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지니아 - 전면개정판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3
온다 리쿠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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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판타지 그리고 미스터리적인 요소를 섞어 참으로 오묘한 매력을 보여주는 온다 리쿠

극사실적인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는 나 같은 사람에겐 그래서 온다 리쿠의 책은 언제나 쉽지 않다.

분명한 뭔가가 도출되기보다는 언제나 모호한 상황과 결말마저 이 사람이 범인이라고 하는 방점을 찍어주지 않는 대서 오는 그 개운하지 않은 뒷맛

그럼에도 그녀의 책은 언제나 호기심을 불러와 신간이 나오면 찾아보기도 하고 사람들의 평을 관심 있게 보기도 한다.

이 책 유지니아는 그런 온다 리쿠식 미스터리의 정점의 작품이라고들 평하는 데 그래서인지 이번에 새로운 색을 입고 재출간했다.

지방의 명문가 잔치에서 마을 사람을 비롯해 명문가의 사람들 대부분이 독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주변으로부터 평판이 좋은 명문가를 노린 독살 사건인 이 사건은 이 집안의 아이 두 명을 포함 6명의 아이들까지 희생된 잔혹하기 그지없는 사건으로 세간의 시선을 모으지만 좀처럼 용의자를 특정 짓지 못한 가운데 생각지도 못했던 남자가 자살하며 남긴 유서를 통해 범인이 드러났다.

하지만 자살한 범인과 이 집안에는 어떤 접점도 없어 공범의 존재를 의심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대충 마무리되고 만다.

그로부터 20여 년이 지난 후 누군가에 의해 인터뷰가 진행되면서 그들의 인터뷰 내용을 통해 그날의 진상을 각자의 관점에서 풀어놓고 있다.

당시 직접적으로 그 사건을 겪은 걸로 논문을 쓰고 결국에는 책을 출간한 사람부터 그날 살아남았지만 범인으로 오인받아 고통스러워했던 그 집안의 가정부, 범인을 유난히 따랐던 남자아이 그리고 그 집안의 비극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았던 눈먼 소녀 등등

그들의 입을 통해 그날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면서 대부분 진짜 범인이 누구인지 짐작할 수 있지만 범인은 왜 그런 짓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뚜렷한 근거가 없어 납득하기가 쉽지 않다.

지방의 명문가로 명성이 자자하고 풍족하고 여유로운 집안이 대부분 그렇듯 큰 소리 날 일이 없이 화목해 보이는 그 집안에서 왜 그런 비극적인 사건이 일어나야만 했는지...

그 집의 유일한 안타까운 점은 몸이 허약하고 앞을 볼 수 없는 외동딸이라는 존재뿐...

하지만 눈먼 소녀라는 이 존재는 상당히 특이하다.

비록 앞이 안 보이지만 그 자체만으로도 주변을 끌어당기는 매력이 있는 존재였고 사람들로부터 호감과 동경의 대상이었다는 점에서 상당히 존재감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소녀는 동정의 대상이기보다 모두의 시선을 한 몸에 받는 동경의 대상이라는 점도 그녀의 특별함을 나타내준다.

눈이 안 보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행동에서 우아함이 넘치고 자연스러워 심지어 어떤 사람은 그녀가 보이면서 안 보이는 척을 하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불러올 정도로 그녀는 특별한 존재였고 인터뷰에서도 그런 점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어쩌면 그녀가 그토록 모두로부터 특별 취급을 받는 데에는 그녀가 앞이 안 보인다는 점이 가장 큰 작용을 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이 모든 이야기는 그녀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사건이 발생한 후 20여 년이 지나 인터뷰를 통해 그날의 사건을 비롯해서 관련자들의 이야기를 통해 또 다른 죽음들이 드러나는 것처럼 이 이야기는 여전히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는데 언제나 끝날 것 같으면서도 끝나지 않는 이야기의 전개로 과연 우리가 생각하는 범인이 범인이 맞는 걸까 하는 의문을 던지게 한다.

