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여자들은 침묵하지 않았다
크리스티나 달처 지음, 고유경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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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매일 100 단어만 말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세상에 산다는 건 얼마나 답답할까

게다가 처음부터 그런 게 아니라 조금씩 조금씩 제재를 가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모든 여자들의 팔에 족쇄를 채우고 100 단어 이상의 말을 하면 전기 충격이라는 강제적 수단을 동원해서 여자들에게 침묵을 강요한다.

그런 강요된 여자들의 침묵으로 그들은 뭘 얻고자 하는 걸까 들여다보면 아주 오래전처럼 여자들은 집에서 집안일을 도맡아 하도록 강요함으로써 여자들에게서 자긍심을 뺏고 일자릴 뺏음으로 해서 경제적 자유를 박탈당하고 그저 남자들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생활하기를 바란다.아주 오래전의 중세처럼...

그러기 위해선 여자들이 옳고 그름을 이야기하고 자기주장을 할 수 없도록 단어를 제약하면서 남자들이 상대적 우월감을 가지게 한다.

이 모든 게획을 추진한 사람들은 교활하게도 남녀가 서로 편을 갈라 싸우도록 만들었다.

자신이 맡은 언어인지 프로젝트의 커다란 성과를 동료들 앞에서 발표하던 날 갑자기 들이닥친 사람들로 인해 하루아침에 손목에 그날 쓸 수 있는 단어의 양이 정해진 족쇄 즉 카운터를 차고 모든 연구에서 손을 떼고 강제적으로 가정주부로서의 삶만 살 수 있게 된 진 맥클렐런 은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걸 한동안 믿을 수 없었다.

그전부터 이렇게 과거의 순수했던 시절로의 회귀 즉 남자는 바깥에서 일을 하고 여자들은 집을 가꾸고 요리를 하고 가족들이 먹을 음식을 장만하는 일만 허락받았던 그 오랜 옛날로 돌아갈 것을 주장하는 종교지도자와 그를 추종하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이 듣기엔 터무니없는 소리라 생각해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페미니스트 친구 재키의 경고를 무시한 대가로 보기엔 그 결과가 너무 참담했다.

십대의 아들인 스티븐이 언젠가부터 학교 과목에서 배우기 시작한 종교과목은 그 내용이 진이 보기엔 심하게 남녀 불평등적인 내용일 뿐 아니라 성의 역할이 왜곡된 형태였지만 그 수업을 선택하지 않으면 될 거라고 쉽게 무시했었고 어느새 스티븐은 그 내용에 심하게 몰입되고 세뇌된 상태가 되어 돌이키기가 쉽지 않다.

친구 재키가 수차례 한 경고대로 그들은 처음엔 학생들의 수업에 조금씩 그런 내용을 가르치기 시작하다 이에 반응하고 호응하는 남자들이 많아지자 단숨에 여자들의 모든 것에 간섭하기 시작하고 마침내 입까지 막아버렸다.

자신도 자신이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딸아이마저 제대로 말을 배우기 전부터 침묵하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 상황이 못 견딜 즈음 이 모든 사태를 불러일으킨 대통령의 형이 쓰러져 말을 못 하는 상황이 되고 언어인지 전문가인 진의 도움이 필요해진 정부는 그녀에게 조건을 들어 프로젝트를 완성시켜주길 원한다.

하루아침에 여자들을 강제로 침묵시키고 중세 시대에 살았던 것처럼 일도 자유도 심지어 선거권도 아무런 권리는 없는 상태로 만들어 남자들의 말에 복종하도록 만든 세상이라는 설정은 확실히 신선할 뿐 아니라 도발적인 소재이기도 하다.

다 그런 건 아니지만 여자들에게 많은 제약을 하고 남자들의 소유물처럼 취급하는 여느 종교가 생각난 건 나뿐만은 아닐 것이다. 그들의 주장 역시 남자와 여자는 태초부터 다르게 태어났기에 맡은 역할도 다르다는 것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여자들의 눈에 그들의 주장은 그저 남자들을 위한 헛소리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책 초반은 당당하고 똑똑했던 진이 지금 상황에 얼마나 좌절하고 힘들어하는지를 보여줬다면 중간으로 갈수록 왜 이런 상황이 초래하게 된 건지 그 이유에 대한 고찰과 자신이 가진 능력으로 뭘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단지 진의 고민이 너무 길었던 것인지 제목에서 보여준 여자들의 강력한 반격이나 의지가 생각보다 소소할 뿐 아니라 너무 뒤에 가서 발현되었다는 것이다.심지어는 여자들의 힘이 아닌 많은 부분을 남자들의 도움을 얻어서 이룬 성과라는 부분도 맘에 걸렸다.

