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펭귄클래식 1
토머스 모어 지음, 류경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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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정치적인,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는 그 제목부터가 남다르다. '유토피아(Utopia)'라는 단어는 그리스어에서 그 유래를 두고 있으며 '없는', '좋은'이라는 뜻을 지닌 'U'와 '공간', '장소'라는 뜻을 지닌 'topia'의 합성어이다. 즉, '유토피아'의 뜻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좋은 공간'을 일컫는다. 흔히 사람들은 '유토피아'라는 이름 말고도 '이상향', '낙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유토피아』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어진다. 제 1부는 저자 토머스 모어 자신이 친구인 페터 힐레스와 가상의 인물로 알려진 라파엘과 대화하는 부분이고, 제 2부는 유토피아를 갔다 왔다는 라파엘이 들려주는 유토피아 이야기이다. 제 1부의 내용은 모어 당신의 영국을 비판하는 내용이며, 제 2부의 내용은 이 책의 본 내용으로서, 누구나 꿈꾸는 세상, 즉 유토피아에 대한 내용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가 씌어진 동기는 크게 세 가지 이유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모어가 살았을 당시의 르네상스 휴머니즘이고, 다른 하나는 종교 개혁, 마지막 하나는 유럽 세계의 개척이다. 토머스 모어가 살았던 시기는 그야말로 유럽이 급격하게 변하던 시기였던 것이다.

 우선 르네상스의 휴머니즘을 생각해 보자. 르네상스, 즉 문예 부흥 운동은 중세 시대에 유럽을 휩쓸어 중세를 몰락시키고 근대를 열어젖힌 근본적인 계기이며, 이 시기에 씌어진 작품은 셀 수조차 없을 정도이다.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도 이 시기에 씌어진 작품 중 하나로, 그가 살았던 영국은 헨리 8세가 교황의 권력에 저항하고 성공회를 연 16세기 초의 시대였다. 그 때 유럽에서 르네상스를 주도한 사람들이 바로 휴머니즘(인문주의)를 지향한 휴머니스트였다. 프랑스의 데카르트, 네덜란드의 에라스무스나 스피노자, 그리고 영국의 모어 등이 대표적인 휴머니스트였다.

 르네상스가 진행됨에 따라서, 종교 개혁도 진행되기 시작했다. 종교 개혁과 르네상스는 사실 유럽에서 일어나지 않을 수 없었던 필요불가결적인 것이었다. 교회의 타락상이 너무나 컸기 때문이다. 교황을 등에 업은 가톨릭교는 신부와 성직자들의 타락으로 백성들은 힘들어지고, 왕과 귀족 역시 교황에게 무릎 끓으면서 그의 말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니 르네상스가 몰아닥치자 기다렸다는 듯이 마르틴 루터 같은 종교 개혁가들이 일어나 종교 개혁을 부르짖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종교 개혁은 영국에서는 변질된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영국의 왕 헨리 8세가 교황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성공회'라는 신흥 종교를 만들어 낸 것이다. 마르틴 루터와 같이 종교 대 종교로써 이루어 질 줄 알았던 영국의 종교 개혁은 모어의 기대와는 달리 교황과 영국 왕이라는 잘못된 구도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토머스 모어는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유토피아』 안에 자신이 꿈꾼 종교 정책을 놓아두었다.

 『유토피아』의 배경을 이루는 데 매우 큰 역할을 한 것이 유럽의 영역 확대였다. 아직 제국주의가 시작되지 않았을 때, 영국이나 에스파냐 같은 몇몇 해양 강대국들은 신대륙을 발견하기 위해 여러 번 모험을 했다. 그리고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나 마젤란 같은 사람은 신대륙을 발견하는 데에 성공한다. 토머스 모어는 이들의 발견에 큰 영감을 받아 『유토피아』의 공간적 배경을 형성하게 되었다. 토머스 모어는 유토피아가 도저히 인간이 닿을 수 없는 곳에 있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지리학적인 용어를 사용하면서, 그 곳을 이 세상과 완전히 고립된 공간으로 만들었다.

 마치 그것은 조나단 스위프트의 『걸리버 여행기』의 공간적 요소와 비슷하다.

 








걸리버 여행기

조나단 스위프트 | 신현철 옮김

문학수첩 2010.10.07







 『걸리버 여행기』에 등장한 네 개의 섬은 각각 인간이 갈 수 없는 그 어떤 곳이다. 물론 그곳이 유토피아인지 아닌지는 생각해보아야 할 것이지만, 『걸리버 여행기』의 공간적 배경이 『유토피아』의 그것과 일치한다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주로 비판하고자 한 것은 '영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이다. 그 중에서도, '가혹한 형벌'과 '인클로저'를 제 1부에서 비판하고 있다(본격적인 비판은 제 2부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난다). '인클로저'는 '공동 이용이 가능한 토지를 둘러막아 사유지로 하는 것'을 말한다. 뜻으로만 보아도 문제점이 드러나는 것인데, 실제로 영국에서는 토지 소유자들이 더 많은 양들을 기르기 위해 농민 보유지를 뻬앗는 일이 벌어졌고 이 때문에 수많은 농민이 도시 빈민 또는 노동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빈민이 된 자들은 먹고 살려면 '노동' 또는 '범죄' 밖에 방법이 없는데, 노동은 지나치게 가혹하여 도저히 할 수도 없는 데다가 그것마저 만원이다. 그렇다면 빈민은 이제 '범죄'밖에 방법이 없다. 그런데 영국의 형벌 제도는 너무나 가혹하다. '도둑질'만 했는데도 '교수형'이 내려지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 모어가 『유토피아』 제 1부에서 비판하고자 한 것은 이런 것이다. 토지 소유자들이 더 많은 양들을 기르기 위해 '인클로저'를 빙자하여 농민 보유지를 빼앗아 농민들은 빈민 또는 노동자가 되었다. 그런데 그렇게 생겨난 빈민들은 '범죄'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그들이 범죄를 하다가 걸리면 교수형을 받게 된다.

 이 가혹한 처벌을 보여준 책이 한 권 더 있다. 바로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이다.

 

 







왕자와 거지

마크 트웨인 | 남문희 옮김

웅진씽크빅 2008.10.31







 『왕자와 거지』의 시대적 배경 역시 헨리 8세가 지배하던 16세기 초반이다(물론 소설에서는 헨리 8세가 곧 죽지만). 그리고 왕자 에드워드와 옷을 뒤바꿔 왕이 된 '도시 빈민' 톰 캔티는 '가혹한 처벌'에 대해 자비를 베푼다. 이것은 에드워드 또한 마찬가지여서, 그 둘은 가혹한 처벌을 훨씬 더 완화 시킨다.

 

 『유토피아』의 본격적인 내용은 제 2부에서 등장한다. 라파엘이 점심을 먹은 후, 토머스 모어와 페터 힐레스에게 들려주는 이 이야기는, 읽은 이든 듣는 이든 모두를 기분 좋게 한다. 왜? 라파엘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너무나 꿈 같기 때문이다. 즉, 그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현실에서는 절대로 일어날 수 없는 이야기인 것이다.

