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설자은 시리즈 1
정세랑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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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교사 안은영』 『시선으로부터』

언제나 우리에게 놀라운 재미와 따뜻한 감동을 동시에 전해주는 작가, '정세랑'.

정말 오랜만에 작품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설자은'

이번에 탄생시킨 또하나의 독보적 캐릭터와 함께 본격 명랑 역사 미스터리 소설을 선보인다고 하였습니다.

정세랑 작가가 펴내는 첫 역사소설이자 첫 추리소설, 그리고 첫 시리즈인 '설자은 시리즈'.

한 번 빠져보겠습니다.

천년왕국 통일신라의 휘황찬란한 수도 금성,

세상 어디에도 없는 황금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미스터리 대수사극

설자은, 금성으로 돌아오다



한 번 본 것은 결코 잊지 않는 두뇌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일을 간파하는 비상한 추리력을 가진 '설미은'.

하지만 여성이기에 자신의 능력은 뒷전이 되는...

집안에 죽음이 휘몰아치면서 셋째였지만 맏이가 된 큰오빠 '설호은'이 비범한 능력을 지닌 미은에게 이리 말하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오늘 죽은 것은 너다. 미은이다."

"나라니, 그게 무슨 소리야?"

"너는 자은이 되어 글피에 배를 탄다. 자은 대신 장안에 가 공부를 하고 돌아오너라." - page 27

당나라 유학이 내정될 만큼 명석했던 다섯 째 오빠 '설자은'의 급작스러운 죽음을 미은에게 본래의 이름을 버리고 죽은 오빠 '자은'의 이름으로 당나라 유학길에 오르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 어이없는 상황에...

"웃기지 마. 꾸며낼 것 없이 오라비가 직접 가. 그럼 되잖아?"

"집안은 누가 돌보라고? 그러지 않아도 아슬아슬한 형편인데. 그리 대단히 꾸며내는 것도 아니다. 조용했던 자은을 아는 이는 적고, 너는 더더욱 그림자 아래 있지. 자은이 타기로 했던 배를 타라. 이미 치른 값은 돌려받을 수 없고 네가 완벽히 자은이 되어 돌아와야 이 죽어 망해가는 집안을 일으킬 일편의 방도라도 남는다."

"여인의 몸으로 그 멀리 갔다가 들켜서 죽어버리란 말이야?"

"사람이 죽고 사는 건 여기 있어도, 아무리 한자리에 머물러도 마찬가지다. 우린 이제 그걸 알지 않니?" - page 28

그렇게 성인이 될 때까지 숱하게 죽을 고비를 넘기며 당나라 유학길에 오른 자은.

공부를 끝마치고 자신의 고향, 신라의 수도 금성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돌아오는 길에서부터 기이한 사건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당나라의 등주에서 신라의 당은포로 향하는 배 위에서 의문의 살인 사건을 만나게 되고,

금성의 대저택에서는 연유를 알 수 없는 업화로 인해 죽음의 문턱에 이른 전쟁 영웅에 얽힌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는 사건을,

신라 육부 여인들의 길쌈 대회에서 일어난 사건 등

자은은 무엇이든 뚝딱 만들어내는 망국 백제 출신 식객 '목인곤'과 함께 사건을 해결해나가게 됩니다.

그러다 왕의 눈에까지 띄어버린 자은.

왕이 주최한 연회에 초대되어 참석하게 됩니다.

한창 연회가 무르익어갈 때쯤 월지에서 엎드린 채 죽어 있는 시신이 떠오르게 됩니다.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 전까지 그 자리에 누구도 돌아갈 수 없다고 엄포를 놓는 왕.

왕의 눈에 들 수 있도록 자은에게 재주를 드러내기를 종용하는 호은.

그저 눈에 띄지 않고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자은.

과연 자은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설자은."

자은의 이름을 불렀다. 자은이 대답했지만 목소리가 형편없게 나와 혀를 깨물었다.

"나의 흰 매가 되어라." - page 284

역시나 스토리텔러로서의 저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었던 이 소설.

사실 '남장여자'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종종 만날 수 있어 자칫 뻔하다 여길 수 있었지만 정세랑 작가님만이 그려낸 배경과 너무나 익숙한 탐정이지만 은근히 묻어 나오는 따스함에 읽으면서 점점 스며든다고 해야 할까...

다음 이야기가 빨리 이어지길 바랄 뿐이었습니다.

이 책에서 인상적인 이야기를 남겨보자면...

자은과 인곤이 사건을 해결하고 돌아가는 길에 남긴 이야기인데...

그 밤, 인곤과 길을 걸었다. 사방이 온통 번성하고 있어 빛과 차오르는 것들로 가득한 밤이었다. 그 무엇도 사그라들거나 끝나지 않을 것 같았다. 길 밖 흐린 어둠에 묻힌 것들은 머지않아 잊히고 말 것이었다.

"한 명쯤은 기억하고 있어도 좋을 뻔했어."

인곤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무엇을?"

"이 융성한 날들을 위해 누가 죽어야 했는지, 어떤 싸움을 했는지, 한 명쯤은 계속 곱씹고 있어도, 사로잡혀 있어도 좋지 않았겠는가? 천년왕국을 고대하며, 그것이 무엇 위에 세워지는지 이 흥청망청한 거리는 다 잊은 것 같군."

"천년이라...... 이다음 천년이라."

자은은 사람들이 잊고 잊고 또 잊는다 해도 이 활기와 온기로 가득한 거리 위로 어둠이 드리워지지 않기를 기원했다. 누구에게 기원하는지도 정하지 않은 채. - page 173 ~ 174

지금의 우리에게도 일러주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이미 최소 세 권으로 기획된 이 시리즈.

작가는 열 권 이상의 시리즈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였는데...

과연 앞으로 자은의 활약은 어떨지...

그 행보에 주목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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