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혼술이다 - 혼자여도 괜찮은 세계
이나가키 에미코 지음, 김미형 옮김 / 문학수첩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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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한때 꿈꾸었던 것이었습니다.

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발길이 닿은 가게에 들어가 직장에서 생긴 일들은 안주 삼아 술을 즐기는...

딱 일본 드라마 <와카코와 술>과 같은 삶을 꿈꾸었던...

어느덧 그 꿈은 Once Upon a Time이 되었지만...

간간이 드라마를 보며 적지 않은 위로를 받곤 합니다.

그렇다고 혼술을 안하는 건 아닙니다.

이제는 주부로써, 엄마로서의 역할을 끝내고 모두가 잠든 밤.

캔맥주 하나와 함께 혼술을 즐기며 나만의 시간을 즐기며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이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혼술'의 매력을 서로 공유하며 무엇보다 더 당당히 혼술을 즐기고 싶은 마음에 저자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과연 저자에게 혼술은 어떨지...

'혼술'을 애타게 동경하다가 수행을 거듭한 끝에

드디어 '혼술 마스터'가 된 어느 독신 여성의 유쾌한 경험담

인생은 혼술이다



그녀가 혼술을 동경하게 된 원점에는 바로 '도라 씨'가 있었습니다.

40대 중반 무렵 어느 날 문득, 텔레비전에서 재방송하는 <남자는 괴로워>를 뚫어져라 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마도 회사원의 삶에, 끝없는 소소한 경쟁에 좀 지쳤던 거겠죠...

그렇다고 거기서 빠져나올 용기도 없는 자신으로부터 도라 씨는 초인처럼 보였던 겁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돌아봅니다.

독신이기는 하지만 집도 있고 일도 있고, 그럭저럭 돈도 있어요. 그런데 언제나 아직 모자라다고, 잃기 싫다고 고민하고 두려움에 떨었던 그녀.

뭘 어떻게 하면 도라 씨처럼...... 하고 생각하다가 불현듯 떠오르게 됩니다.

그래, 우선 '혼술' 수행을 해보자.

하지만 마음만큼 쉽지 않았습니다.

남성들도 주저하기는 마찬가지겠지만 여성 혼자 술집에 들어가는 데는 많은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이건 마치 '맨몸으로 혼자 세계와 마주하는' 경험과도 같은!

집안일도 하고 취미도 있다는 것. 그게 뭐 대수인가. 결국 '뭔가를 할 수 있는 나'에 기대어 사는 것이다. 일을 할 수 있는 나, 집안일을 할 수 있는 나, 요가를 할 수 있는 나, 그래서 남들과 다른 나...... 결국 직함에 기대어 사는 것과 뭐가 다른가.

하지만 그런 건 술집에서는 통하지 않는다. 술집에서 열심히 명함을 돌리거나, 난데없이 요가 교사 자격증이 있다는 설명을 늘어놓을 수 없는 노릇이다. 그대로의 나. 아무것도 아닌 나. 그렇게 되면 대체 어떤 표정을 짓고 술을 마시면 좋을지 알 수가 없다. 그래서 난 술집에 들어가기가 무서운 거다. - page 27

스스로를 다그치며 굳은 결심을 한 뒤 눈을 질끈 감고 문을 열게 됩니다.

실로 새로운 인생의 문을 연 순간이었다.

어찌어찌해서 혼술 데뷔를 마친 상태에서 사장님에게 말을 꺼내게 됩니다.

"앞으로 '혼술'을 잘해보고 싶은데요......"

"혼술! 좋잖아요, 꼭 해보셔야죠!"

네? 너무 쉽게 말씀하시는데, 여자 혼자 술 마신다, 그 말인데요?

"뭐가 어떻습니까? 저희 집에 혼술 하러 오시는 여자분 꽤 많습니다. 으음, 여자분들이 훨씬 용기가 있어요. 남자는 되레 그러지 못하죠."

그, 그런가요?

"얼마나 좋습니까! 인생이 변할 겁니다!"

그,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 건 좀......

"모르는 사람하고도 얘기를 나눌 수 있잖습니까? 그럼 인생의 폭이 넓어질 테니까요......" - page 40 ~ 41

'혼술'을 할 수 있게 되면서 고독하지도 않고 고립되지도 않은 채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닫게 되었고 인생의 두려움이 대부분 사라졌다고 하였습니다.