책이 모호함과는 대비되는 것으로 이야기 전체를 관통하는 것에 짙은 파란색과 하얀 백일홍과 같은 강렬한 색채가 등장하고 화려한 꽃이 등장해 전체적인 분위기를 여성적으로 몰고 간다.

어쩌면 이 책의 저자인 온다 리쿠가 여자이기 때문에 이런 이야기가 쓰일 수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름다워서도 더 잔혹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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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피스트
B. A. 패리스 지음, 박설영 옮김 / 모모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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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청난 살인사건이 나오거나 잔인하기 그지없는 살인마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저 우리의 일상의 빈틈을 뚫고 들어와 그 속에 의심과 두려움을 표현하는 데 재주가 있는 듯한 B.A 패리스는 확실히 여성 스릴러 작가들이 가진 장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범죄자의 범죄행각이나 그런 범죄자를 추적하는 경찰의 이야기도 무척 재밌지만 그런 소설 속의 사건 같은 건 사실 내 주변에서 흔히 일어나지 않는 것을 관객의 입장에서 보는 재미라고 한다면 그녀가 쓰는 소설은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소재로 아슬아슬한 긴장감과 스릴을 준다.

그래서 주인공들이 느끼는 공포와 두려움이 더 와닿는다.

비하인드 도어라는 데뷔작 같지 않은 뛰어난 작품으로 혜성처럼 등장해 심리 스릴러에서 강한 인상을 남겨준 작가의 최신작 테라피스트 역시 일상을 살아가면서 한 번쯤 경험했거나 경험해 볼 수 있는 익숙한 소재... 이사 간 새집에서 생길 수 있는 에피소드와 살인사건이라는 조합으로 그녀 특유의 스릴감을 느끼게 해준다.

런던의 고급 진 주택단지에 한 커플이 새롭게 이사 온다.

보안이 철저하고 삶이 여유로운 사람들 특유의 너그러움과 여유가 느껴지는 이곳이 마음에 들지만 왠지 자신의 집은 어딘지 꺼려지는 앨리스

그녀는 이곳 생활에 빨리 적응하기 위해 연인인 레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집들이 파티를 해 주민들을 모으지만 그날의 파티에 주민들이 아닌 낯선 사람이 방문했었음을 깨닫고 두려움을 느낀다.

하지만 그녀의 이런 불안을 이해해 주는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 낯선 사람을 본 사람은 앨리스가 유일했기 때문...

게다가 레오가 그들의 침실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이야기를 한 뒤로 더더욱 두려움을 느끼게 되는 앨리스에게 그날 집들이 파티에 참가한 후 홀연히 사라졌던 문제의 그 남자가 접근해와 충격적인 이야기를 한다.

이 집의 전 주인이 침실에서 잔혹하게 살해당했고 범인인 남편마저 자살했다는... 누가 들어도 섬뜩한 이야기에 앨리스는 소스라치게 놀랐지만 더욱 놀랐던 건 이 모든 사실을 자신만 모르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이런 엄청난 사실을 자신에게 한마디 말조차 하지 않은 연인 레오에 대한 배신감이 느껴지면서 두 사람 사이에도 틈이 벌어진다.

앨리스가 이 살인사건을 더욱 끔찍하게 느끼는 건 죽은 여자의 이름이 니나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어린 시절 한순간의 사고로 부모님과 함께 자신의 곁을 떠난 언니의 이름이 바로 니나였기 때문인데... 이 모든 연결에서 어떤 운명의 힘을 느끼는 앨리스는 유일하게 자신에게 진실을 말해줬던 낯선 남자를 도와 그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녀가 사건에 대해 질문하면 할수록 마을 사람들의 태도가 이상해진다.

마치 모두가 뭔가를 숨기고 있는 것처럼...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지 않거나 피하기 일쑤고 심지어는 그 사건에 대해 캐묻고 다닌다며 화를 내는 사람도 있다.

전 주인인 니나와 올리버를 알면 알수록 그녀의 죽음에는 뭔가 의심스러운 점이 있었고 그런 면에서 보면 주민들 모두가 의심스러운 앨리스... 게다가 이런 그녀의 의심을 돕는 결정적인 한 방은 그녀에게 아무도 믿지 말라고 속삭여준 이웃집 노부인이었다.

