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시메노 나기 지음, 박정임 옮김 / 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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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챙겨보았던 드라마가 있습니다.

오직 죽은 자들을 위해 존재하는 귀객 전문 사진관의 까칠한 사진사가 변호사와 함께 그들의 사연을 들어주었던 <야한 사진관>.

떠난 이들의 소원을 들어주었던 사진사.

마지막에 찍는 사진은 눈물도, 미소도 짓게 만들었었는데...

여기 일본 전역을 울린 화제의 힐링 판타지 소설이 국내에 발간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존재를 떠나보낸 이들에게 '만남'이라는 꿈결 같은 기적을 선물하는 이야기.

가슴 뭉클하지만 따뜻한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보고자 합니다.

"떠난 이들은 사실 그리 멀리 있지 않다.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을 뿐."

무지개다리 pont 너머,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카페 퐁.

고양이 전령사들에게 당신의 사연을 접수해 주세요.

영원히 볼 수 없는 그리운 존재를 다시 만날 수 있게 도와드릴게요.

퐁 카페의 마음 배달 고양이



19년의 묘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난 고양이 '후타'.

따뜻한 인간들의 품에서 천수를 누리고 왔지만, 저승에서의 삶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습니다.

최소한의 생활비와 간식비는 직접 벌어야 한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일자리를 찾아 어슬렁거리던 중

'임무를 완수하면 보고 싶은 사람을 만나게 해준다'

는 공고에 끌려 카페 퐁의 문을 두드리게 됩니다.

그런데 카페 퐁의 점장 니지코 씨는

"어떻게 네 말을 알아들었냐고? 나는 이곳에서 저쪽 세계와 이쪽 세계를 중개해 주고 있거든. 함께 일할 고양이들과 말이 안 통하면 일을 할 수 없잖아." - page 27

인간과는 물론 고양이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다리'라는 뜻의 ''과 무지개('니지') 점장의 조합에서 예측할 수 있듯이 이곳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신비로운 장소였습니다.

손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름을 엽서에 적어서 카페 우편함에 넣으면

점주인 니지코 씨가 그 엽서 중에서 하나를 선택하고

고양이 배달부라고 불리는 이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손님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찾아내서 만나게 해주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임무 하나를 무사히 끝내면 발바닥 도장 하나를 받게 되고 이 도장이 다섯 개 받으면 특별한 보수를 받게 됩니다.

하지만 기억력도 짧은 데다 배만 따뜻하면 자꾸 잠이 쏟아지는 후타.

난관을 무사히 헤쳐 나갈 수 있을까?

책 속엔 다섯 편의 에피소드가 담겨 있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께 꿈을 이룬 자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딸

태어나지 못한 아이를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부부

현실에서 도피해 첫사랑과의 재회를 꿈꾸는 여자

상처를 줬던 옛 선생님께 성공한 모습을 증명하고 싶은 청년

의절한 어머니를 애틋하게 그리는 중년의 딸

저마다 풀 수 없는 단단한 매듭 같던 상처는 고양이 배달부의 도움을 받아 점차 그 실마리를 찾게 되는데...

좌절이 없었던 인간과 실패나 후회를 경험하고 기억하는 인간. 티끌 하나 없는 아름다움을 이길 수는 없다고 하지만, 상처를 극복한 인간에게는 그 이상의 강인함이 있다. - page 192

다섯 임무를 완수하고 난 뒤 후타는 특별한 보수를 받게 되는데...

후회라는 마음의 통증은 타인에 대한 상냥함을 낳는다.

니지코 씨의 흔들림 없는 강인함과 애정이 내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었다. - page 213

정말이지 가슴이 먹먹하고 따뜻했습니다.

곁을 떠난 이들.

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

공감하기에 더없이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조금씩 '죽음'의 의미가 다가오곤 하는데...

언젠간 저 역시도 겪을 일이기에 마냥 슬퍼하기보다는

지금 곁에 있는 이들과 조금이라도 좋은 추억을 만들어갈 것을

그래서 남겨진 이들이 그 추억으로 삶의 원동력이 되기를

그렇게 되도록 뜨겁게 사랑하고 열심히 살아가고자 합니다.

이제는 어디서든 고양이를 만나게 되면...

반갑게 맞이할 것 같습니다.

"지금, 다시 만나고 싶은 이는 누구입니까?"

그리운 존재와 추억이 몽실 떠올랐던 소설.