혼술이 사람을 '어른'으로 만든다고 말하는 그녀.

그러니 꼭 혼술에 도전해 보라며 우리에게 '혼술의 비기 12조'를 일러주었습니다.



우리는 쭈뼛거리면서도 서로를 느끼고 공감과 관심을 가지고 식탁을 함께한 것이다. 우리는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누구나 그렇게 느낄 수 있는 곳을, 다시 말해 혼자지만 혼자가 아니라고 느낄 수 있는 곳을, 낯선 사람들끼리 만들어 가는 게 바로 혼술이다. 이런 시대를 살아가고 있기에 더욱, 혼술은 보석과 같이 빛나는 행위가 아닐까. - page 143

혼술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그렇지 않아도 코로나 영향으로 더 고립과 고독이 가까운 요즘.

'집술'에 대해서도 이야기도 있었습니다.

집술은 나를 알아가는 여정이다. 검을 수행할 때 목검을 휘두르는 것과 같다. 다시 말해 일상 속 단련이랄까. 그런 축적을 통해 진검승부(=밖술)에 도전하더라도, 그야 물론 멋지게 이길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기본을 갖춰야 적어도 단칼에 쓰러져 즉사하는 일은 피할(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집에서 마시려면 무슨 술을 고르고 무슨 안주를 고를지, 선택할 게 무한대로 많다. 그건 무에서 시작해야 한다는 말. 그리고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한다. 술도 안주도 별로인 저녁 술상을 앞에 두고 가게가 별로여서, 메뉴가 꽝이어서, 요리하는 사람이 센스가 없어서, 경영 태도가 영 아니올시다여서, 이렇게 비난할 수 없다. 전부 다 내 탓이다.

그게 바로 집술의 묘미다. - page 172 ~ 173

그저 단순히 마셨는데 이렇게나 깊은 뜻이 있었다고!

앞으로 어디 가서 아는 척을 좀 해야겠습니다.

그냥 집술하는 것이 아니라고.

'나'를 찾아가는 길 가운데에 서 있다고.

(심오하다...ㅋㅋ)

유쾌했습니다.

자신이 수행을 거듭한 끝에 맺은 결실.

실로 경이롭고 아름다웠다고 할까.

그렇기에 저는 오늘도 당당히 '혼술'을 하겠습니다.

맛있는 인생을 살기 위한 혼술 라이프가 시작된다!

"인생은 혼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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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 체조 닥터 이라부
오쿠다 히데오 지음, 이영미 옮김 / 은행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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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오랜만이었습니다.

17년 만의 귀환한 닥터 이라부!

어딘가 이상한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어쩌다 그의 마수에 걸려버린 환자들의 이야기였던 '공중그네 시리즈'.

역시나 제 책장에 자리매김을 하고 있었고...

한동안 뜸하기에 저도 소홀히 지내고 있었는데...

나오자마자 망설임 없이 구매하게 되었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와의 만남을 시작하고자 합니다.

"여하튼 그 의사 선생이 나오면 묘하게 치유가 되더군,

생각해보면, 사람들의 긴장을 풀어주는 거겠지.

우울함의 특효약은 힘을 빼는 걸지도 몰라."

조금의 가벼움과 약간의 대충이 필요한 우리에게

오쿠다 히데오가 선사하는 마법같이 편안한 웃음

라디오 체조



이라부 종합병원.

그 지하에는 정신과가 있습니다.

고급 호텔 분위기인 1층 로비와는 달리 지하는 정반대로 살풍경한 분위기인 이곳.

복도를 지나는 사람도 없어 '정신과' 팻말이 없으면 창고로 잘못 들어왔나 착각할 정도로 복도에는 종이 상자가 쌓여 있고, 벤치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곳을 찾아온 손님(?), 아니 우리 모두가 한 번쯤은 겪었거나 견디는 문제들을 안고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융자를 얻어 집을 마련한 세일즈맨은 어렵사리 쌓아 올린 삶이 무너질까 화가 나는 상황에서 화를 내지 못하다 과호흡증이 오는,

자신이 착실하고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피아니스트에게 갑자기 찾아온 광장공포증이 찾아온,

비대면 수업 후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한 대학생이 자기 자신처럼 사는 방법을 잃어버린...

이들이 노크를 하고 들어서면 정면으로 보이는 책상에 살이 뒤룩뒤룩 찐 중년 의사가 맞이합니다.

