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 - 영화광 가네시로 가즈키의 열혈 액션 드라마
가네시로 카즈키 지음, 김난주 옮김 / 북폴리오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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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지만 사회적 위치에 따라 상대를 대하는 것이 달라지기 마련이고, 사람의 목숨에는 무게가 없다지만 국가의 막중한 임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보다 특별한 보호장치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SP(Security Police)는 "국내외 VIP를 경호하는 특수경찰"로 요인전문 경호원을 말한다. 배경이 일본이다보니 우리 나라 시스템과는 차이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책의 내용상으로는 그렇다. SP는 '움직이는 벽'이 되어 요인에게 닥칠 위험을 차단한다. 때로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요인을 구하기위해 몸을 던지지만 임무를 완수했다고 해서 영웅이 될거란 생각은 버려야 한다.             

 

 주인공 이노우에는 어린 시절 부모님이 테러리스트에게 목숨을 잃는 장면을 목격한 상처가 있는 인물이다. 이노우에가 SP로의 길을 걷게 된 이유도 경찰에 의해 길러졌다는 점과 그날의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에게는 특별한 능력이 있는데 사건 현장이나 컴퓨터 화면같은 특정 장면을 사진을 찍어 보관하는 것처럼 기억할 수 있다. 그리고 초인적이라고 할 만큼 직감이 뛰어나 SP들 중 가장 먼저 위험을 감지하며, 상대방의 살의나 악의를 읽어내는 능력도 탁월하다.  SP 역사 최초로 테러리스트를 직접 검거한다는 설정도 어쩌면 당연한 것일지도. 이런 남자 옆에 있으면 정말 든든할 것 같은데 말이다. ^^

 

 주인공이 '특수 경호원' 이라는 정보를 알고 시작하는 독자라면 누구나 '그런 장면' 기대하지 않을까. 휘트니 휴스턴의 'I will always love you' 같은 애잔한 곡이 흐르는 가운데 주인공이 의뢰인(대통령의 딸 혹은 장관의 딸 쯤 되는)을 향해 몸을 던지면서 테러리스트의 총탄을 대신 맞는 장면과 두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ㅋㅋ(심각한 장면인데 왜 웃음이 나지? ^^;;)  하지만 작가는 철저하게 멜로를 버리고 '다이하드 시리즈'를 선택했다. 화려한 액션, 땀을 쥐게 하는 긴장감, 주인공의 눈부신 활약, SP들의 동료애... 처음엔 주인공의 아픔을 감싸줄 여자주인공을 기대했다가 좀 서운하기도 했었는데 여자 SP들의 멋진 모습에 반해 오히려 기분이 좋아졌다.   

 

 책의 특성상 경호부 내에에 인원이 많고 공안부와도 업무가 얽히는데다 에피소드마다 여러명의 테러리스트가 등장하기 때문에 인물이 많아서 읽는데 힘들었다. 여전히 적응 안되는 일본식 이름, 이렇게 등장인물이 많으면 너무 헷갈린다. 그리고 매 페이지마다 작가의 주석이 달렸는데 드라마화 되면서 바뀐 점이나 느낀 점등에 관한 것이다. 처음엔 꼼꼼하게 병행해서 읽다가 나중에는 자꾸만 정신이 산만해져서 무시하고 읽었다. 그랬더니 내용에 몰입하기가 훨씬 쉬웠다. 드라마가 먼저 방송된 후에 시나리오가 출간되는 것이어서 작가의 감회가 새롭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경호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를 쌓는 것입니다. 우리를 믿으십시오. 그럼 우리는 그 신뢰를 바탕으로 목숨걸고 당신을 지킬 겁니다. (p.246)"

 

 SP들도 사람이고, 의뢰인도 테러리스트도 모두 사람이다. 그런데 누구는 상대를 죽이려 하고, 다른 쪽은 구하려 한다. 부모와 자식간, 연인간에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것은 이해하겠는데 경호원이라는 이유로 남을 위해 기꺼이 목숨을 건다는 사실이... 참으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이 대사는 작가가 SP들을 위해 고심해서 넣었다고 하는데 굉장히 가슴찡한 장면이었다. 그러고보니 우리 사회는 군인, 경찰들을 비롯해서 묵묵히 자신의 임무를 수행하는 이들, '지켜주는' 사람들의 의해 유지되고 있음을 잊고 살았던 것 같다.   


