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와서 투표하고 가!!" 

무슨일이든 강압적으로 이야기하시는 일이 없으신 분이였습니다. 스무살 이후로는 ~~ 하지마, 라든가 ~~해 라는 말은 아버지께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단호하고 짧은 한마디셨습니다. 제가 투표권을 행사해야 하는 곳은 충청남도였습니다. 하지만 저는 일 때문에 서울에 있었고, 하는 일 때문에 선거일에도 쉴 수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새벽에 출근해서 오후 3시가 넘어 퇴근한 후에 충청남도까지 내려가서 투표를 하고 다시 올라왔다가 새벽에 다시 출근해야 하는 일은 쉬운게 아니였습니다. "글쎄, 아빠나 나나 우리가 지지하는 후보는 당선 안된다니까~!!"사실 당시에는 당선되지도 않을 후보에게 표를 던지기 위해서 저를 불러내리는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하지만 짜증섞인 제 목소리에도 아버지는 굳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내려와서 집에 안들러도 되니까 투표만 하고가." 두손 두발 다 들었습니다. 그래 딸래미야 피곤해서 죽든지 말든지 투표가 더 중요하다 이거지~! 그래서 했습니다. 투표. 그리고 그날 제가 표를 던졌던 후보는 당선되었습니다.  

아버지께 전화를 걸었습니다.  

"됐네.. 당선" 

"그러게.. 당선.." 

"한표 없어도 됐겠구만, 피곤한 딸래미 불러  내려서 좋수?" 

그때 아버지의 대답은 그러했습니다.  

젊기 때문에 더 더욱 투표해야 한다고, 정치에 관심있는건 가진사람, 시간 많은 사람, 기득권자, 나이 많은 사람 만이 아니라는걸 알려줘야 한다고. 그렇기 때문에 당선되지 않을 후보라 하더라도 투표율로, 지지율로 보여줘야 한다고, 봐라, 아직 진보를 지지한다. 젊은 층은 진보를 바라고 있고, 변화를 두려워 하지도 않는다. 지금은 비록 그 힘이 정권을 바꾸고, 세상을 몽땅 뒤엎을 만큼은 아닐지라도, 이토록 준비하고 있는 다음 세대가 있다고. 그러니 긴장하라고. 그것을 알려주는게 투표라고. 그 역활을 해나가야 하는게 바로 지금 젊은이 들이라고. 아버지의 이론은 짧고 간결했습니다."그러니까 닥치고 투표해" 

네, 그래서 닥치고 투표하러 갑니다. 날씨는 좋고, 친구들은 에버랜드로 나른다지만, 저는 닥치고 투표하러 갑니다. 지갑에 있는 에버랜드 상품권이 비록 6월10일에 마감되더라도 저는 닥치고 투표하러 갑니다.  

항상 당선되지 않을 후보에게 표를 던지지만, 그래도 그것이 투표라고 알려주신 아버지. 그분에게 사회를 배웠다는것이, 그분과 정치를 이야기 한다는 것이. 그분과 함께 누군가를 지지 할 수 있다는것이 새삼 감사해 집니다. 그래서 저는 내일 투표하러 갑니다. 

 

추신: 이래저래 선거관련 뉴스들을 보고, 서재글들을 보고, 누구에게 표를 던질것인지 마음의 결정을 하고 나니, 문득 생각이 났습니다 저의 첫 투표가.. 갑자기 아버지도 보고싶고. 제가 처음으로 투표했던 그분도 보고싶고...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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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ule 2010-06-02 02:4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버지를 보니 따라쟁이 님이 보여요.

따라쟁이 2010-06-01 17:46   좋아요 0 | URL
아버지와 꼭 닮긴 했습니다. 조그마한키.. 동그란 얼굴.. 그리고 한 주먹 하는 거.. 뭐 이런것들?

blanca 2010-06-01 19:0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괜히 뭉클하네요. 결과가 참 좋아요. 이번에도 그런 결과가 나오기를 바라 봅니다. 참, 그리고 그렇게 아버지 세대와 소통하실 수 있는 님도 부럽네요.