 이 책의 2부는 '유토피아'의 모든 것을 다루고 있다. 결혼 제도, 노동 제도, 예배 방식, 전쟁 방법, 믿는 종교, 풍습, 지형, 너비, 특징 등. 라파엘은 그렇게 장광설을 우리에게 들려주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다. 모어는 불행한 우리에게 행복한 이야기를 들려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번쯤은 '유토피아'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러나 현실은 "유토피아 같은 건 존재하지 않아!"라고 외치고 있다.

 

 나는 정말 『유토피아』가 부럽다. 하지만 이 소설은 단지 '공상소설'이 아니다. 이 책은 '정치공상소설'이다. 그만큼 이 책은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때문에, 이 책에서 소개되는 유토피아는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이 작품에서는 유토피아의 정치에 관련된 내용이 많다. 토머스 모어는 영국의 정치 현실을 무엇보다도 비판하고 싶었던 걸까?

 

 

 2. 과학적인, 프랜시스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

 앞의 토머스 모어가 『유토피아』에서 정치적 유토피아를 다루었다면, 프랜시스 베이컨은 『새로운 아틀란티스』에서 과학적 유토피아를 다루었다(참고로 프랜시스 베이컨은 『신기관』, 『학문의 진보』 등 경험철학적인 저술을 많이 쓴 철학자이다).

 








새로운 아틀란티스

프랜시스 베이컨 | 김종갑 옮김

에코리브르 2002.01.24







 아틀란티스는 고대 철학자 플라톤의 『크리티아스』에 나오는 전설의 섬이다. 대서양의 어느 곳에 있었다는 그 섬은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연상시킬 만큼 행복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그 섬은 어느 순간에 바닷 속으로 침몰하고 말았다. 그런데 17세기초 에 베이컨은 바닷 속으로 가라앉은 아틀란티스를 다시 끌어올렸다. 그런데 새로 올라 온 아틀란티스는 예전에 비해 크게 달라보였다.

 

 







크리티아스

플라톤 | 이정호 옮김

이제이북스 2007.04.13







 

 이 소설 같은 작품은 그들이 타던 배가 난파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항해 중에 배가 난파하여 어느 정체불명의 섬(벤살렘)에 가게 되는데, 어떤 외부인이 오면 늘 그렇듯이, 처음에 섬의 사람들은 그들을 경계하는 듯한 태도를 보이다가 그들이 위험한 인물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자 크게 그들을 환영해주었다. 그들은 '새로운 아틀란티스'를 둘러다보다가 '솔로몬 학술원'이라는 것을 만나게 된다. 이들은 지혜를 추구하는 일종의 조직으로, 이 나라에서 큰 영향력을 끼친다. 그리고 '새로운 아틀란티스'의 본 모습은, 솔로몬 학술원 중의 어떤 한 사람의 설명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베이컨은 이 작품을 과학적 유토피아 픽션으로 만들었다. 이 소설과 가장 비교해 보아야 할 책은 다름 아닌 토머스 모어의 『유토피아』이다. 토머스 모어가 이 정치공상소설에서 그리스도교적 공산사회를 만들어냈다면, 베이컨은 이 작품에서 과학적 산업사회를 묘사했다.

 토머스 모어가『유토피아』에서 노동의 시간을 만들어내고, "일하지 않으면 먹지도 말라"는 이론으로 교훈적인 내용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경험주의적(실용주의적 사상과 관련) 사상을 지닌 베이컨으로서는, 그런 교훈적인 유토피아보다는 진짜 유토피아가 필요했다. 즉, 일하지 않아도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유토피아 말이다. 그리고 그런 유토피아를 이루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 바로 '과학'이었다. 베이컨은 과학이야말로 인류를 번영으로 이끌 수 있는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는 이것에 동감한다. 정말 과학이 이런 식으로 발전한다면 이 세상은 유토피아가 될 것이다. 하지만......... 어떤 요인에 의해 과학 문명은 이상한 방향으로 발전한다. 그리고 그 끔찍한 결과를 담아놓은 것이 '디스토피아' 소설이다. 『유토피아』의 디스토피아가 바로 조지 오웰의 『1984』이고, 베이컨의 『새로운 아틀란티스』의 디스토피아가 바로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이다. 이것에 대해서는 4장에서 자세하게 다루겠다.

 

 

 3. 조선인이 생각한 유토피아란?

 

 







조선인의 유토피아

서신혜

문학동네 2010.01.08







 이 학술을 아는 사람은 꽤 드물 것이다. 사실 나도 이 책에 대해 잘 몰랐는데, 타 출판사 카페 이벤트에 당첨되어 받은 책이었다. 처음에는 무슨 책일까 하고 궁금했는데, 그 내용을 알고 보면 『유토피아』 소개서와 다름이 없었다.

 

 "이상향은 사람이 살고 싶어하는 공간으로, 서양 식으로 말하자면 유토피아이다. 유토피아는 영국 사람 토머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가 그의 책 제목을 『유토피아Utopia』라고 하면서 만들어낸 용어이다. 그리스어에 연원을 둔 이 말에서 'u'는 '없다ou'라는 의미와 '좋다eu'라는 의미를 동시에 지닌 글자이다. 'topia'는 장소를 의미하므로 이 둘을 합치면 세상에 '없는 곳' 또는 '좋은 곳'이라는 의미가 된다. 유토피아는 세상이 실재하지 않는 환상의 세계를 나타내는 동시에 세상과 다른 좋은 곳을 뜻하는 말이다(p.51)."

 

 이 학술은 조선 사람들이 왜 유토피아를 꿈꾸게 되었는지,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드러났는지, 그들이 꿈꾼 것이 어떻게 현실에서 이루어졌는지를 알아내는 글이다. 그리고 '어떤 방식으로 그것이 드러났는지'에 대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안평대군의 「몽유도원기」와 <몽유도원도>이다.

 

 사전 썸네일 (몽유도원도. 출처: 네이버 백과사전)

 

 이 작품은 다만 조선인이 어떻게 유토피아를 꿈꾸었는지 다룬 책이므로 여기서 자세한 리뷰를 쓰지는 않겠다.

 

 

 4. 너무나 불행하기 때문에 유토피아조차 생각할 수 없다-디스토피아

 우리가 유토피아를 알았다면, 이제 '디스토피아(Dystopia)'라는 것의 개념을 알 차례이다. '디스토피아'는 '유토피아'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가장 부정적인 암흑세계의 픽션을 그려냄으로써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는 문학작품 및 사상(출처: 네이버 백과사전)'을 일컫는 말이다. 디스토피아 소설의 역사는 그리 오래되지는 않지만, 엄연히 세계 디스토피아 3대 소설이 있다. 조지 오웰의 『1984』,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 그리고 자먀찐의 『우리들』이 그것이다.

