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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제 1
위화 지음, 최용만 옮김 / 휴머니스트 / 2007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나는 <형제>에서 거대한 간극에 대해 썼습니다. 문화대혁명 시대와 오늘날의 간극은 역사적 간극일 테고, 이광두와 송강 사이의 간극은 현실적 간극일 것입니다. (중략)
우리의 삶이 이러합니다. 우리는 현실과 역사가 중첩되는 거대한 간극 속에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병자(病者)일 수도 있고, 모두 건강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양극단 속에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오늘과 과거를 비교해봐도 그렇고, 오늘날과 오늘날을 비교해도 여전히 마찬가지입니다. - 작가 서문 중
문화대혁명과 개혁 개방시대를 거치며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극과 극의 인생을 살아가는 두 형제를 중심으로 급박한 시대 변화에 우왕좌왕 하면서도 어떻게든 발맞추어 살아가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2005년 출간된 위화의 소설이다.
나는 지금은 절판된 2007년 휴머니스트에서 나온 3권짜리로 읽었는데, 작년 12월, 2020년 한 해 동안 지친 마음을 재미있는 이야기로 위로하고자 집어든 책이다. 근데 몇 장을 넘기자마자 나는 조금 당황했다. 위화의 소설을 많이 읽어보진 못했으나 내가 생각했던 그런 위화의 소설과는 조금 달랐기 때문이다. 너무나 적나라하고 노골적인 묘사에 당황스럽다가도 때로는 그것이 너무 과장스럽게 느껴져 이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싶기도 해서 중간중간 헛웃음이 나오기도 했다.
공중변소에서 여자 엉덩이를 몰래 훔쳐보다 들키는 이광두, 그의 부친도 그렇게 여자 엉덩이를 몰래 훔쳐 보다 똥통에 빠져 익사했다는 사실. 그런 이광두의 부친을 똥통에 들어가 건져 내는 송범평. 그 반듯한 남자와 재혼하는 이광두의 모친 이란. 그렇게 가족을 이루고 송범평의 아들 송강과 이란의 아들 이광두는 둘도 없는 형제가 된다. 이광두는 송강과 즐거운 유년 시절을 보내고 특유위 '또라이'짓들로 (ㅋㅋㅋ) 독자를 안절부절 웃게 만든다. 그러나 문화대혁명이 오면서 지주 출신이라는 이유로 비극적인 죽음을 맞는 송범평, 병을 치료하러 상하이로 갔다가 남편이 죽은지도 모르고 돌아온 엄마 이란, 그토록 사랑했던 남편의 죽음으로 무너지는 이란의 이야기 등,
이렇게 비극과 희극이 맞물려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기가 막힌 이야기가 900페이지 넘게 펼쳐진다.
문화대혁명과 자본주의 개방이라는 이 극단의 시간을 40년 만에 겪어야 했던 중국인들. 이런 극과 극을 오가는 삶을 산 중국인들과 그 시대를 묘사하기 위해 위화는 역시 극단적인 과장으로 풍자할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싶다. 더럽고 천박하며 허황되게 흘러가는 이야기가 처음에는 불편했지만 그 기가 막힌 시대를 진지하고 깊이있게만 묘사했다면 오히려 위화가 말하려한 그 '역사적, 현실적 간극'이 독자들에게 잘 전달되지 못했겠다는 생각을 했다.
위화 소설의 힘은 역시 이야기에 있다. 어떻게 이런 말도 안될 것 같은 이야기를, 그러나 중국이기에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 이야기들이 어쩌면 그리도 끊임없이 나오는지 읽으면서 '역시 중국인들이고 중국 작가답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광두가 공중변소에서 여자 엉덩이를 훔쳐보던 더럽고 순박한 시절을 지나 문화대혁명이라는 광기로 얼룩진 비극의 시대를 거쳐 자본주의를 받아 들여 '돈'이라는 새로운 광기가 지배, 천박한 욕망이 끓어오르는 현대의 중국까지, 중국 현대사와 그 변화 속에서 각기 다르게 살아가는 온갖 인간 군상들이 이 소설에 담겨있다.
위화 소설의 매력은 비극을 마주하면서도 웃을 수 있고 희극을 보면서도 눈물을 짓게 만드는데, 이 소설은 그런 그의 특징이 극단적으로 나타난 작품이 아닐까 생각한다.
굳이 말할 필요가 없을 듯 싶지만 그래도 혹시 몰라 덧붙인다.
웃기고 재미있다. 더럽고 추잡해서 얼굴이 찡그려 지다가도 어느새 웃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