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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틸 라이프 아르망 가마슈 경감 시리즈
루이즈 페니 지음, 박웅희 옮김 / 피니스아프리카에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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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반적으로 참 조용하고 평화로웠다. 

 스리 파인스 사람들은 조용하고 평화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스리 파인스는 외부의 흔적이 묻어나지 않은 캐나다의 어느 마을이다. 그곳에는 제인 닐이라는 76세의 노부인이 있다. 그녀는 이 마을에서 한평생을 보냈으며, 다른 친구들을 가족처럼 여겼지만 결코 자신의 집에 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어느 날 그녀는 전시회 출품작으로 <박람회 날>이라는 자신의 작품을 공개한다. 그 그림은 심사위원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으나 그 그림을 출품하기로 결정한다. 그런데 얼마 후 추수감사절, 제인 닐은 숲 속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마을 사람들은 혼란과 슬픔에 잠기고, 이 사건을 접한 퀘벡의 경감 가마슈 일행은 사건을 조사한다.

 이상하게 ‘가마슈’의 시리즈임에도 불구하고 가마슈의 역할이 부각되지 않았다. 이것이 그녀의 첫 데뷔작이라고 해도, 적어도 그의 성격이나 그 밖의 것들을 분명히 했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가마슈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 이 두 무리로 나뉘었을 것이다. 하지만 책 속에서는 그보다 다른 형사들과 마을 사람들에게 초점을 두고 있다. 아무리 그들의 심리 묘사를 중요시 여긴다고 해도 내 기억에 남은 가마슈의 독백이 하나도 없다는 것이 의심스럽다.

  

 이 소설의 제목인 ‘스틸 라이프’는 ‘정물화’라는 뜻이다. 즉, 제인 닐의 죽음에 대한 의문을 풀어주는 그림 <박람회 날>을 가리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의 제목을 무턱 대고 ‘정물화’라고 할 수 없는 까닭은 ‘스틸 라이프(still life)’라는 단어가 ‘조용한 삶’이라는 뜻 역시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즉 제목은 <박람회 날>을 가리키는 동시에 스리 파인스 사람들의 이야기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가먀슈’ 시리즈의 첫 번째 작품이라면, 나는 이 작품을 계속 읽을 요지가 있다. 왜냐하면 저자는 형사들뿐만이 아니라 스리 파인스 사람들도 묘사했기 때문이다. 피터, 클라라, 루스, 매튜 크로포드……. 마저 풀어내야 할 이야기가 아직도(still) 많이 남아 있기에, 비록 이 작품이 조금 아쉬웠더라도 만족할 수 있는 기회가 있는 것이다. 조금은 지루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300쪽을 가까이 추리의 주위를 맴돌기만 하니까. 그래도 제인 닐의 비밀, 그리고 마을 사람들의 일상과 상처를 밝혀내는 장면은 좋았다. 마치 저자 루이즈 페니가 삶에서 느꼈던 고통들을 가마슈(남편 마이클?)가 위로해주는 것 같았다. 그렇다. 성격이 분명하지 않았던 가마슈에게서 본받을 점이 있다면, 그것은 ‘위로’가 아닐까 싶다.


 P.S: 책갈피에는 ‘소설로 쓴 숨은 그림 찾기’라고 했는데, 무슨 숨은 그림 찾기가 있단 말인가? 설마 범인이 한 행동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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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드립 파라다이스 - 디시인사이드 유식대장의 구치소 체험기
김유식 지음 / 가쎄(GASSE) / 201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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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다 보면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다. 가끔 그 실수는 돌이킬 수 없는 실수가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실수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실수를 한 사람은 개인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법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럴 때 많은 사람들은 선택으로 인해 실수를 저지른 것을 후회한다. 김유식도 예외는 아니었다. 김유식은 "안 해보고 후회하느니, 해보고 후회한다"는 말을 신조로 한다. 하지만 이번에는 "해보고 후회하느니, 안 해보고 후회한다"가 정답이었다. 괜히 욕심을 부리다가 자신이 운영하는 디시인사이드가 큰 손해를 보고 합병을 했던 코스닥 회사는 상장폐지, 그리고 전 경영진은 해외로 도주하게 된다. 결국 그는 법정에 서게 되고 그 날로 바로 구속된다.  