이 책을 읽으며 봄 향기와 함께 소중한 기억들을 꺼내 보시는 건 어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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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뭇잎 사이의 별빛
글렌디 밴더라 지음, 노진선 옮김 / 밝은세상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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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앤 K. 롤링을 누르고 아마존 베스트셀러 1위 기록!

생물학도 출신 작가가 그려내는 인간과 자연의 교감!

이미 저는 그녀의 전작인 《숲과 별이 만날 때》 소설을 읽었었습니다.

판타지와 스릴러로 시작하였지만 너무나도 아름다웠던 이야기.

소설을 읽고 나서 서로의 다친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큰 위로를 받았었는데...

또다시 사랑의 치유력에 대한 경이롭고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난 '괴물 신인작가' 글렌디 밴더라.

벌써부터 가슴 저편에서 작은 울림이 시작되었습니다.

삶의 고통과 슬픔을 마음이 넉넉한 사람들과

대자연을 만나며 극복해내는 감동의 여정!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언제나 함께할 수 있어요. 서로의 마음속에서.

나뭇잎 사이의 별빛



대학에서 생물학을 전공한 '엘리스'.

대자연 속에서 캠핑을 즐기고, 동식물에 대한 연구를 하며 살아가고 싶었지만 아이를 임신하는 바람에 일찍 결혼해 집에서 살림을 하며 아이들을 양육하는 전업주부의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가끔 남편 조나가 근무하는 로펌을 찾아가 점심 식사를 하거나 잠시 얼굴을 보기도 했던 엘리스.

그날도 쌍둥이 두 아들을 차에 태우고 로펌을 찾아갔었는데...

봐서는 안 될 장면을 목격하게 됩니다.

남편 조나가 주차장 안에서 테니스 선수 출신 여성과 키스하는걸...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볼까 가까스로 주의를 돌린 다음 그 자리를 빠져나온 엘리스.

자신이 심란한 일이 있을 때마다 즐겨 찾아가던 숲에 가 아이들에게 올챙이를 잡자고 했고 그녀는 남편의 외도 문제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 볼 작정이었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차에서 올챙이가 든 병을 엎질렀고, 두 아이가 소리를 질러댔고, 올챙이를 찾으려고 차 바닥을 뒤지느라 생후 2개월 된 비올라가 앉은 카시트를 떼어내 주차장 바닥에 내려놓게 됩니다.

겨우 올챙이를 찾아내 아이들을 달래주고 나서 차를 출발하고 2킬로미터쯤 갔을 때

"엄마?" 재스퍼가 의아한 표정으로 말했다.

"왜?"

"비올라를 두고 왔어요." - page 21 ~ 22

황급히 차를 돌려 주차장으로 돌아왔지만

아기가 사라졌다. 누군가 비올라를 데려갔다. - page 23

대대적인 수색 작업을 펼쳤지만 끝내 비올라의 행방을 찾지 못해 깊은 절망감과 자책감을 느끼며 술과 약에 의존해 살아가던 엘리스.

끝내 집을 떠나게 됩니다.

그러고는 대자연 속 캠핑 생활을 하는데...

숲은 평화와 위안을 주기도 하지만 혼자 캠핑을 하다 하마터면 목숨을 잃을 뻔했던 엘리스는 플로리다에 정착하며 농장을 가꾸며 생활하는데...

한편 11만 평이나 되는 숲에서 엄마와 단둘이 살아가는 여자아이 '레이븐'이 있었습니다.

땅의 정령이 보내준 딸이라는 엄마의 말을 철석같이 믿고 숲속 생활을 즐기던 레이븐.

자연과 교감하는 생활, 아기 새를 데리고 숲에서 먹이를 구해주며 살아갔던 중 숲속 개울물로 물놀이를 하러 온 이웃집 아이들 재키, 헉, 리스를 만나게 됩니다.

재키, 헉, 리스와 그 아이들의 엄마를 만나면서

레이븐은 지금껏 사람들보다는 친족인 땅과 새들을 더 가까이 해왔다. 사람들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새가 된 기분이었다. 사람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레이븐은 어리둥절하게 했고, 레이븐은 그들의 일거수일투족을 주시하다가 여차하면 날아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심지어 마마가 화를 낼 때도 그런 기분이 들었다. - page 183

새로운 세상을 알게 된 레이븐은 숲속에서 보내는 일상과 엄마에 대해 조금씩 의문을 갖게 됩니다.

