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의 목소리가 떨렸다.
"저.. 감사해서 그러는데, 제가 언제 식사라도 대접할 수 있을까요?"
사주겠다는 저녁 마다할 이유 없다.
"기왕이면, 맛있는거 사주세요"
"혹시,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고.. 개인 연락처를 여쭤봐도 될까요?"
"010-++++ -+++++"
연락처를 알려주면서 나는 피식 웃었다. 내가 이미 상담 전에 건내준 명함에는 내 핸드폰 번호가 적혀있다. 그런데 그 명함을 받았으면서도 이사람은 내게 연락처를 물어온다. 아마도 연락해도 되겠냐는 뜻인듯 싶다. 그리고 몇통의 문자가 왔다. 저녁메뉴를 묻는 문자 하나와 그냥 안부를 묻는 문자 몇개...
예의있는 그의 말투에, 그의 행동에, 그가 조금은 이뻐 보였다. 사실 뭐.. 이쁘기도 하더라만은...
그와 함께 머릿속에 넘어가는 몇가지 연락처를 묻는 방법이 생각났다. 철없던 시절에 겁없던 도전이기도 했고, 여자가 먼저 들이대는건 매력이 없다는 이야기는 귓등으로도 안듣던 시절이기도 했다. 그 당시에 나는 지금 이 남자처럼 예의있고, 매너있게 연락처를 묻고, 연락을 해도 되겠냐는 동의를 구하지는 못했지만, 나름 성공했던 몇가지 작전이였다.
1. 그는 버스 정류장에 서 있을 뿐이였다. 그에게 죄가 있다면 기럭지가 좀 이기적으로 긴거, 손이 너무 내 스타일이였던거, 그래서 그 사람보다 저 손을 어떻게든 한번 잡아보고 싶게 만들었다는거... 그가 담배를 물고 라이터를 당기는 그 순간, 나는 나도 모르게 그사람 앞에 있었다. "정말 죄송한데요,, 친구들이랑 내기를 좀 해서요. 저 이천원만 좀 빌려주시면 안될까요? 꼭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나는 학생증을 내밀었다. (신분증에는 도저히 신분을 확인하기 어려운 내 고등학교 시절의 사진이 떡 하니 붙어있다) "연락처를 주시면,, 찾으러 가겠습니다" 그가 내 학생증을 보더니 픽 웃는다. "이름이 똑같네..." 상황끝~! 그후로 서로가 자신의 이름을 정답게, 다정하게 불러주었던 후문은. 잠시 묻어두기로 하겠다.
2. 아버지를 닮아서 감사한 일 중 하나는 바로 주량이다. 내가 아주 말짱한 정신으로 맥주8과 소주2의 비율로 술을 섞고 있을때 상대는 이미 테이블에 이마를 박고 "아직 더 마실 수 있어"를 혀 꼬부라진 소리로 외치고 있었다. 고이 그를 택시에 태워 집으로 보냈다. 그만 보냈다. 그의 가방은 내 손에 있었다. 다음날 삐링삐링 전화가 온다. 받았다. 약간의 거짓말을 보태서 어제 그가 제법 내게 실수를 했노라고 이야기 했다. 그건 그렇고 이 가방은 어떻게 할꺼냐고, 이 무거운 가방을 내가 어제 들고 갔다가 다시 들고 나왔는데 어떻게 할꺼냐고, 미안하단다. 술한잔 사라고 했다. 사겠단다. 그래서 또 마셨다. 그리고 그는 또 테이블에 엎어져서 "아직 더 마실 수 있어"를 외쳤다. 나는 그를 다시 고이 돌려 보냈다. 역시 그만 보냈다. 다음날 다시 전화기 삐링삐링 울린다. 정말 미안하단다. 할 말이 없단다. 염치도 없단다. 그래서 그렇게 미안하면 연애나 하자고 했다. 역시 상황끝~! 단, 연애하면서 그 이후로는 다시는 함께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것도 잠시 묻어 두도록 하겠다.
3. "연애나 할까요? 싫음 말구요" 내가 툭 던졌다. 그가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곧 특유의 눈웃음을 지으며 눈을 반달 모양으로 만든다. "농담도 잘해요 하여튼..." "농담 아닌데, 싫음 말구요" 다시 눈을 똥그랗게 뜬다."나는.. 따라님을 몰라요. 따라님도 저를 모르고... 연애를 하기에는.." "그러니까 싫은 말구요" "아니.. 꼭 싫다는건 아니고.. 서로 잘 모르니까.." " 다 알면 연애 왜 해요 모르니까 알아가자는 거지. 아.. 싫음 말라니까요." "싫다고 한적 없어요." "좋다고도 안했잖아요. 싫음 말아요. " "아.. 안싫다구요~!!" 이번에는 내 쪽에서 눈을 동그랗게 떳다가 반달 눈을 만들었다. 그가 씩씩거리며 나에게 연락처를 묻는다. 계속 나는 싫다고 한적이 없다고 혼자 꿍시렁 거리면서.. 그 뒤로도 그에게 이같은 방법으로 몇가지 내가 원하는 대답을 들었던것은.. 역시 잠시 묻어두도록 하겠다.
나는 이쁘지도, 잘빠지지도 않은, 외모로 따지자면 어쩌면 평균보다 조금 못미칠지도 모르는 여자다. (본인은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말도 있지 않은가 "용기 있는 자 만이 미남을 얻는다"
돌아보면, 어의없는 객기고, 지금하라고 하면 못할 짓들이만, 오늘은 문득, 한번쯤 용기가 날것도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