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터에서
김훈 지음 / 해냄 / 2017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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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훈 공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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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젠 커피가 안 받나 보다. 고작 두 잔 마셨는데, 새벽 5시까지 잠이 오지 않았다. 김훈의 아홉번째 장편 소설, 나에게는 처음 읽은 김훈의 소설인 <공터에서>를 스탠드 하나 켜놓고 다 읽었다. 익히 들어서 알고 있었지만, 김훈 작가의 문장 그 진지한 흡인력에 '아, 소설가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겠구나. 한국 문학의 수호신이라는 별명이 거저 얻어진 게 아니겠구나' 싶었다. 다른 독자들은 어떻게 읽었을까 리뷰를 뒤져보니, 김훈 작가님 못지 않은 문장력을 뽐내는 리뷰들이 많았다. 그 작가에 그 팬심이라할까. 고수들끼리 통하는 '소설과와 독자'의 핑퐁 같아서 흐뭇했다.

난, 아주 우울할 때 <공터에서>를 읽어서, 감상도 핑퐁처럼 가벼울 수 없다. 정신적 피로감으로 기운이 쪽 빠져서 문장을 다듬기도 어렵다.

*

책을 다 읽고 나서야 <공터에서>의 표지 한 쪽에 그려진 말이 눈에 들어왔다. 김훈의 의도대로라면 늘씬하고 힘 넘치는 경마장 말이 아니라 비루한 말이어야 했다. 김훈이 한국 현대사의 흐름이라는 배에 태운 주인공들은 '마 馬' 씨였다. 1910년, 1948년 생의 아버지 마동수와 그 차남인 마차세를 위시하여 장남 마장세 외 여러 인물이 스냅사진을 어지러이 걸어놓은 벽장식 처럼 얽혀서 등장한다. 2017년 출간 기념 기자 간담회에서 김훈 작가가 한 말을 살펴보니,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3520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저는 이 시대 전체를 전체로서 묘사할 수는 없었어요. 그래서 제가 고심 끝에 고심참담해서 도입한 기법은 우선 전체를 다 통괄할 수 없는 자로서는 어떤 디테일한 세부 사항, 디테일에 갑자기 달려들어서 날카롭게 한 커트 찍어 버리는 스냅적인 기법을 써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디테일을 통해서 디테일보다 더 큰 것을 어떻게 드러냄으로써 이 괴로운 글쓰기를 돌파하자는 생각을 했었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포착된 디테일들을 그리는데, 이 펜에 스피드를 매우 빠르게 해가지고 빠른 속도로 그 골격만을 그려내고 세부사항을 그려내지 말자. 빨리 펜을 빨리 움직여야겠구나. 그래서 미술로 치면 크로키 같은 기법을 써야겠구나. 

 
출처 : SBS 뉴스
원본 링크 :
http://news.sbs.co.kr/news/endPage.do?news_id=N1004035207&plink=ORI&cooper=NAVER&plink=COPYPASTE&cooper=SBSNEWSEND

리뷰를 쓰는 지금, <공터에서>가 옆에 없다. 기억에 의존하는 글쓰기. "세상은 무섭고, 달아날 수 없는 곳이었다."라는 해냄 출판사측의 홍보문구처럼 주인공들은 수레바퀴가 굴러갈까봐 두려워하는데 이미 자신이 그 수레에 타고 있음은 늘 예감한다. 장남 마장세는 외모까지 꼭 빼 닮은 아버지와 운명이 겹칠까봐 한국땅을 '거기에서'라고 타지화하고, 마차세 역시 부인이 임신 소식을 알리는 그 순간 아버지의 혼령이 고등어 한 손 들고 서 있는 환영을 본다. 마차세의 부인 박상희는 <공터에서>를 통털어 가장 해바라기 같은 존재인데, 마차세와 결혼하던 날 아주버님과 대면하고 '마 馬'씨 가문의 핵심으로 한 발에 들어가버린 듯한 느낌을 갖는다. 얼핏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치매 걸린 아내가 남편으로부터, 베트남전에서 살아돌아온 자가 자신이 사살한 전우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는 듯 보이지만. 결국 벗어나고 싶었던 것은 개개인의 관계나 운명이라기보다는 반성도 사과도 성찰도 없이 관성처럼 흘러가는 역사의 흐름.

*
일제 시대, 순경에서 끌려가  피터지게 매 맞고 나와 먹던 선지 해장국을
남산 경찰서에 끌려간 터지고 나온 이가 또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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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과 북, 정치적 이념으로 양분되어 총을 겨누던 전쟁이
다른 형태로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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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훈 작가가 참 큰 일을 하신 것 같다. 일흔에 이른 본인도 체력이 예전과 달라 힘드셨겠지만, 이렇게 중요한 정리를 소설을 통해 해주었으니 스스로 떳떳하고 홀가분할 것 같다.
*
영웅이 아닌 비루한 사람들에게 연민과 애정.
가루처럼 흩어질 듯한 낱낱의 비루함이 모여서 실체로서의 덩어리가 된다. 힘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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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상희라는 인물에 가장 공감이 가는
그녀는 해바라기가 아닌 태양. 그녀의 온기와 열기로 마차세가 따뜻해진다.
작가에게 박상희라는 인물은 어떤 의미였을까?
<공터에서>를 다 읽고, 그 많던 마 馬씨들보다도 박상희의 다음 날이 가장 궁금해진다. 이유가 있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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