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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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이 레스코프(1831~1895)는 톨스토이(1828~1910)와 도스토에프스키(1821~1881)와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19세기 러시아 작가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 '문단의 주류를 따르지 않는 독특한 문학세계로 인해' 당시엔 인정받지 못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의 문학이 재조명을 받게 되어 러시아 문학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사가 미르스키는 러시아를 정말 알고 싶다면 도스토옙스키나 체호프보다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 레스코프를 읽으라고 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를 그렇게 많이 읽는 게 이상하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또 그에 반해 왜 레스코프는 읽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두 편의 소설이 담겨 있는데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쌈닭>으로 1865년 발표했다.

둘다 여성이 주인공인데, 레스코프는 러시아 여성에 관심이 많아 '고향 오룔 부근의 여성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12편의 시리즈를 쓰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두 작품만을 발표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오십이 넘은 상인에게 시집 온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주인공이다. 20년을 살다 간 전 부인에게서도 자식을 얻지 못한 상인은 가업과 재산을 물려줄 자식을 얻고자 카테리나 리보브나와 재혼을 했고, 5년이 지났으나 그녀와의 사이에서도 자식을 얻지 못한다. 풍족한 생활이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주위의 비난과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지루한 생활은 처녀시절 자유분방했던 그녀에겐 숨막히는 권태로 다가온다.

 

다시 하품이 나온다. 나른한 기분에 젖어 한두 시간 누워 잠을 잔다. 깨어나면 또 다시 러시아의 권태, 상인집의 권태가 찾아온다. (중략) 그녀의 이러한 권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14)

 

이런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제분소의 둑이 터져 남편이 집을 비우게 되고 그녀는 하인 세르게이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이 하인은 여자 꼬시는 데는 도사로 먼저 일하던 집의 마님과도 정을 통했다고 소문이 나있는 그런 전형적인 색마인데, 이런 그가 기나긴 권태에 짓눌려 있던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그 숨겨진 욕망을 간파하는건 식은 죽 먹기.

남편이 계속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밤마다 세르게이와 즐거운 밤을 보내는데, 어느 날 이 사실을 시아버지가 알게 된다. '세르게이 없이는 단 한시간도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카테리나 리보브나. 이 때부터 자신의 사랑을 가로 막는 것은 무엇이든 제거해 버리는 그녀의 무섭고도 거침없는 행보가 시작된다.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추진력은 그 어떤 인물도 따라 오지 못할 만큼 그 과정이 어떤 망설임이나 고민없이 진행되는데, 이는 정작 살인을 저지르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 세르게이와 대조된다.

작가는 이런 카테리나를 통해 겉모습은 아름다고 약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남성을 능가하는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러시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이와는 다르게 <쌈닭>은 또 다른 여성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돔나 플라토노브나는 외모부터 카테리나와 다르다. 

 

돔나 플라토노브나는 키가 크지 않았는데, 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작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녀는 거대해 보였다. 이런 착시 현상은 돔나 플라토노브나가, 흔히 말하듯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뚱뚱했기 때문인데 높이로 자라지 못한 것을 넓이로 대신한 듯했다. (p.118)

 

높이 자라야 하는데 넓이로 자랐다니...안 웃을 수가 없다. 그녀의 잠버릇은 또 얼마나 웃긴지.

 

"게다가 잠은 그야말로 떡잠을 잔다고. 눕기도 전에 곯아떨어져 버리거든. 그리고 나는 한 번 잠들면, 누가 나를, 참새들이 있는 곳에 허수아비로 세워놓는다고 할지라도, 양껏 다 자기 전엔, 결코 아무것도 느끼질 못한다고." (p.118,119)

 

돔나 플라토노브나는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산전수전 안 겪어 본 일이 없는 세상 물정에 밝은, 그러나 그만큼 험한 경험도 많이 한 여인이다. 공식적인 직업은 레이스 상인이지만 여기 저기 관여를 안하는 일이 없어 중매, 가구와 중고의류 구매 알선, 돈 구해주기, 일자리 알선, 비밀 편지 전달 등 '사방팔방으로 눈과 귀를 열고, 도처에 코를 들이'미는 사람이다. 그녀의 이런 오지랖은 그녀 자신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 그녀의 삶은 늘 분주한 일로 가득차 있다.