 이것이 사건의 전모이다. 이후 김유식은 113일 동안 구치소 생활을 한 뒤,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출소한다. 지금은 다시 디시인사이드가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런데 궁금한 사람이 있을 것이다. 과연 그는 113일 동안 구치소에서 어떻게 지냈을까? 그런 호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거의 없겠지만) 마땅히 이 책을 읽어야 한다. 개인의 솔직한 고백만큼 확실한 것은 거의 없으니까 말이다. 특히, 남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사적인 이야기라면 더욱.  

 구치소 내에서 그는 '김 대표님'으로 불린다. 그가 언제 이런 책을 일기처럼 집필했는지는 모르겠지만, 12월 31일의 경우를 보아 시간이 꽤 넉넉한 것 같다. 하긴, 교도소에서 무슨 직장을 다니겠는가? 책 읽을 시간도 많고, TV 볼 시간도 많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만 주지 않으면 감방 안에서 뭘 하든지 자유다. 교도소 안에서도 최소한의 자유는 보장되는구나,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물론 일반인만큼 자유를 누리진 못하겠지만.  

 439쪽이라는 긴 책이지만, 이 책은 왠만한 소설보다 재미있다. 생략된 날도 가끔 있긴 하지만 하루하루가 흥미롭고 파란만장하다. 아무래도 그렇게 느끼는 까닭은 박경헌과 장오-창헌 콤비 때문일 것이다. 박경헌이 다른 방으로 옮겨 갔을 때, 앞으로 무슨 재미로 읽을까 아쉬웠는데, 지루할 틈도 없이 신입 장오가 들어와 우리의 폭소를 터뜨리게 한다. 창헌과 장오 사이의 미묘한 정이 담겨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왠지 겉으로는 욕을 하고 싸우려고 하지만 속에서는 웃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죄수들 하면 난 험악한 이미지를 떠올리지만, 개드립 파라다이스를 접고 난 후, 그 이미지가 바뀌었다. 죄수들은 좀 더 인간적이고 유쾌한 이미지로 바뀌었다. 이것이 내가 이 책에서 얻은 교훈이다. '교도소와 죄수는 내 생각보다 나쁘지 않다!' 문제는 이것이 다라는 것이다. 이 이상의 교훈은 없다. 죄수들이 모인 감방에서, 그리고 그들의 일상을 솔직하게 묘사하는데, 그들이 교훈적인 소설이나 영화를 찍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일부러 교훈을 만들 수 있겠는가. 일상 생활에서 교훈을 찾고 실천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 하지만 교도소에서 교훈을 찾는 자는 거짓말쟁이다. 어쨌든 그들이 아무리 착하다고 해도 무슨 잘못을 저질렀으니 지금 교도소에 있지 않겠는가? '프리즌 브레이크'와 같은 누명으로 온 사람은 별로 없으니. 감옥과 죄수에 대한 편견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한 때 죄수였던 남자가 그린 구치소 이야기가 담겨 있으니까. 그것은 나쁘지도 않고 좋지도 않다.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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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쉬운 인생
케이 기본스 지음, 이소영 옮김 / 작가정신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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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장을 덮은 후, 가장 먼저 든 생각은 '이 사람들처럼 살고 싶다'는 생각이었다. 이들의 삶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케이 기본스가 인물의 개성을 뚜렷하게 부여한 까닭에, 작품 내내 계속 외할머니라고 불려온 찰리 케이트마저 마음에 들었다. 나는 각 인물에서 본받을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소설의 진행 방식은 대부분의 역사서가 그렇듯이, 연대기순으로 진행된다. 그러나 이 책은 한 나라의 역사나 세계의 역사가 아니라, 세 여자의 역사이다. 그 중에서도 죽음으로 끝맺은 찰리 케이트의 역사이다. 더불어 그녀의 딸 소피아의 역사이자, 화자인 마거릿의 역사이기도 하다.  