의자를 빙그르르 돌려 만면에 미소를 머금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들어오세요-"

바로 그는 닥터 이라부입니다.

여느 의사와는 사뭇 다릅니다.

화를 내지 못하는 이에게

"이건 일본 사람들에게 특히 많이 나타나지. 타인의 규칙 위반이나 부도덕한 행동을 봐도 대립을 피하기 위해 입을 다물어버린다. 그렇게 계속 분노가 쌓여서, 결국은 자기 안에서 폭발해버리는 거지. 후쿠모토 씨의 과호흡이나 공황장애는 거기에서 온 거야. 그러니 쉽게 고칠 수 있어. 화를 내면 돼." - page 91

공연을 망치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피아니스트에게

"차라리 한 번쯤 무대를 펑크 내보면 어떨까? 뭐든 다 경험이 중요하거든."

이라부가 어처구니없는 말을 꺼냈다.

"펑크를 내요? 말도 안 돼요. 손해배상 청구가 회사로 날아와서 저는 바로 해고될 거예요."

도모카가 즉시 고개를 저었다.

"또 그렇게 바로 나중 일부터 걱정하지. 후지와라 씨의 경우는 세상사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버릇과 강한 책임감이 광장공포증으로 이어진 거야. 좀 더 대담해져야지." - page 241 ~ 242

오히려 우리가 듣고 싶었던 말을 대신해 준다고 할까!

그래서 통쾌한!!

하지만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의사의 모습이 아니기에, 틀을 깨는 이라부의 기상천외한 행동요법에 처음엔 모두 믿음이 가지 않고 의심의 눈초리를 하지만 서서히 치유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들은 깨닫게 됩니다.

괜찮아. 괜찮아. 적당히 해도 괜찮다는 것을...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가. 사람에게는 저마다의 그릇이 있다. 자기 그릇에 맞게 살아가는 게 행복 아닐까. - page 215

솔직히 예전엔 그저 신선하다, 유쾌하다, 재미있다 가 주된 감정이었다면 이번 이야기에선 공감된다, 위로된다 가 주였습니다.

정말 저 역시도 스스로 옥죄었던 문제들이 있었지만 마주하지 않았던...

누군가 나에게 해 주었으면 하는 말들을 닥터 이라부로부터 듣게 되어서 몸과 마음의 긴장이 풀어지고 편안해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최고의 처방전을 주었던 이라부.

앞으로도 종종 찾아보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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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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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운 재미와 따뜻한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는 작가, '정세랑'.

정말 오랜만에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설자은'

이번에 탄생시킨 또하나의 독보적 캐릭터와 함께 본격 명랑 역사 미스터리 소설을 선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정세랑 작가가 펴내는 첫 역사소설이자 첫 추리소설, 그리고 첫 시리즈인 '설자은 시리즈'.

한 번 빠져보겠습니다.

천년왕국 통일신라의 휘황찬란한 수도 금성,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황금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대수사극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두뇌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간파하는 비상한 추리력을 가진 '설미은'.

하지만 여성이기에 자신의 능력은 뒷전이 되는...

집안에 죽음이 휘몰아치면서 셋째였지만 맏이가 된 큰오빠 '설호은'이 비범한 능력을 지닌 미은에게 이리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죽은 것은 너다. 미은이다."

"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자은이 되어 글피에 배를 탄다. 자은 대신 장안에 가 공부를 하고 돌아오너라." - page 27

당나라 유학이 내정될 만큼 명석했던 다섯 째 오빠 '설자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미은에게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죽은 오빠 '자은'의 이름으로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웃기지 마. 꾸며낼 것 없이 오라비가 직접 가. 그럼 되잖아?"

"집안은 누가 돌보라고? 그러지 않아도 아슬아슬한 형편인데. 그리 대단히 꾸며내는 것도 아니다. 조용했던 자은을 아는 이는 적고, 너는 더더욱 그림자 아래 있지. 자은이 타기로 했던 배를 타라. 이미 치른 값은 돌려받을 수 없고 네가 완벽히 자은이 되어 돌아와야 이 죽어 망해가는 집안을 일으킬 일편의 방도라도 남는다."

"여인의 몸으로 그 멀리 갔다가 들켜서 죽어버리란 말이야?"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여기 있어도, 아무리 한자리에 머물러도 마찬가지다. 우린 이제 그걸 알지 않니?" - page 28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자은.