 

이 소설은 이런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온갖 주변 일에 관여하는 돔나 플라토노브나가 소설 속 화자인 '나'에게 들려주는 수다로 전개되는데, 이는 작가 레스코프가 당시 생생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 특유의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으로 '스카즈 '기법이라고 작품 해설에 나와있다.

이런 끊임없는 수다를 통해 그녀가 특유의 단순함과 억척스러움으로 어떻게 대도시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살아왔는지,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다.

 

그러나 숱한 역경에도 늘 오뚜기처럼 일어섰던 그녀가 마지막 결말에 가서 아들뻘 되는 남자를 혼자 사랑하며 끙끙 앓다가 급성 쇠약증으로 떠나는 모습은 소설 앞부분에서 자신의 주먹을 쥐어 보이며 "나한테 여성미인지 뭔지는 바로 이 안에 있다고."(p.112) 말한 그녀의 모습과 상반된다.

주먹을 꼭 쥐고 험한 대도시 삶을 견뎌온 여인이 사랑 앞에선 그 주먹을 더 이상 꼭 쥘 수 없다니, 카테리나처럼 그녀도 사랑의 열정 앞에선 자신을 파멸로 몰 수밖에 없는 여인일 뿐임을, 작가는 당시 러시아 여성들에게서 이런 자기 모순적인 점을 느꼈던 것일까...

 

이 작품의 역자는 '이지적이며 행동력 있는 투르게네프의 아가씨들이나, 도스토옙스키의 팜므파탈적 여성들, 혹은 체호프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과는 달리 레스코프의 촌부들은 러시아 벽촌 풍경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원시적 특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고 말한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고 사랑 때문에 쓰러지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면에 남성 못지 않은 강인함, 촌부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아둔함 그러나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한 여성의 모습도 보여준다.

레스코프가 계획한 대로 12편의 유형별 여성 이야기가 나왔다면 당시 러시아 민중 여성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더 다채롭게 볼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두 작품 다 재미있었지만 <쌈닭>의 영악한 대도시가 만들어낸 돔나 플로토노브나라는 캐릭터가 권태에 바람이 난 카테리나보다 더 인상 깊었다.

색다른 러시아의 소설을 읽고 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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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21 13:0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줄리언 반스 <시대의 소음>에서 문제가 됐던 쇼스타코비치의 음악이 <러시아의 맥베스...>를 오페라로 만든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였습니다. 그거 영화버젼도 있는데요, 저는 VHS 필름으로 가지고 있는데, 우아, 오페라 영화이긴 합니다만 무지무지하게 야~해서, 무척 좋습니다. 목욕탕 장면에서 남자들이 떼를 지어 홀딱 벗고 정면으로 서 있습니다.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1-21 13:23   좋아요 2 | URL
‘떼를 지어 홀딱 벗고 정면‘이라뇨! 😂 ㅋㅋㅋ
<시대의 소음>을 읽어 보고 싶어요. 이렇게 또 독서 확장을 하게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

미미 2021-01-21 13:52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왼손잡이>궁금했는데 이 작품도 읽어보고싶네요!

coolcat329 2021-01-21 13:54   좋아요 2 | URL
네 저도 <왼손잡이>읽고 싶어요!

Falstaff 2021-01-21 15:54   좋아요 4 | URL
저는 이 책을 조지 엘리엇의 <미들마치>를 읽고 바로 다음날 읽었거든요, <쌈닭>.

두 작품 공히 여자가 출현해서 눈물을 흘립니다.
먼저 조지 엘리엇. ˝속눈썹에 조그만 이슬이 맺혀있지 않습니까?˝
니콜라이 레스코프. ˝왜 아침부터 소금물로 세수를 하고 있어요?˝

아이고, 제가 헷갈렸습니다. <왼손잡이>하고 <쌈닭>하고요. 죄송합니다. 위 대사는 <쌈닭>입니다.

미미 2021-01-21 14:07   좋아요 1 | URL
ㅋㅋㅋㅋㅋㅋㅋ
<미들마치>를 하루만에 읽으신것도 놀랍네요!