 

  1. 정치적 디스토피아-『1984』

 

 







1984

조지 오웰 | 정회성 옮김

민음사 2003.06.16







 조지 오웰이 이 작품을 쓴 시기는 그의 사망 1년전에 쓴 1949년이다. 우리에게는 이미 지나간 연도지만, 조지 오웰에게는 가까운 미래였던 것이다. 조지 오웰이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과는 달리 이렇게 가까운 미래를 두고 쓴 이유는 그만큼 그가 살던 시대의 세계가 디스토피아를 향해 나아가고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다.

 

 비록 1984년은 지나갔지만『1984』는 끝나지 않았다. 이 소설에서 제시되는 정치적 암울한 미래는 어쩌면 우리 세대가 겪어야 할 일일지도 모른다. 비록 우리가 겪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후손들이 이런 고통을 겪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다. 제 2의 윈스턴 스미스가 나오지 않도록 말이다. 그리고 제 2의 빅 브라더가 나오지 않기 위해.

 

 2. 과학적 디스토피아- 『멋진 신세계』

 

 







멋진 신세계

올더스 헉슬리 | 이덕형 옮김

문예출판사 1998.10.01







 올더스 헉슬리가 생물학자 토마스 헉슬리의 손자이니만큼, 그는 생명 과학에 대해 관심이 있었다. 때문에 올더스 헉슬리는 이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생명 과학의 지나친 발전에 의한 비극'을 다루었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키워지는' 비극을 다룬 이 소설은, 프랜시스 베이컨이 제시한 과학적 유토피아가 과연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분명히 알려준다. 특히, 이 책의 마지막 구절은 곧 우리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서서히 아주 서서히, 마치 두 개의 느긋한 나침반의 바늘처럼 그 다리는 오른쪽으로 회전했다. 북, 북동, 동, 남동, 남, 남남서, 그리다 다시 몇 초 후에는 전처럼 서서히 왼쪽으로 회전했다. 남남서, 남, 남동, 동(p.328)……."

 

 3. 그리고 저항하는 인간의 죽음- 『우리들』

 

 (이미지 대신 관련 리뷰 주소를 올림)

 

 http://cafe.naver.com/openbooks21/564

 

 예브게니 자먀찐의 『우리들』은 세계 3대 디스토피아 소설 중 가장 먼저 쓰여졌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가장 잘 알려지지 않은 비운의 작가들 중 하나이다. 어쨌거나 자먀찐의 『우리들』은 다른 디스토피아 소설들과 마찬가지로 슬픈 결말을 가진 소설이다.

 이 작품에서 사람들은 '번호'로 불린다. 이것의 의미는 무엇인가? '개인으로서의 존재', '개인 그 자체'의 상실이다. 결국 이 작품의 주인공인 D-503도 '숫자'에 불과하기 때문에 저항이 실패로 돌아가는 것이다. 자세한 사항은 위 주소를 참고하시길.

 

 

 5. 유토피아는 사람의 마음에 달렸다

 그렇다면 진짜 유토피아는 어디에 있을까? 모어의 정치적 유토피아에 있을까? 베이컨의 과학적 유토피아에 있을까? 아니면 조선인의 유토피아에 있을까? 답은 아무도 모른다. 그것은 생각하는 사람 나름대로이다. 결국 유토피아는 생각하는 사람 나름대로이다. 유토피아는 자신이 행복하다고 느끼는 순간, 그 주변의 모든 것들이 유토피아라고 여겨진다. 결국 유토피아도 궁극의 목적은 '인간의 행복'이기 때문이다. 나는 『니코마코스 윤리학』 1권 4장에 나오는 한 구절을 여기에 새겨놓으며 이 리뷰를 마치겠다.

 

 "모든 종류의 앎과 선택이 어떤 좋음을 욕구하고 있으므로, 정치학이 추구한다고 지적했던 좋음은 무엇인지, 그리고 행위를 통해 성취할 수 있는 모든 좋음들 중 최상의 것은 무엇인지 논의해 보자. 그것을 어떤 이름으로 부르는지에 관해서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고 있다. 대중들과 교양 있는 사람들 모두 그것을 '행복(eudaimonia)'이라고 말하고, '잘 사는 것'과 '잘 행위하는 것'을 '행복하다는 것'과 같은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으며, 대중들과 지혜로운 사람들이 동일한 답을 내놓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람들은 눈에 보이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어떤 것을, 가령 즐거움이나 부나 명예라고 말하고, 다른 사람들은 제각각 다른 것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다(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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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일간의 세계 일주 펭귄클래식 81
쥘 베른 지음, 이효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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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우다 부인의 남편, 필리어스 포그 신사님. 세숫대야 가져왔습니다."

 "음........"

 포그가 세숫물 속에 손을 담근 후, 파스파르투에게 말했다.

 "29도로군. 하지만 난 자네를 해고하지 않겠어."

 "왜죠? 전의 하인처럼 엄격하게 해고하지 않고."

 "자네는 이미 나에게 너무나 소중한 하인이 되었기 때문이야."

 파스파르투와 포그 신사가 서로를 마주보면서 씩 웃었다. 바로 그 때 아우다 부인이 자신의 방에서 거실로 나왔다.

 "오 나의 사랑스러운 부인! 얼른 이리 와 앉으시오. 마침 즐거운 대화를 하려던 참이었소."

 아우다 부인은 거실에 있는 네 개의 소파 중 한 곳에 편안하게 앉았다.

 "만능열쇠 파스파르투, 런던은 지금 어떻게 돌아가고 있나?"

 "평소처럼 잘 돌아가고 있습니다. 런던 시민들은 여왕을 따르면서 열심히 일하고 있고, 주인님 같은 훌륭한 신사 분들은 즐거운 여가를 보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그 일주를 끝낸지 벌써 반 개월 남짓하게 지난 것 같군."

 "벌써 그렇게 지나갔나요? 세월이 참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세 달도 채 안 되어서 세계 일주를 끝마쳤는데, 지금은 세계 일주를 끝마친 날로부터 180일 정도 지났으니........ 하지만 이 180일 사이에 벌어진 사건은 세계일주를 하던 80일의 사건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죠!"

 "미안해, 파스파르투. 내가 너무 칸트처럼 굴었어. 매일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그에 따라 행동했단 말이지. 예전처럼 클럽에 다니고, 예전처럼 세수하고........ 자네도 좀 지루했지?"

 "아니요. 전혀 그렇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재미 있었죠! 긴장감도 돌았구요. 주인님은 물의 온도를 촉감만으로도 맞힐 분이니, 저는 항상 온도계를 가지고 있어야 했으니까요. 전 절대 여기서 나가고 싶지 않습니다."

 "나 역시 자네를 해고할 생각은 전혀 없네."

 "우리가 세계 일주를 떠났을 때, 영국은 어떻게 돌아갔지?"