그러다 점점 몸이 쇠약해지는 마마는 레이븐의 손을 잡고 이 이야기를 건네는데...

마마는 레이븐에게 눈을 돌렸지만 그 눈은 그녀를 보지 않고 그대로 통과했다. "그들이 나를 벌줄지도 몰라. 잘 모르겠어. 내가 한 일이 기억나지 않아. 내가 어떻게 널 갖게 되었는지. 그들이 내가 한 짓에 화를 낼지도 몰라. 그래서 내가 아픈 것인지도."

"무슨 말이에요? 땅의 정령들이 엄마에게 나를 보내주었잖아요."

"그래, 정령들이 내게 널 보내주었지. 완벽한 아기. 기적." 마마는 레이븐의 손을 아플 정도로 꽉 잡았다. "절대로 그자가 널 자기 핏줄이라고 주장하게 해서는 안 돼. 그자는 악당이야. 그자가 땅의 정령들을 죽였어. 기업을 운영하면서 화학 성분으로 땅을 오염시킨 우리 아버지랑 똑같아. 넌 절대 그의 핏줄이 될 운명이 아니었어."

"누구요? 그자가 누군데요?"

"그 의원, 바우해머!" - page 369 ~ 370

엘리스는 딸을 잃은 아픔을 치유하고 건강하고 행복한 삶을 다시 찾을 수 있을까?

앞으로의 레이븐에게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결국 엘리스와 레이븐이 찾아낸 인생의 행복은 무엇일까?

"어떤 진실은 때로 모르고 지나가는 게 나을 것 같아."

"진심으로 서로를 아끼는 사람들이라면 그 아픔까지도 받아 안을 수 있어야지." - page 578

책의 두께감만큼 긴 여정이었습니다.

솔직히 이 상황을 머리로 이해하기는 힘들지만 굳이 파고들지 않고 가슴으로 읽어 내려갔습니다.

사랑과 상실, 그리고 비극.

결국 화해와 용서만이 치유할 수 있다는 것을 이들을 통해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읽을 동안엔 몰랐는데 책을 덮고 나니 마치 나 혼자 숲 한가운데 황홀한 밤의 경치에서 별빛을 마주한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은 다른 방식으로 함께 있을 수 있어. 각자의 가슴속에서." - page 56

그렇게들 살아감에...

또다시 살아갈 용기를 얻으며 다음 작품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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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 씨
코교쿠 이즈키 지음, 김진환 옮김 / 알토북스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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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디지털화되고 다양한 콘텐츠가 존재하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책 읽는 사람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책 시장이 크게 위축되며 이제는 종이책의 존립을 걱정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화두가 던져집니다.

종이책은 사라질 것인가...

작가 '코교쿠 이즈키'는 2011년 일본 대지진을 겪으면서 종이책을 떠올렸다고 합니다.

지진이라는 압도적인 자연재해에 많은 것들이 부서지고 망가지고 사라지는 모습에서,

혁혁한 기술의 발달로 이제는 구시대의 유물처럼 되고 있는,

그리하여 존립을 위협받고 있는 종이책을.

그래서 이 소설도 제3차 세계대전이 휩쓸고 간 근미래, 책이 문화재이자 사치재가 된 시대를 배경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도서관에서 일하는 사서를 주인공으로 글을 쓰기 시작하였다고 하였습니다.

과연 저자가 그린 도서관을 무대로 한 종이책은 어떨지...

"책이 당신의 인생에 구원이 되어줄 거예요.

책은 죽지 않아요.

그야, 다들 책을 사랑하잖아요?"

근미래 도서관을 무대로 펼쳐지는

신비롭고 따뜻한 책과 사람 이야기

사에즈리 도서관의 와루츠 씨



신록이 우거진 평온한 사에즈리 쵸라고 불리는 도시.

이곳에 너무도 잘 어울리는 아름다운 '사에즈리 도서관'도 있습니다.

이 도서관 대표이자 특별 보호 사서관인 '사에즈리 와루츠'씨.

그녀의 아침은 일찍 시작됩니다.

하지만 느긋하게 있을 시간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도서관에는 매일 누군가가 찾아오니까.

혼이 담긴, 살아 있는 책을 찾아서.

책과는 전혀 인연 없는 삶을 살고 있었던 회사원 카미오 씨.