 

 <SP>는 소설이 아니다. 일본에서 제작되어 성공을 거둔 드라마의 시나리오이다. 처음엔 상세한 묘사가 없어 좀 어색하기도 했는데 드라마의 장면을 나름 상상해가면서 읽으니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유지나 질서보다 개인의 이익을 먼저 바라는 이들이 있다는 사실에 씁쓸했고, 경제 관련 사건의 경우 사건을 증언하려는 이들에게 실제로 테러가 많다는 사실이 충격적이었다. 무엇보다 SP로서 보호해야 할 인물이 '보호 하고 싶지 않은' 인물일 경우 인간적인 갈등이 느껴져서 안타까웠다. "이게 내 일이다.(p.499)" 라는 말은 이노우에가 테러리스트의 질문에 대답한 말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스스로에게 간절했던 말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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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 - 상
시오노 나나미 지음, 김석희 옮김 / 한길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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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이 태어나 죽는 순간까지를 '생노병사'의 과정이라 일컫는 것 처럼 국가의 흥망성쇠도 이와 같다고 생각한다. 마치 자연의 섭리와 오묘함 속에서 태어나 죽음으로 이어지는 유기체처럼 말이다. 그런데 국가의 경우 이미 쇠하였음에도 또 다른 강한 세력에 의해 기존의 권력이 무너지고 흡수되지 않은 상태라면 오직 '혼란'만이 존재하는 상태가 되고만다. 로마 멸망 이후 지중해 세계 처럼 말이다. 로마가 중심이 되어 평화를 유지했던 200여년의 팍스로마나가 막을 내리자 지중해는 중심을 잃고 어수선한 상황에 처하고 만다.   

 

"평화는 간절히 바라는 것만으로는 실현되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참으로 유감스러운 일이지만 , 누군가가 평화를 어지럽히면 가만두지 않겠다고 분명히 언명하고 실행해야만 비로소 평화가 현실화되는 법이다. 따라서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군사가 아니라 정치적 의지였다. (p.66)"

 

 이야기가 길어지기 전에 고백하고 시작해야 겠다. 시오노 나나미 여사의 책은 이번이 처음이다. 왜냐고 물으면 글쎄...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로마인 이야기'의 경우 언젠가는 꼭 읽어야 할 책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는데, 다른 사람들이 권하는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시작을 못하고 있다. 그 방대함에 주눅이 들었다는 말이 어설픈 변명처럼 들릴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되어버렸다. 그리스/로마 신화부터 로마를 빼놓고는 서양 문화를 이야기할 수 없으며 세계사를 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단행본은 여러권 읽었는데 어쨌거나 시오노 나나미 여사가 전하는 로마이야기를 훌쩍 뛰어넘어 '로마 멸망 후'를 먼저 만났다.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세계(상)> 이 책은 "해적으로 시작해서 해적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성전(지하드)을 내세운 이슬람은 평화가 무너진 지중해를 끊임없이 탐하고 유린했다. 그들은 재물 뿐 아니라 기독교인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 노예로 팔거나 '목욕장'이라는 시설에 수용했다. 이슬람의 도발에 대응하여 빼앗긴 성지를 되찾는다는 목적으로 시작된 십자군 원정은 역사상으로도 손꼽히는 무모한 전쟁이었다. 기독교 국가들은 앞다투어 이슬람으로 향하면서 저마다의 이익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런 이기심은 억울하게 잡혀 온 이슬람의 기독교인들을 외면한 사례에서도 쉽게 발견된다. 

 

 이슬람의 입장에서는 지중해를 상대로한 해적 행위가 엄청난 경제적 효과를 불러왔음은 말할 것도 없다. 특히 북아프카의 이슬람인들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생존 수단이기도 했다.이슬람인들은 성전의 본래 목적대로 기독교인들을 개종시키려 하기보다는 노예로 부리거나 노예상인들에게 팔거나 혹은 이들의 몸값을 지불할 수도사, 기사들과 거래하기를 원했다. 십자군 원정이 200여년 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도 이슬람의 성전과 마찬가지로 '경제적' 이유가 컸던 것으로 보인다. 기독교 국가들 중에서는 이슬람에 대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그들과의 무역을 유지하고자 했던 나라들이 많았다.