 나는 찰리 케이트에게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하는 법을 배웠다. 그리고 소피아에게서 때로는 자신의 의견을 억누를 때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마거릿에게서 중립을 지키며 화합을 꾀하는 법을 배웠다.  

 이들의 이야기는 재미있었고 본받을 점이 있었기에 매력적이었다. 간혹 긴 장이 나올 때는 장 말미가 조금 지루하긴 했지만, 어쨌든 재미있었다. 그래. 이 작품의 주인공은 전적으로 여자라는 것이 사실이었다. 책 읽기 전에는 남자의 비중이 조금은 될 것이라고 했는데, 만약 이 소설이 영화화된다면 남자들은 그야말로 '엑스트라'에 가까울 것이다. 그나마 마거릿의 남자친구인 탐이 조연급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이 책이 영화로 나오면 꼭 봐야겠다. 영화에서는 독서와 토론을 더 많이 하기를 내심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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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 인터넷이 우리의 뇌 구조를 바꾸고 있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 청림출판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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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이 책을 'IT 전도사에서 비판자가 된 니컬러스 카'라는 중앙일보의 신문 기사를 통해 알게 되었다. 이 기사는 저자 니콜라스 카와 인터뷰한 내용을 담았는데, 이 기사에 나타난 인터넷에 대한 그의 생각이 매우 흥미로워 나는『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을 읽게 되었다. 다 읽은 뒤에 많은 여운이 남았다. 정말 나 역시 인터넷 때문에 생각이 마비되고 있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과 함께.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원제는 'The Shallows'이다. 나는 원제의 뜻이 궁금하여 인터넷 영어사전을 찾은 결과, 'shallow'라는 단어는 '얕은'이라는 뜻이었다. 즉, The Shallows란 얕은 생각을 하는 사람들을 일컫는 것이다.

 이 책에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1장은 인터넷 때문에 사고가 얕아진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저자 자신의 이야기가 나온다. 위의 신문 기사에서도 나오지만 원래 저자는 몇 시간 동안이나 장문과 긴 신문 기사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한다. 하지만 인터넷을 사용하게 되면서 자기도 모르게 인터넷을 의존하게 되었고, 컴퓨터를 꺼 놨을 때도 e-mail을 확인하고 구글을 검색하고 싶은 욕망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이런 저자의 고백을 듣다 보니 문득 나는 그가 한심해 보였다. 그러나 나라고 아닌가? 궁금한 단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매일 메일을 확인하고 인터넷 카페에 들어가고, 인터넷 서점에서 활동하는 나 역시 자신도 모르게 사고가 얕아지고 있다. 어느새 나는 인터넷으로 리뷰를 쓸 수 있지만, 현실에서는 연필로 첫 문장조차 떠오르지 않게 되었다. 독서에서도 마찬가지다. 문장을 끝까지 집중하지 못해서 영문으로 된 『나니아 연대기』 한 장 분량의 내용도 놓치게 된다. 저자의 말대로 인터넷이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일까? 