딸과 떨어져 사는 초등학교 교사 코토 씨.

책을 사랑했던 할아버지의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청년 모리야 씨.

이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도서관을 찾아와 와루츠 씨에게 어떤 이야기를 털어놓을까?

그리고 이들이 와루츠 씨와 인연을 맺고 책을 집어 들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사에즈리 도서관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도서관에는 책이 있다. 그 책이 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 있는 건 그것뿐이다. 고작 그것뿐이지만... 아무리 절망하고 공포에 휩싸이더라도 한 장의 종이, 하나의 글자, 고작 그것뿐이더라도 그것이야말로 자신의 전부이며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전부일 거라고 와루츠는 생각했다. - page 252

개인적으로 인상적인 문구가 있었습니다.

수많은 활자로 채워진 하얀 종이를 눈으로 좇으며. 커다란 무릎 위에서, 그 따뜻한 품속에서, 나도 책이 되고 싶다고. 나도 책이 되어 당신에게 사랑받고 싶다고. - page 233

책이 되고 싶다...

참 좋을 것 같다 생각했습니다.

인류의 역사에 책이 등장한 지 수천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종이라는 반려를 만나기까지 많은 우여곡절을 거쳤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책'이라는 하나의 완성형으로 인간의 곁에 존재해왔습니다.

심지어 전자원년으로 불리는 반환점을 몇 번이나 거치면서도 책이 사라지는 일은 없었습니다.

그렇기에 책이 사라지는 극단적인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단지 그 가치와 의미가 바뀔 뿐.

저도 아직은 종이책이 좋습니다.

손에 잡히는 이 느낌,

책을 펼쳤을 때 마주하게 되는 종이의 냄새,

무엇보다 읽는 동안은 내가 책을 읽고 있음을 보고 알기에 그 시간을, 그 공간을 인정해 주는 것을 좋아하기에,

전자책이 있더라도 꼭 종이책을 구입해서 읽곤 합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종이책이 좋은 이유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전자책은 무엇보다 공간을 차지하지 않고, 복사도 간편하고, 다른 자원을 사용하지도 않고, 종이책이 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가능하게 하죠."

그렇다면 어째서 지금 이 시대에 도서관을 운영하는가? 코토가 물으려 할 때였다.

"하지만..."

와루츠 씨가 중얼거렸다.

"하지만 저는 이곳에 보관된 게 데이터가 아닌 종이책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그러고는 코토 옆에 놓여 있던 책을 한 권 슬며시 가져와 가슴에 안아 들었다.

"영혼만 존재한다면 이렇게 끌어안을 수는 없으니까요." - page 122

그래서 저는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종이책을 읽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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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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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0만 독자가 애독하며 수만 개의 입소문 리뷰를 탄생시킨 국민 힐링 소설 『불편한 편의점』의 작가 '김호연'.

저도 그의 작품을 애장하며 재독, 삼독까지 했었는데...

2024년 봄.

또 한 번 가슴 따뜻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들고 우리 앞에 나타났습니다.

믿고 읽는 그의 작품.

이번엔 또 어떤 재미와 감동을 선사할지 기대되었습니다.

"그는 이 꿈의 흔적들을 두고 어디로 간 걸까?"

꿈을 찾고, 꿈을 좇고, 그 꿈을 닮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나의 돈키호테



2003년 대전 구도심에 자리한 '돈키호테 비디오'.

스스로를 한국의 돈키호테라 부르는 가제 주인 '돈 아저씨'는 아이들에게 너그러웠습니다.

함께 영화도 보고 책도 읽고 토론도 하고 떡볶이도 먹고 가끔은 과외도 해주는 아저씨가 있는 이곳은 몇몇 동네 중학생들의 아지트 '라만차 클럽'이었습니다.

"아저씨, 대전은 왜 라만차예요? 대전은 디귿으로 시작하니까 똑같이 디귿으로 시작하는 스페인 도시랑 비교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아, 대전은 우리말로 한밭이잖니. 큰 들판. 라만차는 평원으로 유명하거든. 평원도 산이 안 보일 정도로 평평한 들판이니 큰 들판이지. 그러니 대전은 라만차란다."

...