 

 로마시대가 문화, 예술, 경제 면에서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온 시기라면 로마 멸망 이후의 지중해 시대는 철저하게 약육강식의 세계였고 경제논리에 따라 움직이는 시대였다. 경제란 풍요를 상징하기도 하지만 때론 국가간에 철저하리만큼 이기적인 면을 보이기도 한다. 과거 지중해의 모습을 통해 오늘날 세계 정세와 경제상황을 보는 듯 해서 또 한번 놀라게 된다. 따지고보면 지중해를 위협했던 이슬람 해적이 제국주의 시대의 포르투갈, 영국, 프랑스 등과 같은 유럽의 해적들과 다를 것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지중해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끝없이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와 아름다운 섬들이다. 그 곳 사람들은 낙천적이면서 정열적이고 미식가들이 많은데다 장수하기로도 유명하다. 하지만 아름다움 뒤에 감춰진 아픈 역사 때문인지 오늘 만큼은 지중해의 바다가 슬퍼보인다. 특히 부츠 모양의 이탈리아 해변을 따라 수도없이 세워진 '사라센의 탑(해적들의 습격을 감시하던 망루)'들이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절박함을 말해주는 듯 하다. 지중해의 해적은 19세기 프랑스가 알제리를 식민지로 삼은 이후, 서유럽의 국가들이 북아프리카 일대를 식민지화 할 때까지 지속되었다고 하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세계사라서 그런지 솔직히 진도가 빨리 나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책 내용중에 "설명을 하자면 길어지니 생략한다. 저서 **을 참고하시길..."이라는 문구들을 보면서 괜시리 머리를 긁적이기도 했다. 이젠 정말 '로마인 이야기'를 읽을 때가 되긴 되었나 보다. 끝으로 이탈리아 해군사에 재미있고도 씁쓸한 내용을 소개하고 싶다. 이탈리아가 아말피, 피사, 제노바, 베네치아 네 개의 해양도시국가 였던 시대에는 서로 경쟁하면서 지중해를 지배했었는데 지금 하나의 이탈리아 된 후에는 지중해를 지배하는 것이 미국과 러시아라는 사실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영토가 넓었던 시기가 삼국시대 였다는 것과 오늘날 우리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이런 공통점에 괜히 흥분하게 된다. 

 

어느 나라든지 역사적으로 아픔이 없는 나라가 없겠지만 그런 아픔을 밑거름으로 보다 발전된 모습, 새로운 역사를 써 나가는 것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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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먹으면 왜 안되는가?>를 리뷰해주세요.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 일상을 전복하는 33개의 철학 퍼즐
피터 케이브 지음, 김한영 옮김 / 마젤란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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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은 참 어렵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인류의 삶과 가치관을 학문이라는 틀에 맞추려는 것 자체가 쉬운 것이 아니다. 다른 학문은 그나마 연구대상이 눈에 보이거나 짐작이라도 가능하지만 철학은 말 그대로 '인간의 사고나 의식'을 연구하는 학문이기에 명확한 답을 구하기가 어렵다. 가령 수학에서는 "1+1"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 "2"라는 답이 존재하지만, 철학에서는 물 한 컵을 쏟아붓고 다시 한 컵을 더 쏟아 부으면 "0"가 된다고도 하고, 한 컵에 한 컵을 더하면 더 큰 한 컵 "1"이 된다는 식으로 답이 무수히 많아져 버린다. @@  

 

<사람을 먹으면 왜 안 되는가> 이 책을 처음 보았을 때만 해도 너무나 당연한 질문을 왜 하는가, 라고 생각하다가 이 책이 '철학적 사고'에 대해 말하려는 것임을 알고 머릿속이 복잡해 졌다. 따지고보면 지구상에서 인간 보다 더 다양한 먹거리를 가진 동물도 없다. 무엇이든 닥치는대로 먹어치우는 이 '특별한 동물'이 유독 같은 종족은 먹지 않는다. 하지만 원시 부족의 경우 분명히 식인 풍습이 존재했었고, 중국의 경우 인육을 넣은 만두 이야기도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 나라의 경우만 해도 효자가 병든 부모님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허벅지 살을 떼어 드시게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니 말이다.

