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화가이자 잔혹하기 그지없는 연쇄살인마인 에디 칼
작가의 전작인 킬러스 와이프에서는 제목처럼 사이코패스 연쇄살인마 에디 칼이 아닌 그의 전처이자 피해자이며 검사인 제시카 야들리를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에디 칼을 주인공으로 해도 충분히 매력적인 작품이 될 수 있었음에도 작가는 그 모든 포커스를 사람들이 관심 있어 하고 언제나 매료되는 존재인 연쇄살인마가 아닌 아무것도 모른 채 그런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하게 살았던 만큼 그의 범죄가 드러나면서 더욱 강한 충격과 트라우마를 갖게 된 범죄자의 아내를 내세워 사건을 해결한다는 설정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하지만 전편인 킬러스 와이프는 두 사람의 관계나 에디 칼이 얼마나 대단한 범죄자인지에 많은 시간을 할애한 만큼 야들리의 존재감은 생각만큼 뚜렷하게 두각을 나타내지 못해 아쉬웠다면 이번 2편인 크림슨 레이크 로드에서는 야들리의 진짜 실력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물론 작가는 이번 편에서도 에디 칼의 존재를 잊지 않았지만...
전 남편에 이어 연이어 믿었던 사람으로부터 배신과 상처를 받았던 제시카는 더 이상 잔혹한 범죄현장을 보는 것도 사람들이 같은 사람에게 얼마나 악행을 저지를 수 있는지 확인하는 자신의 직업에도 지쳐 사표를 내고 다른 곳으로 떠날 결심을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발목을 잡는 사건이 발생한다.
누군가 여성을 납치해 잔혹한 그림의 장면을 재현하는 일이 발생했고 첫 번째 살인사건이 발생한 후 한 달도 지나지 않아 그 인근에서 또 다른 여성이 역시 잔혹한 그림의 한 장면을 재현하는 모습으로 발견된다.
다행히도 제보자의 신고전화로 두 번째 피해자는 목숨을 건졌고 대부분의 살인사건처럼 두 사람의 연인과 배우자가 용의자로 떠오르는 중에 첫 번째 피해자의 딸 역시 하루아침에 사라지는 일이 발생한다.
사건 현장을 보고 그림 속 장면을 재현했다는 걸 단번에 파악한 제시카는 어쩔 수 없이 이 사건에 개입하게 되고 두 번째 피해자이자 간신히 목숨을 건진 안젤라를 만나면서 묘한 동질감을 느끼게 된다.
서로 일면식도 없는 두 여자 사이의 연관성을 조사하다 안젤라의 애인이자 현직 의사인 재커리와 첫 번째 희생자와 그 남편과의 연관성을 발견하게 되면서 사건은 급물살을 타게 되고 이제 모든 초점은 재커리의 범죄사실을 재판에서 배심원을 상대로 증명하는 일만 남았다.
스릴러 소설을 즐겨 읽는 사람이라면 아니 그런 사람이 아니라 할지라도 너무나 뚜렷한 범죄 증거가 보란 듯이 펼쳐져 있을 뿐 아니라 딱딱 아귀에 맞는다면 오히려 그 의도를 의심해 봐야 한다는 것을 알 것이다.
마치 눈앞에서 미끼를 흔들어 원하는 대로 사건을 이끌어가는 듯한 그 태도는 분명 의심스럽다는 것을...
변호사 역시 그 점을 지적한다.
바보가 아닌 이상 범행도구나 증거물을 누가 그렇게 허술하게 방치할 수 있냐며...
제시카와 수사팀은 모든 증거를 내세워 재커리의 범죄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뛰어난 변호사의 변호로 인해 이 모든 증거에도 불구하고 재커리를 살인사건의 범인으로 기소하기조차 힘든 상황이 된다.
작가는 로스쿨을 졸업하고 로펌을 만든 경력이 있는 만큼 누구보다 재판에서의 부조리한 상황을 많이 겪었을 것이다.
미국의 법은 법리해석에 민감하고 법을 수행하는 과정에서의 절차를 매우 민감하게 생각하는 만큼 범죄자를 검거할 시 약간의 실수가 있으면 자칫 범죄자를 눈뜨고 풀어줘야 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그리고 그런 틈을 누구보다 잘 파고들어가 자신의 의뢰인에게 유리한 평결을 받아내는 것 역시 미국 변호사들이 특히 잘 하는 일인데 작가는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과는 별도로 법정의 그런 현실 즉 미국 사법제도의 허점을 이용해 원하는 결과를 얻어내는 모습을 재현함으로써 그 부조리를 고발하고 있다.
주인공 야들리가 탄탄한 커리어를 가진 능력 있는 여자임에도 자신의 딸아이를 어떤 식으로 다루고 대화를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모습과 더 이상 누구도 쉽게 믿을 수 없고 누구도 곁에 둘 수 없어 괴로워하는 모습은 그녀를 더 인간적으로 느끼게 한다.
2편에서의 야들리의 모습은 1편보다 더 전문적으로 느끼게 했고 그런 이유로 3편을 기대하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