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 스톡홀름신드롬의 이면을 추적하는 세 여성의 이야기
롤라 라퐁 지음, 이재형 옮김 / 문예출판사 / 2021년 2월
평점 :
절판


재벌가의 상속녀가 괴한들에게 납치되고 감금당한지 얼마 후 그들과 함께 은행을 터는 강도의 모습으로 나타나 모두에게 충격을 준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과도 같은 이 이야기는 1974년에 실제 있었던 사건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소설 17일은 당시 납치되었던 재벌가의 상속녀 퍼트리샤 허스트를 중요하게 다루면서도 그녀 당사자를 직접 등장시키기 보다 그녀 또래의 다른 여자를 통해 패트리샤가 납치 피해자인 연약한 여성에서 스스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타니아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재벌가의 상속녀에서 좌파 무장단체 SLA의 일원이 되어 은행을 터는 사건을 일으키게 되는 시간은 납치된 시점으로부터 불과 두 달 남짓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지금까지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그렇게 무모하고 위험한 짓을 자행하도록 했을까 하는 의문은 그 당시 사건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졌을 의문이기도 하다.

문제는 그것이 그녀의 온전한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납치된 동안 좌파 무장단체에게 세뇌당한 결과인 걸까 하는 것인데 그녀가 체포되고 난 후 퍼트리샤의 변호인단은 재판을 유리하게 하고자 세뇌당했다는 주장을 하지만 그동안의 그녀의 행적은 이 주장을 뒷받침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증명해 준다.

그런 이유로 변호인단에게서 의뢰를 받고 퍼트리샤가 SLA에게 납치당한 동안 그들의 주장에 세뇌당했음을 증명하기 위해 모든 기록과 자료를 조사하게 되는 진 네베바와 그녀가 프랑스의 작은 도시에서 그녀의 일을 돕기 위해 고용한 여학생 비올렌이 퍼트리샤의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을 담고 있는 게 이 소설 17일의 주요 골자이며 당연한 얘기로 세 명의 여자들이 주인공인 셈이다.

먼저 재벌가의 상속녀로 태어나 어렸을 때부터 부족함이 없이 자란 퍼트리샤는 좌파 무리들에게 납치당하면서 인생이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이제껏 자신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몰랐었던 퍼트리샤는 그들을 통해 주변의 빈곤문제와 인종차별 등 부자로 있었을 땐 알 수 없었던 문제들에 대해 깨닫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라지면서 자신의 누렸던 온갖 혜택과 특혜가 올바르지도 않고 공정하지도 않다는 걸 알게 된 순간 연약한 희생자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전사로 태어난다.

퍼트리샤의 형량을 줄이기 위한 대책으로 투입된 진은 학문적으로도 높은 교양과 지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스스로는 당시의 보수적인 사회에서 진취적이고 베트남전쟁 반대 투쟁에 뛰어들 정도로 비판의식이 강하다.

그녀는 재벌가의 상속녀로 곱게 자란 퍼트리샤가 단 두 달 만에 급진적인 정치활동을 스스로의 판단으로 할 수 있다 믿지 않았기에 그녀가 세뇌당해서 저지른 일이라 믿었지만 퍼트리샤의 행적을 조사하고 그녀의 주장을 검토하면서 조금씩 의심하게 된다.

그리고 퍼트리샤와 비슷한 연령인 비올렌

그녀 역시 진의 일을 돕기 시작할 때만 해도 진에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가진 평범한 그 시대의 여학생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를테면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지 말라는 일은 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원칙에 어긋나는 건 생각조차 하지 않는 그런 착한 여학생

하지만 진과 작업하면서 누군가의 주장이나 의견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닌 스스로 생각하고 자신의 주장과 의견을 조금씩 이야기할 수 있게 변하면서 퍼트리샤의 주장에 동조하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하나의 사건으로 인해 서로 다른 세 명의 여자들이 현재 자신의 발 디디고 살았던 세계를 외면하고 새로운 삶을 바라보고 살아가게 되는 과정을 담고 있는 17일은 세 명의 여성들의 입을 통해 그 시대의 부조리함을 이야기하고 있는듯하다.

과연 퍼트리샤는 이제껏 알려진 대로 스톡홀름 신드롬의 주인공인 걸까?

가부장적 시대에서 여성들이 제 목소릴 찾아가는 과정을 그리고 있는 17일... 길지 않은 글이지만 솔직히 읽기가 녹록지 않은 작품이었고 그 속에 담긴 철학적인 메시지는 심오하지만 한 번쯤 읽어보길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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