 "난리가 났었죠. 그 때만 해도 80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한다는 것은 꿈도 꿀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요. 사실 주인님도 처음에는 그것을 믿었겠죠. 하지만 신문이 그 사실을 알려주었잖아요. 주인님은 갑자기 그 신문에 나와 있는 내용을 믿었죠."

 "런던은 나를 상대로 내기를 걸었겠군."

 "네, 정작 내기의 대상인 주인님인 까마득히 모른 채 말이죠. 런던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이 주인님이 80일 안에 세계 일주를 할 수 있느냐 못 하느냐에 대한 내기를 했죠. 주인님은 클럽에 있는 네 다섯 명의 신사 분들에게만 내기를 하셨겠지만, 실제로는 런던이 주인님과 내기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그렇다면 런던이 전부 내가 실패할 거라고 예상했단 말인가?"

 "그런 셈이에요. 처음에는 절반은 성공, 절반은 실패라고 했는데, 주인님이 런던 은행을 턴 도둑이라는 소문이 떠돌아다니자, 모두가 실패라고 예상한 겁니다. 아주 극소수의 사람만 끝까지 주인님이 성공할 거라고 믿었죠."

 "내가 은행을 털었다고?"

 "픽스 형사가 그랬어요. 픽스 형사는 주인님이 런던 은행의 5만 파운드를 훔친 범인이라고 생각한 거에요. 몽타주가 거의 비슷하다고. 그리고 그 범인의 행동이 주인님과 유사해서 그랬다고."

 "뭔가 큰 오해가 있었던 모양이군."

 그 때, 노크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입에 담배를 문 픽스 형사가 그들이 있는 거실로 들어왔다.

 "자네를 보니 떠오르는 말이 있군."

 "그런가?"

 픽스가 조용히 대꾸했다.

 "어쨌든 환영하네, 픽스 형사. 이리 와서 남은 소파에 앉게."

  픽스는 마지막 소파에 앉아 파스파르투와 필리어스 포그의 대화를 들었다.

 "파스파르투, 내가 자네한테 준 돈은 어떻게 되었지?"

 "가스등 때문에 다 썼어요."

 "그야 당연하지. 6,912,000초 동안 켜 놓았으니까."

 "너무 정신 없이 출발해서 그런 가 봐요. 우리는 제가 주인님 집에 처음 온 날부터 여행을 떠났으니까요. 제가 프랑스인이라는 사실은 주인님도 알고 계시죠? 사실 제가 주인님 집에 온 이유는 편안하게 지내고 싶어서 온 거에요. 주인님이 칸트처럼 매일 매일을 엄격하게 생활한다는 사실은 런던에 쫙 깔린 소문이니까요. 제가 여러 가지 일을 하면서 깨달은 사실은 하인 일이 참 고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저는 쉬고 싶었어요."

 "자네가 그렇게 말하니 내가 너무 미안하네."

 "처음에 우리는 이집트의 수에즈에 갔었지?"

 "네. 별 일 없었어요."

 "하지만 나에게는 너무 중요한 일이었다고! 우리 영국의 식민지였던 수에즈인지라, 난 당신을 잡을 수 있었어. 영국의 식민지는 곧 영국이나 다름없다고. 수에즈는 수많은 영국 중의 하나였으니, 당신을 잡을 수 있는 영장은 그곳에서도 쓸 수 있었지. 하지만 나는 결국 너를 놓쳤지."

 "이미 지나간 일이니까 잊어, 픽스 형사. 흥분하지 말고."

 

 "중요했던 곳은 인도야."

 "그 곳에서 많은 시간을 소비했죠."

 "그러나 가장 소중한 시간이었어. 아우다, 당신을 만났기 때문에."

 "인도 사람인 제가 생각해도 그 풍습은 정말 미개해요. 그렇게 인종 차별적인 풍습은 인간이 해야 할 짓이 아니었어요. 남편이 죽었다고 해서 저까지 죽을 필요는 있나요?"

 "그래서 우리는 당신을 구하려고 했지."

 "제가 구했어요!"

 파스파르투가 갑자기 소리쳤다.

 "누가 구했든, 어쨌든 고마워요. 당신들과 함께 일주를 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어요."

 "인도에서는 참 악몽이 많죠."

 "아니, 나는 별로."

 "주인님이 몰랐던 저만의 악몽이 있죠. 주인님이 그걸 알게 된 이유는 주인님이 법정에 끌려 간 이유죠. 처음에 주인님은 아우다 부인을 데리고 가서 끌려왔다고 생각했죠. 아니, 주인님이 아니라 저였군요."

 수다쟁이처럼 말을 하는 파스파르투가 계속 말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제가 사원에 신발을 밟았는데, 벌을 받지 않고 오히려 승려들을 후려쳐서 법정에 끌려온 거죠. 죄송해요. 저 때문에 주인님의 돈과 시간이 낭비되어서."

 "걱정 마. 지나간 일이야."

 "주인님이 상당히 여유로워지고 느슨해진 것 같아요."

 파스파르투가 웃었다.

 "아니, 그게 아니야. 나는 돈 때문에 세계 일주를 하려던 게 아니야. 세계를 돌아다니면서 내가 모르는 세계의 풍습이나 문화가 어떤 것인지 알아보려고 일주를 한 것이고, 세계의 사람들이 어떤 성격과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는지 알아보려고 한 것이야.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세계 일주를 했던 이유는 그 곳에 내가 찾던 행복이 있을지 알아보려고 한 것이야. 난 행복을 찾기 위해 그렇게 돈을 쓴 것이야. 하지만 너무 여유롭게 굴다가는 내가 찾던 행복을 찾을 수 없 다는 생각에, '80일'이라는 시간적 제한을 둔 것이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네 사람은 각자 무엇인가를 곰곰히 생각하는 듯 했다. 그리고 가장 먼저 입을 연 사람은 픽스였다.

 "사실 저는 당신이 홍콩을 벗어났을 때, 더 이상 당신을 체포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하고 파스파르투를 홍콩에 남겨두기로 했죠. 그렇게 하면 당신이 그를 찾으러 홍콩으로 돌아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것은 제가 저지른 범죄였습니다. 대체 왜 제가 당신을 체포하려고 파스파르투까지 이용했을까요? 그 때 제가 제정신이 아니었던 걸까요?"

 "그것보다는 자네가 돈을 얻으려고 그랬던 것 같은데?"

 필리어스 포그가 예리하게 물었다.

 "맞습니다. 저는 범인을 잡으면 보상금을 받습니다. 그런데 저는 저만의 이익을 위해 당신을 파산시키려고 했던 거예요."

 "그리고 픽스 형사, 당신은 나에게 아편을 먹였지."

 "돈을 위해 당신들에게 해를 끼친 것, 정말 죄송합니다. 세계 일주 마지막까지 말이죠."

 "픽스 형사, 자네가 런던에 오자마자 나를 체포한 것도 말이지?"

 "예........."

