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감에서 잠시 해방되다 



쓰고 읽기는 늘 기쁨자 '읽어야한다 강박'의 원천이었지만 몇 달전부터 갑자기 피로감을 확 느꼈다. 굵은 중심 하나 쭉 따라가되 곁가지도 가끔 흘긋거리는 공부라면 진행의 성취감이 있겠건만, 이건 '나도 옥이요, 나는 금인데, 오호, 나는 아예 우주 운석이요.'하며 '읽어달라' 하는 저자들이 넘쳐나니 피로감이 몰려오다 못해 무기력해졌다. 공부의 굵은 줄기를 못찾는, 게슴츠레한 눈도 부끄럽고....... 차라리 읽지도 말까. 탱자 탱자......팅가리 탱가리.....

책에서 느끼는 피로감을 사람에게서도 느꼈던 것일까? 태안 신두리 해안사구 나들이에서 청량감을 만끽한 이유는, 바로 사람이 적어서였다. 아예 없진 않았다. 주말이었으니까. 가족 단위 방문객들이 드문드문 보였지만, 시야를 압도하는 '뻥뚫린 시원미'에 사람이 눈에 들어오지 않더라.....하늘과 풀과 모래만...... 모래 그리고 또 모래....세계최대의 모래언덕(dune)이라더니, 모래 그리고 또 모래.....






사람이 눈에 안 들어오니,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해독해야할 표정도 몸짓언어도, 말 소리도 안 들린다. 계속 하늘과 풀과 모래. 또 모래.....


혼자 흥 내며 산책하고 있는데, 서툰 연인들이 서툰 몸짓으로 사진을 찍으려 굳이 사구 안으로 걸어 들어간다. 멀리서 그 둘의 서툰 뻘짓이 보이는데, 멀리서부터 분노가 올라온다. 15,000여년 전부터 서서히 형성된, 인간이 감히 인공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천연그대로의 모습인데, 굳이 자기들 인증샷 찍겠다고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기어들어가다니! 소리지르면 들릴까? 다행히 해안사구 곳곳에 CCTV가 있는지, 이들은 발각되어 큰 소리로 호명된다. "나오시라"는 존대 명령과 다른 관람객의 따가운 시선을 모르쇠로 피할 수 없었는지 그들은 걸어나왔지만 기어나온 것과 다름 없다. 쯧쯧! 



"신두사구 지형변화 모니터링 기준점"


지질학? 지리학? 전문지식이 필요한 건가? 아무튼 '사구 지형변화'라 함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지를 못하니 참 답답하다. 왠지 좋지 않은 의미로서의 변화일 것이라는 추정을 할 뿐. 빙하 녹아내리듯 사구가 무너져내리는 우울한 상상을 해서 편향된 것일까? 다녀온지 한 달이 넘어가지만, 여전히 궁금하다. 앞으로 이 신두리 해안사구는 어떤 변화를 겪을지, 들어가지 말라고 경고문구를 세워놓아도 굳이 들어가 모래사구를 헤집고 다니는 관람객들이 계속 있는 이상, 불편한 변화를 겪을까 걱정이다. 



태안반도 여행 계획중인 분이라면, '천리포 수목원'과 '신두리 해안사구'만큼은 꼭 들려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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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수증 인쇄 잉크가 몸에 안 좋다고 해서, 영수증을 아예 안 받거나 눈에 보이는 족족 없애버렸는데 많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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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국립 박물관, 청주어린이박물관. 
많은 블로거들의 호평이 거져 얻어진 게 아니겠어요. 전시 내용도, 전시 동선 구성도, 미디어를 적극 활용한 전시 방식도 마음에 들었어요. 관계자, 전시 기획 전문가분들께 고마운 마음이 컸다는 뜻이지요. 덕분에 짧은 시간 체류하면서도 많이 배웠는데, 많은 전시유물 중 인상 깊었던 5가지만 잊을까 기록 남깁니다. 


1. 숟가락

좌측은 고려시대 수저, 우측은 조선시대 수저.
궁금한 생각이 들더군요. 과연 어떤 이들이 이 수저를 수로 사용했을까? 요즘 말로, 흙수저이건 책수저이건 물질이 갈라 놓은 귀천에 관계없이 모두 수저를 썼을까?




2. 책덕후의 책상 
요철이 심해서 감상 용도의 조각품일까 했는데, 책상이랍니다. 책장을 넘길 때, 페이지가 상하지 않게 하려는 마음에서 만들어진 책상이라네요. 




