이었어요. 도와주기는 커녕 카를린을 고아원으로 보내야한다며 경찰에 신고하기까지 했답니다. 카를린은 맨발로 계속 내달릴 수 밖에 없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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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도 없이 떠돌이 신세가 된 카롤린은 숲으로 갔어요. 자연의 자비 덕분에 산딸기로 굶주린 배를 채울 수 있었지요. 정처 없이 떠돌던 카롤린은 석상들의 마을에 도착했어요. 석상들은 카롤린에게 "돌" 을 먹으라고 강요하고, 돌을 못 먹겠다고 하자 하콜린을 ̫아내버렸어요. 황여새의 마을에서도, 송장 까마귀들의 무리에서도 카를린은 ̫겨났어요. 친절을 가장하여 접근했더라도 그들은 결국 카롤린에게 "넌 우리랑 달라"라는 프레임을 씌워 차별을 정당화했지요. 읽기만 하는데도 마음이 아팠어요. 지금 이 순간 세상 어느 곳에서는 카를린처럼 전쟁의 폭격으로 부모와 가족을 잃고 혼자 난민 신세가 되어 떠돌며 차별받는 어린이가 분명 있으니까요. 누군가에게는 그림책을 통핸 상상 속 인물이지만, 누군가에게 카롤린은 자기 자신의 모습일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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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를린은 배고픔과 추위, 가족 잃은 슬픔도 컸지만 남들에게 이해는 커녕 되려 차별받아야만 한다는 사실이 너무 슬펐어요. 혹시나 자신처럼 가련한 처지에 있는 사람이라면 자신을 이해해줄까. 도움의 손길을 내밀까 기대했던 카를린은 도시 변두리 빈민촌에 갔지요. 하지만 그곳에서도 "너 같은 거지까지 받아들이다간 다 같이 망한다!"는 폭언과 함께 ̫겨났을 뿐이에요. 카를린은 그저 배가 고파 생명권을 보장할 만큼의 먹을 거리를 간청한 것 뿐인데, 도와주기 싫은 사람들은 이중적인 모습을 보였지요. "도와주고는 싶지만 넌 '우리'랑 달라서 안 되겠어."라든지, "너가 우리랑 있기 싫어하는 구나!"라면서 위선적 모습을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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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를린의 절망과 슬픔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 기댈 사람, 갈 곳 하나 없이 절망적인 카를린의 심경을 안네게르트 푹스후버는 비내리는 청회색 하늘로 표현했습니다. 우중충하고 출구가 보이지 않는 화면입니다. 하지만 바로 다음 장에서 알록달록 공작새 같은 색감이 펼쳐져요. "바보"아저씨와 "바보"아저씨의 나무집이 참 화사합니다. 이름 대신 자신을 '바보'라고 소개하는 아저씨에게 카를린은 대답하지요. "다른 사람에게 친절을 베푸는 사람을 '바보'라고 부르나요?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도 바보가 될래요."
<집을 잃어버린 아이>는 참으로 긴 여운을 남기는 깊은 맛의 그림책입니다. 자꾸 다시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도 바보가 될래요."라는 카를린의 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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