 픽스 형사가 말끝을 흐리며 말했다. 픽스 형사는 고개를 숙이다가 무엇인가 번쩍 떠오른 듯 고개를 들고, 파스파르투에게 물었다.

 "그런데 파스파르투, 왜 자네는 내가 나의 정체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포그에게 말하지 않았지?"

 "글쎄요, 아직 말할 시기가 안 되었다고 생각한 겁니다. 말해 봤자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막상 주인님이 체포되었을 때는 그것을 마구 후회했지만요."

 "파스파르투, 나는 자네와 함께 여행을 떠나지 못한, 그 때의 이야기를 다시 듣고 싶네."

 "제가 아편을 먹고 쓰러진 후부터, 일본에서 서커스 노릇을 하다가 주인님을 만나기까지의 이야기 말이죠?"

 "저는 그 광경을 보면서 놀랐어요. 저는 포그 당신이 파스파르투를 찾으러 홍콩으로 돌아올 줄 알았는데 그냥 아우다 부인과 함께 일본으로 떠났을 때, 당황했습니다. 그러면서 이제 일본에서 머물겠지, 라고 생각하며 좌절하는 순간, 당신은 미국으로 떠나려고 했죠. 물론 파스파르투를 만났지만 말이죠. 혹시 당신은 파스파르투를 만날 거라고 계산했던 것인가요?"

 참견하기를 좋아하는 픽스 형사가 갑자기 필리어스 포그에게 물었다.

 "아니, 나는 파스파르투를 믿었을 뿐이다. 그의 별명이 '만능열쇠'잖아. 파스파르투는 어떤 짓을 해서라도 결국 나를 만나거나 런던으로 돌아오게 되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어."

 "어쨌든 저는 먹고 살기 위해서 일본에 적응하기로 했죠. 저의 인간 관계가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게 순탄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자네는 나와 너무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이렇게 친한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신분, 민족, 혈통 모두 다른데."

 "세계 일주, 아니 세계는 그 모든 것을 초월하여 모든 인류를 하나로 이어주는 하나의 끈이니까요."

 "멋진 말인데? 그런데 사람들은 대체로 자네처럼 인맥이 좋은 사람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는 모양이야."

 "동양에서는 그게 허용될지 몰라도, 서양에서는 그게 통하지 않나 봐요. 미국인과 영국인의 갈등은 돈으로는 해결이 안 되더군요."

 "인종 차별적인 언사는 삼가하게나, 만능열쇠."

 "그 기분 나쁜 대령은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아요."

 "그 때 인디언들이 온 건 다행일지도 몰라."

 "인디언들과의 싸움은 오히려 재미있었던데요!"

 "우리는 자네를 찾기 위해 피를 말렸지."

 파스파르투는 픽스와 포그의 말을 무시하고 계속 말했다.

 "그런데 전 인디언보다 물소가 더 싫었어요."

 "그런데 파스파르투, 자네는 정말 영리해. 어떻게 무너지려는 다리를 빠르게 관통하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할 수 있었지?"

 "저는 모험적이니까요!"

 파스파르투가 활기차게 말했다. 잠시 침묵이 흐르다가, 파스파르투가 다시 필리어스 포그 신사에게 말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탄 배를 아주 비싼 값에 산 이유는 뭡니까, 주인님?"

 "아까 말했지 않는가. 행복을 찾기 위해서는 돈의 희생도 감수해야 한다고."

 "이제 깨달았습니다."

 

 "그래도 우리가 한 이 세계 일주가 값진 이유는 바로 그것이죠."

 "그래, 우리가 원하던 것, 얻으려던 것, 그리고 세계 일주의 목적을 이루었기 때문이지. 우리가 얻으려고 했던 것은 돈이 아니야. 그리고 그것은 비록 얻었다고는 해도 금방 잃어버렸지. 하지만 우리가 진정으로 얻었던 것은 '행복'이고, 아직도 그 행복은 우리에게 남아 있지."

 "그 행복은 '사랑'으로 나타난 것 같죠?"

 아우다 부인이 웃으면서 다시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그런 것 같군."

 포그가 그녀의 뒷 모습을 쳐다보며 말했다.

 "그럼 이만."

 픽스 형사가 떠났다. 포그는 잠시 픽스 형사가 나간 문을 쳐다보다가 파스파르투에게 말했다.

 "파스파르투, 지금 몇 시지?"

 "11시요."

 파스파르투가 자신의 귀중한 유산인 금시계를 보며 말했다.

 "일본에서 팔지 않길 잘 했어요."

 "그걸 너는 세계 일주의 상징으로 삼거라."

 포그가 시계를 보면서 말했다. 이윽고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그 다음에 할 자신의 일을 준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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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예술가의 초상 범우비평판세계문학선 9
제임스 조이스 지음, 김종건 옮김 / 범우사 / 1999년 9월
평점 :
품절


이 책은 전적으로 보아서 난해한 책이기에 비평판 해설을 참고할 수밖에 없었다. 스티븐 디덜러스의 성장 과정을 그린 이 교양 소설의 주제는 무엇이고, 문체와 서술 기법은 또 무엇인가? 그것에 대해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한 해설로 답해 주신다. 나는 해설 1의 형식을 빌려서 리뷰를 쓰겠다.

 1. 서론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야말로 훌륭한 교양 소설이자 성장 소설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 책은 미국의 대학생들에게 널리 읽히며 연구되고 있는 고전 중 하나이다. 
 그러므로 우리도 읽어야 하지 않을까?

 2. 줄거리
 서론에서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그랬듯이, 김종건 교수님은 자꾸 앞의 첫 부분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렇게 내내 강조했으니 그 부분이 이 작품에서 어떤 부분을 하는가 보자. 우선 그 부분은 작품의 서론과도 같다. 서론이란 작품을 요약한 것이다. 그러므로 앞의 그 부분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그 뒤는 매우 수월하게 읽힐 것이다. 그러나 그 부분은 이 작품 전체처럼 어렵다. 그래서 해설 없이는 읽기가 어렵다. 이 줄거리 부분을 읽는 독자는 분명히 읽는 내내 의문이었던, 그 보이지 않은 줄거리가 보일 것이다.

 3. 주제
 나는 문학의 주제야말로 그것의 핵심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기법이나 문체가 독특해도, 내용이 재미 있어도 주제가 미약하면 고전이 되지 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젊은 예술가의 초상』 안에 있는 주제를 파악해야 한다.
 이 책의 주제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하나는 '맹목 주제'이다. '맹목 주제'란 일종의 반복법이다. 이 책의 가장 앞에 나오는 핵심 구절들이 작품 내내 계속 반복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어린 왕자』처럼 유기적인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또 하나는 '부정(父情) 탐색의 주제'이다. 이 주제는 20세기 문학에서 대중화된 주제이다. 아무래도 '잃어버린 세대' 같은 것으로 볼 수 있듯이, 가족과의 대화가 줄고 세대간의 갈등이 심화되는 시대가 바로 20세기이다 보니, '잃어버린 가족간의 정'을 찾는 문제가 문학에서 많이 다루어진 것 같다. 특히 이 작품의 중요한 모티브가 된 것 중 하나가 '이카로스 신화'이다 보니 조이스는 이 작품에서 '부정 탐색의 주제'를 강조한 것 같다. 참고로 이카로스와 다이달로스는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이다.