Falstaff 2021-01-21 14:15   좋아요 3 | URL
<미들마치> 다 읽고 그 다음 날에 읽었다는 거였습니다. ㅎㅎㅎㅎ
<왼손잡이>를 읽으시면 새삼스레 애국심이 고취됩니다. 세계를 정복한 충청도 사투리의 위력을 쌈박하게 느끼실 수 있으니까요.
심지어 잉글랜드의 <더버빌가의 테스>도 충청도 사투리에 점령당하지 않았습니까.
아, 저도 충청도 말씨를 멍...이라 표현해왔던 걸 진심으로 반성했습니다. 위대한 충청도 사투리여!

미미 2021-01-21 14:23   좋아요 2 | URL
앗ㅋㅋㅋㅋㅋㅋ저도 예전에 어디선가 그런 번역을 본 기억이 나요!

scott 2021-01-21 14:54   좋아요 1 | URL
팔스타프님 ㅋㅋㅋ
저도 그 충정도 사투리 나오는 ‘테스‘읽고 충격에 배꼽을 ㅋㅋㅋ

박선주가 번역한 챈들러에도 충정도 사투리 비속어가 나와요 ㅋㅋㅋㅋ

coolcat329 2021-01-21 14:45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ㅋㅋㅋㅋㅋ 시골 사람들이라 촌스럽고 러시아 사투리가 너무 구수해서 역자도 번역이 어려웠다고 하는데, <왼손잡이>에서 충청 사투리로 했나보군요. 아 넘 웃깁니다. 이번에 어린왕자가 경상도 사투리 버전 <애린 왕자>로 나왔던데요. 작가는 갱상도구요. 이거 미리보기 읽고 넘 웃겼는데 충청도 ㅋㅋ 넘 좋죠. 저는 개인적으로 충청도 사람들이 웃기더라구요. ㅋㅋ

미미 2021-01-21 14:54   좋아요 2 | URL
농담하신 줄 알았는데 정말 있네요ㅋㅋㅋㅋ

scott 2021-01-21 14:56   좋아요 1 | URL
애린 왕자가 경상도 사투리로 번역된거였군요 ㅋㅋㅋ

하루키 단편에서 샐린저에 프래니 주이를 쿄토 사투리로 번역해 보면 어떻겠냐고 대화 나누던 주인공이 떠오르네요 ^ㅎ^

scott 2021-01-21 14:52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아트 모모 하우스에서 저책 표지 여주인공이 나오는‘ 므첸스크의 레이디 맥베스‘봤어요 영화속 풍경이덴마크 화가 빌헬름 함메르쇼이의 회화그림 같은 색감과 조명이였는데 스산한 저택 내 밀실 공간과 야생의 거친 풍경 인물들을 너무나도 표현을 잘한 수작이였네요

미미 2021-01-21 14:59   좋아요 2 | URL
<미드소마>에서 그 여배우 넘 인상적이었어요! 레이디 맥베스 너무궁금!ㅋ.ㅋ

Falstaff 2021-01-21 15:05   좋아요 3 | URL
<....레이디 맥베스>는 CD로 듣는 것이 제일 좋더라고요. 영상물은 눈 앞의 장면이 음악의 디테일에 몰입하는데 별로 도움이 되지 않더군요.
카챠와 세료자가 처음으로 불륜을 맺는 장면, 절묘하게 변용되는 금관의 몸부림을 상상해가면서 감상자 나름대로 장면을 연출해보는 것이, 제 생각엔 대빵이었습니다만, 어디까지나 감상은 개개인이 다 다른지라.....^^;;;

scott 2021-02-10 15:18   좋아요 3 | 댓글달기 | URL
쿨캣님 명품 리뷰 이달의 당선작으로!
추카~*추카~*
설연휴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랍니다.^.^

coolcat329 2021-02-10 16:41   좋아요 1 | URL
어머,어떻게 아셨나요? 참, 부끄럽습니다.🤤이렇게 축하글도 남겨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탄제린
크리스틴 맹건 지음, 이진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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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대 모로코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두 여자의 심리스릴러라고 하는데, 내가 너무 큰 기대를 했는지, 그토록 느끼고 싶었던 서스펜스 스릴을 느낄 수 없어서 당황스러웠다.
모로코 항구도시 탕헤르의 이국적이고 낯선 분위기가 조금은 긴장감을 주기도 했지만, 초반에는 자주 책을 내려놓다가 중반부터 속도가 나기 시작하더니 결말에 ‘어? 이게 다인건가? 결국 이거야?‘ 라며 혼잣말을 했다.

