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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니콜라이 레스코프 지음, 이상훈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7년 5월
평점 :
니콜라이 레스코프(1831~1895)는 톨스토이(1828~1910)와 도스토에프스키(1821~1881)와 비슷한 시기를 살다 간 19세기 러시아 작가이다. 국내에 잘 알려지지 않은 작가인데, '문단의 주류를 따르지 않는 독특한 문학세계로 인해' 당시엔 인정받지 못했으나 20세기에 들어와서 그의 문학이 재조명을 받게 되어 러시아 문학사에 한 획을 긋게 되었다고 한다.
문학사가 미르스키는 러시아를 정말 알고 싶다면 도스토옙스키나 체호프보다 '러시아 작가 가운데 가장 러시아적인 작가' 레스코프를 읽으라고 한다. 또한 톨스토이는 "사람들이 도스토옙스키를 그렇게 많이 읽는 게 이상하다. 그 이유를 모르겠다. 또 그에 반해 왜 레스코프는 읽지 않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라고 말했다.
이 책은 두 편의 소설이 담겨 있는데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 <쌈닭>으로 1865년 발표했다.
둘다 여성이 주인공인데, 레스코프는 러시아 여성에 관심이 많아 '고향 오룔 부근의 여성들을 유형별로 분류하여 12편의 시리즈를 쓰려고 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 두 작품만을 발표했다고 한다.
<러시아의 맥베스 부인>은 가난한 집안 사정 때문에 오십이 넘은 상인에게 시집 온 카테리나 리보브나가 주인공이다. 20년을 살다 간 전 부인에게서도 자식을 얻지 못한 상인은 가업과 재산을 물려줄 자식을 얻고자 카테리나 리보브나와 재혼을 했고, 5년이 지났으나 그녀와의 사이에서도 자식을 얻지 못한다. 풍족한 생활이지만 아이를 낳지 못한다는 주위의 비난과 특별히 할 일이 없는 지루한 생활은 처녀시절 자유분방했던 그녀에겐 숨막히는 권태로 다가온다.
다시 하품이 나온다. 나른한 기분에 젖어 한두 시간 누워 잠을 잔다. 깨어나면 또 다시 러시아의 권태, 상인집의 권태가 찾아온다. (중략) 그녀의 이러한 권태에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p.14)
이런 생활이 계속되던 어느 날, 제분소의 둑이 터져 남편이 집을 비우게 되고 그녀는 하인 세르게이의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 이 하인은 여자 꼬시는 데는 도사로 먼저 일하던 집의 마님과도 정을 통했다고 소문이 나있는 그런 전형적인 색마인데, 이런 그가 기나긴 권태에 짓눌려 있던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그 숨겨진 욕망을 간파하는건 식은 죽 먹기.
남편이 계속 집을 비운 사이 그녀는 밤마다 세르게이와 즐거운 밤을 보내는데, 어느 날 이 사실을 시아버지가 알게 된다. '세르게이 없이는 단 한시간도 견딜 수 없는 지경이 되어버린' 카테리나 리보브나. 이 때부터 자신의 사랑을 가로 막는 것은 무엇이든 제거해 버리는 그녀의 무섭고도 거침없는 행보가 시작된다.
카테리나 리보브나의 추진력은 그 어떤 인물도 따라 오지 못할 만큼 그 과정이 어떤 망설임이나 고민없이 진행되는데, 이는 정작 살인을 저지르고 두려움에 벌벌 떠는 세르게이와 대조된다.
작가는 이런 카테리나를 통해 겉모습은 아름다고 약해 보이지만 그 이면에 남성을 능가하는 강한 에너지를 갖고 있는 러시아 여성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게 아닌가 싶다.
이와는 다르게 <쌈닭>은 또 다른 여성상을 보여준다. 주인공 돔나 플라토노브나는 외모부터 카테리나와 다르다.