 4. 문체와 기법
 사실 사람들이 조이스의 문학을 어려워하고 그에 따라 기피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그의 문학이 문체와 기법의 기교를 통해 난해함을 낳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들을 알고 보면 그토록 재미 있는 게 없다. 즉, 조이스의 문학은 알면 알수록 재미 있다.
 사실 조이스의 작품은 작품 내에서도 계속 장마다 문체가 바뀐다. 물론 그것은 일부러 한 것이고, 다양한 표현법을 낳지만 독자들은 정신 없이 바뀌는 문체에 따라가지 못하고 지쳐버리기 일쑤이다.
 이 책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스티븐이 성장함에 따라 문체는 점점 성숙해져 간다. 조이스의 문학의 특징은 내용이 성숙해짐에 따라 문체 역시 성숙해져 간다는 것이다. 더구나 스티븐의 성장을 다룬 소설이 『젊은 예술가의 초상』이다 보니 그것은 더욱 두드러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그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 중 하나는 바로 '서술 기법'이다.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는 그의 모든 작품에서 어떤 세 가지의 서술 기법을 사용하고 있다. 그만의 독특한 것도 있고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와 함께 쓰는 기법도 있다. 그 세 서술 기법은 이렇다.

 <1> 의식의 흐름: '의식의 흐름'이라는 말은 원래 현대 정신분석학에서 나온 말이다. 그러나 격변하는 20세기 문학은 기존의 수법의 한계를 느끼고 다른 분야의 용어까지 따오게 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의식의 흐름'이다. 사실 이 기법(수법)은 제임스 조이스뿐만이 아니라 거의 동시대의 작가였던 마르셀 프루스트나 버지니아 울프 같은 작가들도 사용한 것이다. 제임스 조이스의 『젊은 예술가의 초상』에 나온 의식의 흐름 수법은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혹은 버지니아 울프의 『등대로』에서도 나온다. 그렇기 때문에 이 수법은 조이스만의 특별한 것이 아니고 그에 따라 '의식의 흐름' 분야에서 조이스가 차지하는 비중도줄어든다. 이 기법은 조이스의 문학에서 꽤 많은 비중을 차지하지만, 그에 못지 않은 중요성을 갖춘, 조이스만의 서술 기법은 그 다음에 있다.

 <2> 에피파니: 원래 '에피파니'는 세 명의 동방박사가 탄생한 아기 그리스도를 방문한 것으로 상징되는 현현(顯現)이다[그런데 저 한자를 보면 둘 다 '나타날 현' 자다. 결국 그리스도의 '나타남(appearance)' 그 자체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러나 조이스의 문학에 있어서의 에피파니란 그와 조금 다른 개념이다. 그것은 주인공이 경험하는 갑작스러운 정신적 발로 또는 계시로서, 베일이 걷히며 드러나는 사물의 본질 같은 것이다. 에피파니의 동기는 가장 사소한 소리나 몸짓에 의하여 야기된다. 나는 에피파니의 동기에 대해서 주목하고 싶다. 『율리시스』의 1, 2, 3장을 보면 스티븐은 멀리건의 소리, 디지 씨의 서재에 있는 물건, 샌디마운트에 온 여인으로부터 에피파니를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에피파니에서 멈추지 않고, 곧 의식의 흐름으로 이어진다. 즉, 조이스는 위의 두 주제를 따로 따로 놓지 않았다. 에피파니의 동기로써 시작하여 의식의 흐름으로 발전시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이것은 의식의 흐름이 나온 이유를 설명하는 것이다.
 어쨌든 이 '에피파니'란 조이스가 20세기 문학사에 공헌한 것 중 가장 큰 부류에 속할 정도로 귀한 것이다. 사소한 것이 큰 것을 이야기할 수 있고, 사소한 것으로부터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는 이 '에피파니 기법'을 그냥 두기에는 너무 아깝기 때문이다.

 <3> 신화의 사용: 위에서 잠깐 밝혔듯이, 이 책의 중요한 모티브 중 하나는 '이카로스 신화'이다. 그 신화의 내용은 간략하게 표현하자면 이렇다.
 "고대 크레타 왕국의 예술적 거장 다이달로스는 미노스 왕의 명을 받아 괴물 미노타우로스를 감금하기 위해 미로를 설계한다. 이 미로는 너무나 정교하여 그 곳에서 탈출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그런데 나중에 그는 왕의 미움을 받아 그의 아들 이카로스와 함께 그 미로에 감금된다. 그러나 다이달로스는 하늘로는 탈출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털깃과 납으로 날개를 만들어 아들과 함께 크레타를 탈출한다. 다이달로스는 이카로스에게 지나치게 높이 올라가 태양열에 납이 녹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카로스는 그것을 무시하고 높이 올라가다가 태양열에 날개가 녹아 지중해로 떨어져 익사했다(p.353참조)."
 이 신화에서 스티븐은 누구인가? 다이달로스인가? 이카로스인가? 이렇게 고민할 필요 없다. 스티븐은 그 둘 다이다. 그렇다면 '부정 탐색'은 무엇인가? '아들' 스티븐이 '아버지' 스티븐을 찾는 것이다. 그런데 그 아들과 아버지는 동격이다. 즉, 그것은 자기 자신의 탐색이다. 그리고 위 신화를 보면 다이달로스 자신이 만든 '철저한 미궁(이 미궁은 더블린이기도 하다)'에 자신이 갇혀버린다. 이것은 곧 자기 자신 안에 갇힌 것이다. '하늘'은 '자기 자신의 탐색'을 일컫는다. 즉, 자기 자신을 탐색하지 않고서는 자기 자신의 미궁(우리)로부터 빠져 나올 수 없다. '털깃과 납'은 곧 '예술'이다. 그러나 예술로 만든 '날개'로써 '자기 자신의 탐색'을 시도하려는 것은 무리이다. 그것만으로 자기 자신을 탐색하려고 하다가 태양열(자기 한계)에 날개가 녹아버린다. 그렇다면 무엇이 더 필요하다는 말인가? 그것은 '성장'이다. 결국 무질서하게 날아오르려다가 날개가 녹은 것 아닌가? 게다가 아버지 다이달로스(자기 자신)의 충고를 무시해서 그렇게 된 것 아닌가? 결국 그것은 정신적으로 덜 성장했다는 증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끝까지 스티븐을 성장시킨다.
 하지만 조이스는 이러한 그리스 신화 외에도 성경, 단테, 셰익스피어의 이야기들을 그의 작품 속 주인공의 차원을 심화하기 위해 자신의 심리적 목적에 적응시켰다. 그리고 그는 과거와 현재의 두 개의 세계, 즉 질서와 무질서의 융합을 그의 작품을 통해 성취했다. 대표적인 예가 바로 『젊은 예술가의 초상』의 주인공인 스티븐 디덜러스(Stephen Dedalus)의 이름이다. 일단 '스티븐(Stephen)'부터 알아보자. 이 이름의 유래는 신약 성서에 나오는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을 영어식으로 파생한 것 중 하나이다. 스데반은 자신의 믿음을 전파하려다가 죽었다. 즉, 스티븐이 이 세상을 구원하려고 온 '사도'라는 것을 암시하는 동시에 햄릿처럼 우유부단하게 행동하여 세상에게 죽지는 않았지만 패배자로 남은 사람이라는 것 역시 암시한다. 그리고 '디덜러스(Dedalus)'는 다이달로스의 영어 식 발음이다. 다이달로스와 스티븐의 관계는 이미 충분히 설명한 것 같으니 생략하겠다.