내가 그동안 읽어왔던 스릴러 소설들과 다르게 서서히 조여오며 마지막에 터지는 그런 한 방이 없어서 그랬나 싶기도 하다.
처음부터 끝까지 묘한 불길한 분위기는 계속되고, 두 여자, 루시와 앨리스 각자의 입장에서 이야기는 번갈아 진행되며 누구 말이 진실인지 의심하는 사이 미스터리한 과거가 조금씩 드러나는데, 나는 이 과정이 이상하게 지루했다.

이야기보다는 두 여자의 심리에 집중해서 읽어야 하는 이 소설은 ‘가스라이팅‘ (심리학적 조작을 통해 타인의 마음에 스스로에 대한 의심을 불러일으켜 현실감과 판단력을 잃게 만듦으로써 그 사람을 정신적으로 황폐화시키고 지배력을 행사하여 결국 그 사람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위키백과) 을 소재로 다루고 있다. 1938년 공연된 연극 <가스등>에서 유래한 말로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가스라이팅은 부모와 자식, 연인, 친구 등 모든 인간 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종의 학대로 이 소설은 가스라이팅이 어떻게 한 인간에게 작용하여 자기 자신조차 의심하게 만들고 파멸시키는지 그 과정을 두 여자의 은밀한 내면 묘사를 통해 보여준다.

조지 클루니 제작, 스칼렛 조핸슨 주연 영화로도 만들어 진다는데, 아마도 스칼렛이 루시를 연기하지 않을까 싶다. 루시든 앨리스든 이 평범하지 않은 인물을 어떻게 연기할지, 실제로 영화 배경도 모로코일지, 무엇보다 이 소설을 시종일관 지배하고 있는 그 기분 나쁜 분위기를 영화는 어떻게 보여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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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삭매냐 2021-01-18 12:4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궁금하던 책인데 이렇게 리뷰로 패스하게 되네요.

coolcat329 2021-01-18 13:06   좋아요 1 | URL
아 다른 분들은 다 후한 점수를 주셔서 제 글 읽고 패스하신다니 괜히 죄송하네요 😥
두 여자의 심리에 집중해서 읽어야할듯 합니다. 저는 다른쪽으로 기대를 많이 한거같아요 😅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 고흐의 불꽃같은 열망과 고독한 내면의 기록 반 고흐, 영혼의 편지 1
빈센트 반 고흐 지음, 신성림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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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에  대한 나의 편견과 무지에서 벗어날 수 있던 시간이었다.

이 책은 그의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와 주고 받은 편지를 담고 있는데, 이를 통해 고흐의 삶과 인생관, 작품세계, 그가 그림을 통해 무엇을 추구하려 했는지 알 수 있다.

지독한 가난과 외로움 가운데서 사랑을 갈망하고 사람들 속에서 그 사랑을 나누고 싶었던 고흐.

죽기 한 달 전 어머니께 보낸 편지에서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p.298)보는 것처럼 기억 속에서만 남아있어 자신의 삶은 계속 고독할 것이고, 그림만이 '과거와 현재를 이어주는 유일한 고리'(p.298)라는 말은 두고두고 가슴에 남는다.

살아서 인정받았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죽은 다음에 인정받으면 뭐하나...아니야, 그래도 지금은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고 비싼 그림의 화가잖아...이런 안타까움과 위안이 책을 읽으면서 끊이질 않았다.

 

그러나 그의 내밀한 속마음을 담은 이 편지글들이 나에게 보여준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단순히 천재가 아니라 끊임없이 노력하고 또 노력한 진정한 예술가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만 그림을 그린 것이 아니라 화가로서 세상에 어떤 책임과 사명감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림을 통해 자신의 깊은 고뇌와 감정을 전달하고 싶어했고 '사람의 마음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여주고 싶어했다.

 

또한 그는 책도 많이 읽었다. 특히 졸라, 플로베르, 모파상, 공쿠르 형제 등을 거론하며 이런 프랑스 자연주의자들의 '소설을 읽지 않는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 대해서 아무것도 알지 못할 것'(p.152)이라고 글을 쓰는 여동생 윌에게 말한다.

모파상의 <좋은 친구>(벨 아미)는 걸작이며, <삐에르와 장>은 '참 아름다운 소설'(p.165) 이라며, 자신은 모파상의 소설을 통해서 '좋은 웃음의 필요성'(p.152)을 발견했다고 한다.