공부를 끝마치고 자신의 고향, 신라의 수도 금성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당나라의 등주에서 신라의 당은포로 향하는 배 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을 만나게 되고,

금성의 대저택에서는 연유를 알 수 없는 업화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전쟁 영웅에 얽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사건을,

신라 육부 여인들의 길쌈 대회에서 일어난 사건 등

자은은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망국 백제 출신 식객 '목인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게 됩니다.

그러다 왕의 눈에까지 띄어버린 자은.

왕이 주최한 연회에 초대되어 참석하게 됩니다.

한창 연회가 무르익어갈 때쯤 월지에서 엎드린 채 죽어 있는 시신이 떠오르게 됩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전까지 그 자리에 누구도 돌아갈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왕.

왕의 눈에 들 수 있도록 자은에게 재주를 드러내기를 종용하는 호은.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자은.

과연 자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설자은."

자은의 이름을 불렀다. 자은이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형편없게 나와 혀를 깨물었다.

"나의 흰 매가 되어라." - page 284

역시나 스토리텔러로서의 저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

사실 '남장여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종종 만날 수 있어 자칫 뻔하다 여길 수 있었지만 정세랑 작가님만이 그려낸 배경과 너무나 익숙한 탐정이지만 은근히 묻어 나오는 따스함에 읽으면서 점점 스며든다고 해야 할까...

다음 이야기가 빨리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남겨보자면...

자은과 인곤이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긴 이야기인데...

그 밤, 인곤과 길을 걸었다. 사방이 온통 번성하고 있어 빛과 차오르는 것들로 가득한 밤이었다. 그 무엇도 사그라들거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길 밖 흐린 어둠에 묻힌 것들은 머지않아 잊히고 말 것이었다.

"한 명쯤은 기억하고 있어도 좋을 뻔했어."

인곤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엇을?"

"이 융성한 날들을 위해 누가 죽어야 했는지, 어떤 싸움을 했는지, 한 명쯤은 계속 곱씹고 있어도, 사로잡혀 있어도 좋지 않았겠는가?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그것이 무엇 위에 세워지는지 이 흥청망청한 거리는 다 잊은 것 같군."

"천년이라...... 이다음 천년이라."

자은은 사람들이 잊고 잊고 또 잊는다 해도 이 활기와 온기로 가득한 거리 위로 어둠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누구에게 기원하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 page 173 ~ 174

지금의 우리에게도 일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미 최소 세 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

작가는 열 권 이상의 시리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는데...

과연 앞으로 자은의 활약은 어떨지...

그 행보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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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2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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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우와 다혜.

이 둘은 정령 이렇게 끝나게 되는 것일까...?

"가슴 아픈 청춘의 방황과 참혹한 젊은 날의 슬픔"을

노래한 러브로망의 고전

그 사람은 어디에 있는가

그 사람은 어디로 갔는가

옛날을 말하던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어디로 갔는가

겨울나그네 2



그는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일 년 휴학 뒤끝의 3학년이었고 이제는 졸업반이 된 다혜.

그를 마지막으로 본 건 지난가을 구치소 철문 앞이었습니다.

구치소에서 풀려나오던 그를 문 바로 앞에서 만나 그날 밤 현태 씨와 둘이서 그를 데리고 아버님 산소에 함께 간 뒤...

종적을 감춘 민우...

또다시 다혜는 그를 찾아 나섭니다.

나는 도망자다. 수배된 범죄자다. 이것이 처음이 아니다. 나는 이미 폭행전과 1범의 전과자다. 이번에 나는 사람을 칼로 찔렀으며 밀수 행위의 주동자로 수배될 것이다. - page 36

도망자 신세가 된 민우.

그럼에도 발걸음을 다혜를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다시 만나게 된 다혜의 모습에...

"...... 오랜만이에요."

민우가 웃었다.

"...... 그렇지요. 아주 오랜만이지요?"

"...... 웬일이세요?"

그제야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다혜가 길게 한숨을 쉬었다.

"이곳에 웬일로 서 계세요?"

"다혜 씨를 만나러 왔어요."

민우가 머리를 긁으면서 쑥스럽게 웃었다.

"보구 싶어서 왔어요. 안녕하세요." - page 53

예전과 다름없는 얼굴, 예전과 다름없는 모습이었지만 어딘가 평소의 그가 가진 이미지와 다른 분위기가 느껴집니다.

왜 그럴까. 왜 그가 변한 것처럼 느껴질까.

