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 안데스 음악을 찾아서
저문강 지음 / 천권의책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문제는 주말 아침 눈을 뜨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늦었다~!! 집안 잔치가 있어서 서울행 기차를 타야 하는데, 온 식구가 늦잠을 자 버린 것이다. 1시 예식이라고 넉넉하니 시간맞춰 9시 25분 기차를 예매했더니 평소 출근시간보다 더 여유롭다고 느낀 탓일까 아예 정신줄을 놓았나 보다. 비몽사몽인 남편이랑 아이 깨워서 후다닥 준비하고 지하철에 몸을 실었다가 기차 플렛폼까지 숨 넘어가는 것 억지로 참아가며 전력질주 했더니... '덜커덩~' 소리와 함께 눈앞에서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9시 26분이다. ㅠ.ㅜ;; 가쁜 숨을 몰아쉬며 멀어져가는 기차를 쳐다보고 있자니 누굴 원망할 일도 아닌데 괜시리 서러운 생각이 든다.   

 
다행이 15분 뒤에는 다음 기차를 탈 수 있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아도 어찌나 한심한지. 만약 여기가 한국이 아니었다면, 우리가 놓친것이 기차가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는 유일한 비행기였다면, 다음 기차를 타기 위해 15분이 아니라 3일을 더 기다려야 했다면... 이런 내가 어떻게 '진짜 여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마음이 무거워 졌다. 남편은 전날 계모임 후유증인지 금새 골아 떨어졌고, 아이는 휴대폰 게임하느라 정신없다. 에라 모르겠다. 이럴줄 알았으면 그렇게 미친듯이 뛰지나 말걸. 이런저런 생각들 모두 접어 버리고 가방에서 책을 꺼내 얼굴을 묻었다. 
 

이야기의 시작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길을 가다 우연히 작은 레코드 가게에서 흘러나온 음악에 걸음을 멈추게 되고, 순간 '마술에 걸린 듯' 정신을 빼앗겨 버렸다고 한다. 저자는 안데스 음악과의 첫만남을 길에서 마주친 여인과 운명적인 사랑에 빠진 것처럼 설명하고 있다. 그후 몇년이 흘러 안데스 음악을 라이브로 접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 일을 계기로 안데스 여행을 결심하게 되었다고 한다. 단지 안데스 음악이 좋아서 안데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고, 그곳 사람들을 만나 악기를 배우고, 안데스 음악을 연주하는 그룹의 매니저도 되었다가 자신이 직접 뮤지션의 길을 걷게된 사연이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물론 처음부터 모든 일들이 순로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그 곳에만 가면 하루종일 안데스 음악을 라이브로 들을 수 있을 거란 기대, 음악 선생님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란 기대, 일정 기간 내에 악기들을 마스터하려 했던 기대도... 어느 것 하나 제대로 진행되는 것이 없다. 더구나 안데스인들의 생활 습관이랄지 그 사람들의 문화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에 종종 오해도 생긴다. 특히, 저자의 음악적 열정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안데스 그룹을 만났을 때, 정작 그들은 생계를 위해 '그 음악'을 더이상 연주하지 않는다는 말을 듣고 실망하던 장면에서는 내 마음도 뒤숭숭한 것이 당혹스러웠다. 집나가면 ㄱ고생 이라지만 좌충우돌 예기치 못한 상황들 때문에 이야기가 흥미진진해 지는 거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잉까 트레일'에 관한 것이다. 3박 4일 동안 걸어서 마추픽추를 등반하는 코스인데 거의 '행군'하는 수준이다. 몸이 피곤한 것도 힘든데 고산병까지... 정말 힘든 과정 끝에 오른 마추픽추 이기에 평생 잊혀지지 않는 추억이 되지 않을까 싶다. 그와중에 다국적의 여행객들이 모여 잠들기 전 '공공칠빵'을 했다는 말이 얼마나 웃기던지. 가장 안타까웠던 이야기는 인구의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눈에 보이는 차별을 감수하며 살아가는 인디헤나(인디헤나는 스페인어로 원주민 이라는 뜻이고, 영어식 인디오는 낮춰 부르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들의 사연과 전통을 지키며 살아가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인상적이다.   

 
<영혼을 빗질하는 소리> 기차에서 읽는 '여행서' 라니 정말 탁월했어.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해 하며 읽었던 책이다. 기차에 오를 때만 해도 정신이 없었는데 빗질된 것처럼 마음이 차분해 지는 것 같았다. 고백컨데 처음에는 '안데스 음악' 보다 '안데스 여행기'에 중점을 두고 읽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인터넷으로 '엘 꼰도르 빠사'를 검색했고, 운 좋게도 인디헤나들이 직접 연주한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 사이먼 앤 가펑클의 멜로디만 기억하고 있던 내게 안데스 음악은 색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이제야 알겠다. 안데스에는 우리와 같은 '한恨의 정서'가 있다는 사실을. 그리고 안데스 음악이 '우리가 피괴하거나 잃어버린 자연, 순수에 대한 향수와 그리움을 일깨워 준다.'는 저자의 설명에 깊이 공감한다.     

 
안데스여~ 대단히 고맙습니다. 안데스여~ 무차스 그라시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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