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둥병
# 한센인
# 빌라도
[질병, 낙인](김재형 2021)를 읽다가 오래 잊고 지냈던 단어들을 만났다. #소록도, #문둥병. 아 어색해라...이 단어들이 아득하게 느껴지다니, 시간이 많이 흘렀구나...아멜리 노통브의 신간 [갈증]을 읽다가도 오랫만에 듣는다. '빌라도' '골고다'
소설 [갈증]의 도입부 설정은 굉장히 참신했다(혹은 누군가에게는 불경하다). 아멜리 노통브는 예수의 기적을 경험했던 이들이 어떤 죄목으로 그를 비난하는지를 작가 특유의 조소 어린 문체로 묘사한다.
심지어 내가 병을 고쳐 준 아이의 엄마는 내가 그녀의 삶을 망쳐 놓았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다.
"아이가 병에 걸렸을 때는 얌전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도무도 가만히 있질 못해요. 어찌나 소리를 지르고 울어 대는지 잠시도 편히 쉴 틈이 없다니까요. 밤에도 잠을 잘 수가 없어요."
"당신 스스로 피고인에게 아들의 병을 고쳐 달라고 부탁하지 않았나요?" 내 국선 변호인이 물었다
"병을 고쳐 달라고 했지, 병들기 전의 말썽꾸러기로 되돌아가게 해달라고 하진 않았어요."
프랑스어를 날름날름 띄엄띄엄 배웠어도, 프랑스어에는 한국어 "해갈"에 해당하는 단어가 없다는 것을 [갈증soif]을 통해 처음 알았다. 제목처럼 [갈증]에는 갈증이 해소될 때의 황홀한 감각이 자주 언급된다. 소설 속에서 예수는 자신을 "인간 중 가장 체현 incarnation된 존재"(15)라면서 감각할 수 있는 최상의 감각도 갈증과 연결짓는다.
- 목마른 자가 물잔을 입술에 갖다 대는 형용할 수 없는 순간, 그것이 바로 신이다.(52)
- 십자가를 져야 할 때 수분 부족은 나를 더욱 힘들게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갈증이 날 보호해 주리라는 것을 알 정도로 나 자신을 잘 알고 있다. 갈증은 그 정도로 심해질 수 있다. 다른 고통이 덜 느껴질 정도로 (53)
- 요한의 복음서 4장 14절, "이 물을 마시는 사람은 영원히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내가 가장 사랑하는 제자가 왜 이런 터무니없는 말을 했을까? 주님의 사랑은 결코 해갈해 주지 않는 물이다. 그 물은 마시면 마실수록 목이 더 마르다. 그것은 욕망을 누그러뜨리지 않는 쾌락이다! (116)
-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다. 그렇다. 극도의 고통에 시달리고 있지만 나는 아직 물 한 모금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다. 나의 믿음은 그 정도로 온건하다."(!15)"
아멜리 노통브가 전면에 세운 제목은 [갈증]이지만, 이 소설의 핵심어는 "체현"이 아닐까? 소설 속 예수는 말한다. "나는 아직 육신을 가지고 있다. 나는 결코 지금만큼 체현되어 본 적이 없었다."(111) 소설 속 예수는 "몸은 정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파악할 수 있"(41)다며, "체현된 존재"로서 "아버지의 실수"를 지적한다. [갈증] 후반부를 다시 읽었어도, 아멜리 노통브가 진정 무엇을 이야기하려는지 파악이 어려운 이유는 뭘까? "체현," "몸과 정신(이라는 이분법)" "감각 내의 위계"에 대한 작가의 생각이 생소해서일까? 아멜리 노통브 소설 특유의 막바지 클라이맥스나 반전이 없어서였을까? 일단 멋진 문장부터 옮겨놓고, [갈증]을 읽으실 다른 독자분들의 생각을 기다린다.
갈증을 느끼기 위해서는 살아 있어야 한다. 나는 너무나 강렬하게 살아서 목마른 채 죽음을 맞았다.
영원한 삶이란 아마 그런 것이리라. (1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