앨리스의 시선에서 보면 분명 니나가 살해된 사건은 의심스러운 부분이 많고 주민들의 태도 역시 수상한 부분이 많지만 다른 시선 즉 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앨리스의 태도 역시 어딘지 정상적이지 않다.

누군가를 의심할 수는 있어도 그녀의 의심은 뭔가 뚜렷한 증거나 단서에 의지한다기보다는 하나의 작은 사실을 바탕으로 그렇지 않았을까 하는 상상을 더하고는 그걸 사실처럼 느껴 모두를 의심한다.

전형적인 망상증 환자의 모습인데 당연히 이런 앨리스의 행동은 모두에게 거부감을 불러오고 이제 그녀는 연인이었던 레오를 비롯해 누구도 믿을 수 없다.

낯선 곳으로 이사를 갔을 때 느낄 수 있는 혼자라는 고립감이나 낯선 것에 대한 거부감과 불안감을 앨리스라는 예민하고 불안증이 있는 주인공을 통해 그 감정들을 더욱 극대화하고 여기에다 살인사건이라는 자극적이지만 인기 있는 소재를 섞어 놓아 서서히 압박해 들어오는 긴장감을 잘 살린 작품이었다.

작가는 늘 평범하거나 흔한 소재임에도 그 속에서 느낄 수 있는 두려움과 공포의 순간을 제대로 표현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지닌 것 같다.

이상하게도 주인공인 앨리스의 입장만이 아니라 그녀로부터 의심을 받았던 주민들의 입장도 이해가 가는 걸 보면 일방적인 피해자라는 건 없고 각자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말이 진리가 아닐까 싶다.

주인공에게 완전히 공감하지 않으면서도 몰입해서 보게 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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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황무지
S. A. 코스비 지음, 윤미선 옮김 / 네버모어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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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세가 밀리고 독촉 전화가 오고 처리할 각종 세금이나 공과금을 못 낼 정도의 힘든 상황이 올 때

보통의 사람들은 돈을 빌리려고 애쓰거나 지금 하는 일 말고 또 다른 일을 찾아 투잡을 한다거나 등등 나름의 수단을 찾는다.

하지만 쉽게 돈을 벌어본 경험이 단 한 번이라도 있는 범죄자라면... 그 사람이 지금 아무리 개과천선해 새로운 삶을 살고 있었다 할지라도 순식간에 예전의 생활로 돌아간다.

상황이 어쩔 수 없다거나 아니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자신을 속인다. 이번 딱 한 번만이라고...

이런 점이 범죄 전과자가 손을 씻기가 힘든 이유다. 다른 방법을 찾아 뼈를 깎는 노력을 하기보다 그저 한 번 만이라며 자신을 속이고 자신의 양심을 속이고 가까운 사람을 실망시키며 쉬운 방법을 찾는다.

이 책의 주인공 보러가드 역시 위기 상황에 처할 때까지는 아내와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의 일을 성실히 하는 평범한 가장처럼 보였다.

어린 시절 잠깐 교도소에 다녀온 후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잘 살아오고 있는 듯했지만 그 역시 위기의 상황이 오자 어쩔 수 없는 전과자의 모습으로 돌아간다.

밀린 집세와 각종 세금, 엄마의 밀린 병원비, 딸아이의 대학 입학금 등등 돈 들어갈 곳은 천진데 그의 정비소는 경쟁업체가 생긴 이후로 줄곧 내리막이다.

자신의 특기를 살려 불법 자동차 경주에 나가기도 하지만 돈을 벌기는커녕 오히려 가진 돈을 잃는 경험을 하면서 굳었던 그의 결심도 무너진다.

그리고 그런 그에게 기다렸다는 듯이 예전에 잠깐 같이 일했던 동료가 찾아와 보석상 털이를 제안하자 아내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보러가드는 이번 한 번만 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강도 짓을 벌일 보석상 주변을 미리 답사하고 도로 사정을 점검하는 등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 계획이 실패할 수밖에 없는 몇 가지 실수를 범한다.