3. 청주운형동 신라사적비 
놀랍게도 이 사적비(추정하건대 실물의 1/2 이하 크기만 남음) 는 마을에서 오랫동안, 빨랫돌로 쓰다가 20세기 말에와서야 귀한 유물임을 알게 되었다는...... 민간요법 약재로 갈아 쓰다 알고보니 고고학적 가치 높은 인류선조의 두개골이었다는 기사가 생각나네요. 


4. 망새.

측면에서 봐도 새의 깃털, 부리, 
앞면에서 보아도 새의 깃털과 통통 몸통.작게 축소시켜서 모자 양측에 세워올리면, '테세우스'형 모자가 되려나하는 엉뚱한 생각. 성스러운 사찰 지붕에 올리는 성물인데, 요런 발칙한. 



5. 아미타불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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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크pek0501 2018-10-22 22:5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책상이 특이하네요. 울퉁불퉁해 보이는데 그게 편했을까요?

님 덕분에 앉아서 편안히 박물관을 잘 감상했습니다.

2018-10-23 00:12   URL
비밀 댓글입니다.
 

많이 추천 받은 힐링 산책지, 청남대. 온라인 예약 미리 해두고 '청주' 중심으로 짧은 방문 여행 계획을 세웠네요. 마침, 청남대를 찾으려한 그 날이 장날이라고, '2018 국화페스티벌' 첫 날이라네요. 단풍관광 행렬고  고속 도로 위에 있는 사이에 불과 3시간 만에 고속도로위 추돌, 접촉 사고 5건을 목격했고요. 5시 입장 마감이라는 청남대에 도착한 시각은 오후 4시 30분. 반나절 걸려 도착했는데 고작 90분 보려나 했지만, 운 좋게 오늘은 밤 9시까지 연장 개장이랍니다. 

http://chnam.chungbuk.go.kr/


청남대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홈페이지나 다른 분들의 성실 리뷰로 대신하고 저는 사진만 투척할게요. 요약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청남대)터에 반해서 대통령 휴양지로 "명"하여 건설한 특권 가득한 공간, 청남대. 이 공간을 고 노무현 대통령께서 약속대로 국민에게 돌려주었다고 합니다. 현재는 청주시에서 관리하고 있다는데, 최근 다녀온 '천리포 수목원'과 비교하여 관리가 허술하구나 싶은 지점들이 많았어요. 

*

일단 정문으로 들어가면, 뒷정리중인 국화축제의 장. 



머무르고 싶은 시간, 공간. 





설명에 의하면, '조깅을 좋아하셨던 김영삼 전 대통령'이 수행원과 달렸다는 조깅길, 우측엔 호수, 좌측엔 연두빛 골프장. 



풍수학자 조용헌 박사는 어떤 이야기를 했을까? 명당 중의 명당자리의 샘. ....이라는 설명문이 기억나네요. 안내판 사진을 찍을 것을, 기억해내는 정보의 양이 빈대 수준. 


VVIP를 위해, 닦아진 도로와 2층 양옥집과 골프장, 인공미도 아름답다할 수 있지만, 마음에 가장 남는 것은 들꽃의 청초함. 





사진촬영 불가인지라, 마음 속으로만 기억하고 나왔지만 청남대 본관, 모든 방과 모든 거실에는 대형 TV가 놓여 있는 것이 신기했습니다. Samsung이 아니고, Anam TV 였어요. 마찬가지로 대통령 기록화 속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속도로 위에 쏟아붇는 액체가 '샴페인' 인점도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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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전쟁기념관] 김홍도 Alive전 



Sight, Insight,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여기 한 화가의 눈이 있다. 한 사람의 시선을 따라간다는 것은 한 사람의 우주를 이해한다는 것이다. (김홍도 Alive 전 안내 pamplet 中)

