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지프 신화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343
알베르 카뮈 지음, 김화영 옮김 / 민음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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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가을 <이방인>을 다시 읽기 전, <이방인>의 '사상적 단초'가 되는 <시지프 신화>를 먼저 읽었다. 카뮈 글쓰기의 특징은 어떤 한가지 주제를 소설, 희곡, 에세이 세가지 형식의 세트로 발표한다는 점이다. 카뮈의 작품 주제는 3단계로 나뉘는데, 그 첫번째가 '부조리 3부작'으로 알려져 있는 소설<이방인>, 희곡<칼리굴라>, 철학 에세이<시지프 신화>이다. 두 번째는 '반항 3부작'으로 <페스트>, <정의의 사람들>,<반항하는 인간>이며, 3단계는 소설 <최초의 인간>, 희곡<동 파우스트>, 에세이<네메시스의 신화>를 구상했으나 비극의 자동차 사고로 세상에 나오지 못한다.

 

참으로 진지한 철학적 문제는 오직 하나뿐이다. 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인생이 살 가치가 있느냐 없느냐를 판단하는 것이야말로 철학의 근본 문제에 답하는 것이다.(p.15)

 

<시지프 신화>는 '자살'이라는 명제로 시작한다. 인간은 자신이 더 이상 살 이유가 없다고 생각될 때, 무의미한 삶을 마감하고 싶을 때 자살을 생각한다. 카뮈는 인간이 스스로를 이방인으로 느끼고 세상이 낯설게 느껴지는 그 감정을 '부조리의 감정'이라고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이런 부조리의 감정을 느끼고 그런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자살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너무나 자명한 이치'이기에 우리 삶에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카뮈는 묻는다.

자살이 부조리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는가, '과연 부조리는 죽음을 명하는가'(p.23)라고.

 

무표정한 환자들로 가득한 병원에 있다가 화창한 햇살이 내리쬐고 반짝이는 차들이 대로를 달리며 밝은 표정으로 어딘가를 향해 활기차게 걸어가는 사람들을 봤을 때, 나는 이상한 기분이 들곤 한다.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 병원 문을 열고 마주친 세상은 방금 전까지 내가 봤던 죽음의 세상과는 너무나 다르기에 나는 '왜?!'라는 질문을 한다.  그러나 세상은 나에게 아무런 설명도 해주지 않는다. 그 '낯섦'앞에서 고개를 흔들며 방금 내가 봤던 세상을 잊으려 할 뿐이다.

 

그 누구도 죽음을 경험한 사람은 없고, 카뮈가 '피비린내 나는 수학'(p.33)이라고 한 시간 앞에서 인간은 그저 무기력한 존재일 뿐이다.

 

인간은 명확한 답을 원하고 '세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환원'시켜야 만족한다. 그러나 인간의 이성은 '연속적인 후회와 무력의 역사'(p.37)일 뿐이다. 그 어떤 철학자도 답을 주지 못했고 (여러 실존철학에 국한할 때), 그들은 결국 신으로 '도피'하거나 '인간의 척도를 넘어' 부조리 자체를 무시하고 '비합리를 신격화'(p.63) 함으로써 '철학적 자살'을 저질렀다고 카뮈는 말한다.

 

카뮈는 '부조리는 인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세계 안에 있는 것도 아니고 오직 양자가 함께 있는 가운데 있을 뿐'(p.52)이라고 말한다.  부조리는 세상과 인간을 '묶어주는 유일한 끈'이며 이 셋은 삼위일체로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한다. 셋 중 하나라도 없다면 전체는 파괴된다.

 

여기서 다시 카뮈의 '부조리는 자살을 명하는가'라는 질문으로 돌아가보면, 결국 자살은 부조리를 끝나게만 할 뿐 해결책은 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카뮈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자살은 부조리를 바로 죽음 속으로 끌고 들어간다. 그러나 나는 부조리가 지탱되려면 부조리 자체가 해소되어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안다. 부조리는 죽음에 대한 의식인 동시에 죽음의 거부라는 점에서 자살에서 벗어난다. 부조리는 사형수의 마지막 생각이 극한에 이르렀을 때, 현기증 나는 추락의 막다른 벼랑 끝에서 어쩔 수 없이 바라보게 되는 저 한 가닥의 구두끈이다. 자살자의 반대, 그것은 다름 아닌 사형수이다.(p.84,85)

 

'도피'나 '비약'은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삼위일체-세상,인간,부조리- 중 하나라도 부정하면 그것은 '부조리를 기피'하는 것이 된다. 우리는 부조리 상태에서 살 수밖에 없다. 우리는 '부조리를 주시'하고 의식해야 한다. 그러나 그냥 의식만 하라는 것은 아니다. 