첫 번째가 도주 경로며 도로 사정까지 살펴볼 정도로 모든 것을 꼼꼼하고 세밀하게 계획하는 그가 정작 가장 중요한 같이 할 동료에 대해 부주의했다는 점이다.

심지어 그와 함께 보석상을 털 사람 중 한 사람은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예전 동료의 말만 믿고 함께 하기로 하는 모습은 부주의함을 넘어 어리석어서 이 계획의 끝을 안 봐도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또 다른 그의 실수는 보석상에 있기엔 너무 많은 다이아몬드의 출처를 한 번도 의심하지 않은 점이었다.

정상적인 경로라면 그 보석상이 감당할 수 없을 양이라는 건 누구라도 알 수 있는 데 그는 그 부분 역시 그냥 넘어가 스스로를 덫에 걸리게 한다.

그리고 범행 당일 이런 복잡한 일을 감당할 수 없는 동료들은 실수를 연발하지만 보러가드만이 특유의 드라이버 실력으로 쫓아오는 경찰과 경찰차를 따돌리는 데 성공한다.

돈을 나누고 숨을 돌린 것도 잠시 그 들의 뒤를 쫓는 자가 나타난다.

그들의 뒤를 쫓는 사람들은 사정 따윈 봐주지 않았고 덕분에 이제 보러가드는 그날의 결정으로 가족까지 위험에 처하게 만들었다.

보러가드가 처한 상황에 대한 설명 즉 그가 왜 이런 선택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끝나고 그가 선택을 한 이후로의 진행은 쏜살같은 스피드를 보여준다.

특히 경찰의 추적을 피해 도로를 질주하고 끊어진 다리를 엄청난 스피드로 넘어가는 모습은 마치 영화의 한 장면같이 박진감이 느껴졌다.

파국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는 과정이지만 그 과정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그의 마음이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자신의 딸과 아들에게 자신과 같은 삶... 선택할 기회조차 없는 삶이 아닌 제대로 배우고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삶을

살게 하고 싶었던 아빠의 마음이었다는걸...

하지만 범행에 발을 담그면서 자신의 가족은 무사할 거라 믿는 그의 안일함이랄지 순진할 정도로 어리석음은 결국 누가 되었던 대가를 치르게 될 거라는 걸 알기에 조마조마하는 마음으로 책을 읽게 된다.

자동차 엔진의 거친 음과 엄청난 속도의 차가 내뿜는 연기 그리고 아무도 없는 거친 황무지를 쏜살같이 달려가는 한 남자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어쩌면 그가 원한 건 자신을 붙잡는 가족이나 의무 같은 속박 없이 어디든 마음껏 달리는 자유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총격 신도 그렇고 추격신이며 경찰을 따돌리는 방법은 사실 할리우드 영화에서 자주 봐온 익숙한 장면들이었지만 그걸 글로써 스피디하고 박진감 넘치며 스릴 있게 묘사된 걸 읽는 건 또 다른 맛을 느끼게 해준다.

익숙한 것을 익숙하지 않은 것처럼 묘사하는 것... 그게 작가의 필력이 아닐까?

그렇다면 이 작가 S.A 코스비가 왜 그렇게 많은 상을 수상했는지 이해가 가는 부분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도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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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의 예술
레이먼드 챈들러 지음, 정윤희 옮김 / 레인보우퍼블릭북스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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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영화를 보면 형사로 특정되는 사람들의 모습은 어딘지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버버리 코트를 입고 중절모를 쓴 채 입에는 담배를 물고 거침없이 총을 빼서 나쁜 놈을 쏘는...

한마디로 마초 같은 느낌이 강했는데 그 모습이 어릴 때에는 참 멋있다고 생각했었다.

그들은 설령 여자가 매춘부나 혹은 범인이라 할지라도 마구 거칠게 대하지 않고 숙녀처럼 대접을 하는 게 당연한 것처럼 그녀들을 대하는 대신 악당을 처단할 때는 거리낌 없이 총을 쏘고 주먹을 날리는 모습을 보여줬다.