반면, '있는 그대로의 삶과 진실을 원한다면' 공쿠르의 작품이나 졸라의 <목로주점>,<삶의 환희>를 읽어보라고 한다. 작가들이 글을 쓰기 위해 세상을 바라보던 관점과 자세를 배우고 그것을 자신의 그림을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그의 예술을 향한 열정과 진지함이 나를 크게 감동시켰다.

 

다음은 내가 고흐를 진정한 예술가라고 생각하며 감동 깊게 읽은 문장들이다.

 

인물화나 풍경화에서 내가 표현하고 싶은 것은, 감상적이고 우울한 것이 아니라 뿌리깊은 고뇌다. 내 그림을 본 사람들이, 이 화가는 깊이 고뇌하고 있다고, 정말 격렬하게 고뇌하고 있다고 말할 정도의 경지에 이르고 싶다. 흔히들 말하는 내 그림의 거친 특성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 거친 특성 때문에 더 절실하게 감정을 전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말하면 자만하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의 모든 것을 바쳐서 그런 경지에 이르고 싶다. (p.64)

 

나는 이 세상에 빚과 의무를 지고 있다. 나는 30년간이나 이 땅 위를 걸어 오지 않았나! 여기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그림의 형식을 빌어 어떤 기억을 남기고 싶다. 이런저런 유파에 속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인간의 감정을 진정으로 표현하는 그림을 남기고 싶다. 그것이 나의 목표다. 이런 생각에 집중하면 해야 할 일이 분명해져서, 더 이상 혼란스러울 게 없다. 요즘은 작업이 아주 느리게 진행되고 있으니, 더욱더 시간을 낭비하지 말아야 겠다.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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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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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형제>에서 거대한 간극에 대해 썼습니다. 문화대혁명 시대와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테고, 이광두와 송강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일 것입니다. (중략)
우리의 삶이 이러합니다. 우리는 현실과 역사가 중첩되는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병자(病者)일 수도 있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극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과 과거를 비교해봐도 그렇고, 오늘날과 오늘날을 비교해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 작가 서문 중

 

문화대혁명과 개혁 개방시대를 거치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가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급박한 시대 변화에 우왕좌왕 하면서도 어떻게든 발맞추어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2005년 출간된 위화의 소설이다.

 

나는 지금은 절판된 2007년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3권짜리로 읽었는데, 작년 12월, 2020년 한 해 동안 지친 마음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위로하고자 집어든 책이다. 근데 몇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위화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으나 내가 생각했던 그런 위화의 소설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너무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묘사에 당황스럽다가도 때로는 그것이 너무 과장스럽게 느껴져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싶기도 해서 중간중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공중변소에서 여자 엉덩이를 몰래 훔쳐보다 들키는 이광두, 그의 부친도 그렇게 여자 엉덩이를 몰래 훔쳐 보다 똥통에 빠져 익사했다는 사실. 그런 이광두의 부친을 똥통에 들어가 건져 내는 송범평. 그 반듯한 남자와 재혼하는 이광두의 모친 이란. 그렇게 가족을 이루고 송범평의 아들 송강과 이란의 아들 이광두는 둘도 없는 형제가 된다. 이광두는 송강과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특유위 '또라이'짓들로 (ㅋㅋㅋ) 독자를 안절부절 웃게 만든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오면서 지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송범평, 병을 치료하러 상하이로 갔다가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고 돌아온 엄마 이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의 죽음으로 무너지는 이란의 이야기 등,

이렇게 비극과 희극이 맞물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900페이지 넘게 펼쳐진다.

 

문화대혁명과 자본주의 개방이라는 이 극단의 시간을 40년 만에 겪어야 했던 중국인들. 이런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을 산 중국인들과 그 시대를 묘사하기 위해 위화는 역시 극단적인 과장으로 풍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더럽고 천박하며 허황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그 기가 막힌 시대를 진지하고 깊이있게만 묘사했다면 오히려 위화가 말하려한 그 '역사적, 현실적 간극'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화 소설의 힘은 역시 이야기에 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될 것 같은 이야기를, 그러나 중국이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리도 끊임없이 나오는지 읽으면서 '역시 중국인들이고 중국 작가답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광두가 공중변소에서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던 더럽고 순박한 시절을 지나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로 얼룩진 비극의 시대를 거쳐 자본주의를 받아 들여 '돈'이라는 새로운 광기가 지배, 천박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현대의 중국까지, 중국 현대사와 그  변화 속에서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위화 소설의 매력은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웃을 수 있고 희극을 보면서도 눈물을 짓게 만드는데, 이 소설은 그런 그의 특징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싶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덧붙인다. 