 

카뮈가 부조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끌어낸 세 가지 결론은 '반항','자유','열정'이다.

희망이 없음을 인정하되 그것이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에 자신의 '전부를 마지막까지 소진'시키고 '극단적인 긴장, 고독한 노력'(p.86)으로 반항하는 인간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부조리의 인간은 자신의 환상이 만들어놓은 목표에 자신을 가둬 놓지 않으며 내일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죽음과 부조리만이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온당한 자유의 원리'임을 깨닫는다. 따라서 삶이란 '미래에 대한 무관심'과 더불어 '모든 것을 남김없이 소진하겠다는 열정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p.91)라고 말한다.

 

이리하여 나는 부조리에서 세 가지 귀결을 이끌어 낸다. 그것은 바로 나의 반항, 나의 자유 그리고 나의 열정이다. 오직 의식의 활동을 통해 나는 죽음으로의 초대였던 것을 삶의 법칙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래서 나는 자살을 거부한다. (p.97)

 

그렇다면 부조리한 인간은 어떤 사람인가?

카뮈는 부조리한 인간의 예로 돈 후안, 연극배우, 정복자를 든다. 최대한 많은 여자를 만나며 그 여자들과 더불어 자신이 삶을 남김없이 소진하는 돈 후안, '모든 삶들 속으로 파고들어 다양한 모습의 삶을 경험'하고 연기하는 배우, 운명 앞에 도전하기를 두려워하지 않고 늘 죽음을 의식, 죽음마저도 정복의 대상으로 삼는 정복자, 이들은 삶의 영원함을 믿지 않고 자신의 삶을 끝까지 소진하는 부조리의 인간들이다.

 

또한 카뮈는 예술가와 작가에 대해 말한다. 부조리의 인간에게 중요한 것은 '설명하고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고 묘사하는 것'(p.145)이며, 부조리한 작품은 '명철한 형태의 사고가 그 속에 개입되어' 있으나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되며, 어떤 인생의 목적이나 위안도 될 수 없다고 말한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우주를 창조'하는 철학자여야 하며,이미지, 감각, 암시들을 통해 자신의 철학을 드러내는 것이다.

진정 부조리한 작품은 그 어떤 답을 주어서도, '환상의 제물이 되어 희망을 사주'(p.155)해서도 안 된다. 카뮈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에서 영생의 기쁨과 희망으로 인간의 삶을 비약하는 알료샤를 예로 들면서 그는 '부조리한 소설가가 아니라 실존적 소설가'(p.167)라고 말한다.

 

신들을 속이다 미움을 사서 산 밑에서 꼭대기까지 바위를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은 시지프. 온 힘을 다해 올려놓은 바위는 다시 아래로 굴러 떨러지고 시지프는 또 다시 아래로 내려가 돌을 굴려 올려야 한다. 카뮈는 그런 시지프의 운명을 부조리한 세상을 살아야 하는 인간의 삶에 빗대었다. 무의미한 노동을 반복해야 하는 시지프는 진정 부조리의 영웅이며, 끊임없이 반항하는 부조리의 인간이라고 카뮈는 말한다. 이 모습은 매일매일 똑같은 작업을 하는 현대 노동자들의 모습과도 닮았다.

 

그런데 카뮈는 시지프가 바위를 밀어 올리는 모습 보다 다시 돌을 굴리기 위해 산 밑으로 내려오는 그 '휴지의 순간'에 주목한다.