 

저자는 철학적 사고를 할 때 만큼은 '예스' 혹은 '노' 라는 식의 대답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그리고 상황을 더 꼬아서 다시 질문한다. 만약 비행기 추락사고를 당한 사람들이 굶어 죽을 상황이라면 먼저 죽은 사람들을 먹는 것이 도덕적으로 어떠한가 라고 말이다. 이런 질문을 받게 되면...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용납하게 될 것도 같다. 그러면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만약 지구상에 아직도 식인 풍습을 유지하는 곳이 있다고 가정해보자. 단지 인육을 즐기는 것이 아니라 대상에 대한 존경과 사랑을 표현하는 의식의 일종이라면 과연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라고 묻는다. 뭔가 찝찝한 마음이 들면서도 솔직히 모르겠다. 그래서 철학이 힘들다는 것이다. ;;

 

저자가 제시하는 33개의 퍼즐은 모두 이런 식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는데 과연 '지금'이라는 것이 존재하긴 하는 것일까 라는 물음, 어느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할 때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다." 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진실일까 거짓일까, 그리고 '개미와 배짱이'라는 이솝우화의 경우 개미는 '미래의 나'가 '현재의 나'를 지배하는 것으로 보았고 배짱이의 삶도 가치있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어떤 면에서는 기발하면서도 참 난감한, 정말이지 '일상을 전복한다'는 말이 딱 어울린다.

 

 어린이들 대상으로 출간된 '철학동화'의 부록에 보면 '심청이가 아버지를 위해 인당수에 몸을 던진 것이 과연 효도라고 할 수 있는가' 라는 질문이라든지 '토끼가 잠든 틈을 이용해서 경주에 이긴 거북이가 과연 옳은가?' 라는 내용으로 토론을 유도하고 있는 것을 본 적이 있다. 요즘 아이들 배우고 익히는 것이 참 심오하구나 하는 것을 느낀다. 우리의 삶은 순간순간 선택에 의해 이루어지고, 다양한 사고와 주장이 어우려져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간다. 앞서 언급한대로 철학적 질문에는 정답이 없는 것 같다. 보다 다양한 경험을 쌓고, 보다 넓은 마음으로 다른 사람의 생각을 포용하려는 노력이야말로 철학적 사고의 기본 자세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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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 몸 산책
권오길 지음 / 이치사이언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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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에 일이다. 방학을 맞이해서 수영을 배우던 아들이 귀가 아프다고 해서 집 까가운 내과/소아과 병원에 데리고 갔더니 중이염이 아주 심하다고 했다. 전문 이비인후과로 가는 것이 좋겠다며 소견서와 함께 전화 예약까지 해주길래 서둘러 병원을 옮겼더니 이비인후과 의사선생님 말로는 중이염이 아니라 귀의 겉부분에 염증이 좀 있는 것 뿐이라고 하셨다. 수영을 계속해도 상관없으며 손만 대지 않으면 저절로 낫는다는 것이다. 두 의사선생님의 소견이 어찌 이리도 다를 수가 있단 말인가. 순간 어리둥절해서 몇번을 되묻자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과 의사가 어디... 귀를 제대로 안답니까?" 

 

 이 이야기를 꺼낸 것은 첫 번째 진료했던 의사 선생님을 탓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곳은 단골 병원인데다 친절하기로도 소문이 난 곳이다. 자신이 치료할 수 없을 것 같다든지 의심이 되는 환자인 경우 신속하게 다른 전문의에게 진찰받도록 하는 것도 오히려 신뢰가 간다. 두 번째 의사 선생님 말씀도 맞았다. 그 날 저녁에 처방해 준 항생제를 먹여 재웠더니 다음날은 훨신 나아졌다고 했고 수영도 보냈다. 우리 부부도 오랫동안 수영을 했기 때문에 귀 뿐만 아니라 어느 부위든 손만 대지 않으면 탈 날 일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몸이 얼마나 신기한가 하는 것이다. 솔직히 우리는 인체에 대해 너무 모른다. 손은 손이고 발은 발이다?, 라는 정도... 이건 너무 심했다. 그러면 심장은 자기의 주먹 크기만하고 눈알은 탁구공 만하다, 이건 좀 낫다. 하지만 좀 더 깊이 들어가 보자. "사람의 적혈구는 지름이 7-8nm이고 수명은 약 120일, 평생 약 144km를 돌아다닌 셈이며, 그 수는 25조 개에 가깝다. 적혈구는 핵과 미토콘드리아가 없으며 산소를 운반하는 일을 하면서도 산소를 쓰지 않는 유일한 세포다. " 이런 설명은 어떤가? 머리에 쥐가 좀 나긴 해도 이제야 우리 몸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뿌듯하다. ^^;;