그런 이유로 책 초반부는 신선한 소재로 단숨에 책에 몰입하게 했고 진이 협상을 통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었던 중반부에서는 그녀가 곧 뭔가 방법을 찾아내 반격을 할 것이라는 기대감이 높았다면 그 이후에는 별다른 한 방이 없이 다소 늘어지다 마지막의 결과 역시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한 아쉬움이 남는다.

좀 더 치밀한 작전으로 완벽한 뒤집기를 기대했다면 다소 아쉬울 책이지만 신선한 소재와 색다른 관점을 제시한 책으로만 본다면 괜찮은 선택이 될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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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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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다소 엉뚱한 상상력과 현실의 문제를 결합시켜 새로우면서도 어딘가 씁쓸하고 그러면서도 가슴 따뜻해지는 소설을 쓰는 이사카 코타로가 이번에도 예전 작품처럼 기발한 상상력을 발휘했다.

제목이 의미하는 것처럼 후가와 유가는 쌍둥이이자 서로가 곧 서로이기도 한 사람들이었다.

여느 쌍둥이와 같이 평범한 환경에서 자랐다면 서로 누구보다 친밀하면서도 치열하게 다투기도 하면서 자랐겠지만 둘이 살아왔던 환경은 늘 사소한 이유를 들어 폭력을 행사하면서 제대로 된 보살핌을 받지 못한 결핍된 가정에서 자랐기에 서로에게 서로가 의지하는 상황이었다.

즉 다른 형제자매나 쌍둥이보다 더 서로 친밀한 상태인데 여기에다 이 둘은 어떤 순간이면 서로의 몸이 뒤바뀌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사카 코타로식의 상상력이 가미된 부분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우연히 두 사람이 서로 바뀌는 순간이 촬영된 영상을 가지고 자신들을 만나러 온 남자 다카스기에게 털어놓으면서도 순순히 털어놓지 않고 코타로식의 장난과 유머를 첨가한다.

쌍둥이 대표로 온 유가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면서도 줄곧 자신의 말에는 착각과 각색을 섞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는 부분도 있으니 모든 것을 곧이듣지 않는 편이 좋다는 말을 하는 식으로 지금 하는 말이 진실인지 아니면 적당히 허구가 섞인 말인지 다카스기뿐만 아니라 독자도 헷갈리게 한다.

어릴 때 우연히 자신들의 몸이 바뀐다는 사실을 알게 된 두 사람은 그 나이의 아이들이라면 당연한 것처럼 그 능력을 가지고 장난처럼 즐기고 재밌어했지만 안타깝게도 이 능력은 일 년에 단 하루 즉 서로의 생일에만 발현된다는 것이었다.

자라면서 그런 것을 감안하고 자신들의 능력으로 뭔가를 할 수 있다는 걸 깨닫으면서 자신들처럼 누구에겐가 억압된 상황이라든가 혹은 폭력에 노출된 힘없는 사람들을 도와 잠시라도 그 순간을 모면할 수 있도록 도와주지만 무엇보다 두 사람에게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일은 철없을 때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가출 소녀에게 장난처럼 자신들이 처분할 피 묻은듯한 백곰 인형을 건네주고는 나쁜 일을 막아주는 부적이라 말한 것이다.

그리고 우연처럼 그 다음날 소녀는 10대의 청소년이 장난처럼 몬 차에 치여 죽는 사건이 발생하고 소녀가 그 백곰 인형을 정말 부적처럼 죽는 순간까지 안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두 사람에게 죄책감을 깊이 심어준다.

그날 이후부터 쌍둥이의 인식은 조금씩 변한 건지 모르겠다. 왕따를 당하는 동급생의 처지를 모른척하지 않고 도와준다거나 하는 등... 어쨌든 이후의 사건들은 그 사건으로 인해 파생된 결과인 것은 분명하다.

우연히 능력을 얻게 된 쌍둥이가 자신들의 능력을 이용해 학교폭력처럼 작은 것부터 시작해 점차로 사회악과 대결해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후가는 유가는 두 사람이 가진 능력이 엄청난 힘을 가진 초능력도 아니고 그저 어느 날 어느 일정 시간이 되면 서로의 의사와 상관없이 몸이 바뀐다는 별거 아닐 수 있는 능력이라는 것부터 이사카 코타로스러운 설정이다.