 

이 신화가 비극적인 것은 주인공의 의식이 깨어 있기 때문이다. 만약 한 걸음 한 걸음 옮길 때마다 성공의 희망이 그를 떠받쳐 준다면 무엇 때문에 그가 고통스러워하겠는가? (...)무력하고 반항적인 시지프는 그의 비참한 조건의 넓이를 안다. 그가 산에서 내려올 때 생각하는 것은 바로 이 조건이다. 아마도 그에게 고뇌를 안겨 주는 통찰이 동시에 그의 승리를 완성시킬 것이다. 멸시로 응수하여 극복되지 않는 운명이란 존재하지 않는다.(p.182,183)

 

시지프는  자신이 처한 부조리한 상황을 분명히 인식하고 있기에 희망이 없음을 안다. 그러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멸시함으로써 자신의 운명을 극복, 그 순간의 '시지프는 자신의 운명보다 우월'하고 '바위보다 강'한 것이다.

 

카뮈는 반항하는 인간이야말로 자기 운명의 주인이며, 자신의 전부를 소진하여 끝까지 투쟁하고 부조리한 세상에서 도피하지 않고 당당히 대면할 때 행복을 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비극의 주인공 시지프가 이 책의 마지막엔 '행복한 시지프'로 묘사되는 이유이다.

 

'행복한 시지프를 마음에 그려 보지 않으면 안 된다.'(p.185)

 

이 책은 올해 내가 읽은 책 중 가장 고생한 작품이다. 200페이지도 안되는 책을 읽는데 일주일이 걸렸다. 실존주의 철학자들, 후설의 현상학, 내가 읽지도 않은 도스토예프스키 소설들과 카뮈의 뭔가를 암시하는 듯한 스타일의 문장들 그리고 자연히 어려울 수 밖에 없는 번역. 

마침 올해 열린책들에서 새로 번역이 되어 나왔길래 도서관에 찾아봤더니 전체 도서관에 단 한 권도 비치가 안되어 있었서 참고할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름 공부하듯이 최선을 다해 읽었는데, 리뷰를 쓰다보니 '이거 내가 지금 알고 하는 소리인가' 싶어 글을 쓰다가 멈추기를 수십 번 했다.

 

내가 어렵게 읽은 카뮈의 메시지는 이렇다.

부조리한 세상에 던져진 가혹한 인간의 운명은 시지프의 형벌과 비슷하다.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삶 속에서 우리는 부조리한 세상을 똑바로 인식해야 한다.

희망은 없고 죽음의 댓가로 따르는 영생의 기쁨같은 것도 없다. 다 환상이 만들어낸 거짓일 뿐이다.

그러나 이것이 절망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반항해야 하고 어떠한 경우에도 포기하면 안된다. 미래의 계획, 인생의 목표, 영원의 기쁨에 묶여 있지 말고 모든 가치판단, 규범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한다. 왜냐하면 우리는 언제가는 반드시 죽는 사형수이기 때문이다. 늘 명철하게 부조리의 세상을 바라보고 자신을 소진시켜 열정을 갖고 살아야 한다.

이것이 바로 시지프가 고통스러워하면서도 기쁨을 갖고 산을 내려오는 이유일 것이다.

신들에게 반항하는 시지프는 바로 우리가 추구해야 할 인간의 초상인 것이다.

 

인간은 인간 자신의 목적이다. 그의 하나밖에 없는 목적이다. 그가 무엇인가가 되고자 한다면 그것은 바로 삶 속에서다.(p.135)

 

이 문장은 예쁜 캘리그라피 책갈피로 만들어 간직하고 싶다.

이런 문장을 보면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이 더욱 안타깝다. 너무나 아까운 죽음이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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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딩 2020-12-31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329님 ^^ 올 한 해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내년에도 많이 뵈요~

coolcat329 2020-12-31 23:21   좋아요 1 | URL
앗~~^^ 방금 초딩님 글 읽고 댓글 발견~~통했네요.
초딩님 댓글 감사하고 오늘 밤 좋은 꿈 꾸시길~~☺

페크pek0501 2021-01-01 12:43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유명한 저서를 읽으셨네요.

님이 뜻하는 대로 일이 술술 풀리는 행복한 한 해가 되길 바랍니다. ★ ★ ★

coolcat329 2021-01-01 13:50   좋아요 0 | URL
술술~풀리는~정말 이런 한 해가 우리 모두에게 오기를요~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