정말 마치 잠깐 머물다 다시 떠날 사람처럼 행동하는 그의 모습과 뜻밖의 내뱉는 고백에 그저 가만히 바라보며 들을 수밖에 없는 다혜.

그것은 슬픈 일이었다. 사랑하는 그를 위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은 슬픈 일이었다.



한편 현태는 민우를 찾으러 민우의 이모가 있는 곳까지 가게 됩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유일한 친구였던 민우의 아이를 밴 여자의 모습을 보게 되는데...

"그이는 내가 아이를 가진 것을 몰라요. 그이가 이곳을 떠날 때에 난 벌써 아이를 가졌는데 우린 둘 다 그 사실을 몰랐어요."

...

"다음 주가 산달이에요. 다음 주면 배 속에서 아이가 나와요. 무서워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르는 사람의 아기를 나 혼자 낳을 생각을 하면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어요. 그 사람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요?"

"...... 모릅니다. 그래서 제가 이리로 온겁니다."

맥없이 웃으면서 현태가 말을 받았다.

"어디선가 붙들려 혹시 감옥에 있는 것은 아닐까요?"

"...... 아기를 낳으면......"

현태가 주머니를 뒤져 명함을 꺼냈다.

"...... 제게 연락을 주십시오." - page 120 ~ 121

현태는 이 상황이 가엾었습니다.

민우가 그토록 사랑하는 다혜, 민우를 그토록 사랑하는 다혜.

두 사람의 사랑은 어떻게 하고...

어디에 두고...

민우의 아이는 태어나야 할 것이냐...

불행이다. 이것은 불행이다. 가혹한 운명의 장난이다.

또 한 번 오랜 감옥 생활을 마치고 출감한 민우.

다신 돌아가지 않겠다 결심했지만 갈 곳이 기지촌밖에 없었고 거기서 자신의 아이를 키우고 있는 은영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에게만 잔혹한 현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다혜는 점점 현태에게 의지하며 민우를 잊어가고, 몇 년 후 불현듯 찾아온 은영에게서 민우의 죽음을 듣게 됩니다.

그의 무덤 앞에 선 두 사람...



지고지순한 민우와 다혜의 사랑.

가슴 저미도록 아팠습니다.

그래서 더 이 노랫말이 와닿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문 앞 샘물 곁에 서 있는 보리수.

나는 그 그늘 아래 단꿈을 보았네.

가지에 희망의 말 새겨놓고서.

기쁘나 슬플 때나 찾아온 나무 밑.

오늘밤도 거니네 보리수 곁으로.

캄캄한 어둠 속에 눈 감아보았네.

가지는 흔들려서 말하는 것같이.

그대여, 이곳에 와서 안식을 찾아라.

민우의 모습이 아련이 그려지는데...

풋풋했기에 더 아름다웠던 젊은 날의 초상.

이제는 한 편의 수채화로 남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소중한 감정 하나 받게 되었습니다.

이 소설.

다른 이들도 읽으며 각자 소중한 무언가를 얻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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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나그네 1
최인호 지음 / 열림원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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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것 같은데...

뭐였을까...?!

앗!

뮤지컬 <겨울나그네>였습니다.

어쩐지... 낯설지 않더라니...

알고 보니 이 소설은 1986년 영화한 것이 대성공을 거두며 지금까지 청춘영화의 고전으로 불리고 있었고 1989년에는 드라마로 방영되며 시청자들의 사랑을 받았다고 하였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어릴 때니까...

기억이 안 나는 건 당연한 거고...

1997년에는 뮤지컬로 공연되기도 했다고 하니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은 작품임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2023년.

벌써 작년이 되었지만 작가의 10주기를 맞아 다시 한번 뮤지컬을 공연하고 이렇게 개정판을 출간하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20년 만에 다시 찾아온, 잃어버린 순수와 아련한 첫사랑의 기억

최인호 소설가 10주기 기념 뮤지컬 <겨울나그네> 원작소설

"이제는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다.

기쁜 우리들의 젊은 날은 저녁놀 속에 사라지는

굴뚝 위의 흰 연기와도 같았나니."

겨울나그네 1





학창 시절에도 일 년 내내 병 때문에 누워만 지내야 했던 '정다혜'.

캠퍼스 생활을 기대했던 것도 잠깐 또다시 병으로 휴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일 년.

그토록 다시 찾아가고 싶었던 캠퍼스는 아무것도,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었습니다.