누아르물에 특화된 챈들러의 작품 속 형사나 탐정의 모습이 바로 이런 모습의 전형이 아닐까 싶다.

하드 보일러 물이나 크라임 스릴러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챈들러는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중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이 책 살인의 예술은 그중에서도 흔히 보지 못했던 그의 단편을 모아놓은 책이다.

여기서는 5편의 단편을 모아놓았는데... 역시 탐정이 주인공이고 무대의 대부분은 호텔

그리고 어김없이 대화보다 총질을 많이 해댄다.

쇠락해가는 밤 풍경에 대한 묘사나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생활에 대한 묘사도 세심하게 묘사되어 있을 뿐 아니라 음악이 나오거나 묘사되지 않아도 왠지 재즈가 어울리는 밤에 대한 묘사는 마치 영화처럼 감각적이다.

그런 곳에서 벌어지는 살인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의 모습과 이름은 달라도 그들 모두에게서는 어딘지 염세적이면서도 거친 남자의 냄새가 풍긴다.

챈들러의 소설은 이렇게 남자의 세계를 다루고 있다.

그의 소설 속 여자라는 존재의 의미는 남자들의 살인의 목적이나 도구로서 혹은 남성성을 보여주기 위한 도구로서 존재할 뿐... 대부분 큰 역할이 아니다.

황금 옷을 입은 왕에서도 그랬다.

재즈 연주자로서는 최고지만 여자를 밝히고 아무렇게나 버리는 남자... 그리고 그런 남자의 주변에는 불나방처럼 여자들이 달려든다.

대부분은 그의 돈을 보고서지만 누군가는 그에게 마음을 줬다 상처를 입기도 한다.

호텔의 야간 경비로 일하는 남자는 그가 벌이는 소동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자릴 잃었고 재즈 연주자는 또 다른 여자의 집에서 총에 맞아 죽는다. 마치 자살한 것처럼 혹은 그 집의 여자에게 당한 것처럼...

그리고 탐정은 그 여자의 말을 믿고 그녀의 의뢰를 받아 범인을 찾는다.

누구라도 그녀가 제일 의심스러운데도 불구하고 그녀의 말을 믿는다.

요즘의 시선에선 이해되지 않는 상황이지만 챈들러의 소설에서는 가능하다.

3편 사라진 진주 목걸이에서는 약혼자의 누명을 벗기기 위해 사라진 노부인의 진주 목걸이를 찾아 나서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5편 중 가장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약혼자를 대하는 그의 모습에서 약혼녀를 사랑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사건 해결의 과정이 다른 작품보다 친절하게 설명되어 있다.

챈들러의 작품은 살인의 방법이나 살해의 목적 같은 데 디테일하게 모든 초점을 맞춘 요즘의 작품과 달리 분위기로 몰아가고 복잡한 인물의 내면에 치중하지 않는다. 어쩌면 챈들러가 작품 활동을 하던 시기는 살인의 목적이나 이유가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고 오히려 본능에 더 충실해서일지도 모르겠다.

복수를 위해 혹은 싸움을 하다 화가 나거나 수가 틀리면 대화보다 먼저 주목을 휘두르거나 총을 쏜다. 즉각적이다.

복잡한 과정의 생략은 군더더기 없는 작품으로 만들지만 독자의 시선에선 불친절하게 느껴진다.

오히려 누아르 영화처럼 느껴진달지...

짧은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어 읽기에 부담이 없다.

누아르물을 처음 접하는 독자도 쉽게 읽을 수 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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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트] 밀당의 요정 1~2 - 전2권
천지혜 지음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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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 사람들의 연애와 결혼에 대한 생각의 단편을 보여주는 밀당의 요정은 금혼령의 작가 천지혜의 신작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에서처럼 이 작품도 남녀 주인공들의 주고받는 대화 속에 통통 뛰는 감각적인 면과 요즘 세대들의 고민이나 일상을 작품 속에 잘 녹이고 있어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밀당 따윈 할 줄 모르고 있는 걸 다 내주는 연애를 하던 여자는 언제나 남자들과의 연애에서 절절매다 끝내는 헌신짝처럼 차이고 만다.