"자, 보렴. 솔아. '라만차' 하면 누가 딱 떠오르니? 돈키호테지? 돈키호테의 고향이 라만차거든. 그럼 여기 보자. 대전은 뭐다? 라만차를 거쳐 돈키호테인 거네. 그러니까 대전은 돈키호테. 똑같은 디귿이지. 어떠냐?" - page 8

돈 아저씨의 한국 도시와 스페인 도시 비교는 시간이 흐른 뒤에야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그 모든 건 대전에 돈키호테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벌어진 일임을...

나의 돈키호테여...

그로부터 15년이 지난 2018년 늦가을.

외주 프로덕션 6년 차 피디 솔은 자신이 기획한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서 하루아침에 잘리게 됩니다.

고향 대전으로 내려와

'남은 인생, 무엇을 할 것인가?'

'그나마 방송 프로듀서 경력과 경험이 있는데 그렇다면 결국 방송 일을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어떻게?'

'혼자...'

그러다 누군가의 말이 떠오르게 됩니다.

'유튜브는 세상에서 가장 큰 환전소'라고.

내가 가진 어떤 것이든 그곳에 내어놓고 가치를 인정받으면 돈을 받아갈 수 있는 곳이라고.

그래서 결심하게 됩니다.

나는 인생 2막을 유튜브에서 열기로!

솔은 '노잼 도시' 대전을 소재로 아이템을 구상하던 중 이제는 카페로 바뀐 옛날 비디오 가게 자리에서 우연히 돈 아저씨의 아들인 '한빈'을 만나게 됩니다.

예나 지금이나 깐족거리는 한빈.

"누나가 여긴 어쩐 일로? 서울 생활 정리했어?"

"너야말로 대전에 웬일인데?"

그러자 한빈은 히죽 웃은 뒤 손가락으로 마룻바닥을 가리켰다.

"지하실? 그 공간 아직 그대로야? 혹시...... 돈 아저씨도?"

"그대로지. 아빠 없는 거 빼고." - page 33

순간 온갖 상념이 머릿속에서 들끓기 시작하는 솔.

한빈과 함께 지하실에 들어가니 여전히 남아 있는 골동품과 같은 돈키호테 비디오 시절의 소품들에 옛 추억이 떠오르게 됩니다.

"안 그래도 누나한테 연락하려고 했어. 누나는 산초잖아. 산초라면 돈키호테를 따라다녀야 하는 거 아냐? 혹시 누나한테 아빠 연락 안 왔어??"

"전혀. 그리고 그건 아들인 네가 알아야 하는 거잖아."

...

"그러면 누나가 우리 아빠 찾는 거 도와줄 건가? 그럼 내 한 많은 가족사를 털어놓을 수 있지. 똑똑한 누나라면 거기서 아바 행방을 알아낼 수도 있을 것 같은데." - page 37

솔은 그의 제안을 받아들이며 지하 공간을 유튜브 스튜디오 삼아 그 시절 봤던 책과 영화를 소개하며, 한빈과 함께 돈 아저씨를 찾는 방송을 하기로 결심합니다.

채널명은 '돈키호테 비디오'.

자신을 '찐산초'라 명하며 돈 아저씨를 찾는 행진이 시작하게 되는데...

과연 그들은 돈 아저씨를 만날 수 있을까?

돈키호테 비디오의 친구들과 재회할 수 있을까?

돈 아저씨와 나, 그리고 라만차 클럽과 채널 돈키호테 비디오의 아미고스. 우린 모두 친구다. 우정이란 말은 썸과는 달라서 뭉뚱그려 표현해도 곧잘 통했다. 친구가 아니었던 사람에게도 우정이란 말을 붙이는 순간 친구가 되곤 했다. 함께 꿈을 나누고 모험을 떠난 순간에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먼 옛날 이베리아반도의 늙은 기사와 동네 농부가 나눈 우정을 기록한 책처럼, 우리는 친구가 되어 행진해 왔다. - page 415

역시나 김호연 작가님!!!

읽는 내내 저도 돈키호테를, 꿈을 찾는 모험을 떠날 수 있었습니다.