"김홍도 Alive" 전시를 짧게나마(30분 전시관 체류) 감상한 이후, 뇌리에 가장 깊이 남은 것은 전시 기획자에 대한 호기심이다. 전시회 안내 팜플릿, 첫문장은 "Sight, Insight, 당신은 무엇을 보고 있습니까? 여기 한 화가의 눈이 있다."로 시작되는데, 엄밀히 말하자면 관람자는 김홍도의 눈이라기보다는 전시 기획자의 의도에 따라 시선의 흐름을 유도받았을 테니까. 전시장 안팎의 여러 단서들을 조합했을 때, 기획자는 사회적 연망이 탄탄한 30대 중후반 ~ 40대 중반의 어린 아이 아빠이자 예술애호가? 나는 그렇게 상상했지만, 내 서툰 상상이 보기 좋게 틀렸을 수도 있다. 그러나 한 가지, "김홍도Alive" 전시 기획자의 예술적 취향과 감성이 남다르게 섬세하다는 추정은 맞을 것만 같다.  입장권 종이의 질감과 글자체, 팜플랫의 구성과 문장 하나하나, 공간에서 느껴지는 아우라와 여백의 미, 여유롭고도 자신만만한 예술애호가가 그려낸 전시공간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루 3번 진행된다는 도슨트도 놓쳤고, 이후의 빠듯한 일정 때문에 오디오가이드도 패스했다. 마음 가는대로, 내 식대로 "김홍도 Alive"를 해석하고 즐기는 수밖에. 




전시공간에 들어서자마자 '화원의 초상'을 우측에서, 시 한수를 좌측에서 보게 된다. 스쳐지나갈 뻔했던 시구가, 공간에 존재감을 드러내며 양각된 느낌. 다시 보게 된다. 


기획자는 "풍속도로 우리에게 친숙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과연 우리는 김홍도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의 물음을 던진다. 기획자가 의도적으로 전시관 초입에 소개했을 자화상과 '월화취생도' 및 전시관 마무리 공간에 걸어둔 '포의풍류도'야말로 기획자가 보는, 혹은 관람객에게 전하고 싶은 '김홍도' 상이 아닐까?


천천히 미디어아트까지 음미하며 관람하며, 김홍도를 상상 속에서 불러내어 Alive 존재로 대화하며 관람한다면 1시간 족히 걸릴터이나 스마트폰 5분 뉴스 수준의 마음리듬으로 접한다면 아래 전시공간은 30분 안에 관람 가능하다. 기획자는 김홍도의 시선 변화를 따라가면서 관람객이 자연스럽게 김홍도의 작품세계뿐 아니라 인간적인 매력까지 느낄 수 있도록 테마와 공간을 구성하였다. 


Section1: 박달나무 언덕, 올려다보다. 
Section2: 궁궐 - 정조의 남자, 김홍도 정치와 왕실의 권위를 세우다. 

지금은 불과 30여년전과도 사뭇 다르게 관광지화 된 화성행궁의 모습을 김홍도가 담다.


Section3 금강산

앉아서 차분히, 입체로 펼쳐지는 금강산 파노라마를 감상하기를 강추!



풍경이 압도적으로 웅장할지라도, 김홍도가 그려넣은 사람은 점이 아닌 생명체로서, 귀여운 생동감을 내뿜는다. 고 참, 신기하다. 사람에 대한 애정과 존중?


Section4: 저잣거리 

소개된 작품은 프랑스 기메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는데? 어찌하여? 
행려풍속도 8곡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18세기 한양의 풍경, 사람들을 상상할 수 있다. 외국인 관람객 2분이 이 공간에 유난히 오래 머문 이유도 내가 느끼는 이 생경한 시간 여행의 매력 때문이리라.



Section5: 단원의 방
기획자의 나이 성별 정체성을 30대 중후반~40대 중반 아이 아빠로 유추한 이유는, 이 방의 인테리어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들과 왔다면 사진찍지 않고 지나치기 어려울 정도로 귀염귀욤한 공간.

하지만 아기자기한 이 공간에서 기획자가 나르고자 한 메시지는 자못 심오한데, 이 방의 부제는 "응시하다: 예술적 경지에 이르러 내면으로 시선을 돌리다" 단원 김홍도가 추구한 가치가 무엇일까 상상하게 하는 멋진 문구이다. 


관람을 마치고 나오면, 겟 겟 하라 유혹하는 아이템들이 얼굴을 내민다. 도슈사이 샤라쿠와 김홍도 동일인물설에 대한 이야기는 맛배기로 마지막 공간에서! 관람 가기 전에 다른 분들의 리뷰를 여러 편 읽고 갔는데, 나 역시 그분들과 동감. 전시동선이 짧아서 아쉬울 수 있으나 마음의 여백을 극대화해서 시선의 흐름을 늦춘다면 두고두고 여운이 남을 멋진 전시였다! 전시기획자님, 그런데 누구실까요? 다음 기획하는 전시는 뭘까요? 이 블로그를 혹시 보신다면 비밀 댓글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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