 한 가지 아쉬웠던 점은 뇌과학적 측면과 저자의 측면이 조화가 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시냅스나 뉴런 등 뇌과학적 용어들이 간혹 존재하지만 사실 그 부분이 저자가 말하려는 것과 연결되는 것은 그다지 많아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오히려 그것들은 흥미로운 부분을 읽는 것을 방해하고 있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진실을 깨달았다. 내가 집중해서 읽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인터넷은 정보의 창고이다. 검색만 하면 원하는 정보가 나오고, 수많은 링크가 나온다. 하지만 그 때문에 인터넷은 우리를 산만하게 한다. 궁금한 단어 하나를 찾기 위해 검색을 하다가 어느 블로그에서 영화 리뷰를 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하는 경험, 한 번쯤 겪어 봤을 것이다. 구글뿐만이 아니라 네이버나 다음과 같은 국내의 포털사이트도 우리를 산만하게 한다. 시작 페이지에 검색창뿐만이 아니라 뉴스나 광고 등이 잡다한 사이트는 '악마의 유혹'에 가깝다.  

 물론 저자는 "인터넷을 쓰지 말라!"는 시대를 거스르는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이미 인터넷은 우리 생활에 깊숙이 뿌리내렸기 때문이다. 게다가 인터넷 역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비록 산만하긴 하지만 때론 그것이 새로운 자료를 찾는데 도움이 되고, 키보드는 빠른 시간에 자료를 칠 수 있게 해 줬다. 니콜라스 카 역시 자료를 찾는데 인터넷을 사용했을 것이다. 한 마디로, 오늘날의 현대인들은 인터넷을 쓰지 않으면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다.

 단지 그는 "깊이 생각하라!"고 주장한다. 전자 기기에 지나치게 의존하다 보면, 우리는 사고가 얕아져서 기기가 없을 때 생각하는 힘을 잃게 된다.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다. 책을 읽고, 그 내용을 직접 써보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전자 계산기를 수업 시간에 사용해도 될지 토론해 보라. 그리고 인터넷은 어디까지나 도구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그가 수없이 지적했듯이, 인터넷은 "우리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 우리의 사고 안에서 독창적인 지식이 피어오르게 하는, 풍부하고 색다른 일련의 연관 관계를 구축하는 바로 그 능력"을 축소시키고 있다. 결국 인터넷이 낳는 궁극적인 결과는 단순하면서 심각한 것이다. "인간이 기계에 의존하여 더 이상 생각하지 않게 된다." 반대로 생각하면, 인간이 인터넷과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이 제시된다. "인간이 기계를 참고하여 스스로 생각한다."  

 나도 앞으로 더 생각하기로 했다. 어떤 책을 읽든지 키워드 다섯 가지를 정하기로 했다. 나는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의 키워드를 이렇게 잡았다. '인터넷, 컴퓨터, 인간, 생각, 뇌.' 가끔은 인터넷에서 떠나 숲 속에서 뇌의 휴식을 취하고 싶다. 그리고 인터넷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권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자살한 미국의 소설가 데이빗 월러스의 졸업식 연설을 인용하며 이 리뷰를 마치겠다.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배운다는 것은 사실 어떻게, 무엇을 생각하는지에 대한 약간의 통제를 가하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무엇에 관심을 기울일지 선택할 만큼, 경험에서 어떻게 의미를 쌓아올릴지 선택할 수 있을 만큼 의식적이고 깨어 있는 상태를 뜻한다. 이 통제를 포기한 것은 무한한 대상 중 일부를 지니고 또 잃어버린다는 데 따른 끊임없는 괴로운 느낌과 함께 남겨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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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arover 2011-07-26 10:0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 중앙일보 기사를 보고 싶으면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5486671&cloc=olink|article|default

이 링크를 참조하길 바란다.
 