서른이 넘는 나이를 먹는 동안 이런저런 남자와 연애를 해 본 여자는 그야말로 온갖 이별의 경험을 했고 마침내 이번에 그 궁상맞은 을의 연애에 종지부를 찍는 경험을 하게 된다.

웨딩플래너인 그녀를 찾아와 자신의 결혼식을 부탁하는 전 남자친구의 등장!!

결혼할 여자라고 데려온 사람이 자신보다 훨씬 어린 여자라니... 게다가 상대는 자신이 아는 사람이고 둘이 사귄 시간을 따져보면 이건 환승 연애라기보다 자신과 사귀면서 바람피워 놓고 자신을 차버린 상황이 분명하다

생각만 해도 혈압이 오를 것 같은 상황인데 이 여자는 또 그걸 거절하지 못하고 계약을 한다.

왜냐하면 그녀는 프로니까!!

비록 연애는 고자지만 자신이 하는 일에서만큼 누구보다 열정적이고 최선을 다하는 그녀의 이름은 이새아

당연히 이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면 안 될 거라고... 이 몰염치한 놈에게 인과응보의 매운맛을 보여줘야 한다고 모두가 생각하는 것처럼 결혼식에서는 일련의 소동이 벌어지지만 새아는 비록 때려죽이고 싶은 전 남자친구의 결혼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맡은 결혼식이 무사히 끝나도록 최선을 다한다.

일에도 사랑에도 요령 따윈 모르는 고지식한 그녀지만 그런 그녀의 악운도 이 결혼을 끝으로 끝이 난 것 같다.

그녀가 신부를 대신해 잠깐 입었던 웨딩드레스 차림의 그녀를 보고 한눈에 반한 남자가 있었던 것

그것도 한 명이 아닌 두 명이나!!

한 사람은 잘생긴 데다 능력도 좋은... 거기다 재벌 2세인 남자고 또 다른 남자는 세계적인 사진가

재벌 2세 지혁은 자신의 매력을 십분 발휘해 적극적인 대시를 하고 사진가인 예찬은 예술가 다운 섬세함을 발휘해 새아를 챙겨주고 기다려준다.

문제는 새아가 두 사람 모두 마음에 들지만 자신이 진짜로 원하는 남자가 누군지 자신의 마음을 알 수 없어 갈팡질팡한다는 것이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두 사람의 차이는...

결혼이 하고 싶어진 새아의 바램을 예찬은 이뤄줄 수 있지만 결혼은 절대로 하지 않겠다는 비혼 주의자인 지혁은 그럴 수 없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지혁 역시 새아를 놓칠 수 없어 고민하고...새아 역시 그런 지혁이 싫지 않다.

아니 자꾸자꾸 생각난다.

하지만 자신을 배려해 주고 섬세하게 대해주는 예찬을 만날 때면 그와 너무 잘 맞는 것 같다.

결혼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끌리는 남자도 좋지만 자신과 성격적으로나 취미 같은 모든 게 잘 맞는 다정한 남자와 결혼하는 게 좋다고들 해서 새아는 결정 내리기가 너무 힘들다.

이제껏 상대방이 뭘 원하는지 맞춰주기 바빴던 을의 연애를 해오던 새아는 이제 갑의 입장에서 연애를 시작한다.

과연 그녀는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처음은 스피디하게 이야기가 진행되고 세 사람의 이야기만이 아니라 결혼하는 커플의 에피소드 같은 걸 곁들여 지루할 틈 없이 아주 흥미 있게 읽었는데 본격적으로 삼각관계가 형성되면서 새아의 고민이 깊어지는 건 이해하지만 다소 늘어지는 것 같아 몰입도가 떨어진다.

요즘 사람들의 결혼이나 연애에 관한 가치관을 엿볼 수 있었고 감각적인 대사나 무겁지않은 스토리 전개가 마음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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