사회 곳곳에 있는 부조리와 악에 대항해 싸우고 바꿔나가는 것은 큰 능력과 힘을 가진 사람이 아닌 인간적인 마음을 가지고 주변을 둘러볼 수 있는 평범한 소시민으로부터라는 메시지가 아닐까 생각한다.

유쾌함과 진지함 그리고 밝음과 어둠을 잘 섞은 이사카 코다로 다운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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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눈
딘 쿤츠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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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40년 전에 새로운 바이러스의 출현 즉 코로나19의 출현을 그것도 꼭 집어 우한에서 나왔다고 예견했다는 걸로 우리나라에 출간되기 전부터 화제가 되었던 딘 쿤츠의 스릴러 어둠의 눈은 생각했던 것처럼 새로운 바이러스의 창궐로 인류가 공포에 빠지고 혼돈이 온다는 뭐 그런 이야기는 아니다.

오히려 작가의 다른 작품처럼 국가적인 음모에 저항하고 맞서는 개인의 활약을 다루는 서스펜스 가득하고 긴박감 넘치는 스릴러 작품에 가깝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나오는 두 주인공 중 한 사람인 엘리엇은 아니지만 적어도 티나는 이런 일이 있기 전까진 평범한 직장인이었는데 이런 콤비의 조합은 이야기를 좀 더 활기차고 스피디하게 진행하는 힘을 위한 조합인 것 같다.

티나가 날카로운 직감을 이용해 새로운 의견과 방향을 제시한다면 엘리엇은 충분한 경험을 바탕으로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역할을 한다.

1년 전 생각지도 못했던 불의의 사고로 사랑하는 아들 대니를 잃고 고통받던 티나에게 요즘 이상한 일들이 연속으로 일어나고 있다.

치우지 못한 아들방에서 밤마다 이상한 소리가 나고 죽지 않았어라는 이상한 글이 쓰여있는 가 하면 밤마다 아들 대니가 끔찍한 모습을 한 악마 같은 이로 인해 산 채로 묻히기 전 살려달라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도 구하지 못해 괴로워하는 악몽을 꾸고 있지만 자신의 이런 상태를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는다.

여차하면 아들을 잃은 슬픔으로 정신이 이상해졌다는 오해를 살 것이라는 걸 알기 때문인데 그녀는 자신의 커리어를 한층 높여줄 중요한 쇼비즈니스를 성공적으로 무대에 올린 날 변호사인 엘리엇을 소개받고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여자로서의 본능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와의 데이트 중 자신의 겪은 이상한 이야기... 즉 아들의 방에 쓰인 글이라던가 자신의 직장 컴퓨터에서 누구도 입력하지 않은 글, 그것도 역시 죽지 않았어라는 글이 출력된 일을 이야기하게 되고 이번에는 예전에 하지 못했던 아들의 시신을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기 위해 변호사인 엘리엇의 도움을 받아 아들의 묘를 개장하고자 하면서 이상한 사람들에게 쫓기기 시작한다.

두 사람 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쉽게 그들의 치밀한 음모를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었겠지만 엘리엇은 변호사가 되기 전 국가의 비밀 요원으로 오랫동안 활약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 그의 집을 찾아온 낯선 남자들에게서 이상한 낌새를 발견하고 순간의 틈을 이용해 탈출한다.

그리고 그녀 티나가 위험하다는 걸 직감하고 그녀의 집으로 가 그녀를 위기에서 구출하면서 믿고 싶지 않지만 그녀의 아들 대니의 죽음에 진짜 뭔가 이상한 점이 있다는 걸 깨닫는다.

이런 과정을 겪으면서 의혹으로만 느꼈던 대니의 죽음에 뭔가 은밀한 비밀스러운 음모가 있었음을 확신하게 되는 두 사람은 그 실체를 확인하기 위해 모든 것이 처음 시작된 그곳으로 향한다.

국가를 위한다는 명분으로 개인의 희생을 당연시 여기는 비정한 조직의 모습은 독자를 분노시키기 충분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 한구석에서 이런 음모가 숨겨져있지 않다고 말하기 힘든 것도 현실이다.

그래서 더욱 국가의 활동에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눈을 크게 뜨고 감시하고 지켜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평범한 사람들이 국가의 음모에 휘말려 단숨에 일상이 무너지고 쫓기는 모습에서는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그리고 작은 단서를 바탕으로 끈질긴 추적을 통해서 마침내 음모의 전 모를 밝혀내는 모습에서는 짜릿함을 느낄 수 있는 어둠의 눈은 기존의 딘 쿤츠 다운 면과 초자연적인 현상이 결합된 조금은 색다른 작품이라 볼 수 있다.

