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널리스트나 학자가 약자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려는 지향을 뚜렷하게 드러낸다면, 이는 그 개인의 사적 삶과 연관되지 않는가 하는 궁금증을 오래전부터 품어왔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집필한 전혜원은 기자로서 "우리 시대 '파블로프의 개'와 비슷한 존재들의 목소리를 전하고 싶"다는 소신을 밝힌다. 작가 본인이 2010년 일본 교토의 닭꼬치 가게에서 4개월 동안 '파블로프의 개'가 되어 일했던 경험을 프롤로그에 배치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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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을 "낯설게" 보기 시작한 기자에게, "기자가 꽂힌 분야를 팔 수 있도록 장려하는 회사"(시사IN)는 연재탐사 기사를 허용했다. 전혜원은 2018년부터 <시사IN> 소속으로 취재한 사건 중 기사 23편을 9개 주제로 엮어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를 펴냈다. 제목에서 "말하지 않는"의 주어가 빠져 있는데, 프롤로그를 통해서 그 주어를 특히 언론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전혜원은 노동문제를 다룰 때 진보 언론과 보수언론이 "선량한 피해자로서 노동자 vs. 노조 혐오"식 이분법에서 접근하는 경향이 있음을 지적한다. 기자는 "선악의 이분법을 벗어난 노동 기사를 쓰려고 노력했"고, 이에 대해 소설가 김훈은 "전혜원 기자는 선악의 구분을 넘어서려고 했다지만, 결국 그도 가치판단을 완전히 내려놓지는 못한다. 인간이, 사회적 관계를 설정하는 일은 윤리적 범주를 저버릴 수 없다는 것을 전혜원 기자는 알고 있다(7)"는 (적어도 내게는) 알쏭달쏭한 추천사를 남겼다.
[노동에 대해 말하지 않는 것들]을 새벽까지 읽는 동안, 현관 앞에 대형 박스 4개가 배송되었다. 주말 동안 할인 쿠폰 써서 구매한 제품들이 민망스럽게도 1박스 1상품 형식으로 들어 있다. "고용 없는 노동" 챕터를 비롯, 전혜원 기자의 발품취재 기자정신 덕분에 평소 인식하지도 못하던 문제가 눈에 들어온다. 전혜원 기자가 말하는 "우리 시대 '파블로프의 개'와 비슷한 존재들"은 어디까지 포괄하는걸까 질문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