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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무해한 사람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1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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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

강남역 근처 사람이 너무 많은 카페의 한 귀퉁이였다. 나와 상관없는 사람들의 소음이 가득찬

곳이였다.

 

 

#1.

종이 넘어가는 소리가 기억난다.  

책 귀퉁이에 색연필을 칠하던 사각거리는 소리도 기억난다.

그사람은  문득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 보았다.

아주  짧은 시간.  길어야 삼초 남짓.  

오래전 일이라 그 사람의 목소리는 기억나지 않는다. 얼굴도 당연히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반쯤 삐뚜룸하게 올라갔던  입꼬리만 사진처럼 머릿속에 찍혀 남았다.

그 사람이 말했다.

"눈동자가 밝은 갈색이네요."

그리곤 탁 소리를 내며 소설책이 덮혔다.

내 기억도 그쯤에서 덮혔다.

 

 

이경은 수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수이는 다리를 꼬고 턱을 괜 채로 이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눈동자가 갈색이구나." 수이가 말했다.

 

<내게 무해한 사람 13p>

 

 

내 밝은 갈색의 눈동자는 엄마를 닮았다.

엄마의 머라카락은 염색했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밝은 갈색이였는데 엄마는 오히려

검은색으로 염색을 하곤 했다.

나는 그정도로 밝지는 않지만 엄마를 닮은 갈색 머리카락과 갈색 눈동자가 좋았다.

 

 

 

고등학교를 다니던 내내 이경은 머리를 검은색으로 염색해야 했다. 머리카락이 갈색이어서 교칙에 위반되었기 때문이다. 갈색 머리가 다시 자라나면 선부도부에 불려가서 훈계를 듣고 그 부분을 검게 염색해야 했다. "넌 눈도 갈색이구나?" 자신을 바라보던 선도부장의 찌푸린 얼굴 앞에서 이경은 더이상 주눅들지 않았다. 당신은 사랑이 부족하구나. 아무도 당신 같은 사람을 사랑해주지 않을 테니까. 그 찌푸린 얼굴을 이경은 속으로 비웃을 수 있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17p>

 

 

내 오랜친구는 내 갈색 눈동자를 부러워한다.

한번만 더 그따구로 눈웃음을 지으면 그 갈색눈동자를 뽑아버리겠다고 말했던 사람도 있다.

내 첫사랑은 너무 울어서 색이 빠진 눈동자 같다고 말했다.

우리 아빠는 내 갈색 눈동자에서 엄마가 보인다고 말한다.

 

내 갈색눈동자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대부분 나와 꽤 오랜시간을 지낸 사람들이다.

그 사람들의 입을 통해 나오는 내 눈동자의 색깔은 내게 관심이였고, 사랑이였다.

내가 나의 갈색 눈동자를 더욱 사랑하는 이유기도 했다.

 

 

하지만 그가 내 눈동자가 갈색이라는 것을 알아차린것은 나와 마주 앉은지 십여분정도가

흘렀을 때였다. 그 짧은 시간 처음보는 나의 눈동자 색을 알아봤다. 마치 내가 내 눈동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아는 사람처럼.

 

"어떻게 알았어요?" 라고 물었었나?

그 사람이 뭐라고 했더라... "보이니까." 라고 했던가..

 

  

#2.

책을 읽는 동안 내내 이야기 하고 싶었다.

"나도 그랬어.. 있잖아... 나도 그랬단다... 나도.. "

누가 들어주지 않아도. 그 순간에 대해 말하고 싶었다.

 

 

그런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기대고 싶은 밤. 나를 오해하고 조롱하고 비난하고 이용할지도 모를, 그리하여 나를 낙담하게 하고 상처입힐 수 있는 사람이라는 피조물에게 나의 마음을 열어 보여주고 싶은 밤이 있었다. 사람에게 이야기해서만 구할 수 있는 마음이 존재하는 지도 모른다고 나의 신에게 조용히 털어놓았던 밤이 있었다.

 

<내게 무해한 사람 209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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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2018-07-23 16: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랜만이네요! :)

따라쟁이 2018-07-24 09:03   좋아요 0 | URL
잊지않았네요;)

감은빛 2018-07-24 12:2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앗! 따라쟁이님이다!

따라쟁이 2018-07-24 14:00   좋아요 0 | URL
앗! 감은빛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