꾸역꾸역 점심을 먹고 늦은 오후에 남아있는 강의를 들으러 가던 중 그녀의 곁을 뭔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하마터면 정면으로 충돌할 뻔했지만 용케도 간신히 엇비낀, 그래도 그 충격으로 다혜는 비명을 지르며 그 자리에 넘어집니다.

그때였습니다.

"미안합니다. 가만히 계세요. 제가 주워드리겠습니다."

...

"제 잘못만은 아니에요. 자전거를 타고 가는데 아가씨가 워낙 급하게 숲길에서 뛰어왔어요.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습니다. 꼭 죽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어요. 괜찮으세요?" - page 29

그러나 정작 넘어져 마땅히 화를 내야 할 사람은 넘어진 것이 마치 자신의 잘못이라도 되는 양 쩔쩔매고 있는 그녀.

이상한 아가씨로군.

'한민우'

황급히 이것저것 주워주다가 네모지게 접힌 손수건과 수첩을 챙기지 못한 그녀에게 건네주기 위해 학과를 찾아가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녀는 어디에 있는가. 그녀는 과연 누구인가?

그러다 우연한 계기로 이 둘은 만나게 되고 다혜를 사랑하게 된 민우는 친구 현태의 도움으로 다혜와의 만남을 이어가게 됩니다.

이 만남이 지속된다면 좋았겠지만...

그동안 집안에서 자신의 엄마에 대해선 금기시되어 있었는데 술집 여인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 민우.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뜻하지 않게 전과자가 된 그는 대학을 떠나게 되고, 기지촌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의대생이었지만 한순간 그의 삶은 타락과 어둠 속으로 빠져들게 되고 다혜 곁을 떠난 그...

흔적도 없이 사라진 그를 기다리는 다혜.

현태의 도움으로 재회를 하게 되지만 감옥 생활로 또다시 멀어질 수밖에 없었던 이들.

출소 후 기댈 곳이 없어진 민우는 유일한 혈육인 이모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하게 되고 그곳에서 만난 은영(제니)으로부터 발목 잡히게 됩니다.

"...... 내겐 ...... 다른 여인이 있어."

오랜 망설임 끝에 민우가 말했다. 제니는 마시던 커피잔을 맥없이 내려놓으며 물었다.

"그년이 누구예요? 어떤 계집년이에요?"

"이곳에 있는 여자는 아니야."

민우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럼 어디 있어요?"

제니가 민우의 가슴을 가리켰다.

"이곳에 있구나. 가슴속에, 민우 씨 마음속에...... 됐어요. 이 말만 대답해보세요. 그 여자하구 잤어요?"

민우가 우울한 눈빛으로 제니의 눈을 바라보았다. 민우는 머리를 흔들었다.

"그럼 됐어요. 잠은 나하구만 자요. 그 여자는 가슴속에만 남겨두구요. 키스는 나하구만 해요. 그 여자는 마음속에 남겨두구. 그럼 됐잖아요. 아아, 언젠가는 그 여자를 찾아가겠지요. 아까 한 말, 이 거리를 떠나겠다는 말이 그 말이로군요. 그 여자를 찾아가겠다는 말이군요. 하지만 지금은 내 곁에 있어요. 우리 함께 이곳에 있어요. 그 여자는 내가 누구인지 모르지만 먼 곳에 있고 난 민우 씨 바로 앞에 있어요. 언젠가 그 여자를 찾아 내 곁을 떠난다 해도 그때까지 민우 씬 내 거예요."

"...... 어째서?"

민우가 고통스런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왜 날 원하지"

"......눈 때문이에요."

제니가 말했다.

"민우 씨의 눈을 보면 슬퍼져요. 민우 씨에겐 나 같은 여자가 있어야 해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 page 391 ~ 392

이제 민우는 다혜의 곁을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인데...

다음 권에서 펼쳐질 이야기는 어떨지...



가슴 먹먹하였습니다.

사랑하지만 다가갈 수 없는...

그렇게 나에게 주어진 현실에 살기엔...

너무 가혹하지 않은가...

민우와 다혜의 이루어지지 못해 더욱 애틋한 이야기.

한편으론 은영 역시도 알고보면 너무 불쌍하고...

아무튼 그 시절 그 감성...

오래간만에 느끼니 새로웠습니다.

그래... 이런 사랑...

어쩌면 고팠던 것일까!

빨리 다음 권을 읽어봐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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