돈키호테의 이룰 수 없는 꿈은 숭고하다. 그것이 돈키호테의 존재 이유니까. 아저씨의 필사 노트로 완독한 『돈키호테』의 주제 역시 꿈을 향한 모험을 펼치라는 것이었다. 쉰 살이 넘은 시골 기사가 세상의 정의를 세우겠다고 길을 떠나는 설정 자체가 '꿈꾸고 있네'라는 핀잔을 들을 일이다. 하지만 꿈꾸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게 인간이다. 지금 나 스스로가 돈벌이도 안 되는, 이제 얼굴도 희미한 아저씨를 찾아 나서는 모험을 하고 있기에 느끼는 바가 크다. 내 인생 30년 동안 그 어느 때보다 살아 있다고, 가슴이 뛰고 활기가 넘친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게 꿈이다. 밤잠을 방해하는 꿈이 아니라 낮에 꾸는 꿈 말이다. - page 134 ~ 135

정의와 자유를 위해 거악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선한 힘이라는 용기, 열정을 가졌던 돈키호테, 아니 돈 아저씨.

정말 이 노래와 딱이었습니다.

이 세상에 기쁜 꿈 있으니 가득한 사랑의 눈을 내리고

우리 사랑에 노래 있다면 아름다운 생 찾으리다.

이 세상에 슬픈 꿈 있으니 외로운 마음의 비를 적시고

우리 그리움에 날개 있다면 상념의 방랑자 되리라.

이 내 마음 다하도록 사랑한다면 슬픔과 이별뿐이네

이 내 온정 다하도록 사랑한다면 진실과 믿음뿐이네

내가 말 없는 방랑자라면 이 세상에 돌이 되겠소

내가 님 찾는 떠돌이라면 이 세상 끝까지 가겠소*

*김학래 작사·작곡, 김학래·임철우 노래, <내가>, 《70년대 대학가요제 총결산》, 1980, Side B 1번 트랙.

그를 보면서 우리도 방랑자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란 생각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방랑자가 될 수 있었을까......

『돈키호테』에는 돈키호테와 산초만 나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로시난테와 둘시네아, 목동들과 여관 주인, 이발사와 신부, 하녀와 공작부인 등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음식들이 쌓이고 쌓여 서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의 우리...

우리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이었습니다.

나의 꿈을 찾아, 꿈을 좇아 힘차게 달려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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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태주의 행복수업
김지수 지음, 나태주 인터뷰이 / 열림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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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저기서 꽃들이 피어나고 살랑살랑 봄바람이 부는 요즘.

마음도 몽글몽글 해집니다.

특히나 가정의 달인 5월엔 '사랑' '행복'이란 단어가 참 와닿는데...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예쁘게 보고, 예쁘게 말하는 시인.

고개를 떨군 풀포기 하나 업신여기지 않는 시인.

'풀꽃시인' 나태주와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의 작가인 '인터스텔라' 김지수의 봄 한철의 여행기이자 행복한 수업을 만날 수 있다기에 저도 선뜻 다가갔습니다.

'행복의 정수'가 무엇일지 저도 한수 가르침을 배우고자 합니다.

'너무 잘하려고 애쓰다 지친' 서울 사람 지수가

공주의 키 작은 정원사 태주를 만나 일어서는,

봄 한철 보살핌의 기록

나태주의 행복수업



나태주 시인이라 하면 바로 떠오르는 시.

저도 시에는 관심이 없었지만 그렇게나 많이 읊으며 위로받았던 시.

바로 「풀꽃」.



어느 비 오는 봄.

나무 냄새 물씬 풍기는 공주의 풀꽃문학관 앞에서 물웅덩이를 피해 폴짝폴짝 걸어오는 나태주 선생을 처음 만났다고 합니다.

그때 예감했던 건

아, 내 인생이 좀 더 맑아질 수 있겠구나

그리고 또 한번의 봄을 맞으며 비로소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법, 부자처럼 돈 쓰는 법, 잘 포기하는 법, 결핍보다 사랑과 선망에 집중하는 법, 헌신이 행복이 되는 비밀에 대해

배우게 되었다고 합니다.

무엇보다

"산다는 건... 말이지요. 매우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거예요."

'안 예뻐도 예쁜 너'라고.

비참한 가운데 명랑한 게 인생이라고.

그냥 살아도 괜찮다고.

그렇게 나태주의 이야기로부터 가만가만 피어나게 되었다는 것을...

저 역시도 책을 읽으며 '나'라는 풀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미소를 지을 수 있었습니다.

웬만한 것에서는 해방이 되었지만 해방이 안 된 게 있다는 그.

그게 바로...

"사랑!"

"사랑......?"

"연모의 마음, 호기심의 마음, 여성을 아끼는 마음, 처음 본 마음이지요." - page 24

그에게 사랑은 '처음 본 너'와 같은 말이었다고 합니다.