 5. 스티븐의 심미론
 스티븐의 심미론은 이 작품뿐만이 아니라 조이스의 다른 작품에서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하니 반드시 알아두어야 한다. 김종건 교수님은 친절하게도 그것을 간단히 요약해 주었다.

 미의 세 가지 인식 단계
 
 1. 전체성

 2. 조화

 3. 광휘
 
 
 이것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 바구니를 예로 들겠다. '전체성'이란 바구니를 전체적으로 보는 것이고, '조화'란 바구니의 부분부분을 분해하여 보는 것이다. 그리고 '광휘'란 바구니 그 자체를 인식하는 것이다. 즉, 미의 인식 단계는 간단히 표현하자면 '보고 인식한다'라고 할 수 있다.
 그 다음은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있다.
 
 미의 세 가지 형식

 1. 서정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image)를 자기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 속에 두는 것.

 2. 서사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 자신과 남에게 간접적으로 연관시키는 것.

 3. 극적 형식: 예술가가 자신의 이미지를 남과 직접적인 연관에 두는 것.

 
 이렇게 나온 심미론 또는 예술론은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대입시키면 매우 합당하게 받아들여진다. 바구니의 비유가 아니라 스티븐 그 자신의 성장 과정 자체가 비유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미의 인식 단계는 바구니의 비유를 통해 이해가 되리라고 생각하고, 미의 세 가지 형식이 스티븐의 성장 과정에 어떻게 대입되는지 한 번 살펴보자.

 "그의 유년 시절의 서정적 단계 동안에는 만사가 그 자신에게 연관되고 모든 표현은 자기 중심적인 개성에서 울려 나온다. 잇달아 그의 청년기에는 타인을 인식하고 그의 가족, 그의 친구, 그의 학교 선생님들과의 직접적인 연관 속에 살며 부모와 거리의 연인들 그리고 신부들과 어울려 살기 위해 스스로를 적응시키려고 노력한다. 마지막 단계에서 그는 극적 상황, 즉 한 사람의 행동예술가로 승화되는 것이다.(p.358)"

 그리고 최종적으로 스티븐이 정의한 '예술가의 정의'란 무엇인지 살펴보기로 하자.
 
 "예술가는 창조의 하나님처럼, 그의 작품의 안에 또는 뒤에 또는 그 너머 또는 그 위에 남아, 세련된 나머지 그 존재를 감추고 태연스레 자신의 손톱을 다듬고 있는 거야(p.358~359)."

 이러한 정의는 현대 문학을 특징짓는 몰개성(沒個性)의 정의이기도 하다. 

 6. 진화와 출판
 원래 이 작품의 초고는 『영웅 스티븐(Stephen Hero)』였다. 그러나 조이스는 그것에 만족하지 않고 그 작품을 더 발전시켜 그 작품과 별개의 것을 창조해내었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이 작품은 다른 모든 위대한 고전들이 그랬듯이, 출판 내역이 복잡하다.

 7. 스티븐과 제임스 조이스
 흔히 사람들은 스티븐과 조이스가 동격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 스티븐과 조이스는 다르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완전하게 일치한다. 그러니 스티븐은 조이스의 반(半)자전적인 인물이라고 보아야겠다.

 8. 역사적 배경
 문학은 그 문학이 쓰여진 시대를 반영한다. 특히 조이스가 이 작품을 쓴 시기인 20세기 초반은 시대를 반영하지 않을 수 없다. 알다시피, 20세기 초반은 격변의 시대였다. 경제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모든 게 변하는 시대였다. 그래서 원래 있던 것과 새로운 것의 충돌이 벌어졌다. 조이스의 조국 아일랜드 역시 반란 당원들이 활발하게 움직여 분쟁이 자꾸만 벌어졌다. 그런 와중에서 개인의 정체성과 신의 존재감은 상실되어 갔다. 기근과 분쟁의 반복으로 많은 사람들이 죽자 문학은 이런 현실에 분노했다. 조이스 역시 그들 중 하나였다. 그는 이 책에서 '정체성을 잃은 개인의 방랑'을 그렸다. 또, 그의 대표작 『율리시스』는 신의 부재하에서 인간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지에 대해 다룬 작품이다. 이렇듯, 조이스의 문학은 당시 시대와 개인의 사상, 그리고 예술이 혼합되어 만들어진 하나의 걸작품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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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자와 거지 펭귄클래식 55
마크 트웨인 지음, 남문희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08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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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의 제목은 『왕자와 거지』........ 제목대로 주요 등장인물은 왕자와 거지다. 그리고 이 책은 우리가 잘 알고 있듯이, 이 둘은 서로 신분을 바꿔 왕자는 거지 행세를, 거지는 왕자 행세를 하다가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는 내용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마크 트웨인은 이런 유머스러운 상황에서 당시 시대를 비판하는 정신으로 글을 썼다. 그것은 그의 또 다른 작품, 즉 『톰 소여의 모험』과 『허클베리 핀의 모험』에서도 드러난다.
 

 마크 트웨인은 이 작품의 무대를 헨리 8세가 지배하던 16세기 영국으로 설정했다. 그래서 약간 역사 소설 풍을 띠고 있다. 사실 정말로 편자 주나 역자 주를 보면 역사에 대한 내용이 많이 나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이 사건이 역사에 공식적으로 기록된 것은 아니다. 그저 작가의 상상력으로 된 것이다. 우리는 현실과 상상력을 구분해야 한다.

