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버 로드 - 사라진 소녀들
스티나 약손 지음, 노진선 옮김 / 마음서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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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도 해가지지 않는 백야가 시작되면 잠을 자지 않고 밤새워 차를 몰고 다니는 남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렐레

고등학교 수학교사이자 딸을 잃어버린 아빠다.

렐레의 시간은 3년 전 딸 리나가 사라져버린 이후로 멈춰있다.

그리고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지만 그가 밤새 하는 드라이브에는 딸 리나가 동행하고 있다.

다른 누구에게도 보이지 않는 리나와의 동행은 그가 밤새 차를 모는 또 다른 이유이기도 한데 그의 이런 모습은 그가 제정신일까 하는 의심을 하게 하는 부분이다.

한순간에 딸을 잃고 자책하며 괴로워하는 아빠의 출구 없는 방황이 책 전반에 펼쳐져 있어 독자로 하여금 그가 느끼는 죄책감과 분노의 감정을 십분 느끼게 할 정도로 남자의 방황은 처절하고 안타깝다.

더군다나 그의 방황은 어느 누구도 이해해 주지 않는다. 그저 그의 모습이 보이면 피하기만 할 뿐...

자신이 태워다 준 버스정류장에서 리나가 흔적도 없고 목격자도 없이 깜짝같이 사라져버린 이후 렐레는 밤에 잠을 자지도 못하고 딸아이를 가진 직후 끊었던 담배도 다시 피기 시작했으며 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게 되었고 그야말로 산송장의 상태가 되어 이웃들의 연민 어린 시선을 견뎌내고 있다.

그들에게 렐레의 불행은 안타깝지만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딸의 실종을 남편 탓으로 몰던 아내는 실종자의 여느 가족들처럼 그와 함께 있는 것을 견디지 못하고 그의 집을 떠나버렸고 그는 이제 오롯이 홀로 남아 오늘도 딸이 사라진 길 실버 로드를 샅샅이 훑고 있지만 어디에서도 아이의 흔적은 발견되지 않는다.

실버 로드는 사랑하는 가족의 실종으로 무너져내리는 남은 가족의 모습을 생생히 담고 있다.

특히 주변 모두가 이미 포기해버렸지만 가족만큼은 죽은 시신이 발견되지 않은 이상 찾는 것을 스스로 멈출 수도 그만둘 수도 없이 실종된 그때 그대로 시간이 멈춰버린 채 서서히 마모되어가고 슬픔에 침몰되어가는 모습을 렐레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실버 로드는 물리적으로 잔인한 범죄현장을 표현하지 않아도 계속 딸을 찾아 헤매는 렐레의 모습만으로도 충분히 어느 사건 현장보다 잔인하게 느껴진다.

이렇게 작은 마을에 평범하지 않은 한 모녀가 찾아오는 데 이야기를 이끌어 갈 또 다른 축인 메야다.

늘 약에 취해있고 술에 취해있는 엄마와 그런 엄마를 보살피는 딸 메야는 한곳에서 오래 살아본 적이 없을 정도로 불안정한 삶을 살고 있다.

남자 없이는 살 수 없고 늘 뭔가에 취해있는 엄마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있던 메야에게 다가온 칼은 그녀를 자신이 사는 농장으로 인도해 다른 삶을 살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그녀의 눈에 비치는 칼의 농장은 모든 것을 자급자족하고 언제든 무슨 일이 일어나든 준비가 되어있는 집이자 늘 따뜻한 음식이 있는 곳이었고 자신이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가족의 모습에 속절없이 끌린다.

하지만 이곳 학교에서는 친구를 사귀지도 어울리지도 못한 채 겉돌고 있었고 그런 메야를 선생이자 아이 아빠였던 렐레는 걱정스럽게 지켜보는데 아마도 둘은 서로 다른 사람이지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웃사이더라는 동질감 때문인 것 같다.

그렇게 금방이라도 무슨 일이 일어날 것처럼 두 사람은 아슬아슬함을 보여주는데 또 다른 여자아이가 캠핑장에서 실종되는 사건이 발생하면서 두 사람의 연결고리가 드러난다.

그리고 이번에도 리나의 실종 때와 마찬가지로 렐레는 용의선상에 오르고... 메야 역시 조금 다르지만 안락하게 보이던 칼의 가족이 뭔가를 숨기고 있음을 깨닫는다.

대부분의 스릴러와는 다르게 소녀가 납치되는 모습이나 그 이후 구금되는 상황을 묘사하는 등의 범죄사실의 재구성을 보이지도 않고 범죄의 수법 같은 걸 나열하지도 않는다.

오로지 자식을 잃은 부모의 처절하리만큼 안타까운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이런 범죄의 잔인함과 잔혹성을 부각시키고 보호받지 못하는 소녀 메야를 내세워 그런 아이들이 얼마나 쉽게 범죄의 표적이 되거나 범죄에 휘말릴 수 있는지를 보여줌으로써 범죄가 더욱 현실적이고 생생하게 느껴져 섬뜩하게 느껴졌고 뭔가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다.

평범해 보이는 이웃이 자신들의 일이라면 얼마나 쉽게 잘못된 선택을 할 수 있는지... 그러고도 자기합리화를 통해 스스로의 죄를 면죄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는 실버 로드가 놀라운 것은 이 작품이 작가의 데뷔작이라는 사실이다.

작가의 다음 작품은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사뭇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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