처음부터 생각지도 못한 시작으로 독자의 눈을 사로잡은 뒤 숨 쉴 틈 없는 스피디한 전개로 한 눈 팔 틈을 주지 않고 몰아붙이는 스토리의 힘이 딘 쿤츠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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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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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해가지지 않는 백야가 시작되면 잠을 자지 않고 밤새워 차를 몰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렐레

고등학교 수학교사이자 딸을 잃어버린 아빠다.

렐레의 시간은 3년 전 딸 리나가 사라져버린 이후로 멈춰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밤새 하는 드라이브에는 딸 리나가 동행하고 있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리나와의 동행은 그가 밤새 차를 모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한데 그의 이런 모습은 그가 제정신일까 하는 의심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한순간에 딸을 잃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아빠의 출구 없는 방황이 책 전반에 펼쳐져 있어 독자로 하여금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분노의 감정을 십분 느끼게 할 정도로 남자의 방황은 처절하고 안타깝다.

더군다나 그의 방황은 어느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그저 그의 모습이 보이면 피하기만 할 뿐...

자신이 태워다 준 버스정류장에서 리나가 흔적도 없고 목격자도 없이 깜짝같이 사라져버린 이후 렐레는 밤에 잠을 자지도 못하고 딸아이를 가진 직후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기 시작했으며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었고 그야말로 산송장의 상태가 되어 이웃들의 연민 어린 시선을 견뎌내고 있다.

그들에게 렐레의 불행은 안타깝지만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딸의 실종을 남편 탓으로 몰던 아내는 실종자의 여느 가족들처럼 그와 함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집을 떠나버렸고 그는 이제 오롯이 홀로 남아 오늘도 딸이 사라진 길 실버 로드를 샅샅이 훑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아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실버 로드는 사랑하는 가족의 실종으로 무너져내리는 남은 가족의 모습을 생생히 담고 있다.

특히 주변 모두가 이미 포기해버렸지만 가족만큼은 죽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이상 찾는 것을 스스로 멈출 수도 그만둘 수도 없이 실종된 그때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채 서서히 마모되어가고 슬픔에 침몰되어가는 모습을 렐레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실버 로드는 물리적으로 잔인한 범죄현장을 표현하지 않아도 계속 딸을 찾아 헤매는 렐레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어느 사건 현장보다 잔인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평범하지 않은 한 모녀가 찾아오는 데 이야기를 이끌어 갈 또 다른 축인 메야다.

늘 약에 취해있고 술에 취해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보살피는 딸 메야는 한곳에서 오래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남자 없이는 살 수 없고 늘 뭔가에 취해있는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던 메야에게 다가온 칼은 그녀를 자신이 사는 농장으로 인도해 다른 삶을 살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칼의 농장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고 언제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준비가 되어있는 집이자 늘 따뜻한 음식이 있는 곳이었고 자신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족의 모습에 속절없이 끌린다.

하지만 이곳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지도 어울리지도 못한 채 겉돌고 있었고 그런 메야를 선생이자 아이 아빠였던 렐레는 걱정스럽게 지켜보는데 아마도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는 동질감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두 사람은 아슬아슬함을 보여주는데 또 다른 여자아이가 캠핑장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번에도 리나의 실종 때와 마찬가지로 렐레는 용의선상에 오르고... 메야 역시 조금 다르지만 안락하게 보이던 칼의 가족이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스릴러와는 다르게 소녀가 납치되는 모습이나 그 이후 구금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등의 범죄사실의 재구성을 보이지도 않고 범죄의 수법 같은 걸 나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처절하리만큼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범죄의 잔인함과 잔혹성을 부각시키고 보호받지 못하는 소녀 메야를 내세워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범죄에 휘말릴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범죄가 더욱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져 섬뜩하게 느껴졌고 뭔가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웃이 자신들의 일이라면 얼마나 쉽게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러고도 자기합리화를 통해 스스로의 죄를 면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실버 로드가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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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강빵과 진저브레드 - 소설과 음식 그리고 번역 이야기
김지현 지음, 최연호 감수 / 비채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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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보면서 참으로 신박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아주 오래전부터 책 속에 등장인물들의 배경처럼 깔리는 서양의 음식들에 대해 너무 궁금한 게 많았는데 한 번도 먹어보기는커녕 접해본 적조차 없어 상상의 여지가 없었던 탓이다.