웃기고 재미있다. 더럽고 추잡해서 얼굴이 찡그려 지다가도 어느새 웃고 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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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lstaff 2021-01-07 13:07   좋아요 2 | 댓글달기 | URL
이 책 읽으면 배고파집니다.
하도 웃어서요. ㅋㅋㅋㅋㅋ

coolcat329 2021-01-07 16:36   좋아요 2 | URL
저는 만두가 먹고 싶어지더라구요 ㅋㅋㅋ
 
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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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이방인>을 다시 읽기 전, <이방인>의 '사상적 단초'가 되는 <시지프 신화>를 먼저 읽었다. 카뮈 글쓰기의 특징은 어떤 한가지 주제를 소설, 희곡, 에세이 세가지 형식의 세트로 발표한다는 점이다. 카뮈의 작품 주제는 3단계로 나뉘는데, 그 첫번째가 '부조리 3부작'으로 알려져 있는 소설<이방인>, 희곡<칼리굴라>, 철학 에세이<시지프 신화>이다. 두 번째는 '반항 3부작'으로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반항하는 인간>이며, 3단계는 소설 <최초의 인간>, 희곡<동 파우스트>, 에세이<네메시스의 신화>를 구상했으나 비극의 자동차 사고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p.15)

 

<시지프 신화>는 '자살'이라는 명제로 시작한다. 인간은 자신이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될 때, 무의미한 삶을 마감하고 싶을 때 자살을 생각한다. 카뮈는 인간이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느끼고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 감정을 '부조리의 감정'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이런 부조리의 감정을 느끼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기에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카뮈는 묻는다.

자살이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과연 부조리는 죽음을 명하는가'(p.23)라고.

 

무표정한 환자들로 가득한 병원에 있다가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고 반짝이는 차들이 대로를 달리며 밝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활기차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봤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병원 문을 열고 마주친 세상은 방금 전까지 내가 봤던 죽음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 '낯섦'앞에서 고개를 흔들며 방금 내가 봤던 세상을 잊으려 할 뿐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없고, 카뮈가 '피비린내 나는 수학'(p.33)이라고 한 시간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명확한 답을 원하고 '세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야 만족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연속적인 후회와 무력의 역사'(p.37)일 뿐이다. 그 어떤 철학자도 답을 주지 못했고 (여러 실존철학에 국한할 때), 그들은 결국 신으로 '도피'하거나 '인간의 척도를 넘어' 부조리 자체를 무시하고 '비합리를 신격화'(p.63) 함으로써 '철학적 자살'을 저질렀다고 카뮈는 말한다.

 

카뮈는 '부조리는 인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양자가 함께 있는 가운데 있을 뿐'(p.52)이라고 말한다.  부조리는 세상과 인간을 '묶어주는 유일한 끈'이며 이 셋은 삼위일체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 중 하나라도 없다면 전체는 파괴된다.

 

여기서 다시 카뮈의 '부조리는 자살을 명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결국 자살은 부조리를 끝나게만 할 뿐 해결책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살은 부조리를 바로 죽음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부조리가 지탱되려면 부조리 자체가 해소되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부조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죽음의 거부라는 점에서 자살에서 벗어난다. 부조리는 사형수의 마지막 생각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현기증 나는 추락의 막다른 벼랑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바라보게 되는 저 한 가닥의 구두끈이다. 자살자의 반대, 그것은 다름 아닌 사형수이다.(p.84,85)

 

'도피'나 '비약'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삼위일체-세상,인간,부조리- 중 하나라도 부정하면 그것은 '부조리를 기피'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부조리 상태에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부조리를 주시'하고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의식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카뮈가 부조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끌어낸 세 가지 결론은 '반항','자유','열정'이다.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되 그것이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소진'시키고 '극단적인 긴장, 고독한 노력'(p.86)으로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조리의 인간은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놓은 목표에 자신을 가둬 놓지 않으며 내일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부조리만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온당한 자유의 원리'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삶이란 '미래에 대한 무관심'과 더불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소진하겠다는 열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p.91)라고 말한다.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p.97)