 

 우리는 이 작품에서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을 볼 수 있다. 마크 트웨인이 살았던 당시 미국은 막 남북전쟁이 끝나고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을 시기였다. 공업이 농업을 밀어내고 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시기였던 것이다. 그 때 등장한 자본가는 노동자를 마구 착취했다. 인간다운 대우도 해 주지 않았다. 마크 트웨인은 이것을 헨리 8세가 지배했던 16세기 영국에 빗대었다. 거지 톰이 살았던 오팔 코트는 '쓰레기장'이라는 뜻을 지닌 빈민가였다. 빈민들이 모여 사는 그 마을에서는 폭력과 다툼이 끊이지 않는 부패하고 타락한 곳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곳에 사는 사람들이 곧 '노동자'다. 그리고 호화로운 궁정 사람들이 '자본가'다. 왕자 에드워드 튜더 역시 하나의 자본가에 불과하다.

 '빈부 격차에 따른 차별'의 대표적이 예가 바로 왕자의 탄생과 거지의 탄생 부분이었다. 작가는 그 둘을 매우 대조적으로 묘사한다. 그 광경은 대강 이렇다.

 "먼 옛날 16세기가 중반부에 접어들던 무렵, 런던의 어느 가을날에 캔티라는 가난한 집에서 한 사내아이가 태어났는데, 그 집에서는 아무도 원치 않은 아기였다. 같은 날 잉글랜드에서 또 한 명의 사내아이가 부유한 튜더 가문에서 태어났으니, 이는 집안 전체가 원하는 아이였다. 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그를 원했다. 이 아이를 갈망하고 소망하며 신에게 간구하던 백성들은, 실제로 그가 탄생하자 좋아서 거의 미칠 지경이 되었다. 그냥 얼굴만 아는 사이끼리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울음을 터뜨렸다. 모든 이들이 일손을 놓은 채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잔치를 열어 춤추고 노래하며 얼큰히 취했는데, 그러기를 며칠 밤낮이나 계속했다. 낮이면 런던은 집집마다 발코니와 지붕에 현수막이 너울거리고, 화려한 행렬이 통과하는 장관을 연출했다. 밤이 되면 길모퉁이마다 커다란 화롯불을 피우고, 흥이 오른 사람들이 그 주변을 돌며 볼거리를 만들었다. 잉글랜드 전역에서 새로 태어난 아기, 즉 웨일스의 왕자 에드워드 튜더를 빼놓고는 할 얘기가 없었으나, 정작 당사자인 아기는 그와 같은 야단법석은 까맣게 모른 채 비단과 공단에 감싸여 있었고, 고귀한 영주와 귀부인들이 자신을 돌본다는 사실도 전혀 알지 못했으며 관심 또한 없었다. 그러나 또 다른 아기, 꾀죄죄한 헝겊에 감싸인 톰 캔티에 대해서는, 가난한 거지 일가를 제외하고는 아무도 화제 삼지 않았다. 그가 태어났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그는 이미 집안의 고민거리였다(p.13~14)."  

 이렇게 차이가 났던 둘이 서로 뒤바뀐다니, 얼마나 재미있는지 생각해보라. '고민거리 그 자체'였던 톰 캔티가 한순간에 '집안 전체가 원하는 아이'인 에드워드 튜더가 되고, '갈망과 소망의 대상'이었던 에드워드 튜더가 한순간에 '아무도 원치 않은' 톰 캔티로 되버린다........ 이것이야말로 이 작품에서 가장 우스운 유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마크 트웨인이 이 글을 쓴 주요 목적이 영국의 왕실을 비판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작품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으므로 잠시 설명을 하겠다. 사실 에드워드  튜더가 톰 캔티와 신분을 바꾸려고 한 이유는 "신발을 벗어던지고, 잔소리할 사람 없는 데서 실컷 진흙탕을 뒹굴(p.28)"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톰 캔티 역시 그 동안 왕자가 되고 싶어 했다. 중요한 것은 에드워드 튜더다. 그는 부유하고 모두가 원하는 아기였지만, 앞의 인용문에서 나왔듯이 "정작 당사자인 아기는 그와 같은 야단법석은 까마득히" 몰랐다. 즉, 그는 자신이 왕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은 것이다. 에드워드는 갑갑한 왕실 상류층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 싶어했던 것이다. 이해가 안 간다고? 영화 <타이타닉>의 로즈를 보면 이해가 갈 것이다. 그녀 역시 상류층 사회에서 탈출하고 싶어했으니까. 그리고 나중에는 톰 캔티 역시 그 사회의 갑갑함에 못 참아 다시 거지로 돌아가고 싶어하는 장면을 우리는 볼 수 있다. 결국 그토록 왕자를 바랬던 그조차 그 직위를 스스로 버리게 하도록 하는 왕실을 마크 트웨인은 비판하려고 했던 것이다.

 

 이 작품에서 가장 극적인 부분은 이 장면일 것이다.

 "잠시 후 왕자는 톰의 너덜대는 옷을 걸쳤고, 거지 톰은 호화로운 왕자 옷으로 바꿔 입었다. 두 사람은 거울 앞으로 걸어가 나란히 섰다. 정말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옷을 바꿔 입은 것이라고는 도무지 믿을 수가 없을 정도로, 두 사람의 차림새는 기가 막히게 자연스러웠다. 두 왕자는 서로 쳐다보다가 거울을 바라보고, 다시 서로 마주 보았다. 어안이 벙벙해진 진짜 왕자가 먼저 입을 열었다(p.28)."

 이 이후로 진짜 왕자는 한 동안 가짜 왕자를 보지 못했다. 그리고 가짜 왕자를 만나기 위해 진짜 왕자는 온갖 모험을 했다. 그 사이 왕자가 배운 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레 미제라블』의 주제와 비슷하다. 엄격한 법과 도덕만으로는 사람들은 행복해질 수 없다. 인간이 행복하게 살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비'다. 이게 바로 『레 미제라블』의 주제이고, 이것은 곧 『왕자와 거지』의 주제이기도 하다.

 그렇다, 이 책의 중요한 주제는 '자비를 베풀라'는 것이다. 그것은 이미 작가가 『베니스의 상인』에서 인용한 구절에서 암시되었다. 에드워드 튜더는 감옥에 갇힌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법이 너무 지나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나중에 왕이 된 후에 그들을 석방시켰다. 톰 캔티 역시 지나친 법으로 잡혀 온 사람들의 사정을 듣고, 용서해주었다. 그래서 그 둘은 '자비를 베푸는 법'을 배웠다. 그래서 그들은 계속 존경을 받았다. 비록 에드워드 튜더는 일찍 죽었지만........

 

 이 책의 펭귄클래식 판에는 「한 소년의 모험」이 담겨 있다. 그 내용은 <회초리 시동>이 톰 캔티에게 '한 소년의 모험'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그 액자 소설의 주제 역시 이 책의 주제와 같다. 그러나 작가가 삭제한 이유는 한 가지 이야기에 집중하고 싶었기 때문이 아닐까? 어쨌든 그런 좋은 내용을 담아준 펭귄클래식이 고맙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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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끼호떼 동서문화사 월드북 57
미겔 데 세르반테스 지음, 김현창 옮김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7년 10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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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끼호떼 1,2부가 들어 있고, 종종 그림도 나와서 읽으면서 많이 재미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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