그럼에도 어떤 책에선 갓 구운 온갖 이름도 모를 종류의 빵이며 케이크에 대해 맛과 모양 그리고 요리법에 설명해 놓은 것을 볼 때마다 그 게 궁금해서 죽을 뻔했다.

요즘 같으면 웬만한 건 어디서든 찾아서 사 먹거나 여유가 된다면 현지에 가서 직접 사 먹을 수도 있고 그게 안된다면 최소한 인터넷검색으로 어떤 생김새인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지...

아마도 이런 생각을 했던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알았나 보다.

책에 나오는 온갖 종류의 요리며 디저트에 대한 짧은 감상도 흥미로운데 수많은 음식 중 우리가 잘 아는 문학작품 속에서 나오는 요리를 골라서 이쁜 삽화와 더불어 그 음식이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였는지에 대한 고찰은 그 작품을 또 다른 재미로 읽을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 이야기라고 하면 내겐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알프스 소녀 하이디에 나오는 막 짜낸 산양 젖과 빵이었다.

도대체 얼마나 맛있고 신선할지 어린 마음에 그 맛이 너무 궁금했던 기억이 나는데 병약했던 클라라가 하이디가 사는 곳에 와서 맑은 공기를 마시고 신선한 음식들을 먹고는 건강을 되찾은 장면에 감동했던 어릴 때의 기억이 인상 깊게 남아있어서인 것 같다.

좀 더 커서는 프랑스를 제외하고 대체로 우리나라 조리법보다 좀 더 간단했던 서양 음식에 대한 관심보다는 화려하고 집집마다 고유의 레시피가 있는 것 같은 디저트에 더 관심이 갔던 걸로 기억한다.

우리가 알고 있던 비스킷이랑 책 속에 나오는 비스킷이 같은 거라 생각하고 읽다 그 모양과 맛의 표현에서 어... 우리가 아는 그 과자 비스킷이 아니네 했던 기억도 나고 숲속에서 나는 온갖 과일들을 따서 생으로 얹은 케이크며 설탕을 넣고 졸여서 만든 온갖 잼은 그 맛이 상상되어 군침이 돌기도 했다.

초원의 집에 나온 잼과 젤리 그리고 설탕 졸임에 대한 비교의 글도 다락방의 꽃들 속의 땅콩버터와 잼 샌드위치에 대한 짧은 고민도 이제껏 먹으면서도 별생각 없었던 것이 저자의 글을 읽고 새삼 재밌게 깨달은 부분이다.

그러고 보면 책 속에는 수많은 음식들이 등장하는데 이렇게 비교해서 혹은 그 부분만 따로 떼어놓아도 아주 흥미로운 것 같다.

서양의 음식 중 디저트란 개념이 없었던 우리에게는 온갖 종류의 파이며 케이크, 타르트 등등은 음식이라기보다 화려한 눈요깃감으로서의 역할도 큰 듯한 것에 비해 우리의 주식인 밥에 견주는 서양의 빵이나 수프는 화려함보다는 역사와 정서가 담겨있어 배를 불려줄 뿐만 아니라 영혼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소울푸드로서의 역할이 큰 듯하다.

책을 서양의 코스요리의 순서처럼 빵과 수프, 주요리 그리고 디저트의 순서로 엮었는데 빵과 수프에서는 익숙하지만 누구에게나 배부름과 따뜻함을 주는 평범함을 위주로 했다면 주요리에서는 음식 소재부터 우리에게 낯선 재료가 많다. 탐정으로 유명한 홈즈의 멧도요 요리는 왜 따뜻한 게 아닌 차가워 여하는 지 여자의 허영으로 인생의 온갖 쓴맛을 본 모파상의 목걸이에 나오는 포토푀가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이게 왜 맛이 있다는 건지 그 맛이 궁금한 로빈슨 크루소의 거북 요리와 같이 다소 낯선 요리가 주를 이루고 있다.

또한 작품 속에 나오는 음식을 우리말로 번역했을 때의 그 느낌의 차이랄지 온도에 대한 고민은 저자가 번역가이기 때문에 생기는 일종의 직업병이라 볼 수도 있는데 제목에 내세운 생강빵과 진저브래드를 예로 둔 글을 보면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분명 같은 음식을 말하는데도 체감상 느껴지는 온도는 천양지차고 그 차이가 아마도 원작 소설과 번역에서 오는 미묘한 느낌의 차이가 아닐까 하는 말에 공감이 된다.

어느 편을 펼쳐봐도 상관이 없고 소개하는 요리가 등장하는 작품에 대해 어느 부분에서 이 글이 나왔는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색다른 재미를 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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