 

그렇다면 부조리한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카뮈는 부조리한 인간의 예로 돈 후안, 연극배우, 정복자를 든다. 최대한 많은 여자를 만나며 그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이 삶을 남김없이 소진하는 돈 후안, '모든 삶들 속으로 파고들어 다양한 모습의 삶을 경험'하고 연기하는 배우, 운명 앞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죽음을 의식, 죽음마저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정복자, 이들은 삶의 영원함을 믿지 않고 자신의 삶을 끝까지 소진하는 부조리의 인간들이다.

 

또한 카뮈는 예술가와 작가에 대해 말한다. 부조리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설명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묘사하는 것'(p.145)이며, 부조리한 작품은 '명철한 형태의 사고가 그 속에 개입되어' 있으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며, 어떤 인생의 목적이나 위안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를 창조'하는 철학자여야 하며,이미지, 감각, 암시들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 부조리한 작품은 그 어떤 답을 주어서도, '환상의 제물이 되어 희망을 사주'(p.155)해서도 안 된다. 카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영생의 기쁨과 희망으로 인간의 삶을 비약하는 알료샤를 예로 들면서 그는 '부조리한 소설가가 아니라 실존적 소설가'(p.167)라고 말한다.

 

신들을 속이다 미움을 사서 산 밑에서 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시지프. 온 힘을 다해 올려놓은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러지고 시지프는 또 다시 아래로 내려가 돌을 굴려 올려야 한다. 카뮈는 그런 시지프의 운명을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에 빗대었다. 무의미한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는 진정 부조리의 영웅이며, 끊임없이 반항하는 부조리의 인간이라고 카뮈는 말한다. 이 모습은 매일매일 똑같은 작업을 하는 현대 노동자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런데 카뮈는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모습 보다 다시 돌을 굴리기 위해 산 밑으로 내려오는 그 '휴지의 순간'에 주목한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 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무력하고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넓이를 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 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p.182,183)

 

시지프는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에 희망이 없음을 안다. 그러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멸시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극복, 그 순간의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고 '바위보다 강'한 것이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이야말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자신의 전부를 소진하여 끝까지 투쟁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고 당당히 대면할 때 행복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극의 주인공 시지프가 이 책의 마지막엔 '행복한 시지프'로 묘사되는 이유이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p.185)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고생한 작품이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실존주의 철학자들, 후설의 현상학, 내가 읽지도 않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과 카뮈의 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스타일의 문장들 그리고 자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번역. 

마침 올해 열린책들에서 새로 번역이 되어 나왔길래 도서관에 찾아봤더니 전체 도서관에 단 한 권도 비치가 안되어 있었서 참고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공부하듯이 최선을 다해 읽었는데, 리뷰를 쓰다보니 '이거 내가 지금 알고 하는 소리인가' 싶어 글을 쓰다가 멈추기를 수십 번 했다.

 

내가 어렵게 읽은 카뮈의 메시지는 이렇다.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가혹한 인간의 운명은 시지프의 형벌과 비슷하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희망은 없고 죽음의 댓가로 따르는 영생의 기쁨같은 것도 없다. 다 환상이 만들어낸 거짓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반항해야 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면 안된다. 미래의 계획, 인생의 목표, 영원의 기쁨에 묶여 있지 말고 모든 가치판단,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가는 반드시 죽는 사형수이기 때문이다. 늘 명철하게 부조리의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소진시켜 열정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지프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쁨을 갖고 산을 내려오는 이유일 것이다.

신들에게 반항하는 시지프는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초상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다.(p.135)

 

이 문장은 예쁜 캘리그라피 책갈피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다.

이런 문장을 보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너무나 아까운 죽음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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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2-3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9님 ^^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많이 뵈요~

coolcat329 2020-12-31 23:21   좋아요 1 | URL
앗~~^^ 방금 초딩님 글 읽고 댓글 발견~~통했네요.
초딩님 댓글 감사하고 오늘 밤 좋은 꿈 꾸시길~~☺

페크pek0501 2021-01-01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저서를 읽으셨네요.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coolcat329 2021-01-01 13:50   좋아요 0 | URL
술술~풀리는~정말 이런 한 해가 우리 모두에게 오기를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