 

<권오길 교수의 구석구석 우리 몸 산책> 내용이 제목 그대로다. 우리 몸의 구석구석 - 머리 끝에서 발끝까지, 세포에서 겉모습까지 심장에서 손발톱까지 인체에 대한 거의 모든 지식이 들어있는 책이다. 그런데 처음 책을 펼쳤을 때, 글이 너무 빽빽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전문용어들도 제법 보이는 것이 예전에 생물교과서 혹은 참고서를 보는 기분이랄까. 중간중간 배치된 삽화와 실사 특히 매끄러운 종이질도 오히려 교과서스럽다는 느낌을 더한다. 하지만 막상 읽기 시작하면 학창시절 생물 수업시간에 들었던 기억이 조금씩 되살아 나면서 그런대로 진도가 쉽게 나간다. 

 

개인적으로는 정자와 난자가 수정하여 생명이 탄생하는 과정과 나이가 들수록 가정 내 여성(할머니)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을 호르몬과 연관지어 설명했던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철학적인 면에서 보면 노화라는 것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감해 준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하곤 하는데, 이 또한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세포들로 인한 것임을 생물학적으로 설명들을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는 하나라도 더 알려주려는 노교수의 노력이 엿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인생의 선배로서 후배들에게 학문적인 것 뿐만 아니라 삶의 지혜도 함께 전해주려는 시도 또한 돋보인다. 

 

 유전학적으로 거슬러 올라가보면 '아프리카인'이 인류의 조상이라고 하는데, 제국주의 시대에 흑인들을 사람 취급도 하지않았던 이들과 나치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그 사실을 알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마 목숨 걸고 진실을 은폐했겠지. --;; 또 한가지 의문은 미래 생물학이 과연 어떤 식으로 발전할까? 하는 것이다. 어떤 학자들은 지금의 우리 아이들이 이미 한 단계 진화의 과정을 거친 존재라고 주장한다. 길쭉한 얼굴 모양, 날카로운 턱선, 커진 눈... 하지만 그런 걸 가지고 진화라고 한다면 너무 김빠지는 것 아닌가 싶은데... 현생 인류가 발견된 이후 오늘날 까지의 시간 만큼, 그 만큼의 시간이 다시 흐르면 인간의 모습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와 호모사피엔스의 차이 만큼이나 또 다른 종으로 바뀌어 있을까? 난 그것이 궁금하다. 

 

알면 알수록 신기한 인체, 아무리 생각해도 나는... 너무나 신비스러운 존재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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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날>을 리뷰해주세요.
운명의 날 - 유럽의 근대화를 꽃피운 1755년 리스본 대지진
니콜라스 시라디 지음, 강경이 옮김 / 에코의서재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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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비가 그렇게 많이 내렸다고 하는데 창문 꼭꼭 닫아놓고 초저녁부터 책읽다가 잠이 들어버려서 인지 간밤에 비가 오는줄도 몰랐다. 정말이지 천하태평이다. 그런데 출근과 함께 며칠동안 중국과 대만에 피해를 준 태풍 '모리꽃'과 어제 일본을 강타했다는 지진 이야기가 나오자 은근히 걱정이 된다. 일본은 환태평양 지진대에 속해있어 예전부터 지진이 많은 나라였다지만 몇년전부터 중국에 크고 작은 재해가 끊이질 않아 그 중간에 위치한 우리 나라도 안심할 수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올여름 '해운대'라는 한국형 재난 영화가 주목받는 것도 같은 이유가 아닐까 싶다. 
 

