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 서점 판매지수가 높은 과학신간을 읽었다. [메타버스 사피엔스]은 양장본의 묵직함이 무색하도록, 집중하면 1시간 내 독파 가능하다. 총 159쪽이지만, 100쪽 다이어트도 충분히 가능한 글밥이다. 동아시아 편집진의 손길이 야무지다. 하긴, 도서관에 기대어 공간 다이어트해 온 미니멀리스트의 평정심을 동아시아 책들이 여러 번 흔들었다. 출판계 루키, 신흥강자? 동아시아 출판사 초창기 책의 인지도와 매무새를 [메타버스 사피엔스]와 비교하면, 기분 좋은 '일취월장'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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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버스 사피엔스]는 대중교양과학서, 빨리, 많이 그러면서도 쉽게 잘 쓰는 김대식 교수가 썼다. 문장도 간결하며, 읽을 땐 쉬운데 정보량이 상당하다. 내게는 그 정보 자체보다는, 과학자 김대식이라는 창조적 마인드를 엿볼 수 있어서 이 책이 재미있었다. 만약 내가 뇌과학, 뇌공학, 인공지능 분야 전문가인지라 "메타버스" 관련 대중교양서 집필을 의뢰받았다고 상상해보자. 나라면, '메타버스' 뜻풀이부터 시작하는 고리타분한 방식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다른이들도, "도대체 metaverse가 뭐야?"라는 강박적 질문에 답하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러나 김대식은 책 제목에서처럼 "사피엔스"라는 큰 화두에 메타버스를 부분집합으로 넣었다.
마치 [사피엔스]에서 유발 하라리가 그러했듯, '지금, 여기'를 넘어서는 인공위성적 시야를 확보하며 메타버스 이야기를 위치 시킨다. 유발 하라리는 인간이 보이지 않는 허구(이야기)를 집합적으로 믿음으로써 (초)협력해왔고 지구별의 우두머리로 설 수 있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김대식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즉 뇌를 통해 현실을 창조해내는 특별한 힘을 지녔다고 본다. 인간이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근원적 호기심 그리고 왜 21세기(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인류 사회의 탈현실화가 가속화되었는지 사회적, 역사적 맥락을 짚어준다. 메타버스 자체에 대한 이야기는 후반부에 배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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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진화생물학, 뇌과학, 인공지능, 철학 등 여러 영역을 넘나드는 화두를 얇은 책 하나에 녹여내는 김대식의 사고법에 감탄했다. 또한 나는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주인공도 아니건만, 감시자본주의 사회를 두려워한 나머지 "메타버스"라면 일단 거부감을 가졌는데, 이 책을 읽고 조금 생각을 바꾸었다. 이미 시작된 21세기형 대항해, 메타버스로의 움직임이 인간의 가능성을 무한 확장할 수도 있다는 김대식의 낙관론도 매력적이다.
질문과 답이 꼬리를 물며 이어지는 워터 슬라이드 타는 듯한 김대식의 사고법. 글쓰기. [메타버스 사피엔스]를 "사피엔스" 키워드로 김대식이 어떻게 풀어냈는지 Q&A의 흐름으로 정리해본다.
Q] 코로나 팬데믹이 가속 시킨 변화는?
A] 혹자는 20세기 역사가 WW1이 발발한 1914년 진정 시작되었다고 하듯, 21세기는 covid-19과 함께 2020년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훗날 평가하게 될지 모르겠다. 2020년을 기점으로 분열이 가속화된다. 20세기 키워드가 세계화였다면, 21세기엔 탈세계화와 신냉전(중국-서양)이 난제로 다가올 것이다.
Q] 이처럼 위기가 가속화되는 21세기, 사람들은 어떻게 반응하는가?
A] 도피하고 싶어한다. 그 도피를 가능하게 해줄 기술도 발전하고 있다. 일론 머스크가 주장하는 화성으로의 이주처럼 물리적인 탈현실도 있다. 동시에 지지털 현실로 도피하려는 '메타버스' 움직임도 있다.
Q] '탈현실'이라는 표현 쓰기 전에, 근원적인 질문부터 해보자. 도대체 '현실'이 뭐냐?
A] 그거 쉬운 질문 아니다. 실제 '세상'이 존재하더라도, 인간은 그 세상을 있는 그대로 경험하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은 input이 아니라, 우리 뇌의 해석을 거친 결과물, 즉 output이다"(28)
Q] 무슨 말이냐? 인풋 아웃풋? 좀 쉽게 예를 들어 달라.
A] 꿈을 생각해봐라. 진화적으로 "수면"은 위험한 전략인데도 인간은 잔다. 심지어 어류가 아니라 물 속에서 숨도 못 쉬는 돌고래도 잔다. 왜 잘까? 수면이 진화적으로 도움이 되는 전략이기 때문이다.
Q] 지금 '장자의 나비' 이야기를 하려는 건가?
A] 동양에서뿐 아니다. 서양에서도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 외 다른 현실이 존재한다는 생각은 오래전부터 해왔다. 최근 학자로는 닉 보스트롬이 있는데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시뮬레이션의 일부라고 주장한다. 이 현실이 오리지널이든 시뮬레이션이든 중요한 건 양자택일의 답이 아니다. '나는 무엇인가, 사피엔스는 어떤 존재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Q] "나는 누구일까?" 라고 묻지 않고, 김대식은 "나는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의도가 무엇이고 "누구"와 "무엇" 사이엔 어떤 차이가 있지?
A] "호모 사피엔스가 가진 가장 탁월한 능력"은 "존재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는 능력"(58)이다. 다시말해 사피엔스는 뇌를 통해 현실을 만들어 낸다. 그건 인간만 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인간이 만들어낸 기계도 할 수 있다. Q] 난 이 책 제목 보고, 당신이 "메타버스" 설명을 초반에 배치할 줄 알았다. 도대체 메타버스 이야기는 언제 나오냐?
A] 이제 하려던 참이었다. 메타버스를 이렇게 설명하겠다. 체화된 인터넷. 즉, 몸을 지닌 인터넷이다.
Q] 흠, 영화 <아바타>가 생각난다. 우리 인간은 몸에 갇힌 존재인데, 디지털 현실에서 어떻게 아바타로도 존재할 수 있을까? 김대식 당신은 책에서 이렇게 질문했다. "우리 인간은 아날로그 동물인데, 어떻게 디지털 현실을 체험하느냐? 이것이 가능하느냐?"(135)
A] 모든 인간을 아날로그적으로 규정하긴 힘들다. 사실. Z세대 그리고 이후의 알파세대에게는 대한민국이라는 현실이 아닌 인터넷이라는 디지털 현실이 고향이 될지도 모른다.
Q] [메타버스 사피엔스]에서 촘촘하게 풀어내지 못한 이슈가 있는가?
A] 메타버스를 향한 인류의 대항해, 이 여행 과정에서 펼쳐지는 풍경이 장미빛일지 핏빛일지 우리는 알 수가 없다. 이제 서서히 장막이 열리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중요한 질문은 품고 갈 필요가 있다. 책 146쪽을 보라. 나는 내 자신, 그리고 독자들에게 이렇게 질문 던졌다. "메타버스 안에서 정체성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우리는 메타버스를 우리 현실이라고 감각할 수 있게될까?" "메타버스 안에서 행복한 삶이 가능해진다면, 그 때도 인간은 아날로그 현실을 필요로 할까? 아날로그 현실의 가치는 도대체 뭔가?" 책 덮고도 당신이 계속 가져갔으면 하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