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 불가능 자본주의](사이토 고헤이, 2021)에 폭 빠져서 사이토 고헤이의 세상 읽는 방식을 흉내내보고 싶다. 그는 자본주의가 내부의 모순을 외재화하는 방식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기술적 전가, 공간적 전가, 그리고 시간적 전가.
이 중, 시간적 전가는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자면 "대홍수여, 내가 죽은 뒤에 와라!"의 태도이다. 사이토 코헤이는 "현재가 번영하기 위해 미래를 희생시키는" (47) 시간적 전가로 인해 "미래 세대는 자신들이 배출하지도 않은 이산화탄소 때문에 고통을 겪게 될(47)" 것이라 한다.
나 역시 환경 이슈를 책, 기사, 영상물로 매일 접하지만 "나중에 밀려올 해일"로 미뤄두기 때문에 태연할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다가 오늘 우연히 [공포의 먼지 폭풍]을 읽고 충격을 받았다. 부끄럽지만 고백하자면, 내게 '먼지폭풍'이라면 영화 [Interstellar]에서 스크린을 휘덮던 스펙테클적 재앙일 뿐이었다. 실제 1934년 5월, 미 남부 평원을 괴롭히던 먼지폭풍이 동부해안 지역까지 날아왔을 때, <뉴욕타임즈>에선 "주부들을 바쁘게 만들었다" 수준으로 논평했다 한다.
하지만, 이 폭풍의 파괴력과 후폭풍은 어마어마해서 작물과 가축뿐 아니라, 사람들까지 아프거나 죽어나갔다. 먼지폭풍을 피해 다른 지역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Okies라며 따돌림 당했다고 한다. 삶의 터전과 재산을 잃은 것만도 서러운데, 기후 난민은 이등 시민 취급을 받았던 것이다.
저자 돈 브라운이 시종일관 전하려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먼지폭풍"을 자연재해라 하지만, 인간이 초래한 재앙이다. WW1의 시작과 함께 급증한 밀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땅을 갈아 엎어 밀밭을 만들고 가축들을 방목하면서 대초원의 풀들이 사라졌던 것이다. 그 피해는 고스란히 사람들의 몫이다. 1930년대 문제일 뿐이라고? 2020년대 농업이 소진하는 대수층의 물은 머잖아 고갈될 것이라 한다. 불길하다. 또 다른 '먼지폭풍'이 등장 준비 중일지도 모르니.....
[공포의 먼지 폭풍]처럼 어린이 대상의 환경 교육에서 환경 문제를 미래형 시제가 아닌 현재형 혹은 과거 시제로 전달하는 방식이 효과적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