"처음 본 듯 봐야 예쁘게 보입니다. 처음 본 것처럼 봐야, 사랑의 시를 쓸 수 있어요. 이 봄도 그렇지 않아요? 저기 산봉우리를 보세요! 끄트머리 나무 얼굴이 살짝 부었죠? 얼마나 귀여워요. 내 일생에 처음 보는 봄이에요."

"봄은...... 80년째 보셨잖아요? 그래도 여전히 설렌...... 다고요?"

"그럼요. 작년 봄은 이미 지나간 봄이고 내년 봄은 아직 안 온 봄이니, 나하고 관계없어요. 지금 오는 봄이 내 봄이에요. 그대와 같이 맞이한 첫봄이죠. 산등성이가 저렇게 부풀어 오르는 모양을, 그 봄을 우리가 처음 보고 있잖아요. 여지껏 만나본 봄 중에, 가장 예쁜 봄이 오고 있어요." - page 24

너무 멋지지 않나요!

저는 이 문장을 몇 번이나 되뇌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이 시선, 이 마음이 '예쁜 씨앗'으로 간질여오는데...

정말이지...

어느 문장도 허투루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는 틈날 때마다 강조한 것이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예쁘지 않아도 예쁜 사람이 돼야 해요."

어떻게 해야 할까...

"아무렴. 대신 약속해줘요. 계속 예쁘게 보려고 노력하겠다고. 노력하지 않으면 예쁜 게 생기지 않아요. 마음속에 예쁜 걸 갖고 있어야 세상이 예쁘게 보이는 겁니다." - page 122

예쁨의 본질은 '너의 예쁨'에 있는 게 아닌, '나의 의지'에 있음에.

'예쁘다'고 하면 '예뻐지는 거니까'.

저도 이제부터 예쁘게 보려고 노력해야겠습니다.

외로움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그들.

"정말 외롭지 않으셨어요?"

"외로울 수가 없죠. 나는 지식을 전하는 사람이 아니잖아요. 감정을 깨우는 사람이었지. 특히 어린 독자들에게 선택받는다는 건 그 수가 작든 크든 엄청난 겁니다. 나는 그 수가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없었어요.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 내 앞에서 우는 아이들도 많았어요.

'선생님, 한번 안아봐도 될까요?'

와서 안아주는 아이들도 많았죠. 큰 사랑을 받았어요.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것, 시인으로서 누릴 수 있는 그보다 더 큰 행복이 무엇이겠어요."

...

"그럼 불안한 적도 없으세요?"

"불안이라...... 나는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이 아니에요. 나는 느낌의 사람입니다. 틀려도 된다는 자신감이 있었죠."

강연 준비를 꼼꼼히 해도 어차피 무대에 서면 막막한 건 매한가지이기에

막막한 대로 일단 소리를 던지면 반응이 오고, 그렇게 조금씩 액션과 리액션이 어우러지며 감정의 파도가 일어나며...



그가 전한 '행복'은 무엇일까...



"맞아요. 배고프기에 밥을 찾고 목마르기에 물을 찾지요. 인생 그 자체는 고통입니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행복을 찾는 거예요. 예수 시대에는 긍휼矜恤이 없었고 석가 시대에는 자비慈悲가 없었고, 공자 시대에는 인仁이 없었어요. 없기에 찾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사람들이 잊을까, 계속 얘기해요. 억지로라도 행복해지라고. 에리히 프롬이 '사랑이 학습'이라고 한 것처럼 행복도 학습이에요. 노력해서 억지로, 한 번에 안 돼도 또 한 번 억지로, 행복해질 필요가 있어요. 그렇게 작은 기쁨들로 큰 고통을 메우다 보면 조금씩 살 만해지고 평안해지는 것, 그게 우리가 부르는 행복입니다." - page 300 ~ 301

사랑도 행복도 내가 찾아가야 오는 것을.

아끼는 마음이 쌓여서 사랑이 되고 웬만해선 무너지지 않는 행복이 되는 것을.

그런 사소한 것, 낡은 것, 익숙한 것들을 수집하는 고물 장사라는 그의 말이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우리 시대 가장 촉촉한 어른이 건넨 안녕.

'너무 잘하려고 애쓰지 마라.'

'꽃을 보듯 너를 본다.'

덕분에 이런 내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이 참 잘하고 있다고, 예쁘다고 스스로에게 건네줄 수 있었습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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