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 토요일 폭우가 내려쳤다. 토요일 밤 열한시경 나는 폭우가 내리치는 서해안 대교를 건너고 있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서해안 대교를 건너고 있는 차 안에서 자고 있었다. 폭우가 내리치는지 어쩌는지 운전자가 졸린건지 어쩐건지도 모른채로  쿨쿨 잠을 자고 있었다. 시간이 좀 더 흘러 열시두 사십분 가량 나는 우리집 마당에 안전하게 도착했다. 그리고 안전하게 도착한 내 손에는 항아리 모양의 바나나맛 우유가 들려 있었다.

그러니까 지난 토요일 폭우를 뚫고 운전하던 그는 잠도 깨고 쉬어도 갈겸 휴게소에 들렀다고 했다. 거기에서 커피를 한잔마시고 혹시라도 내가 중간에 잠에서 깨면 마시라고 바나나맛 우유도 샀다고 했다. 커피를 마시면 다시 잠들지 못할 것 같고 시원한 음료는 잠을 깰것 같아서 바나나맛 우유를 골랐다고 했다.  혹시 깨면 마시라고 하려고 했는데 깨지 않고 잘 와서 다행이라는 말과 잠 깨기 전에 어서 들어가서 자라는 말도 덧붙였다. 나를 우리집 마당에 데려다 주고 잠도 채 깨지 못한 내가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현관에 들어설때 까지 그는 헤드라이트를 비춰주었다. 현관에 들어서고 방으로 비쳑비척 걸어갈쯤에야 현관을 향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던 헤드라이트 빛은 오른쪽으로 큰 원을 그리며 사라져 갔다.

나는 반쯤 감은 눈을 하고 씩 웃었다. 아, 사랑스러운 녀석. 나를 데려다 주기 위해 제법 긴 시간 돌아서 왔었야 했음에도 그 시간 자고 있는 나를 위한 배려라니. 현관에 들어설때까지 헤드라이트를 비춰주는 센스라니.

나는 지금 그 바나나맛우유에 빨대를 꽃아  쪽쪽 소리를 내며 마시고 있다.

 

2.

요즘 <너의 목소리가 들려>라는 드라마를 재미나게 보고 있다. 그 드라마의 지난회에 이종석의 꿈에 이보영이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장면이 있었다. 그 장면에서 이보영은 드레스가 불편하니 어서 잠에서 깨라고 하고 이종석은 내 꿈이니 내 맘대로 할꺼라고 말한다. 그런데 그 대사가 너무 귀여운거다. 그리고는 이보영의 이마와 볼에 쪽소리나게 뽀뽀를 하는 이종석의 모습은 정말 사랑스러워 보였다. <남자>의 범주에 연하남은 포함시키지 않는것이 개인적 취향이지만 이런 연하남이라면 과감히<남자>의 범주에 포함시켜도 좋을만큼 사랑스러워 보였다.

 

3.

직장을 옮기고 좋은점 중 하나는 출퇴근 시간이 전에 비해 길다는 것이다. 하루에 2번 40분가량의 드라이브를 보장받은 셈이다. 전에 비해 길어진 출퇴근 시간에 나는 주로 노래를 듣거나, 졸거나 그것도 아니면  반은 노래를 듣고, 반은 졸면서 드라이브를 즐긴다. 어제도 나는 반쯤 졸고 반쯤 노래를 들으며 꿀렁거리는 버스 안에 있었다. 그런 내 귀로  흘러 들어오는 노래 가사는 이랬다.

<잘지내니 이쁜사람. 여전히 내겐 그런 사람.

  보고싶다. 이쁜사람. 싱그럽던 눈웃음도>

노래 가사를 들으면서 나는 누군가를 떠올렸다. 여전히 내겐 이쁜 사람인 누군가를. 싱그럽고, 사랑스러운 눈웃음을 가진 누군가를.

 

4.

사랑스러운 일요일 밤이다. 그리고 나는 일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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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노아 2013-07-29 07: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종석이요~ 이종혁은 '아빠 어디 가'에 출연 중이에요. 읽으면서 뭔가 어색했는데 뭐가 문제지? 하다가 검색해 봤어요.ㅎㅎㅎ

따라쟁이 2013-07-29 20:37   좋아요 0 | URL
마노아님의 수정이 있었으니 본문은 그냥 두는걸로 ㅎㅎㅎ

감은빛 2013-07-31 21:3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폭우를 뚫고 서해대교를 운전하기란 쉽지 않았을텐데요.
게다가 밤이라면 더더욱.

출퇴근 시간이 길어진 것이 좋은 일이군요.
한가한 따라쟁이님이 부럽사옵니다!

따라쟁이 2013-08-18 14:47   좋아요 0 | URL
네, 저는 요즘도 한가해용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