돔나 플라토노브나는 키가 크지 않았는데, 크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아주 작다고 말하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그녀는 거대해 보였다. 이런 착시 현상은 돔나 플라토노브나가, 흔히 말하듯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뚱뚱했기 때문인데 높이로 자라지 못한 것을 넓이로 대신한 듯했다. (p.118)
높이 자라야 하는데 넓이로 자랐다니...안 웃을 수가 없다. 그녀의 잠버릇은 또 얼마나 웃긴지.
"게다가 잠은 그야말로 떡잠을 잔다고. 눕기도 전에 곯아떨어져 버리거든. 그리고 나는 한 번 잠들면, 누가 나를, 참새들이 있는 곳에 허수아비로 세워놓는다고 할지라도, 양껏 다 자기 전엔, 결코 아무것도 느끼질 못한다고." (p.118,119)
돔나 플라토노브나는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산전수전 안 겪어 본 일이 없는 세상 물정에 밝은, 그러나 그만큼 험한 경험도 많이 한 여인이다. 공식적인 직업은 레이스 상인이지만 여기 저기 관여를 안하는 일이 없어 중매, 가구와 중고의류 구매 알선, 돈 구해주기, 일자리 알선, 비밀 편지 전달 등 '사방팔방으로 눈과 귀를 열고, 도처에 코를 들이'미는 사람이다. 그녀의 이런 오지랖은 그녀 자신도 제어하기 힘들 정도로 강해 그녀의 삶은 늘 분주한 일로 가득차 있다.
이 소설은 이런 자기 확신에 가득 찬, 온갖 주변 일에 관여하는 돔나 플라토노브나가 소설 속 화자인 '나'에게 들려주는 수다로 전개되는데, 이는 작가 레스코프가 당시 생생한 삶을 보여주기 위해 특유의 언어유희를 사용한 것으로 '스카즈 '기법이라고 작품 해설에 나와있다.
이런 끊임없는 수다를 통해 그녀가 특유의 단순함과 억척스러움으로 어떻게 대도시 페테르스부르크에서 살아왔는지, 그 뿐만 아니라 당시 사람들의 생활을 엿볼 수 있어 재미있다.
그러나 숱한 역경에도 늘 오뚜기처럼 일어섰던 그녀가 마지막 결말에 가서 아들뻘 되는 남자를 혼자 사랑하며 끙끙 앓다가 급성 쇠약증으로 떠나는 모습은 소설 앞부분에서 자신의 주먹을 쥐어 보이며 "나한테 여성미인지 뭔지는 바로 이 안에 있다고."(p.112) 말한 그녀의 모습과 상반된다.
주먹을 꼭 쥐고 험한 대도시 삶을 견뎌온 여인이 사랑 앞에선 그 주먹을 더 이상 꼭 쥘 수 없다니, 카테리나처럼 그녀도 사랑의 열정 앞에선 자신을 파멸로 몰 수밖에 없는 여인일 뿐임을, 작가는 당시 러시아 여성들에게서 이런 자기 모순적인 점을 느꼈던 것일까...
이 작품의 역자는 '이지적이며 행동력 있는 투르게네프의 아가씨들이나, 도스토옙스키의 팜므파탈적 여성들, 혹은 체호프의 다양한 아름다움을 지닌 여인들과는 달리 레스코프의 촌부들은 러시아 벽촌 풍경과 함께 러시아인들의 원시적 특성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고 말한다.
두 작품 모두 여성이 주인공이고 사랑 때문에 쓰러지는 여인을 주인공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면에 남성 못지 않은 강인함, 촌부 특유의 억척스러움과 아둔함 그러나 자신의 감정에는 솔직한 여성의 모습도 보여준다.
레스코프가 계획한 대로 12편의 유형별 여성 이야기가 나왔다면 당시 러시아 민중 여성의 생생한 삶의 모습을 더 다채롭게 볼 수 있었을 텐데 많이 아쉽다. 두 작품 다 재미있었지만 <쌈닭>의 영악한 대도시가 만들어낸 돔나 플로토노브나라는 캐릭터가 권태에 바람이 난 카테리나보다 더 인상 깊었다.
색다른 러시아의 소설을 읽고 보고 싶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