스파르타쿠스 전쟁 - 야만과 문명이 맞선 인류 최초의 게릴라전
배리 스트라우스 지음, 최파일 옮김 / 글항아리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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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 아이야, 향수와 화관                                      

마르시아 전쟁만큼 오래 묵은 포도주 단지를 가져와라 

떠돌이 스파르타쿠스가 한 동이라도 남겨두었다면

 
 

호라티우스(Quintus Horatius Flaccus)

 시인 호라티우스는 우리에게 생소하지만, 그가 태어나기 6년 전에 세상을 떠난 스파르타쿠스는 영화, 소설, 드라마 등을 통해 우리에게 익숙하다. 미국 드라마 <스파르타쿠스: 갓 오브 아레나>나 스탠릭 큐브릭의 영화 <스파르타커스>, 하워드 패스트의 소설 『스파르타커스』등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그리고 카를 마르크스는 그를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꼽을 정도로, 세계 철학사에 있어서도 그 영향을 발휘한다. 스파르타쿠스의 전쟁이 로마 공화정을 무너뜨리는 계기가 되어, 로마 제국의 길을 열었다는 평도 있으니 결코 그를 무시할 수 없는 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파르타쿠스가 일으킨 전쟁은 너무나 오래전에 일어난 일인 데다가 그것을 정확하게 기록해 놓은 역사가(그의 죽음 이후에 등장한 역사가들의 기록만 남아있다)가 없기 때문에 여전히 수많은 논란에 휩싸여 있다. 이 책의 참고문헌에서 볼 수 있듯이, 그에 관련된 역사서 또는 픽션이 매우 많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 와중에 진실된 역사가 있을까 기대해보지만 일치하는 것이 거의 없다.  

 배리 스트라우스의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이러한 논란을 많이 없애는 데 기여한 책이다. 이 책은 저자 개인만의 주장을 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의견을 모두 포용하고 있다. 그는 스파르타쿠스가 검투사로 싸웠던 루두스를 묘사하는 것에서부터 사령관 옥타비우스가 기원전 60년에 남은 반란군을 모두 제거할 때까지의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이 책은 크게 '탈출', '복수', '후퇴', '최후' 이 4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탈출'을 제외하고 모두 3장씩 구성되어 있다. 가끔씩 저자가 조사한 역사적 자료가 나타나 있다. 이것이 책의 외골격이다. 

 책 안으로 들어가보자. 들어가는 글은 스파르타쿠스 반란을 전체적으로 바라본다. 독자들은 긴장할 수 있겠지만 입장은 매우 간단하게 시작한다. "루키우스 코시니우스는 벌거벗은 채였다." 배리 스트라우스는 이전 작품에서 그랬듯이, 독자들이 책에 빠져들 수 있도록 연대기순으로 배열한 것이 아니라 전쟁 중간을 출발점으로 놓았다. 들어가는 말로 '겉'을 핥았으면 이 전쟁사는 검투사들의 이야기부터 시작한다(본문은 연대기순이다).  

 <스파르타쿠스: 갓 오브 아레나>는 검투사 양성소에서 검투사로 싸우는 스파르타쿠스를 중심으로 삼았다. 하지만 그것은 반역의 서막에 불과하다. 저자에 따르면, 스파르타쿠스는 중량급 검투사인 무르밀로였다. 그는 카푸아에 있는 원형 경기장에서 싸웠다. 이 곳에서 싸우는 검투사들은 무질서하게 싸우는 것 같지만 나름대로의 질서가 있다. 한 검투사가 상대방에게 부상을 입히면 공격을 한 검투사는 일단 물러나야 한다. 그리고 패자가 용감하게 싸웠다면 관중들은 엄지손가락을 아래로 내려 살려주고, 반면 패자가 비겁하게 싸웠다면 관중들은 엄지손가락을 위로 올려 그를 죽이게 한다. 사실 스파르타쿠스가 자유의 상징이 된 까닭도 이 검투사 경기의 영향이 크다. 검투사 양성소는 감옥에 가깝고, 검투사들은 "경기를 앞두고 동료들과 함께 식사를 들지만 다음날이면 밥상머리 친구를 죽이고 이내 그 희생자의 묘비를 준비"해야 했다. '루두스'라고 불리는 양성소의 주인 '바티아'는 탐욕스럽고 천박했다. 저자는 반역의 동기에 디오니소스의 사제였던 '트라키아 여인'이 있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녀보다는 검투사들이 비인간적인 대우를 참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탈출 이후, 노예들의 숫자는 엄청난 속도로 늘어났다. 고작 74명의 검투사로 이루어졌던 반란군이 어느새 수만 명의 군대로 바뀌어 있었다. 거기에는 탈출 노예들이 대부분이었겠지만, 일부는 농부와 같은 자유민이었다. 처음에 로마 공화정은 이 반역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장군들이 빈번이 패배하고 노예들의 수는 점점 늘어나자 새로운 장군을 불러온다. 한편, 노예들은 도시를 약탈하며 베수비우스 산을 거점으로 삼는다. 그 와중에 초기 노예 지도자들이었던 크릭수스와 오이노마우스가 죽는다. 로마군과 스파르타쿠스군의 전투는 승패가 번갈아가면서 이루어지면서 본격적으로 '전쟁'이 되었다. 