<운명의 날> 이 책은 1775년 11월 1일 리스본에서 일어난 대지진에 관한 내용이다. 운명의 그 날은 모든 성인의 축일이라는 만성절 아침이었고 재난의 어떤 징조도 보이지 않을 만큼 화창한 날씨였다. 대부분의 시민들은 성당에서 축일을 기념하는 오전 미사를 드리다가 재앙을 맞닥뜨리게 되었다. 지진은 리스본 내의 거의 모든 건물들을 붕괴시키면서 최소 2만 5천명에서 최대 10만명의 사상사를 발생시켰다. 뒤이어 몰아닥친 쓰나미는 불타고 있던 건물 잔해와 생존자들 마저 쓸어가버렸고 이로써 리스본은 복구가 불가능해 보일 정도로 초토화 되고 말았다. 

 
 안타깝게도 포르투갈을 다스리던 주제 1세는 대재앙 앞에 망연자실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이었다. 그 때 신의 전령사처럼 나타난 이가 바로 카르발류(폼발 후작)였다. 카류발류는 주제 1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리스본 재건에 대한 전권을 위임받아 임무에 착수하게 된다. 문제는 교황청을 비롯한 종교인들이었다. 그들은 재앙을 하느님의 심판으로 보았고 리스본 재건을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으로 보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회개하거나 리스본을 떠나야만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하지만 카르발류는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자신의 의지를 현실화 시켰다.   
 

 당시 포르투갈은 식민지로부터 거두어 들이는 세금과 노예무역 특히 브라질의 금을 바탕으로 막대한 부를 축척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와같은 풍요로움은 왕실과 성직자, 귀족들만의 것이었다. 서민들은 먹고 살기 힘들었고 기본적인 교육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못했다. 카르발류는 지방 유지 출신으로 일찌기 계몽주의에 눈을 뜬 인물이었다. 그는 강력한 철권통치를 바탕으로 성직자, 귀족들과 끊임없이 갈등을 빚으면서 고질적인 부정 부패를 근절시켰다. 그리고 리스본 대지진이 신의 진노함이 아니라 자연현상임을 인식시키는 것을 시작으로 개혁을 주도해 나갔다.   
 

 오늘날 카르발류에 대한 평가는 많은 부분 엇갈리는 부분도 있다고 한다. 혹자는 그가 권력 남용을 일삼았고 비민주적이었으며 정적들에게 지나칠 정도로 잔인한 정치가였다고 주장한다. 반대 의견을 가진 이들은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철권정치'가 불가피했고, 그가 자신을 위해서는 부를 축적하지 않았다는 점을 내세운다. 하지만 역사가들이 공통적으로 인정하는 것도 있다. 카르발류가 아니었다면 '운명의 날' 이후 리스본은 역사 속에서 사라졌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재건된 리스본은 그 후 오랫동안 '유럽 근대화'의 모델이 되었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또한 리스본 대지진은 포르투갈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유럽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리스본에서 일어난 엄청난 사건은 인접 유럽국가는 물론 전세계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영향을 주었다. 특히 괴테나 볼테르를 비롯한 수많은 사상가, 철학자들이 '신 중심'의 사고에서 벗어나 '인간 중심'을 외침으로써 계몽주의에 힘을 실어주고 근대화를 가속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고는 하나 여전히 자연의 위력 앞에서는 나약하기만 한 인간들, 자연재해는 과연 인간들에게 어떤 교훈을 주는 것일까. '운명을 날'을 통해 고민해 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덧붙임... 올해는 어찌된 영문인지 열대야다운 열대야 한 번 없이 여름이 지나가려나 보다. 모처럼 휴가내어 여행을 간 지인들의 말이 산 아래 위치한 팬션의 경우 너무 추워서 보일러를 돌려야 될 정도이고, 계곡물은 차가워서 발만 겨우 담글 정도라고 전한다. 지금이 8월 중순이니 오늘 당장 휴가를 가더라도 물에 들어가는 것은 거의 포기해야 할 듯 싶다. 도대체 지구의 기후가 어떤 식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인지. 예년 같지 않은 기후탓에 괜시리 긴장감이 더해진다. 앞서 언급한 것 처럼 우리 나라도 결코 재난에 있어서 안전지대는 아니다.
과연 우리의 재난 대책은 어느 수준일까? 우리에겐 카르발류와 같은 지도자가 있는가? 갑자기 마음 한 구석이 답답해 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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