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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미나토 가나에 지음, 김은모 옮김 / ㈜소미미디어 / 2021년 2월
평점 :
내면의 심리묘사에 탁월하고 특유의 서간체 형식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미나토 가나에의 신작 미래 에는 하나같이 어른들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고민을 안은 채 힘들어하는 아이들이 있다.
어린 나이에 아빠를 잃고 힘든 생활을 하게 되는 아키코를 중심으로 아키코와 연관이 있는 아이들 혹은 어른들의 어린 시절부터의 이야기가 펼쳐지고 있는데 각자의 삶이 녹록지 않다.
평범하지 않다는 걸 떠나 어디에도 도움을 청할 수 없고 누구에게도 말하기 힘든 비밀들을 안고 있는 아이들은 선택의 순간에 어쩌면 당연하게도 더욱 진흙탕 속으로 끌려가는 안타까운 선택을 해 읽는 내내 불편함을 줄 정도였다.
아빠가 돌아가신 후 매일 인형이 돼버린 엄마를 돌보며 살아가는 아키코에게 20년 후의 자신으로부터 편지가 온다.
지금은 힘들지만 꿋꿋이 버티면 좋은 날이 있을 거니까 조금만 힘내라는 그 편지에는 자신의 말을 믿을 수 있도록 하는 징표도 들어있었는데 그건 바로 도쿄 드림마운틴 30주년을 기념하는 책갈피였다.
그리고 그런 미래의 자신에게 부치지 못한 편지를 쓰며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아키코
언제나 멍하게 인형인 상태로 누워서 보내는 시간이 많은 엄마를 둔 사춘기의 어린 여학생은 누군가의 표적이 되어 괴롭힘을 당하거나 죽을 만큼 힘들어도 손 내밀어 줄 사람도 보호해 줄 어른도 없다.
오히려 자신들 주변을 맴돌면서 무기력한 엄마와 자신을 이용해먹으려고 하는 나쁜 어른들뿐...
그런 사람들로부터 약한 엄마를 보호하고자 노력하지만 처음 만난 할머니라는 존재는 자신의 뜻을 반한다는 이유로 알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비밀을 거침없이 폭로해 아키코에게 깊은 고민거리를 안겨준다.
아키코의 친구 아리사와 동생 역시 어릴 적부터 부모에게서 제대로 된 보살핌은커녕 폭력에 노출된 채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어쩌면 둘이서 서로를 알아보는 건 당연한 결과
이렇게 이 책에 나오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을 뿐 아니라 어릴 적부터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그리고 성적으로 학대를 당하며 살아오고 있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이란 존재는 보호자가 아니라 아이들을 괴롭히는 학대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하지만 이런 아이들 모두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집에서 살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부유한 환경에서 자라고 있어 누구도 그 집안에서 벌어지는 참담한 일을 눈치채지 못하거나 알면서도 침묵하는 쪽을 택한다.
집에서는 가정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학교에서조차 또래의 아이들에 의한 따돌림에 시달린다.
영악하게도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해도 그 아이들을 도와줄 어른은 없다는 걸 알고 하는 행동이란 게 더 씁쓸하다.
그런 아이들 아키코와 아리사,지애리가 서로를 알아보고 최후의 수단으로 자신들을 괴롭힌 어른들을 없애버리고자 합심하는 건 어쩌면 당연한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스스로 자신들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끼리 뭉쳐 난관을 헤쳐나가고자 노력하는 것에 반해 책 속에 등장하는 어른들의 모습은 하나같이 비겁하거나 이기적이고 뒤틀려있다.
도저히 아이들을 키워서는 안 될 모습을 한 채 자신보다 약한 아이들을 힘으로 제압하고 그런 자식들을 돈을 받고 팔아 버리기도 하는 등 해서는 안 될 짓을 거침없이 저지르면서도 죄책감은커녕 얼굴조차 붉히지 않는 몰염치한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다.
가장 보호받아야 할 가정 내에서 오히려 위험에 시달리는 아이들이 어른을 불신하는 건 당연한 결과다.
물론 그렇게 된 데에는 누구도 그 아이들에게 관심을 주거나 도움을 주려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아이들 앞에서 거침없이 자행되는 짐승 같은 모습을 보고 자란 아이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쉽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자신들의 집에 불을 지른 행위는 아마도 부정하고 싶은 자신들의 모습을 정화하고 모든 걸 태워버린 후 새롭게 출발하고자 하는 마음에서 나온 게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자신들을 억압한 과거에서 벗어나기 위해 선택한 게 방화라면 드림랜드로 가고자 하는 행위는 더 이상 힘들어하지 말고 밝은 미래를 꿈꾸고 싶은 발상에서 나온 게 아닐까?
에피소드에서 의문점들이 하나둘씩 풀리면서 드러나는 진실은 타르처럼 끈적하다.
손에 들면 단숨에 읽어 내려가는 작가 특유의 가독성이 좋은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