 하지만 크라수스가 등장하자 노예군은 차츰 밀리기 시작한다. 그들은 해적들의 도움을 받아 시칠리아로 도망가려고 했지만 그 약속은 이루어지지 않는다. 결국 노예들은 이탈리아의 장화 끝부분에 고립되었다. 크라수스 장군은 이들을 완전히 궤멸시키기 위해 자신의 엄청난 재산을 사용하여 멜리아 능선에 벽을 쌓았다. 이 전쟁에는 그의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기 때문에 재산은 아깝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폼페이우스까지 전쟁에 합류하려고 하자 다급해진 크라수스는 전쟁을 빨리 끝내는 것을 가속화시킨다. 결국 최후의 전투에서 스파르타쿠스는 죽고(이것이 진실이라고 말한다), 노예들은 도망간다. 그 중 붙잡힌 노예 6000명은 로마의 거리에서 십자가형에 처해진다. 이는 역사적으로 기록에 남는 대규모 십자가형이었다. 이후, 기원전 60년, 브리티움의 투리 평야 인근에 있던 도망친 노예들은 야심많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의 손에 사라진다. 이렇게 해서 제 3차 노예전쟁은 완전히 종결되었다. 

 이 책에 아쉬운 점이 하나 있다면, 스파르타쿠스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의의가 딱히 묘사되어 있지 않았다는 점이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직접 내리면 되는 것이고, 배리 스트라우스는 사실대로의 역사를 충실히 보고했으니, 이제 고대 전쟁 3부작을 끝마쳐도 될 것이다. 하지만 저자가 이 역사서에서 한 가지 의의를 부여한 것은 확실하다. 그는 유난히 로마 시대의 민족에 대한 언급이 많았다. 그들의 성격을 분석하며 전쟁의 동기를 찾았는데, 그것은 스파르타쿠스의 민족이 로마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트라키아인이라는 해석이 대부분이지만, 그것마저 정확하지 않다는 주장이 있다. 그래서 저자는 스파르타쿠스의 민족을 추측하여 그 일부 민족의 특징을 적어놓았다. 그 덕분에 이 전쟁은 조금 더 '민족적인' 의미로 확장되었고, 나아가 더욱 더 '국제적인 전쟁'으로 펼쳐졌다. 위에서도 밝혔듯이, 스파르타쿠스 전쟁은 로마 공화정을 끝나게 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고, 동시에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의 권력이 증가하여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함께 3부 정치를 하게 되는 기반이 되었다. 그리고 스파르타쿠스는 비록 전쟁에서 패배하여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았지만 훗날 키케로가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새로운 스파르타쿠스"라고 말했듯이, 그의 정신은 대대로 내려오며 지금도 살아있다.  

  

 -이 리뷰를 쓰면서 색인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그리고 그 동안 내가 알고 있었던 잘못된 인물 이름을 바로 잡을 수 있었다. 또, 스파르타쿠스 당시의 상황을 잘 알 수 있었다. 이 모든 감사를 저자에게 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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