따라쟁이 2010-06-01 21:44   좋아요 0 | URL
저도 그런 결과가 한번더 나오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투표하려고요

제가 아버지 세대와 소통하는것이 아니고, 아버지께서 저와 소통하시려고 노력하시는거죠.^-^

마늘빵 2010-06-01 20: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닥치고 투표하겠습니다. ^^

따라쟁이 2010-06-01 21:49   좋아요 0 | URL
아하하하..아버지께서 좋아 하시겠네요. ^^

비로그인 2010-06-01 22:0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거 따라쟁이님을 따라해야 되겠구먼~~ㅎㅎ

따라쟁이 2010-06-01 23:18   좋아요 0 | URL
뭐 결국 저는 아버지를 따라 한 거지요.. 따라쟁이가 어디 가나요?^^

카스피 2010-06-01 23:0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ㅎㅎ 훌륭한 아버님을 두셨네요^^

따라쟁이 2010-06-01 23:18   좋아요 0 | URL
네, 항상 분에 넘치게 감사한 분이라고 생각해요 ^^

... 2010-06-01 23:52   좋아요 0 | 댓글달기 | 수정 | 삭제 | URL
정말 멋진 아버님이시네요, 저희집은 나오느니 한숨 뿐입니다......

따라쟁이 2010-06-02 08:57   좋아요 0 | URL
꼭 같은 후보를 지지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함께 투표를 한다는게 어디에요^-^

... 2010-06-02 15:53   좋아요 0 | 수정 | 삭제 | URL
선거 철만 되면 끝없이 반복되는 시끄럽고 속이 부글부글 끓게 만드는 저주와 인신공격, 그리고 차라리 사표가 나오길 바라게 만드는 아버지의 선택을 생각하면... 전 아버지가 투표하시지 않길 간절히 바라고 또 바랍니다;;;

꿈꾸는섬 2010-06-02 1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따라쟁이님 아버님 참 멋지세요.^^
여하튼 가진 것 많은 사람들만이 아니라 국민 모두 소중한 한표 행사해야한다는 말씀 전적으로 공감요.^^

따라쟁이 2010-06-02 21:06   좋아요 0 | URL
그런 아버지께 투표를 배워서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저희 아버지는 촘 멋지시죠. 제 인생에 최고의 남자에요+_+

sweetrain 2010-06-02 19:0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새벽 여섯시에 투표하러 갔더니 투표소에 젊은 사람은 저밖에 없더라고요.
시간이 시간이니 만큼 그랬겠지만 그래도 참 아쉬웠어요.;;

따라쟁이 2010-06-02 21:08   좋아요 0 | URL
저는 점심 먹고 한시쯤 들렀는데 그때도 한가로웠어요. 그래도 최종 투표율은 제법 높아서 다행이에요 ^^

마녀고양이 2010-06-03 11:36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멋진 아버님이십니다. 그래서 충청도 결과가 그리 나왔군요~ 아 기뻐라.

따라쟁이 2010-06-03 11:46   좋아요 0 | URL
으흣. 마녀고양이님. 이건 제 첫투표때 이야기 입니다.


이번에 저는 경기도에서 아버지는 충청도에서 투표권을 행사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저는.. ㅠㅠ

마녀고양이 2010-06-03 11:57   좋아요 0 | URL
저랑 같이 졌나요? ㅋㅋ.......

김문수 시장이 워낙 인지도가 있었고, 유시민 후보는 워낙 말을 솔직하게 하는 분이라.. 어려울줄 알았어요. 이긍~

따라쟁이 2010-06-03 14:52   좋아요 0 | URL
네. 마녀고양이님과 함께 의미있는 석패를 했습니다.

꿈꾸는섬 2010-06-03 21:00   좋아요 0 | URL
저도 함께 아쉬워하고 있어요.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